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지역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 (그린벨트 같은) 입지 규제만 아니라 건설, 유통, 관광 등 지역 밀착형 사업 규제를 발굴해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선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怨讐),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이는 암 덩어리"라고 말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규제는 1만5269건에 이른다. 최근 10년간 규제가 연평균 700건 늘었다. 박 대통령이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 했던 작년에도 규제가 줄지 않고 오히려 380건이 늘었다.
이런 규제 가운데 말도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홍삼을 달이고 남은 찌꺼기인 홍삼박을 산업폐기물로 분류해놓는 바람에 농가에서 갖다 쓸 수 없게 만들었다. 홍삼 업체들이 농가에 퇴비용으로 거저 주면 될 것을 폐기물 처리 업체에 돈을 주고 처리하게 해놓은 것이다. 이런 규제를 위한 규제, 공무원 권한을 늘려주고 기업을 괴롭히는 규제들만 골라내 풀어줘도 기업들 기(氣)가 살고 투자의 숨통도 트일 것이다.
정권 초기마다 '규제 철폐'를 들고나왔다가 후반기엔 흐지부지되는 걸 수없이 봐왔다. 김영삼 정부는 '규제 개혁'을 정부 공식 용어로 내세웠고, 노무현 정부는 '규제 총량제',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뽑기'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처음엔 대통령의 호통에 바짝 엎드렸던 관료들은, 정권 힘이 빠지는 임기 후반부가 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없앴던 규제를 살리고 없던 규제까지 새로 만들어냈다.
박 대통령이 '규제는 원수이자 암 덩어리'라고 원색적인 말까지 하고 나선 것은 규제 철폐가 절박한데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관료들은 예산을 따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유지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만든다. 관료들은 조직과 예산이 있으면 언제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고 하는 습성(習性)에 젖어 있다.
규제 개혁이 정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임기 초 푸닥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말로만 다그칠 게 아니라 공무원 조직과 예산을 함께 손봐야 한다. 규제를 양산하는 조직은 아예 문을 닫고 예산까지 전액 회수하겠다는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박 대통령도 전임자들처럼 규제와 벌인 싸움에서 아무 성과를 못 얻게 될 수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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