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4일 수요일

경향_[사설]진보교육감 압승이 의미하는 것

어제 치러진 6·4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탄생한 점이 단연 눈에 띈다. 4일 밤 12시 현재 개표 결과 서울·경기와 부산을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에서 진보교육감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중 광주와 전남, 전북, 강원지역은 현재의 교육감이 재출마했지만 부산과 인천, 충북, 제주 등은 기존의 보수교육감에게 도전한 후보들이다. 보수교육감 대신 진보교육감을 원한다는 국민들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것도 영·호남 가릴 것 없이 골고루 나타났으니, 바야흐로 진보교육감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교육감들의 압승 원인은 몇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세월호 사고로 꽃다운 학생들이 희생된 것을 지켜본 앵그리 맘(분노하는 엄마)들이 정부와 교육당국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진보교육감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있을 수 있다. 또 보수성향의 후보들이 복수 출마해 표가 분산된 반면 진보성향의 후보들은 사전에 단일화 과정을 거쳐 출마함으로써 표의 집중을 이룬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 외적 요인만으로 선거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단견이고 오산이다. 4년 전 6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을 때 보수진영에선 무어라 했던가. 교육감도 정당에서 추천하는 것으로 잘못 안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정당의 기호에 따라 줄투표하는 바람에 생긴 우연한 결과라고 그 의미를 애써 깎아내린 적이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의 기호를 바꿔서 표기하는 교호(交互)투표제를 도입하게 된 것도 그 같은 지적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인 만큼 표의 의미를 보다 본질적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진보교육감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은 한마디로 현행 교육제도나 교육당국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지금과 같은 교육 풍토를 교육수요자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같은 무언의 외침이 집단적,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게 이번 선거결과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성찰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온 무한경쟁 체제를 전면 재검토해 일대 혁신에 나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감은 흔히 ‘교육 소통령’이라 불린다. 학교 교육을 좌우하는 크고 작은 권한이 교육감 1인에게 사실상 집중돼 있어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뜨거운 감자인 특목고와 자사고, 고교평준화 같은 문제가 모두 교육감 소관 사항이다. 전국의 진보교육감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교육체제의 모순이 아무리 뿌리 깊다 해도 혁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성적과 입시에만 매달리는 교육에서 창의력과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꾀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진보교육감들의 교육철학과 이념, 정책구상들이 낱낱이 공개되고 심도 있게 검증됐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책대결이 실종된 자리에는 철 지난 색깔론과 ‘아니면 말고’식의 네거티브 공방이 난무했다. 선거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자녀변수’가 선거판을 뒤흔들기도 했다. 교육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아이들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의 이전투구 양상을 보인 셈이다. 당락에 상관없이 함께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진보든 보수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교육감이라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은 빈사지경이다. 학교교육은 사교육에 밀리고 일반고는 특목·자사고의 그늘에 가려 슬럼화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불신받고 있고, 교육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을 표방했다고 해서 아이들 교육에 진영논리를 주입하는 등의 이념 편향성을 보여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교육철학은 다를 수 있어도 교육의 공공성이란 가치 인식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쓰러진 공교육을 일으켜 세우고 학교를 정상화하는 일은 이 시대 교육감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다. 교육감 당선자들은 출근 첫날부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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