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62명이 탄 대형 여객선이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민·관·군·경이 총동원돼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나도록 280여명의 승객이 실종되거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1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대형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여객선이 침몰한 곳은 진도군 관매도 서남쪽 3㎞ 해상이다. 선박 통행이 많은 곳이어서 선박 간 충돌이 심심찮게 일어났지만 이번과 같은 큰 사고가 난 적은 없다. 사고 해역에 큰 암초도 없고, 사고 당일 아침 안개가 끼지도 않았다고 한다. 무리하게 많은 승객을 태우거나 과적을 하지도 않았고, 해상의 파고도 1m 안팎으로 잔잔했다고 한다. 선장 또한 같은 항로만 8년째 운항한 베테랑이었다니, 왜 사고가 났는지 쉽게 유추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심스러운 대목은 있다. 사고 여객선은 15일 저녁 짙은 안개 때문에 예정보다 2시간 늦은 오후 9시 출항했다고 한다. 흐린 날씨에 야간 운항을 하던 중 어디에선가 외부 충격에 의해 선체 밑부분에 구멍이 뚫렸으나 미처 감지하지 못한 채 운항을 계속하다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 생존자들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어졌다고 증언하는 것으로 보아 사고 해역에 또 다른 외부 충격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명확한 사고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인명 구조다. 해상에서의 구조작업은 시간 싸움이다. 실종자들은 바다에 떠 있을 수도 있고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밀폐된 선실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체온증이나 산소부족 현상이 심해져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려면 더 많은 구조대가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사고 이후 정부 대응은 한심할 정도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한때 368명이 구조되었다고 발표했으나 1시간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민간, 군, 해군이 동시다발적으로 구조하다 보니 숫자에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충격에 빠져 있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다. 경기교육청에서도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그릇된 정보를 전파해 혼란에 빠뜨렸다.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다른 사고도 그렇지만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이 단체 여행에서 사고를 당하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수치스럽고 통탄할 일이다. 올 초 경주에서 발생한 부산외대 학생 사고가 그렇고 지난해 태안에서 있었던 공주사대부고 학생의 해병캠프 사고가 그렇다. 안전감각이 무딘 나라, 청소년 안전을 안일하게 여기는 사회는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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