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연일 박근혜 대통령의 뜻으로 출마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2일 TV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이 나의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밝힌 대로 박 대통령이 특정 후보의 출마를 권유한 게 사실이라면 명백하게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같은 당 경쟁후보 측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대통령 탄핵감’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김 전 총리는 연휴 기간 페이스북에 자필 편지를 올려 자신의 출마가 “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밝혔다. 국무총리와 대법관을 지낸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이토록 공공연히 ‘대통령의 뜻’을 강조하는 판이니, 실체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는 매우 엄정히 다뤄져야 한다. 2004년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취지의 발언 때문에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됐다. 김 전 총리가 밝힌 대로 박 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했다면 노 전 대통령 발언과는 차원이 다른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다. 새누리당은 서울시장 경선뿐 아니라 부산시장 등 여러 경선 단위에서도 갖은 ‘박심’ 논란이 있었다. 지난 3월엔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박 대통령의 ‘격려 발언’을 공개해 선거개입 시비를 일으켰다. 이제는 김 전 총리가 아예 대통령의 권유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토로하고 있으니, 이쯤이면 ‘박심’이 새누리당의 경선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응당 불법적인 선거개입의 당사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 청와대가 앞서 가타부타 진상을 밝혀야 할 터인데 묵묵부답이다. 혹여 ‘침묵’으로 김 전 총리의 주장을 사실인 양 포장케 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그런다면 본분을 망각한 짓이다.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경선이 비전과 정책 능력의 경쟁이 아니라,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박심’ 운운하는 공방으로 지새우는 것 자체가 정치적 퇴행이고 혼탁이다. 김 전 총리의 주장대로 박 대통령의 권유가 실제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청와대가 속히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그런 일 없다”는 해명이라도 내놓아야 시대착오적인 논란이 조금이라도 정리될 수 있잖겠는가. 새누리당 경선에서부터 대통령의 선거중립 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될 경우 지방선거에서의 공명한 관리 의지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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