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일 일요일

중앙_[사설] 한국에 외교 숙제 던진 북·일 접근

북한의 일본인 납치 재조사와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를 골자로 하는 북·일 간 합의가 동북아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제4차 핵실험을 시사하면서 한·미는 물론 중국까지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북한과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한·미·일 북핵 공조의 틀 속에서 낮은 단계의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한국으로선 일본에 허를 찔리게 됐다. 중국에 강도 높은 대북 압박을 주문해 온 미국도 적잖은 체면을 구겼다. 한·미가 북·일 합의를 인도주의적 문제라고 하면서도 내심 떨떠름해하는 것은 이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한·미·일 헤이그 정상회담과 4월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일 방문에서 확인된 3국 간 북핵 공조는 앞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북·일 접근은 현 단계에서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제재로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을 겪고 있다. 중국도 유엔 제재 이행에는 적극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고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북·중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다음 달 방한한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납치 피해자를 비롯한 전면적 일본인 조사를 내세워 고립에서 벗어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납치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대일 접근에는 한·미·일 공조를 흔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아베 내각으로선 북한 카드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한목소리로 비판해 온 한·중을 견제하려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한·중 접근에 대한 경계감은 북·일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라는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합의를 한·미가 정면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북·일 합의사항은 약 3주 후부터의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된다. 양측이 합의문에서 국교 정상화 실현을 내걸었지만 갈 길은 멀다. 북한 비핵화의 진전 없는 북·일 관계 정상화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일 관계 개선의 속도와 범위가 어떻든 일본은 투명하게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북 접근에 대한 한·미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동시에 한·미·일 간에 합의된 공조의 틀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왕에 대북 관계개선에 나선 만큼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 진전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일 합의는 우리에게도 큰 숙제를 던졌다. 북한 문제에서 당사자인 한국보다 일본이 앞서간 예는 거의 없다. 북핵 고도화 차단이라는 제약 속에서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선 창의적이고도 유연한 대북 접근이 불가결하다. 정부는 외교안보 라인이 새로 짜이는 것을 계기로 대북·대외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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