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주된 변수로 등장했다.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문제 있는 기업 이사진 구성에 반대표를 적극 행사하는 쪽으로 관련 지침을 개정키로 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자기 뜻대로 주총을 치러온 대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시장경제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너무 당연한 얘기다. 기업 총수 1인이 좌지우지해온 이른바 황제경영의 폐해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 지침 개정안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핵심이다. 우선 횡령·배임 행위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사는 물론 이를 막지 못한 이사진도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번 반대 대상에 포함되면 최소 3년간은 이사 선임이 제한된다. 10년 이상 재직했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인 ‘거수기’ 사외이사도 반대표 행사 대상이다. 경영진 감시 기능이 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총 전에 국민연금의 결정 사항을 일반 주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80조원 이상을 주무르는 기관투자가의 맏형이다. 삼성전자 7.4% 지분을 갖고 있어 오너인 이건희 회장보다 2배 이상 많다. 포스코와 KT, 네이버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다. 그간 재무적 투자가 역할에 그쳐 주주권 행사는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은 투자 가치와 직결돼 있다. 최고경영진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데 기업의 주가가 오를 리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국민연금이 기업 투명성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대기업 총수의 독단경영을 견제할 곳도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뿐이다.
재계도 경영권 문제만 나오면 쌍수 들고 반대할 일은 아니다. 비리 경영진을 계속 묵과해달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최대주주다.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을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회장 바꾸라’며 기업 일에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를 피하려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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