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경향_[사설]국정원 개혁하겠다며 공안검사 중용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2차장에 공안검사 출신의 김수민 변호사를 내정했다. 국정원 2차장은 국내정보 수집 및 분석, 대북·대테러·방첩 등 대공수사 업무를 지휘하는 자리다. 전임자인 경찰 출신 서천호씨가 지난달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경질된 후 공석 상태였다. 전대미문의 참사를 수습하는 중에도 후속 인사를 서두른 걸 보면 증거조작 파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조기에 털고자 하는 대통령의 속내가 읽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인사는 잘못된 인사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 송구스럽다”며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지금 시급한 과제는 2차장 자리를 메우는 게 아니라, 국정원의 운영·구조·기능 등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틀을 짜는 일이다.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폐지하고, 대공수사권을 검경에 이관하며, 예산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대대적 쇄신을 서둘러야 한다. 이에 앞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남재준 원장을 경질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공안통’을 2차장에 기용함으로써 이중의 메시지를 던졌다. 남 원장 인책은 없으며, 대공수사권 이관 등 근본적 개혁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전날의 “환골탈태” 약속을 참사 와중에 파기한 셈이다.

설사 국정원 2차장을 서둘러 인선할 필요가 있었다 해도 김 내정자는 적임자가 아니다. 그는 국정원의 전신인 옛 국가안전기획부와 공조해 다수의 대공사건을 수사했던 인물이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 재직 시엔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핵심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자 “간첩 사건에선 일부 무죄가 났다 번복되는 일이 많다”며 상고를 주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유죄로 본 공소사실까지 대부분 무죄로 판결했다. 김 내정자는 또 황교안 법무부 장관보다 고교·대학 선배이며 사법시험 기수도 1년 앞선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유지된다면 최소한 검찰의 통제라도 강화돼야 하는데, 개인적 역학관계로 미뤄볼 때 오히려 유착이 심해질 우려가 크다. 

사법 사상 초유의 간첩 증거조작으로 공안검사들이 징계받는 마당에 또다시 공안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남 원장을 해임하고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 작업을 추동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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