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발표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이 막판 수정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원안(原案)이 대통령으로부터 퇴짜를 맞는 등 혼선이 있었다. 기획재정부가 당초 마련한 3개년 계획안은 3대 전략, 15대 핵심 과제, 100대 실행 과제로 구성돼 있었다. 기재부는 지난 19~20일 언론에 초안(草案)을 미리 브리핑하면서 "관계 부처 및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많은 협의를 거쳤으며 청와대와도 최종 논의를 마쳤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25일 대통령 담화문 발표 직후에 나온 참고 자료에는 15대 핵심 과제가 '9대 핵심 과제 및 통일 시대 준비 과제'로 바뀌었다. 기재부가 처음에 내놓았던 100대 실행 과제 가운데 44개는 아예 탈락했다.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언론에 사전 설명까지 끝낸 정부 발표 내용이 이렇게 대폭 수정된 것은 최근 30년 내 없었던 일이다.
3개년 계획에서 빠진 것 중에는 공공 기관 임원 인사 제도 혁신, 지방자치단체 파산제 도입 등 굵직굵직한 내용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설치와 친환경 에너지 타운 조성 같은 내용은 추가됐다.
발표 형식도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기재부 실무자들은 박 대통령이 큰 줄거리만 공개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현오석 부총리가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5일 세세한 정책과 수치(數値)를 밝히며 41분간에 걸쳐 직접 발표했다. 현 부총리가 따로 가질 것이라던 기자회견은 당일 아침 돌연 취소됐다.
대통령이 중요한 정책 구상을 마지막까지 고치고 다듬는 것은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TV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모습도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3개년 계획 발표 과정의 혼선은 정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 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청와대가 결정권을 휘두르고 장관들은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본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현 부총리는 청와대의 보조(補助)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현 부총리와 기재부가 내놓은 많은 정책 구상이 무시됐고 설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기재부는 100대 과제 중 뭐가 살아남고 뭐가 빠지는지 알지 못해 허둥대다 뒤늦게 "대통령 담화문 발표 이후 배포된 참고 자료에 들어 있지 않은 정책은 3개년 계획에서 빠진다"고 밝혔다.
국정(國政)의 큰 방향은 대통령이 잡아주어야 하지만, 세부 정책은 부처 간 의견 조율·조정을 거쳐 이뤄지는 게 정상이다. 대통령이 세부 정책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고 결정한다면 굳이 경제부총리를 따로 둬야 할 이유가 없다. 이번 일로 국민은 현 부총리와 경제팀이 대통령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경제팀이 지금부터 우리 경제의 대도약(大跳躍)을 위해 추진력을 발휘하겠다며 앞장선다고 한들 어느 기업, 어느 국민이 대통령의 신뢰도 받지 못하는 경제팀을 믿고 따르겠는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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