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혼 시 재산분할 청구 범위에 대한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혼할 때 미래에 받게 될 퇴직금이나 퇴직연금도 배우자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퇴직일과 수령할 퇴직금·연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으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1995년 판례를 19년 만에 깬 것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황혼이혼이 증가하면서 퇴직금과 연금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상을 반영한 판결로 평가한다.
이혼 시 재산분할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부부가 혼인 후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한 재산을 헤어질 때 공평하게 나누자는 것이다. 그러나 퇴직급여를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기존 판례로는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경제활동을 해온 배우자는 이혼 후에도 퇴직금이나 연금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하는 반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배우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퇴직급여를 법으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는 나라가 적지 않다. 독일의 경우 퇴직급여 분할의 원칙은 물론 분할 비율까지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법에 따라 퇴직연금을 분할토록 하고 있다.
대법원은 “퇴직금과 퇴직연금은 ‘후불 임금’적 성격이 포함돼 있어 부부 쌍방이 협력해 이룩한 재산으로 볼 수 있는 만큼 이혼할 때도 분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미래에 받을 퇴직금의 경우 이혼 시점에는 어느 정도 불확실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재산분할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고 실질적 공평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장래 받을 퇴직금 전액이 분할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에 퇴직한 것으로 가정해 분할 금액을 산정하라는 것이다. 사실심 변론 종결일은 통상 2심 변론이 끝난 시점을 말한다.
이번 판결은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일부에서는 후폭풍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미래 퇴직금을 나눠주고 싶어도 현재 재산이 없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재산분할을 위해 빚까지 내야 하는가 등의 우려다. 또한 대법원이 ‘미래 퇴직금도 분할 대상’이라는 원칙만 수립했을 뿐 구체적 분할 비율을 정하지 않은 만큼 향후 유사 소송에서 혼란이 예상된다. 부부의 재산 형성에 각 배우자가 기여한 정도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개별 법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처럼 입법을 통해 재산분할 대상과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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