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남양유업’ 사태 이후 갑의 횡포를 엄중히 차단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사항이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불공정거래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는 벌써 옛말이 된 모양이다. 오히려 경제활성화를 앞세운 정부의 규제 완화 바람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갑의 횡포 차단 움직임까지 집어삼키는 기막힌 상황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공정위는 엊그제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거래방식을 직매입으로 할지, 특약매입으로 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직매입은 납품업체에서 직접 상품을 매입한 뒤 이윤을 붙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반면 특약매입은 납품업체 상품을 외상으로 들여와 판매하고, 판매수수료 30%에 각종 비용 등을 공제한 뒤 대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코트를 팔면 수수료 30만원에, 판촉·매장관리·반품·제품 훼손 비용 등을 합쳐 총 40만~50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를 납품업체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팔리지 않는 물품은 납품업체가 떠안는다. 현재 국내 백화점 매출의 70%는 이런 특약거래 행태로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백화점 제품가는 부풀려지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져왔다.
공정위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특약매입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혀왔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특약매입 거래 등 불공정 관행 시정이 들어 있다. 백화점업계는 그동안 특약매입 축소를 결사반대해왔다. 특약거래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의류업체의 상품을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거나 공정위가 기존 거래 관행을 바꾸라고 압박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배치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잘못된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것과 규제 완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문이 막힌다.
정책 후퇴 비판이 일자 공정위는 2분기 중 특약매입 비용분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유통업체들의 세일광고 비용들을 납품업체에 떠넘기지 않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 문제는 손대지 않은 채 곁다리만 긁는 것이나 다름없다. ‘슈퍼 갑’과 ‘절대 을’ 사이의 자율 계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정위는 경제검찰로 불린다. 백화점업계의 로비에 중심을 잃고 정의를 내준다면 공정거래를 둘러싼 수많은 갈등 요인은 어떻게 풀 것인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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