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가 어제 경제 5단체장을 만났다. 새 경제팀이 발족하면 으레 이뤄지는 만남으로 별반 새로울 것은 없다. 오고 간 얘기 역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주문’(최 부총리), ‘규제개혁 요구’(재계) 등 정형화된 테마에 정부의 경제정책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상투적 발표문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 우리가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한국경제의 ‘절대 갑’은 역시 자본이라는 사실이다. 체감경기 회복에 애가 탄 정부로서는 재계가 움직여주길 바랐지만 재계는 예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마련’을 거론하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말을 갈아타면서 기업 도움이 절실했던 터라 이런 태도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곳간에 돈더미가 쌓였는데 투자와 고용 창출에 인색한 재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법인세 인하와 고환율 등 보수 정권의 기업친화적 정책으로 기업들은 적잖은 과실을 챙겼지만 가계는 그렇지 못했다. 당장 법인세 인하로 기업들은 지난 몇년간 28조원이 넘는 세금부담을 줄였지만 투자와 일자리 창출은 미미했다. 금융위기 탈출 직후인 2010년을 제외하고 투자 증가율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에는 전년보다 3% 이상 줄어든 123조원에 그쳤다. 일자리도 국외로 나갔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유보금 과세 문제 역시 재계 주장처럼 잘못된 개념 정의에서 비롯된 이중과세라 하더라도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 소비를 살리고 기업 투자 기회로 이어지도록 선순환해야 한다는 정부의 진단은 틀리지 않다. 이날 만남에서 재계가 통상임금 등 노동이슈를 거론하며 기업들이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기업환경이 녹록지 않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 개선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국제기관들의 권고조차 무시하는 행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재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고가의 명품이나 수입해 돈을 버는 3, 4세대들의 경영 행태에 한숨을 쉰다. 기업 상속과정에서 형제간의 골육상쟁까지 벌이는 모습도 수없이 목격했다. 열정으로 가득 찼던 창업세대들의 기업가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이익과 책임 사이에서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에 희망은 없다. 경영 환경이나 규제를 탓하기에 앞서 재계 스스로 무력감을 떨치고 새 패러다임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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