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소식이 하나둘 전해지면서 요즘 시민들 사이에 슬픔·안타까움과 함께 분노의 감정도 끓어오르고 있다. 이번 비극은 불안한 곳에서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여객선에서 발생했다. 그건 설마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배신했다는 의미에서 충격적 사건, 아니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사건을 선장 책임 문제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무책임성이 집중 부각되면서 이 비극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오직 그 하나뿐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선장 문제 외에 더 많은 결함과 더 많은 원인이 발견된다. 세월호 사건의 배후에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장은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여객선 운항의 핵심인 갑판부·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도 비정규직이었다. 기관부의 한 선원은 출항 당일 구두 계약으로 채용돼 승선했다. 여객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선장과 선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은 애초 세월호의 청해진해운 측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어느 새 비정규직의 사회가 되었다. 안전성 때문에 높은 책임이 부여되는 일도 비정규직에게 맡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재사망률 1위를 다투는 것도 세월호 침몰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위험작업을 비정규직, 일용직에게 떠넘겨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한 한국은 계속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위험사회의 성격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규제는 악이요, 규제완화는 선이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했다. 재벌이 사업해서 돈을 벌 수 있는가를 우선 가치로 삼는 이 탈규제는 세월호에도 적용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여객선 운영 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낡은 배도 운행할 수 있게 했다. 돈 버는 것이 선이라는 천박한 사고가 생명의 값을 싸게 매기도록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선장이 여객선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위해 부여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안에서 이런 권한과 책임에 관한 사회적 약속과 그에 기반을 둔 신뢰관계가 무너졌다.
이 현실이 여객선 밖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를 책임지는 대가로 통치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사회안전망 없는 성장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라는 국정 목표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고 정부는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 모르는 무책임성과 방향상실도 이 비극의 한 배경이다.
초기 대응 실패와 재난 관리 체계의 허술함은 국정이 대통령 1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형사고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능력과 신뢰에 대한 검증 무대이기도 한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몇몇 악당이 벌인 사건이 아니다. 만일 그런 성격의 사건이었다면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건 한국사회 그 자체가 빚어낸 비극이다.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또 어떤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 우리가 위험사회를 벗어날지는 이 비극을 얼마나 깊이 성찰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 분석 출발점
답글삭제- 폐기 해야 할 선박이 어떻게 수입이 되었는가?
- 자본의탐욕과 부패 관료의 결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