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어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고 매일 300~400t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사고 원전 부근은 물론 주변 지역의 제염도 지지부진하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주민이 약 2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후쿠시마 지역 어린이 갑상샘암 환자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라든가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18세 소녀의 편지 등에서 보듯이 방사능 공포 또한 여전하다. 사고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나도록 사고 수습은 고사하고 사고 원전에 대한 통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참으로 가공스럽고 답답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랍고 실망스러운 것은 일본 정부의 태도다. 후쿠시마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원전 재가동 및 수출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제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 기자회견에서도 원전 재가동 입장을 거듭 밝혔다. 원전 공백을 석유·가스 발전으로 메우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초래되는 등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보기 때문인 모양이다. 경제지상주의에 매몰돼 아직도 진행 중인 대재앙의 현실과 교훈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 대재앙의 교훈을 아예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진흥 및 수출 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답습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14일 확정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35년까지 원전을 최소한 39기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3기와 건설 중인 5기 외에 11기를 더 짓겠다는 의도다. 지난 1월29일 설 연휴 직전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을 기습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어제 탈핵단체가 승인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서기까지 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교훈 삼아 탈원전의 길로 돌아선 유럽과 달리 사고 지역인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오히려 역주행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한국은 자체 원전뿐 아니라 중·일 양국의 원전에 포위돼 있다.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황사·미세먼지보다 훨씬 빨리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원전 안전과 탈원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근본적인 질문과 깊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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