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일 월요일

중앙_[사설] '지역 생활정치' 실종된 지방선거

전국적으로 동시에 실시되는 대선·총선·지방선거 세 가지 가운데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특성이 있다. 유권자는 자기가 사는 소규모 지역공동체의 의사결정자를 직접 뽑음으로써 생활정치의 주인공이 된다. 17명의 특별·광역시장과 226명의 시장·군수·구청장은 복지, 환경, 상하수도, 주택, 지역경제, 문화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들인데 그들의 능력에 따라 공동체에 소속된 유권자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또 3687명에 이르는 광역과 기초의회 의원들은 조례를 제정해 자기 지역에 적용되는 법을 만들거나 해당 지역 단체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지방선거는 이런 생활정치적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떤 정당이냐보다 어떤 후보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투표일을 하루 앞둔 6·4 지방선거가 풀뿌리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중앙정부에 대한 판단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은 박근혜 정권 심판론으로, 여당은 박근혜 정부 수호론으로 격돌하고 있는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새누리당은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박근혜 지키기’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라디오 연설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박 대통령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망가뜨리려는 세력들 간의 선거”라고 규정했고,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는 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 우는 것 보셨나. 리더십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곳곳엔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게재됐다. 후보들이 자기 얘기는 하지 않고 너도나도 박 대통령을 파는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서청원 선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나머지 임기를 안전하게 채우느냐, 나락으로 빠지느냐가 걸려 있다”며 임기 문제까지 건드렸다. 노골적인 동정표 자극 발언이다. 통상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내놓으면 집권당은 지역일꾼론으로 대응했던 과거 지방선거와는 크게 다른 풍경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선거 막바지에 박근혜 정권심판론을 봇물 쏟아붓듯 내놓고 있다. 보름 전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고 주장할 때까지만 해도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면서 조심스러워했다. 이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세월호 참사로 비롯된 국민의 슬픔과 분노가 표로써 말씀돼야 한다”(김한길 대표)는 표현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월호는 재난의 상처가 워낙 크고 깊어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해도 정치권이 지금 외쳐대는 것처럼 지방선거의 선택이 온통 정권심판론과 정권방어로만 귀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유권자는 7장의 투표지를 받게 될 텐데 특정 정당의 번호로만 도배질하듯 줄투표를 할 순 없지 않은가. 특히 기초단위의 선택에선 정당보다 후보 개인의 전과·납세·경력·정책 등이 세심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생활정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당이 흔들어 놓을 순 있지만 최종적으로 이를 지키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투표장에 가기 전 30분 정도 집에 배달된 선거공보를 읽으면서 개별 후보와 그 정책을 따져보는 똑똑한 유권자가 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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