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동안 “향후 방향은 금리 인상”이라고 말해 온 터여서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어리둥절하다. 경기 부양을 목표로 삼고 있는 최경환 경제팀의 압력에 눌렸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이 총재는 엊그제 7월 금리 동결을 발표한 뒤 “세월호 영향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향후 성장 경로에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장률은 4%에서 3.8%로, 물가상승률은 2.1%에서 1.9%로 낮췄다. 물가 상승 우려가 낮은 만큼 금리를 내려 경기를 데우겠다는 얘기다. 정부와는 경제 흐름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효과가 최대화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물론 금리는 경제상황에 따라 올리고 내리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한은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 조정의 잣대로 국내총생산(GDP) 갭을 활용한다. GDP 갭은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로서, 경기판단 지표다. 플러스면 물가 상승 요인, 반대면 하락 요인이 된다. 3.8%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부합하는 것으로, 굳이 금리를 내릴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 보면 경기 하방 리스크 강조는 금리 인하를 바라는 새 경제팀과의 정책공조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임 김중수 총재 때의 한은도 당초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었으나 새 정부 경제팀이 추경을 편성하며 경기부양 드라이브를 걸자 꼬리를 내렸고, 한 달 뒤 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문제는 효과다. 금리 인하는 경기부양 의지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미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직접적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실제 지난해 5월의 금리 인하 효과도 미미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금리 인하 뒤 나타날 ‘빚의 함정’이다. 더구나 부동산 규제 완화와 맞물릴 경우 부작용은 커진다. 빚더미 가계가 개인소비를 늘릴 여지는 없을 것이다. 자연스레 소비 감소가 고착화할 게 뻔하다. 거품이 만들어질 경우 훗날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구나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시점(10월)이 확인되고 내년 하반기쯤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섣부른 금리 인하는 향후 통화정책의 선택폭을 제한하는 자충수가 될 소지도 크다. 지금은 기업이든 가계든 부채를 늘릴 때가 아니라 빚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재정으로 거듭나야 하는 시점이다. 금리정책은 물가, 경기, 금융안정, 가계부채 등 큰 흐름을 보고 운영하는 거시영역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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