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에게 "우리가 (정부에) 하도 속아서요"라며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건넸던 사람이 있다. 그는 실종된 단원고 문모양의 아버지이다. 문씨가 사고 당일인 16일 현장에 달려왔을 때 그의 딸은 정부가 공개한 구조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문씨는 그런데도 딸을 병원에서 찾을 수 없자 사고 현장인 전남 진도 팽목항과 주변 해안, 병원 부근 하수구까지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나중에 딸이 구조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가 얼마나 낙담했을지는 짐작도 하기 어렵다. 해경은 17일 새벽 단원고 박모양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가, 이날 오후 늦게 '신원 미상'으로 정정(訂正)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저질렀다. 18일엔 안전행정부가 '구조대가 세월호 식당칸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가 5시간 만에 말을 뒤집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사고 직후부터 허둥댔다. 침몰 초기엔 승객 대부분이 구조될 것으로 오판(誤判)하는 바람에 가라앉는 배 안으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구조할 생각을 못 했다. 세월호 탑승자 수는 477→459→462→475명으로 네 번 오락가락했다. 368명이라던 구조자 수는 두 시간 만에 200명 이상 줄어든 164명으로 바뀌었다. 안전행정부는 구조자 수 집계 실수가 해경 탓이라고 떠넘기려다 해경이 반발하자 계산 착오라고 둘러댔다.
300명 가까운 승객이 여객선과 함께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상황에서 이틀이 넘도록 구조대가 배 안으로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는 광경을 보면서 세계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을 첨단 휴대폰을 만들어 수출하는 그 나라라고 믿겠는가. 국민은 정부 당국이 사고 원인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탑승자나 구조자 숫자, 그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지 못해 쩔쩔매는 걸 보면서 공무원들의 사고 대처 능력이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 확인했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 '행정안전부'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꾼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급기야 실종자 가족들은 18일 '정부 행태가 너무 분해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한다'는 대국민 호소문을 냈다. 가족들은 "17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구조 작업) 인원은 200명도 안 됐다. 그러나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해경은 17일 오전부터 몇 차례 세월호 선내(船內)에 공기를 주입할 준비가 됐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공기 주입은 그로부터 30시간 가깝게 지난 18일 오전 10시 50분에야 시작됐다. 정부는 누구보다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제일 먼저 구조 작업 상황을 알려줘야 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 대책본부와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가 제각각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만 고군분투하는 인상을 주고 있을 뿐, 총지휘를 맡은 사령탑이 누구인지 불분명하고 대통령의 분신(分身) 역할을 맡아 현장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잠수부들은 목숨을 걸고 바닷속으로 뛰어드는데 많은 공무원은 대통령 앞에서만 일하는 척하고 있다.
국가건, 조직이건, 사람이건 진짜 능력은 비상시(非常時)에 드러나는 법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확인된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들의 능력에는 국민으로부터 불신(不信)의 낙인이 찍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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