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동향보고서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은 정씨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회동 실체가 없고, 문건의 신빙성을 입증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찌라시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철저히 따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내용을 추적하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청와대와 검찰이 답해야 할 것들이 많다.
'정윤회 대 박지만 회장의 암투'라는 사건의 배경을 토대로 '누가 문건을 유출했느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보니 이번 사건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검찰 수사의 형평성 문제를 들 수 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적처럼 검찰은 문건 작성자와 유출 경로자에 대해서는 증거확보를 위해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체포까지 했다. 하지만 정윤회씨에 대한 수사는 사건이 터지고 열흘이 지난 뒤 지난 10일 소환 조사만 진행했다.
박 의원은 "사방천지 압수수색을 하면서 왜 거기만 안 하냐는 말이에요. 이것도 국민들과 야권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라며 검찰이 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진술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물증을 잡고 이를 신문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다. 문건 진위를 입증하려면 우선 문건 정보가 생산됐던 '회동'의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검찰은 정씨와 청와대의 통신기록 등을 분석해 특정 장소에 모인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검찰은 문건 작성 시점인 지난 1월 6일 이전인 2013년 12월 한달치만 통신 기록을 분석(노컷뉴스 보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회동의 실체를 밝힐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을 받고 있다.
정씨가 회동의 주체라고 한다면 문건에 나오지 않은 연락책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하다못해 압수수색을 통해 정씨가 소지한 기록물 등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관천 경정과 통화해 박 경정이 조응천 전 비서관 지시대로 타이핑만 했다고 들었다는 진술에 검찰이 주목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언론도 정씨의 '타이핑' 진술과 관련해 검찰 수사에서 어떤 결론을 냈는지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다.
정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 경정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꼭두각시’이며 문건의 작성자조차도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보고서를 쓴 것이 된다.
하지만 정씨의 진술과 정면 배치되는 발언은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문건의 제보자로 지목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 전 청장은 9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박관천 경정에게 '강원도에 있는 정윤회 씨가 가끔씩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청와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갔다', '그 장소가 성수대교 남단에 있는 식당이다'라는 얘기를 해준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박 전 청장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그 내용을 박 경정에게 전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청장의 발언이 '전언'이라고 하더라도 정씨와 청와대 관계자가 만났다는 정보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 전 청장의 발언은 청와대 관계자와 접촉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정윤회씨를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정상적인 검찰 수사라면 문건의 제보자(박 전 청장)가 누구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해 들었는지 파헤쳐야 한다. '성수대교 남단에 있는 식당'이라는 구체적인 회동 장소에 대해서도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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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 11월 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 보고서 | ||
인터넷에서는 하다못해 진술이 엇갈리는 사람들의 대질조사 뿐 아니라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정농단의 실체가 있는 건지 아니면 문건 유출을 통해 국정농단을 획책했는지 둘 중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파장이 크기 때문에 검찰이 할 수 있는데까지 수사를 해야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엇갈리는 진술만 듣고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한쪽 손만 들어주는 식으로 수사를 종결시킬 경우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건에는 정씨가 지난해 말 송년 모임에서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가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라는 발언이 나온다. 세계일보는 '검찰 다잡기'라는 표현에 대해 지난해 말 당시 김진태 총장이 취임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를 한꺼번에 지방으로 좌천인사를 한 때라는 점에서 '검찰내 자기 사람 심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건이 사실이라면 정씨의 영향력은 검찰 인사권까지 쥐락펴락하는 정도인데 과연 검찰이 문건의 진위를 밝혀낼 수 있을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건에 '제거' 대상으로 거론된 이정현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종석 국세청장이 실제 사퇴와 퇴임으로 이어져 일명 '데스노트'로 작용한 것도 설명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검증 대상이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정윤회 문건이 100% 날조면 박관천 경정을 전보발령만으로 끝내겠나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속시원한 해명을 찾아볼 수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또한 정씨 동향과 관련해 구두보고가 아니라 직접 보고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후속 조사 혹은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의아한 대목이다.
김 비서실장이 후속조치를 취할 경우 청와대 3인방과의 갈등이 깊어지고 후폭풍이 거세질 것을 예상해 문건 내용을 덮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문건 정보를 알고 있는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비서관을 내치는 형태로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건과 별개로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도 규명 대상이다.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입은 한복을 챙겼다는 고발뉴스의 보도와 관련해 대통령 한복 디자이너는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지만 청와대에서는 별다른 공식 해명이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자신이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에 대한 풍문을 알아보고 감찰을 지시했다는 동아일보 보도와 관련 기자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 접촉 의혹을 제기한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 확인 해명은 물론 고발과 같은 후속 조치가 없다는 점도 그동안 청와대의 언론 강경 대응 기조로 봤을 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고발뉴스 관계자는 “현재까지 청와대 쪽에서 연락이 오거나 항의를 받은 것은 없다”고 전했다. 최순실씨는 승마협회 감사에 영향력을 끼치고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핵심당사자이기도 하다.
한웅 변호사는 "이 사건의 본질은 비선라인의 국정농단이 있었는지 여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찌라시 유출 엄단을 지시하면서 검찰이 쓰레기 유출을 찾는데만 집중했다. 처음부터 수사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면서 "정씨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지 않은 것도 예를 들어 공무원과 협력해 직권남용을 했다는 혐의로 들어갔다면 모르지만 찌라시 유출 수사가 되면서 단순한 참고인 자격이 돼버린 것이다. 검찰 스스로도 굉장히 자존심 상하고 위상이 추락한 수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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