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돼온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전 사이버사령관)이 경질됐다. 정부는 연 비서관을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발령하고, 옥도경 현 사이버사령관도 교체했다. 지난해 10월 사이버사 정치 댓글 의혹이 폭로된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청와대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연 비서관 해임 요구를 외면해오다 세월호 침몰사고 와중에 슬그머니 인사조치를 했다. 국방부도 이 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온 나라의 시선이 세월호 참사에 쏠린 틈을 타 국기문란 사건을 물타기하려는 시도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해 12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이버사 대선개입 사건을 3급 군무원인 이모 전 심리전단장의 ‘개인적 일탈’로 결론지었다. 연 비서관에 대해선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뒤 “정치관여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기소된 이 전 단장의 공소장을 통해 연 비서관의 구체적 개입 정황이 드러났다. 공소장에는 이 전 단장이 매일 사이버사령관에게 인터넷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의 주요 이슈를 보고한 뒤 사령관의 ‘결심’을 받아 부하들에게 댓글 활동 지침을 내린 것으로 나온다. 연 비서관은 2011년 11월부터 대선 직전인 2012년 10월까지 사이버사령관으로 재직했다.
당초 군은 지난달 말 최종 수사결과를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계속 미뤄왔다. 연 비서관을 기소할 경우 청와대로 불똥이 튀게 되고, 면죄부를 줄 경우 축소·은폐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연 비서관을 청와대에서 물러나게 하는 ‘방탄용’ 인사를 하고, 이참에 수사결과까지 발표한다는 꼼수를 낸 모양이다. 게다가 대국민 사이버심리전을 계속하겠다며 사이버사령관 계급을 준장에서 소장으로 높였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군의 정치적 중립은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사이버사 대선개입이 충격적인 까닭은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후퇴하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군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사는 조직이다.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하는 대다수 장병을 위해서라도 군의 정치개입 환부를 도려내는 발본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대선개입 공작의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엄단하는 일이다. 연 비서관을 인사조치하는 선에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은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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