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증거는 없지만 경험칙상 친자가 맞다.’ 객쩍은 호사가들의 뒷담화가 아니다. 법치국가의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수사발표다. 검찰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에 대해 채 전 총장 아들이 맞다고 ‘사실상 확인’했다. 반면 청와대의 채 전 총장 불법사찰 의혹을 두고는 정당한 감찰활동이었다며 면죄부를 줬다. 치졸한 이중잣대는 정치검찰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어제 채군 개인정보 불법유출 사건 및 채군 어머니 임모씨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등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친자관계는 유전자 검사에 의하지 않고는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면서도 “간접사실과 경험칙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임씨의 산부인과 진료기록과 채군의 학적부 등을 ‘간접사실’로 제시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채 전 총장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조직적 뒷조사 의혹에 대한 수사는 더욱 부실했다. 총무비서관실의 조오영 전 행정관을 불구속 기소했지만 윗선은 없다며 꼬리를 잘랐다. 민정수석실 김모 경정은 두 차례 서면조사만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조 전 행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로 “(청와대에 대한) 수사의 진전이 없었다”고 자인했다. 그렇다면 이후 5개월 동안 12살 아이의 뒤만 캐러 다녔다는 말인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시기적으로도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전직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들고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40대 여성을 중심으로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는데, 혹여 이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충격상쇄용 기사아이템’으로 여긴 건가. 혼외자 문제는 주부들이 가장 민감해할 소재인 까닭이다. 그러나 300여명의 인명 피해를 야기한 참사가 혼외자 의혹 따위로 덮일 거라 생각한다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일이 될 터이다.
간첩사건 증거조작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검찰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수사를 맡으며 별안간 ‘슈퍼 갑’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어린아이의 인권이 달린 문제까지 정권 보위에 활용하려는 양상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던 김진태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진실은 그러나 언젠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검찰도, 청와대도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은 재정신청이든 특별검사든 또 다른 사법절차를 통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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