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1일 월요일

경향_[사설]예비타당성 조사 완화라니, 4대강 교훈 잊었나

정부가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면제 규정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가 무력화되면서 국가재정이 줄줄 새는 판국에 추가로 기준 완화라니 어리둥절하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개발사업의 경제성이나 재원조달 방법 등을 사전에 살펴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고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고가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1999년 도입됐다. 정부는 이 제도가 15년이 지나면서 경제규모가 커진 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은 조사사업 대상을 총사업비 1000억원, 국고지원 600억원 이상으로 늘리고 배점 기준도 현재의 경제성 위주에서 지역균형발전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우선 정부의 정책 후퇴가 의아하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요 사업들이 온갖 편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에서 빠졌다며 기준 강화를 강조해 왔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까지 436개 사업(사업비 208조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41%인 179개 사업(사업비 107조원)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것을 막았다. 반면 59건(18%)은 경제성이 부족하지만 지역균형발전 등의 정책적 고려로 사업이 추진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이 추가로 완화되면 예비조사 사업이 크게 줄게 되고 자칫 권력실세들이 앉아있는 지역에서는 무분별한 개발사업이 횡행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국책사업임을 내세워 조사면제 항목에 재해예방을 새로 만들어 넣은 뒤 예비타당성 조사를 건너뛰었던 4대강 사업처럼 경제성 없는 사업이 정치적으로 강행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거품 붕괴 뒤 전역에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진행됐다. 도쿄 북쪽의 한 지자체는 하루에 자동차 1, 2대를 구경하기 힘든 곳이지만 왕복 4차선 고가도로를 세웠다. 건설로 체감경기를 살리겠다며 진행된 것이지만 결국은 재정만 축내면서 일본의 국가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정부와 지자체 역시 재정이 넉넉지 않은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더욱 구속력 있게 만들어 한정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해도 시원찮을 판에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훗날 부담만 지울 게 뻔하다. 내친김에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맨 앞자리에 두고 있는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 기조도 되돌아봤으면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월가의 파생상품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원은 주택 거품에서 비롯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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