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어제 내놨다. 예고한 대로 내수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시중에 돈을 푸는 게 주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내수 활성화의 근본 처방인 가계소득 해법은 외면한 채 효과도 불분명한 근시안적 미봉책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새 정책방향의 초점은 ‘내수가 나아질 때까지 거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무차별적 재정투입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을 본뜬 것이다. 우선 경기부양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결딴나는 듯한 인식이 부담스럽다. 정부는 경기하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7%로 내다봤다. 이는 잠재성장률과 부합하는 수준으로 반드시 부양을 필요로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부양효과도 의심스럽다. 정부는 재정이나 금융 지원을 통해 41조원을 부동산시장과 기업 등에 풀겠다고 했다. 일단 부동산을 내수 활성화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뜻이지만 혜택은 일부 부유층에만 국한되고 다수는 오히려 가계부채의 함정에 빠질 소지가 크다. 정책금융 지원 역시 필요한 곳보다는 눈먼 돈이라는 인식에 정치논리가 우선하면서 공염불이 되는 사례를 봐왔던 터다. 정부는 내년에도 돈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수 부족이 현실화된 상황이어서 본질인 증세에는 눈을 감은 채 확장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나마 기대했던 기업소득의 가계소득 전환은 사실상의 구호에 그쳤다. 사내유보금 과세는 기업 반발에 눌려 기업소득 환류세제로 이름이 바뀌고 2017년부터 과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사실상 ‘없는’ 정책이 됐다. 대신 배당소득에 대해 주주들에게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자산가격 상승의 수혜가 주로 가진 자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감안하면 서민들의 열패감만 커질 판이다. 임금 인상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연장 등 가계를 위한 몇 가지 조세 인센티브가 포함됐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그 정도로 서민층의 삶이 나아지고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여긴다면 현실을 너무 모르는 처사다.
현재의 내수 부진이 가계부채, 고령화, 고용불안 등 우리 사회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 문제는 규제를 완화하고 돈을 풀고 부동산을 띄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복지 확대와 노동시장 개혁, 가계소득 증대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를 살린다며 기업만 쳐다보고 가계를 방치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외바퀴만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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