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일요일

경향 [사설]국정원장 물러나고 검찰은 허위 증거 철회해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의 초점은 더 이상 검찰 측 문서의 위조 여부가 아니다.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를 모독한 초유의 범죄 뒤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일이다.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려면 최소한의 선결조건이 있다. 우리는 이를 두 가지로 본다.

첫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이번에 위조로 드러난 문서는 ‘남재준 국정원’이 검찰을 거쳐 항소심 재판부에 낸 것이다. 남 원장은 증거조작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사전에 인지했거나 사후에 묵인했다면 비난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남 원장이 버티고 있는 한 수사(修辭)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돌이켜보라. 국정원 직원들은 검찰 특별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했고, 소환된 뒤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곤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할 때 입회한 변호사들이 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국정원’의 범죄를 캘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물며 ‘남재준 국정원’을 파헤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둘째, 검찰은 위조 문서에 대한 증거 신청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검찰은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유서를 통해 증거조작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도 증거철회나 공소장변경 신청 등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른 간접증거와 증언 등을 통해 공소유지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3건 외에 중국동포 임모씨의 자술서까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검찰 측 증거는 잇따라 탄핵되는 터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한 방법으로 공소유지에 매달리는 것은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할 일이 아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증거철회 등의 조치를 지시하는 한편, 허위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사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기 바란다.

국정원과 검찰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국정원은 협조자를 내세워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검찰은 국정원을 방패막이 삼으려는 듯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래 가지고서는 더 큰 위기에 몰릴 뿐이다. 두 기관은 진정으로 자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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