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7일 SK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개인 투자금 명목으로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상고심 재판에서 원심대로 징역 4년을 확정했다. 최 회장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원심과 같은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최 회장 형제는 2003년부터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자금을 맡겨 선물(先物)·옵션 투자를 하던 중 2008년 추가 투자금이 필요하자 SK텔레콤, SK C&C 등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불법으로 빼돌려 김씨에게 송금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SK그룹은 2013년 현재 계열사 81개, 자산 규모 140조6000억원으로 국내 재벌 그룹 가운데 삼성·현대자동차에 이어 제3위의 대기업 집단이다. 종업원 수도 7만8600명에 이른다. 이런 재벌 그룹의 총수 형제가 동시에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은 "재계 3위인 SK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이 그룹 계열사 자금을 사적(私的)인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 등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고 판결 의미를 강조했다. 법원이 경제계에 전하고 싶은 경고(警告)가 여기에 담겨 있다.
무거운 실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 형제의 과오(過誤)를 새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최 회장 형제를 둘러싼 SK 임직원들이 과연 제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보고 가야 한다.
최 회장 형제가 계열사 자금을 빼내 투자금으로 맡긴 최종 종착지는 SK해운 고문 직함을 갖고 있던 김원홍씨였다. 김씨는 그룹 내부에서 공식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최 회장은 김씨에게 개인 자금 관리를 맡기고 그를 웃어른처럼 받들었다고 한다. 총수가 친근감을 표시하자 SK 임원·간부들은 김씨가 지시하면 무조건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를 '묻지 마 회장님'으로 불렀다는 말도 있다. 임직원들이 회장의 비공식(非公式) 라인에 있는 사람의 지시를 더 중시했다는 것이다.
회사에는 최종 의사 결정 기구로 주주총회가 있고, 일상적으로는 이사회가 중요한 자금 이동이나 신규 투자를 결정한다. 회사마다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을 감시하는 감사(監事)도 있고, 사외 이사들도 불법행위에 얼마든지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러나 SK그룹 내부에서 이런 공식적인 기구들은 일절 가동되지 않았다. 임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총수와 총수의 비공식 라인에 있는 인물 사이에 오가는 거액의 자금 흐름에 대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
재벌 그룹에서 총수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서 때로는 사퇴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지시를 함부로 거역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상장 회사에 투자한 외국인들의 지분(持分)은 34.9%이다. SK텔레콤만 봐도 48.5%가 외국인 주주(株主)일 만큼 국제화된 기업이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총수 1인 지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총수들부터 이번 대법원 판결의 뜻을 새겨봐야겠지만, 대기업 임직원들도 총수 지시에 복종하는 것만이 회사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때가 됐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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