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8일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내년 1월부터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관세만 내면 누구나 쌀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관세율은 정부가 오는 9월 300~500% 수준에서 세율을 정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한 뒤 회원국들의 검증을 받아야 최종 확정된다.
1995년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각국이 전면적인 수입 자유화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우리나라는 쌀만큼은 그럴 수 없다고 버텨 개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WTO가 요구하는 물량을 매년 의무적으로 사주기로 했다. 쌀 의무 수입 물량은 올해 국내 소비량의 9%까지 늘어 수입이 늘 때마다 재고(在庫)가 쌓일뿐더러, 쌀을 수입하느라 매년 재정 부담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쌀 개방을 계속 거부하면 국가 차원의 손해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제 국가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내 쌀 시장을 개방하되 우리 농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5.4%에서 2012년 2.2%로 축소됐다. 485만명이던 농가 인구도 285만명으로 40%나 줄었다. 반면 농촌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995년 16.5%에서 35.6%로 늘었다. 고령 농민들은 밭농사보다는 기계화 덕분에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벼농사에 집중해 쌀은 자급(自給)할 정도로 많이 생산된다. 그러나 전체 농가의 3분의 2가 연간 농산물 판매 수입이 1000만원도 안 되는 형편이다.
우리 농업은 1990년대 중반 우루과이 라운드, 미국·칠레·EU 등과 맺은 FTA(자유무역협정)를 거치면서 대외 개방 파고(波高)를 견뎌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정부는 개방 피해 보전에 초점을 맞춰 1990년대 중반 이후 200조원이 넘는 재정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농업 경쟁력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농가 부채는 3배로 늘었고 도시·농촌의 소득 격차도 커졌다. 농민들도 정부가 씌워준 보호 우산 속에 안주하면서 자립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세계 5대(大) 농업 수출국은 미국·네덜란드·독일·브라질·프랑스로 이들은 대부분 선진국이다. 일본 아베 총리도 "젊은이도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농업을 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하고 농수산물 수출액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우리도 3000만~50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의 고소득층을 겨냥하면 국내산 농산물을 충분히 수출 전략 상품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지났다. 어떻게 하면 농민들의 소득을 더 올려주고, 어떤 방법으로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진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정부와 농민 단체, 농업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IT 강국의 장점을 활용해 농민들이 유통 시장에도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게 해주고,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유통 질서를 만들어 줘야 한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계기로 농업을 국가 경제의 신성장 산업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비전을 내놔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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