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4일 목요일

조선_[사설] 민방위부터 '實체험 훈련'으로 바꿔 제대로 해보자

세월호 참사만큼 슬픈 국가적 비극도 없다. 참극(慘劇)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달 15일의 민방위훈련을 전 국민이 재난·사고에 맞닥뜨렸을 때의 대처 방법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민방위훈련은 1975년부터 해왔다. 올해 40년째다. 그러나 때가 되면 되풀이하는 의례적 행사가 된 지 오래다. 공무원들은 규정대로 행사를 치렀다는 걸 보여주는 쇼 정도로 여기고, 국민은 필요도 없는 훈련을 뭐하려고 하느냐고 귀찮아한다.

민방위훈련 경계경보가 발령되면 차량 탑승자는 차를 세우고 내려 안내 요원 지시에 따라 대피하는 게 원칙이지만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인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무실 전등을 끈 후 지정 대피소로 가야 하지만 대다수가 사무실에 그냥 남아 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한 달 뒤인 2010년 연평도 피격과 비슷한 상황을 가상해서 실시한 민방위훈련 때도 그랬다. 도심에선 시민들이 훈련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거리를 나다녔고 쇼핑몰들은 사이렌 대신 세일 판매를 알리는 스피커 소리로 요란했다. 야외 놀이공원 놀이 기구들도 빙글빙글 돌았다.

사람들은 생명이 위협받는 긴급 상황에 처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멍한 상태가 돼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긴급 상황에서 생존은 최대한 신속히 안전한 대피 방법을 찾아 행동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러나 급박 상황에서 냉철한 판단력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의 선원 훈련 교관으로 일하는 한 전문가는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훈련의 목표는 사고가 났을 때 몸이 자동 반응하도록 (대처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라며 "그러자면 훈련, 훈련, 훈련밖에 없다"고 했다. 반복(反復) 훈련을 통해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으로 6만9000명이 숨지고 37만명이 다쳤다. 학교 7000개가 무너져 학생들 피해가 컸다. 안현(安縣)의 쌍짜오(桑棗) 중학교는 건물은 폭삭 무너졌지만 학생 2323명과 교사 178명이 전원 무사했다. 학생·교사들이 대피하는 데 1분 3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학교 예즈핑(葉志平) 교장이 1년에도 몇 번씩 지진이 나면 책상 밑으로 몸을 피했다가 신속하게 교실을 빠져나와 농구장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시킨 덕분이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역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 이와테현 가마이시(釜石) 지역에선 주민 1000명이 사망했지만 14개 초·중학생의 99.8%가 살아남아 '가마이시의 기적'으로 불린다. 학교의 반복적 재난 안전 훈련 덕분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민방위훈련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무슨 재난, 무슨 사고를 염두에 둔 훈련인지도 모르고 대피소에 모여 잡담하다가 시간 때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식의 훈련이라면 돈과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작년 12월 부산 북구 화명동 한 아파트 7층에서 난 화재로 30대 엄마와 어린 세 자녀가 희생됐다. 그 집 아파트 베란다엔 발로 차기만 해도 부서지는 경량(輕量) 칸막이벽이 있었다. 발로 걷어차 부수면 옆집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집주인은 그걸 몰랐다. 다른 집도 대부분 이 공간에 세탁기를 두거나 잡동사니 물건을 쌓아두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민방위훈련 때 주부들에게 칸막이벽 활용법을 설명하기만 해도 아파트 화재의 두려움을 상당히 덜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역사, 백화점, 종합운동장 같은 시설에는 심장을 강제로 뛰게 하는 제세동기(심장 충격기)가 설치돼 있다. 이 장치의 작동법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설비를 아무리 달아놔도 사용법을 모르면 아무 소용 없다. 곳곳에 비치된 소화기도 직접 작동 연습을 해본 일이 없으면 다급한 상황에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화학 공단에선 유독 가스 누출에 대비해 방독면 착용법도 배워둬야 한다. 극장의 안내 직원들은 화재 같은 비상 상황에서 관객들을 어떻게 대피시킬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민방위훈련을 지금처럼 관공서 주도로 전국이 같은 날 일시에 할 필요도 없다. 아파트, 직장, 학교, 공장, 쇼핑몰별로 예상 재난 상황을 가정해 소규모 훈련을 수시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해안 지역에선 해일(海溢), 원전 지역은 방사능 누출, 산악 지역에선 눈사태, 지질 불안정 지역에선 지진 대비 훈련을 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이 재난 대비 훈련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재난 훈련엔 참가하지 않으면서 사고 후 정부 탓을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매달 내실 있는 훈련을 하기가 벅차다면 민방위훈련을 분기(分期)에 한 번씩 하더라도 실제 재난 상황에 써먹을 수 있는 '체험(體驗) 훈련'으로 바꿔야 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