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3일 수요일

중앙_[사설] 국가 개조 (1) 대한민국이 관료를 위한 나라인가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론이 뜨겁다. 이번 사고로 확인된 총체적 부실과 무능을 바로잡으려면 국가 개조 수준으로 대한민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개조되지 않고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최우선적으로 메스를 대야 할 대상은 관료 시스템이다. 공무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관료들 스스로의 배를 채우기 위해 ‘마피아’로 불리며 행정 시스템을 사유화(私有化)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그 결과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고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한민국이 국민의 나라인지, 아니면 관료의 나라인지부터 분명히 가리고 넘어가야 한다.

 세월호 침몰을 보자. 선박 운항과 선사 운영, 안전 관리, 부처 감독, 구조 중 어느 한 단계에서만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끔찍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특히 해양수산부와 산하 단체, 그리고 해운업계의 ‘검은 트라이앵글(삼각형)’이 문제였다.

선박 안전 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의 경우 불과 두 달 전 정기안전점검에서 세월호 선체에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현재 선체 결함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점검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해운조합 역시 세월호에 화물이 과다 적재돼 있는지, 화물이 잘 묶여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출항 전 안전점검보고서를 통과시켰다. 해운사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선박 안전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해수부의 감독 기능은 가동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한국선급은 역대 이사장 11명 중 8명이, 해운조합은 역대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었다. 해수부 출신이 산하 공공기관과 단체 14곳 중 11곳에서 기관장·단체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해피아(해수부 마피아)’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춤까지 춰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썩어 문드러진 마피아 문화가 거의 모든 부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모피아(기획재정부 등),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교피아(교육부), 국피아(국토교통부) 등이 저마다 해당 분야에서 철밥통 지키기와 전관예우 관행을 통해 자신의 배를 채워왔다. 원전 비리와 코레일 방만 경영에도 원전마피아, 철도마피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부패의 고리는 언제든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관료들의 폐해가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시대 변화에 있다. 관료집단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1970~8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강도 높게 추진한 것은 우수한 관료집단의 공(功)이었다. 그러나 지식산업 시대에 접어들면서 관료 중심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 관료 사회가 경쟁이 아닌 끼리끼리 해먹는 담합의 룰로 움직이면서 낙하산 인사가 관행화됐고, 유착 고리는 더욱 강고해졌다. 이제 관료 사회가 국가 발전에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기본적인 궁금증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통령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움직이는 한심한 행태를 반복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미 ‘관료 마피아와의 전쟁’을 예고한 상태다. 박 대통령은 “해양수산 관료 출신들이 38년째 해운조합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도 서로 봐주기 식의 비정상적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해운 비리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일 태세지만 수사만으론 효과가 제한적이다. 마피아 청산을 위해서는 기존의 관료 시스템을 확 뜯어고치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공직자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을 현행 사기업·법무법인 등에서 공직 유관 단체로 확대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실제 취업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유착 소지를 뿌리 뽑는 등 결연한 각오를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또 한 차례의 ‘정치 쇼’로 끝난다면 실망의 골을 더 깊게 할 뿐이다. “관료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개탄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확고한 의지를 갖고 ‘관(官)피아’와 전쟁에 나서는지는 국민이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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