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로부터 접수한 규제 개혁 과제 1300여건을 검토해 이 중 628건에 대한 규제 개선을 정부에 건의했다. 820쪽 분량의 건의서를 보면 기술 발전과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황당한 규제가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현행 건축법에는 산업단지 내 기숙사에선 공동 취사만 가능하게 돼 있다. 1960~70년대 기업들이 어린 여성 근로자들을 집단 수용할 때 만들어진 조항 때문에 합숙소 같은 기숙사만 지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탄산수는 먹는 샘물에 탄산만 첨가하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제품이다. 그런데 생수 회사들이 탄산수를 제조하려면 별도의 공장을 세워야 한다. 생수 공장에 다른 음료 제조시설 설치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또 자동차 정비 사업자는 전자기록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자동차 정비내역서를 반드시 종이로만 보관하라고 요구한다.
영국은 올 1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부담을 매년 8억5000만파운드(1조4700억원) 덜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레드 테이프 챌린지(red tape challenge)'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규제 리스트를 3095개 올려놓고 규제 개혁 진행 상황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규제 개선·철폐 실적이 800건을 넘는다.
우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원수' '암 덩어리'에 비유하며 강력한 개혁 의지를 밝혔고, '레드 테이프 챌린지'와 비슷한 '규제정보포털' 사이트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3월 민관 합동 끝장 토론에서 제기된 과제 52건 중 지금까지 해결된 것은 19건에 지나지 않는다. 중앙부처 등록 규제 건수는 올 1월 1만5280건에서 1만5321건으로 오히려 더 늘어났다. 없앤 규제보다 더 많은 규제를 새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규제 개혁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부처에 대해서는 즉각 장관에게 책임을 묻고 담당 공무원도 징계하는 비상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정부의 규제 개혁도 시간만 질질 끌다 흐지부지되고 말 게 뻔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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