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경향_[사설]KBS 세월호 취재기자들의 뼈아픈 반성문

한국방송공사(KBS)는 방송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기간방송 및 국가재난주관방송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라는 일찍이 없었던 국가적 재난상황 앞에서 KBS는 국가기간방송의 품위와 균형감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국가재난주관방송의 임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유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 ‘선내에 엉켜 있는 시신 다수’ 등의 엄청난 오보를 해놓고도 책임 있는 조처를 하지 않는가 하면 정권 편향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파왜곡 보도를 자성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KBS 내부에서 터져나왔다고 한다. 

입사 1~3년차 KBS 기자 55명은 엊그제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10건의 글을 올렸다. 이들은 “유족들이 구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정부의 말만 앵무새처럼 전하고 있다”며 “우수한 인력과 장비는 정부 발표를 비판하라고 국민들에게 받은 것”이라고 썼다. 이들은 또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형편없는 기자’를 뜻하는 속어) 중의 기레기” “팽목항에서는 KBS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렵다” 등으로 KBS에 대한 여론의 불신을 전했다. 보도국 간부들에게는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 나가서 하라”는 날선 비판도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과 정권 옹호가 하나의 제작 방침처럼 굳어져 있는 KBS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이 ‘세월호 반성문’을 발표한 것은 언론의 본령을 지키는 동시에 공영방송 본연의 소명을 다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다만 지금의 문제의식과 정의감을 이번 세월호 참사에 국한하지 말고 KBS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을 당부하고 싶다. 

문제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등 고위 간부들이다. 후배기자들의 충정을 선의로 받아들여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도 시원찮을 판에 “뒤통수를 치고 있다” “대자보 정치 아니냐” “정파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등으로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KBS가 실종자 가족 얘기는 모조리 들어줘야 하나”라는 어처구니없는 반문 앞에는 절망감마저 든다. 이런 뒤틀리고 그릇된 상황인식을 갖고도 KBS는 사실상의 세금인 수신료 인상을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다. 수신료가 정권홍보의 비용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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