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일행이 세월호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전남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이때 안전행정부 감사관이 사망자 명단 상황판 앞에서 일행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가 실종자 가족들의 격한 반발을 샀다. 안행부는 감사관을 해임했다. 재난(災難) 대응 주무 부서라는 안전행정부 고위 공무원의 행동거지를 보면 안행부 조직 전체의 정신 자세가 어떤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안전(安全)'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면서 '행정안전부'이던 이름을 뒤집어 만든 부처다. 재난이 발생하면 안행부를 총괄조정 사령탑으로 삼아 정부 전체가 통합 대응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후 안행부가 보여준 것은 무능과 우왕좌왕뿐이다.
우선 안전행정부 고위 간부 중엔 안전 전문가나 재난 대응 경험자가 거의 없다. 장관과 1차관·2차관으로 구성되는 지휘부는 과거 내무부 또는 지자체에서 일반 행정업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다. 6명의 1급 실장·본부장 가운데 안전 업무는 안전관리본부장이 전담하고 있다. 이 사람 역시 안전 분야에선 딱 한 번 9개월 일한 경력이 전부다. 안전관리본부장 산하 국·실장 4명 가운데 안전 업무와 엇비슷한 경력이라도 가진 사람은 두 명이다. '안전'을 앞세우겠다는 정부가 안전 분야에 배치한 고위 공무원들 경력이 이렇다. 이 사람들은 예산권을 휘두르는 데는 익숙하겠지만 재난이 터졌을 때 신속하게 상황을 장악하고 결단을 내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다. 청와대도 전체 비서관급 이상 직위에 재난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안행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설치됐고 중대본 차장 역할을 맡은 안행부 2차관이 브리핑에 나섰다. 그는 당일 오후 2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한 시간 반 뒤 '다시 알아보니 구조된 건 164명'이라고 정정했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가 발생했을 때 기자들이 피해자 숫자를 캐물어도 영국 정부는 "파악 중"이라고만 대답했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말했다가 틀리게 되면 정부가 그 후에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올 2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태풍 같은 '자연 재난'은 소방방재청이, 선박 전복·화학물질 유출 같은 '사회 재난'은 안행부 안전관리본부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를 분담했다. 통합 대응을 하겠다더니 되레 소방방재청이 총괄하던 업무를 이원화(二元化)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세월호 사건은 안행부가 주무 부서가 됐지만 재난 대처 경험이 거의 없는 초보자들이 나섰으니 초동 대처에서 허둥지둥한 것은 당연하다. 만일 태풍 탓에 화학물질 창고가 무너져 유독 물질이 유출됐다면 어느 쪽에서 나서는 게 맞는지 따지다가 귀중한 초기 대응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세월호 사건에선 정부 부처마다 대책본부를 차려 각개약진했다. 서울 안행부에 설치된 중대본 외에 세종시엔 해수부·교육부가 각각 사고수습본부를 차렸다. 해양경찰청은 인천·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세웠다. 이렇게 지휘 체계가 중구난방으로 섞이고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자 18일 저녁 국무총리 지시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라는 옥상옥(屋上屋) 같은 기구가 발족했다. 이 기구 본부장은 당초 총리가 맡겠다고 하더니 나중에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법엔 안행부 장관이 재난 총괄 사령탑을 맡게 돼 있는데 엉뚱한 장관이 전체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재난 초기 대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사고 직후 해경·해군의 장비·인력과 민간 선박·잠수부들을 결집해 생존자들을 구출하려면 바다 사고를 가장 잘 아는 현지 해경 지휘관이 중심이 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런던 지하철 테러 때는 런던경시청이 총지휘 본부였고, 9·11 테러 때도 뉴욕 소방본부가 구조를 주도했다. 현장이 아닌 서울에 대책본부가 차려지면 구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현장 인력들이 상부 대책본부에 보고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국민은 지금 정부 대응을 보면서 이 정부가 과연 비상(非常) 국면에서 국민을 보호해줄 것인가 믿지 못하는 '집단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의 재난 대응 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