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뮤지컬을 관람하며 온 국민이 문화를 즐기시라고 독려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다양한 문화시설이 무료나 할인 혜택을 펴 누구나 문화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국가 캠페인이다. 정부가 나서서 문화가 ‘있는’ 날을 굳이 정한 까닭은 문화야말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향유 격차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 격차를 줄이려고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문화누리카드’ 발급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가족당 연간 10만원에 청소년 1인당 5만원씩 세대 내 5명까지 발급해 최대 35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신청 대상자는 324만 명이지만 예산 탓에 144만 명에게 520억원의 현금카드 혜택을 줄 계획이었다.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을 꼽은 정부가 문화를 ‘누리라’며 국민에게 돈을 푼 것이다.
물론 전달 방식의 문제는 있었다. ‘문화 바우처’란 이름으로 세대당 5만원이었던 지난해는 연말까지 신청자가 92%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원 금액이 대폭 오르고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등 홍보가 널리 되면서 신청이 폭발했다. 여기에다 ‘선착순’이라는 무리수를 두다 보니 재원이 한정된 만큼 첫날부터 주민자치센터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청자들은 문화누리카드 홈페이지가 종일 먹통이 되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소동을 뒤집어 보면 저소득층의 문화 갈증이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과감하게 문화누리카드 예산을 늘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문화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넓혀줘야 한다. 또한 받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보다 세심한 전달 체계가 필요하다.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선착순이 아니라 공평하고 합리적인 분배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문화가 없는 날’이 태반인 소외 계층에 ‘문화가 있는 날’을 마련해 주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의무이자 예의다. 그렇게 속 깊게 우리 이웃을 보듬는 마음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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