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선수들은 한국의 성취와 가능성을 몸으로 증명했다. 얼음 종목은 육상·수영·리듬체조보다 마찰력에서 자유로워 인간의 기예(技藝)를 더욱 뽐낼 수 있다. 그중 압권은 여자 피겨다.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여왕’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은메달을 걸었지만 그녀가 ‘역사의 금메달’이라는 건 세계 언론이 인정한다. 부당한 결과마저도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다.
이번 대회에서 보듯 유럽 스케이트 선수들은 빙상의 지배자들이다. 그런 선수가 이상화를 ‘빙상의 우사인 볼트’라고 했다. 이상화는 물이 차는 무릎을 이겨내고 그런 신화를 만들었다. 그도 한국인이다.
17세 여고생 심석희는 마지막 반 바퀴 역전 스퍼트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막내의 투혼에 자극 받아 언니 박승희도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다. 이들이 모두 한국의 신세대다. 팀추월 2위에 오른 남자 빙속, 컬링·스키·썰매에서 최선을 다한 ‘이름 모를 선수들’··· 이들이 모두 한국인이다.
안현수는 8년 만에 ‘금메달 3개’를 다시 따냈다. 이는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이다. 국적은 러시아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아들이다.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자랐다.
한국인의 ‘얼음 괴력’은 사실 뿌리가 있다. 1964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에서 북한의 한필화가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시아인이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건 한필화가 처음이다. 그 피가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낭자들에게 흘렀다. 한필화를 냈던 북한이 50년이 지난 올해 한 명도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이제 소치는 가고 평창이 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은 ‘반쪽 8년’이었다. 88은 자유·공산 진영이 모두 참가한 완벽한 올림픽이었다. 88 이후 세계엔 이념을 넘는 개방의 바람이 몰아쳤다. 소련과 동유럽권이 무너졌다. 88이 역사 변혁에 기여한 것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은 88 이후 30년 만이다. 88처럼 평창도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반듯하고 화합적이며 경제적인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소치의 ‘김연아 판정’을 나무라지만 사실 88때도 일부 판정 시비가 있었다. 평창은 달라야 한다. 남북한이 공동선수단으로 뛰면 평창은 화합과 통일의 ‘점프대’가 될 수 있다.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겨울올림픽으로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꼽힌다. 소치 예산의 5분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효율적인 올림픽을 만들어냈다. 평창은 고정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후 활용도를 철저하게 신경 써야 한다. 선수보다 못한 국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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