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4일 월요일

경향 [사설]이주민을 ‘타자’로 서술하는 사회교과서

한국인의 삶은 ‘우리’라는 무리 속에 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떠난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자리매김된다. 단일 민족주의 신화가 그렇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고 ‘우리끼리’의 문화가 그렇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 한국인’이라는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내용의 칼럼 집을 내면서 책 제목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 붙였다. 이방인의 눈에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이고, ‘우리’에 끼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한국사회의 타자(他者)일 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사회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조대훈 교수)이 고교 사회교과서 5종을 ‘글로벌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분석해 교육부에 제출한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고교 교과서는 사회적 소수자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 즉 외국 출신 거주자들을 암묵적으로 타자화(他者化)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 습득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민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교육적·사회적으로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A교과서) “다문화 가정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층에 속하며 언어 및 문화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B교과서)

이런 내용은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교육을 하는 교과서라면 현상에 대한 서술에 그치지 말고 그 같은 현상을 부른 원인과 배경, 이주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런 물음이 생략되면 이주민의 부적응과 실패를 특정 소수자 집단의 무능력 또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인식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 초기 부적응 현상에 대한 일방적 서술이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교과서는 청소년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교과서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진다. 이주민들에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비쳐지지 않으려면 교과서부터 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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