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관련법은 여객선 경우 10일에 한 번 소방·구조 훈련을, 두 달에 한 번 구명정 대피 훈련을, 6개월에 한 번 충돌·좌초 대비 훈련을 하게 돼 있다. 세월호 선사(船社)인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선장·선원 등 직원 130명의 안전교육비(費)로 54만원을 썼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청해진해운의 외부 감사보고서 내용이다. 안전 교육·훈련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선박 안전성은 한국해운조합이라는 단체가 점검·단속을 한다. 해운조합은 해운사들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세월호의 출항 전 승선 정원을 초과하진 않았는지, 화물을 꽉 묶어 맸는지, 구명보트는 정상인지 점검한 것은 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다. 이 사람이 자기에게 월급 주는 거나 진배없는 해운사 소속 배를 날카로운 눈으로 감시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세월호가 출항 당시 해운조합에 낸 보고서엔 차량 150대, 화물 657t을 실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청해진해운은 사고 직후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105개(1157t)를 싣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출항 보고 때보다 차량 30대, 화물 500t이 늘어났다. 실제 화물 무게는 훨씬 더 무거웠을 가능성이 있다. 트럭에 얼마 정도 화물이 실렸는지 체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컨테이너와 화물트럭을 제대로 묶어두지도 않았다. 사고 직후 배에서 떨어진 컨테이너가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세월호에 몇 명 탔는지도 CCTV를 보면서 숫자를 세야 했다.
선박 설비에 대한 안전 검사는 한국선급이라는 기관에서 한다. 한국선급은 지난 2월 열흘 동안 세월호에 대해 200개 항목의 안전 검사를 한 후 구명 뗏목에 대해 '정상'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세월호 구명 뗏목 46개 가운데 펼쳐진 건 한 개뿐이다. 검사한 척만 하고 보고서를 쓴 건지 알 수 없다.
세월호 선장·선원들은 내 목숨만 살겠다고 승객들은 방치한 채 배를 탈출했다. 이런 청해진해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2006· 2009·2011·2013년의 부문별 고객 만족도 평가에서 '우수' 또는 '상위권' 판정을 내려줬다. 작년 7월 해양경찰청·해양수산부의 전국 여객선 점검도 주먹구구식이었다. 한 시민단체가 당시 점검 서류를 살펴보니 목포 해경은 2시간 40분 동안 12척의 여객선을 점검했다고 적어놨다. 1척당 13분이다. 올라가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만 하고 내려와 점검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해운사나 공무원들이 이렇게 엉터리로 일을 하는 것은 '설마 사고가 나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사고를 예방하려면 돈을 들여 설비를 갖춰야 하고 수시로 직원들 훈련도 시켜야 한다. 이런 안전 투자는 눈에 보이는 성과(成果)와 직결되지 않는다. 어차피 사고는 안 날 테니 괜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설마 병(病)'은 참사(慘事)를 몰고 오는 우리 사회 고질이다. 지난 2월 붕괴 사고로 10명의 목숨이 희생된 경주의 리조트 체육관은 보조 기둥에 4개씩 볼트를 박게 돼 있는데 2개씩만 박았다. 작년 7월 울산 삼성정밀화학 물탱크 붕괴로 3명이 사망했다. 개당 550원짜리 고장력(高張力) 볼트를 써야 하는데 260원짜리 중국산 수입품 또는 360원짜리 국산 일반 볼트를 섞어 쓴 결과였다. 원자력 제어케이블은 핵연료 과열 등의 비상사태 때 작동하는 장비라서 고밀도 방사능, 고온·고압 환경에서 견딜 수 있게 견고해야 한다. 그러나 원전 케이블 공급 회사와 설비 시험 업체, 한수원 감독관들은 '설마 제어케이블을 작동해야 하는 사태가 생기겠느냐'며 가짜 케이블을 갖다 달았다.
우리 사회 숱한 분야에 죽음을 부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형 사고는 많은 허점·실책·무책임이 겹쳐서 터지는 것이다. 지금 재앙 일보 직전의 임계점(臨界點)까지 가 있는 분야가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화학 업종에는 1960~70년대 만들어진 노후 시설이 많다. 이따금 일어나는 고속철 사고를 겪으면서 KTX가 고속주행 시 탈선하는 일이 없을까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영화 복합상영관 직원들은 만일의 사태 때 침착하게 관객을 대피시킬 수 있게 반복 훈련을 받긴 하는지 의문이다. 고층 건물들에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달려 있고, 피난 안전구역은 설치돼 있는지도 궁금하다.
대형 사고 때마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다 좀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싶게 '사고 이전(以前)'으로 퇴행해버리는 '집단 기억상실증(症)'을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 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안전시설을 운용하는 기업·단체들이 항상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이 닥쳐올 수 있다는 경보(警報)를 켜고 살아야 한다. 볼트 하나, 기둥 하나라도 안전성에 충분한 여유를 두고 튼튼한 것을 써야 한다. 10~20년에 한 번쯤 발생할 확률의 상황이라도, 그것이 큰 인명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라면 끊임없는 대비 훈련으로 실상황에선 지시·토론 없이 자동으로 몸이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안전 분야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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