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7일 목요일

경향 [사설]“친구들에게 한국엔 절대 가지 말라고 하겠다”



처참한 ‘노예노동’에서 풀려났다. 그동안 받지 못했던 임금과 퇴직금도 뒤늦게나마 손에 쥐었다. 이제 출국하면 꿈에서도 그리던 부모형제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이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집권여당 실세라는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서 2년 동안 입었던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상처가 워낙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의 무용수·연주자 12명은 “춤을 추다 다리와 허리를 다쳐 아픈 날에도 온 힘을 다해 공연을 해야 했다”면서 “박물관에서 지낸 2년은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긴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한 책임자로서 홍 사무총장을 비난했다. 한편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 구성원이라면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한국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겠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홍문종 박물관 사태’는 직접적으로는 홍 사무총장이 자신의 위세만을 믿고 온갖 법규를 위반해가며 이주노동자들의 착취를 용인해오다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선은 홍 사무총장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범법행위와 도덕적 일탈을 가능케 한 한국사회의 풍토와 구조적 환경을 이들은 직시하고 있다. “한국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겠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은 외국인, 특히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나라의 사람들은 노예처럼 부리면서 자기 잇속만 챙기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른바 ‘다문화 담론’이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등 인종주의적 독소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입으로는 다문화를 외치지만 구체적인 일상에서는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모멸과 편견, 착취와 배제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새삼 확인된 셈이다. ‘홍문종 박물관’이라는 독버섯은 그냥 우연히 자라난 게 아니다. ‘다문화 담론’의 뒤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종주의의 음습한 토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다문화 담론’이 한국사회의 인종주의를 미화하고 은폐하는 면죄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겸허하게 성찰해야 한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가로막는 제도와 법률은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은 반드시 가볼 만한 나라라고 널리 알리겠다”고 말할 때까지 이러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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