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대 재벌 계열사의 주주총회에서 뽑힌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이 청와대나 검찰, 국세청, 공정위의 고위직이나 장·차관 출신이라고 한다. 재벌이 권력기관 출신을 무더기로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은 외부 바람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이들이 기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전·현직 간에 이뤄지는 전관예우 관행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이런 식으로 선임되면 대주주 전횡 견제·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 도입 취지는 살릴 수 없다. 사외이사를 뽑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방만 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외부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켜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6년이 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정치인이나 힘 있는 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방패막이나 로비스트로 삼으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뜻에 찬성하는 거수기에 그칠 뿐이다. 기업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여서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강화되고 국민의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면서 재벌로서는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혀 바람막이로 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외이사 제도의 긍정적인 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제도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바에야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는 전문성 못지않게 경영진이나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견제·감시란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선임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독립된 외부 기관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추천하거나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의 활동을 평가·공개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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