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일 일요일

경향_[사설]대법원의 한국지엠 통상임금 판결이 남긴 것

한국지엠이 그제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번 소송은 GM의 80억달러 투자와 맞물려 일찌감치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방문 때 GM의 댄 애커슨 회장과 만나 투자를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약속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GM이 박 대통령에게 소송 민원을 제기해 승소한 꼴이 됐다. 하지만 정작 한국지엠은 “통상임금 문제를 조건으로 투자를 약속한 바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곱씹어 볼수록 어이없는 사건이다.

한국지엠 노동자 5명이 낸 임금 청구소송의 핵심 쟁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 여부다. 1·2심에서는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지난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른바 신의성실 원칙(신의칙)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긴 하지만 노사가 당초 협상 과정에서 이를 포함시키지 않기로 한 이상 소급해서 지급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각종 수당을 소급 적용할 경우 예상되는 회사 경영상의 어려움도 감안했다고 한다.

이번 판결은 신의칙을 준용하다보니 법보다 노사 합의가 우선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동계가 “법이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 편을 들어줬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의 배경으로 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지엠은 소송에 대비해 지난해 8000억원의 충당금을 이미 쌓아뒀던 터다. 또 소급 적용 기한도 무제한이 아니라 3년으로 제한돼 있다. 대법원이 무슨 근거로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궁금하다.

이번 한국지엠의 통상임금 판결은 여러 모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명백한 사법권 침해다. 재판 결과가 박 대통령과 GM 뜻대로 나오면서 모양새는 더 좋지 않게 됐다. 대법원도 ‘정치적 판결’의 들러리를 섰다는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지엠 돌아가는 꼴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국지엠은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80억달러 투자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 거액 투자는커녕 GM의 한국 철수설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다국적기업 GM의 농간에 대한민국이 조롱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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