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1일 화요일

경향 [사설]‘김진태 검찰’의 증거조작 수사, 신뢰 안 간다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휴일 한밤중에 국가정보원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고, 월요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오후에는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둘러싸고 국정원과 청와대, 검찰의 대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떠한 성역도 두지 않고, 가이드라인도 배제한 채 이뤄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달 14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후 검찰의 태도는 줄곧 소극적이었다. 공소유지 주체로서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음에도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여론에 밀려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지만 본격 수사와는 거리를 뒀다.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자살 시도로 파문이 확산된 뒤에야 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고도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7시간 만에 압수수색에 돌입한 걸 보면 청와대와 국정원 눈치를 보며 ‘최종 재가’를 기다린 인상이 짙다. 검찰은 결국 실기(失期)했다.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는데 국정원이 두 손 놓고 있었겠는가. 검찰은 국정원에 증거를 인멸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검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검찰을 믿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무능함과 뻔뻔함이다. 검찰은 국정원 문서의 신빙성을 의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정밀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법원에 제출했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에는 절차적 문제일 뿐이라며 국정원을 편들었다. 위조가 사실로 드러난 뒤에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지기는커녕 오불관언이다. 공소유지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자술서가 위조됐다고 밝힌 중국동포 임모씨에 대한 증인신청조차 철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검찰이 내놓는 수사 결과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9일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책임을 국정원에 떠넘기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을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지금 국정원과 검찰이 ‘공범 관계’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도 이번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수뇌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검찰이 제 식구를 계속 감싸려든다면 사건을 특검으로 넘기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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