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병언·이준석’으로 대변되는,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한 선박 운항과 승객을 버려두고 탈출한 선원들의 극단적인 무책임이었다. 하지만 이런 탐욕과 태만을 견제하고 생명을 지켜내야 할 관계 당국이 제구실을 못 한 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다. 감사원은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를 통해 규정 위반과 늑장 구조, 민·관 유착 등 총체적이고 고질적인 공직사회의 병폐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어제 밝혔다.
기관별로 밝혀진 부실의 실태는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우선 인천항만청은 청해진해운이 제출한 변조된 세월호 도입계약서를 확인도 하지 않고 인가해주었다. 선박검사를 맡은 한국선급은 안전의 근간인 복원성 여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운항승인을 내주는 인천해양경찰서는 세월호가 안전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음에도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해주었다. 선박의 과적 상태를 점검하는 해운조합 역시 세월호가 상습적으로 차량적재한도를 넘겼지만 이를 적발해내지 못했다. 이들 기관 중 단 한 곳이라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더라도 최소한 수백 명이 희생되는 대(大)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사고 직후의 대응 과정에서도 판박이 부실이 확인됐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해당 해역에 함정을 배치토록 한 해안경비규칙을 어기고 이보다 작은 경비정을 보내놓고 있었다. 경비정에는 고작 9명의 구조인력이 타고 있었다. 세월호가 100도 이상 기울어져 침몰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해양경찰청 상황실은 일선 해경에 “차분히 구조하라”는 어이없는 지시를 내렸다.
행정의 기본은 견제와 균형이다. 이런 기본원리를 무너뜨린 것은 다름 아닌 민·관 유착과 기관 이기주의다. 실제로 해경 관계자들은 선박회사에서 공짜 출장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초 신고를 접수한 제주해경과 전남소방본부는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출동명령이 지연됐다. 이번 감사의 가장 큰 성과는 우리가 뜯어고쳐야 할 공직 병폐의 표적을 명확히 해 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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