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일 수요일

임금 노동과 자본 - 맑스

  고전 경제학은 어떤 상품의 가치가 그 것에 들어있는, 그것의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예컨대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 6마르크가 생긴다. 이 가운데 3마르크는 자본가가, 3마르크는 노동자가 챙긴다. 노동자의 노동으로 2개의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맑스는 그의 노동이 실제로 시작되자마자 그것은 이미 그에게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더 이상 그에 의해 판매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력은 아주 특수한 상품으로 그것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가치의 원천이 된다는 툭수한 속성과 힘을 가지고 있다. 적절히 다루면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 된다는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이 지닌 특징은 아래와 같다. 자본가들의 전투는 노동자 군대의 징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퇴역을 통해서 승리를 거둔다. 사령관인 자본가들은 누가 가장 많은 산업 병사들을 떠나게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하며 가장 많이 떠나게 한 자본가가 승리한다.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급속히 성장하며,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을 위한 고용수단, 생산수단은 더욱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임금 노동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자본주의는 완전한 모순 덩어리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속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동력을 응당 바라는 기준에 못 미치게 지불하는 자본가에게서는 떠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에는 속한다. a자본가에게서 떠나도 b자본가 아래 속해야 하는 것이 노동자의 숙명이다. 단순 노동력의 생산 비용은 노동자의 생존 비용과 번식비용을 더한 값이다. 이는 임금의 최소치다.

  생산적 자본이 성장하면, 노동에 대한 수요가 성장한다. 노동의 가격, 즉 임금이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생산적 자본의 성장은 기술 혁신을 비롯한 노동력의 소외를 전제로 가능하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퇴역시키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떼 지어 부유한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자연을 소외시키고, 그 자신을 즉 그의 고유한 능동적 기능을 소외시켰다. 맑스의 현실 비판은 소외의 극복에서 시작됐다.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 가운데 일부는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맑스는 훗날 노동자들이 생산했으나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은 가치를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어슐러 케이 르 귄

한 아이가 있다. 불행한 아이다. 말을 걸면 도시 하나가 불행해진다. 시민들은 이 아이를 보러는 간다. 그러나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 비참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낀다. 이 무력감을 인정하면서 시민들은 겸손해졌다. 한 아이의 불행이 있어야 유지되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차마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이 도시를 떠났다. 

산재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는 같은 해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의 111배다. 파업보다 무서운 게 산재다. 

예방해야 경제가 산다고 말한다. 비용 많이 드는 산재는 그냥 둬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가 지칠 때까지 회사는 버틸 돈이 있다. 영업비밀 운운하면서 버티는 이유가 있는 거다. 

너는 왜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고 그러냐는 말이 무서웠다. 그래서 알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도무지 알아지지가 않는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항상 다짐했다. 그러나 이젠 나대냐는 말이 두렵지가 않다. 이에 맞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충고는 고맙지만, 모든 걸 다 알 때까지 기다리면 아무 것도 못해. 그럼 사람들은 다 죽고 세상은 정말 이상해질 거야. 내가 지금 아는 선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면서 살 거야. 그게 옳아. 

종교는 필요악인가

종교는 필요악인가!

나는 진리라는 것은 당위성을 갖기에 진리가 아니라...그저 존재하기에 진리라 생각한다.  현생인류와 공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및 그 이전 인종들의 유적에선 종교행위와 관련한 어떤 흔적도 발견치 못했으며 현생인류만이 종교행위를 하여온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왜 현생인류는 종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수 없다. 상상력이 뛰어나선지 유전되는 지배논리와 이에 길들여진 탓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생인류는 분명 종교와 공존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의 당위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기에 자신의 선택에 상관없이 종교로부터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아가며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정신적 안식처를 얻거나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에 가치기준이며 인간의 내면에 정신적 지주나 안식처에 대한 본질적욕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왜 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란 존재의 태생이 그러함으로 이를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은 개의 다리가 네 개인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처럼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원래 인간은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밥이 있어야 생존할수 있듯이 존재가치의 의미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인간만의 독특한 욕구라 생각되며 어떤식으로든 충족시켜가며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특정한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성이 배타성, 폭력성 이기성에 의존할 때 이다. 의미성에 대한 욕구는 선악을 가리지않고 자신을 충족시켜준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을 때 도둑질한 음식이라해서 맛이 없거나 포만감을 못주는 것이 아니듯이 의미성에 대한 욕구 역시 무엇이 되었든 채워지기만 하면 충족감을 준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미성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정신적 강도질이다. 그가 신을 부르든 진리를 외치든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의미성에 대한 욕구가 비록 충족될지라도 이러한 포만감은  강도들의 만찬에 불과하다.
 
그것은 단지 정신적 욕구충족행위다. 전혀 거룩하지도 선하지도 핞은 욕정의 배설물을 토해내는 과정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훔쳐야만 도둑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 만족을 위해 타인의 존가치를 깍아 내리고 폄하한다면 이는 분명 탐욕이며 추잡함이다.
 
모든 인간은 왜 인지는 몰라도 "존재에 대한 의미성"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다. 본질적으로 존재되는 욕망이라면 충족되어져야 하지만 타인의 존재가치를 뭉개어 취득되어선 안된다.
 
'자신이 진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한낱 욕구충족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http://blog.hani.co.kr/mokisesang/26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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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악인가 선인가 그도 아니면 필요악인가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윈주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아브라함의 종교로 불리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 대한 종교비판을 중심으로 <The God Delusion>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국내에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책으로, 당시 샘물교회 사건으로 불렸던 피랍사건과 출판 시기가 일치한 덕에 더 큰 관심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킨스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한 망상으로 폐기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신은 없다. 모든 종교는 틀렸다’라고 단정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근본주의 종교인들에게는 엄청난 반발과 함께 마치 악의 한 축과 같은 파장을 일으켰고, 무신론자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책으로 찬반양론이 뜨거웠던 만큼 이후 이에 대한 비판(?) 서적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들어진 신>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쓰인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근본주의 기독교 입장을 취한 저자들의 저서는 도킨스가 과학자로서 종교학(신학)을 무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학(종교학)자로서 과학을 무시함으로 인해 도킨스를 비판하는 그 비판과 동일한 오류를 각도만 살짝 돌린 채 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이러한 책들은 근본주의 종교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잘 드러내 반갑고 좋은 책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비종교인들에게는 도킨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으며 역시나 종교는 ‘다수의 망상에 불과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도킨스는 인류사를 통해 나타난 미신적 요소들의 불합리성과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의 작용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전쟁의 옹호자 역할을 한 종교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그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을 떠나 역사적 사실로 종교인들이 머리 숙여 사과해야할, 기독교언어로 말하자면 회개해야할 분명한 점입니다. 이러한 사과 없이 도킨스의 비판에 대해 재 비판 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선언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통해 아브라함의 종교, 그 가운데도 특히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강한 비판에 대해서 인류사, 종교사, 과학사를 포괄하면서 과학과 신학 어느 한편에 서거나, 어느 한편을 무시하지 않고 신학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신앙(종교)가 얼마나 풍성해 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소개할 세권의 책은 도킨스가 지적한 종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도킨스가 신(종교)학을 무시함으로 인해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이 무엇이며 그로인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할 뿐 아니라, 종교와 과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길로 안내하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신을 위한 변론 The Case For God>의 저자 카렌 암스트롱은 수녀였으나 환속하여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다시 종교인이 된 이력을 지니고 있고,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의 저자 김기석 교수는 성공회 사제로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데 과학과 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입니다. 또한 <신을 옹호하다-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Reason, Faith, And Revolution :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의 저자 테리 이글턴은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나 실존주의의 영향과 도미니크수도회의 영향 그리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들은 각기 종교학자 이면서 소설가인, 신학자 이면서 과학에 관심이 많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 이면서 가톨릭 신자인 각기 처한 독특한 입장과 인생의 여정에서 도킨스의 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신을 옹호하다>를 번역한 이가 ‘옮긴이의 글’ 제목으로 ‘종교는 사랑인 것을’이라고 했는데 이 짧은 한 마디는 위 세권의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종교인들에게 들려주는 하늘의 소리가 아닌가 합니다. 평화~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정준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김기석 지음 / 동연
『신을 옹호하다』 테리 이글턴 지음 / 강주헌 옮김 / 모멘토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하다.(3)

  고단함이란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억울함은 1차 분배과정의 문제다.

  불안함은 2차 분배과정 곧 재분배의 문제다. 

  이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은 경제적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남북한의 긴장관계 탓에 고단한 병영생활을 거쳐야 하며,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감옥행이다. 이명박정권하에서 진행된 민주주의 후퇴로 '미네르바' 사건처럼 억울하게 구속되는 일도 발생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검찰과 법원에서 억울한 처우를 받는 일도 흔하며, 진보개혁세력은 보수수구언론에 의해 억울한 중상모략을 당하기 일쑤다. 

  양극화가 심하고 복지가 취약하니 치안이 불안해 아파트를 선호하고, 고급아파트에선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부자들도 불안한 것이다. 광우병 같은 일로 인해 먹을거리에 불안을 느끼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에 시달릴까 불안하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을 걷어찬 이명박정권의 비바람정책으로 인해 남북관계 역시 연평도 포격 같은 준전시사태까지 발생해 국민 전체가 불안함을 떨칠 수 없게 됐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따위의 이념 대립을 넘어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이란 차이에 따른 대립을 무조건 덮어버림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온존시키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대립지점과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양립 가능한 대립과 해소해야 할 대립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대립전선을 확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공자는 정치를 하면 무얼 먼저 하겠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으며,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재벌. 친북. 종북.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한다.(2)

<장하준 비판>

  장하준 교수는 경제현실의 인과관계를 시장만능주의 또는 주주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해버렸다. 시장만능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다룬 셈이다. 그러면서 사실을 자의적으로 왜곡했다. 대중들에 대한 호소력은 커지지만 그건 기만에 가까운 행태다. 모든 것을 좌파 탓으로 돌리는 한국의 한심한 수구적 보수파나,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예쩐 종속이론의 오류가 바로 이런 단순논리에 있다. 한국의 진보파들이 신자유주의 반대 타령에 몰두했던 것도 장 교수와 마찬가지 오류였다.

  장 교수는 재벌의 총수체제를 개혁하면 재벌이 주주자본주의의 화신인 외국금융자본에 넘어간다고 한다. 적화통일의 위협으로 박정희 독재체제를 옹호하던 것과 비슷한 논법이다. 재벌개혁이란 총수의 소유권을 무조건 박탈하자는 게 아니다. 총수의 부당한 그룹 지배력 부분을 해소하고, 그걸 국민연금 등 한국의 기관투자가를 통해 보완하면 된다. 그러면 재벌을 외국금융자본에 넘기지 않으면서 개혁을 수행할 수 있다.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 유산을 극복한다고 해서 시장만능주의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장 교수는 경제개혁론자들을 시장만능주의로 매도한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 식 개발독재 아니면 시장만능주의 밖에 없다고 하는 편협한 사고의 산물이다. 박정희 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복지주의적 국가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금융, 노동, 환경과 관련된 국가의 규제는 과거에 비해 더욱 강화돼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하고, 기초 인프라 발전 차원에서 국가가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야 할 경우도 있고, 구조조정 등을 위한 정책금융의 중요성도 사라지지 않았다.

  재벌에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주되 그 댓가로 증세하자는 장교수의 제안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재벌들이 콧방귀를 뀌니 가능하지 않다. 또 부당한 경영권 세습마저 인정해 IMF 금융위기 때처럼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재벌총수 3, 4세가 기업과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재벌을 개혁해 재벌의 부당한 사회지배력을 약화시켜,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보를 비판한다.(1)

'자본↔노동'의 대립구도에만 주목하는 진보파는 노동자 사이의 차별이나 자본가 사이의 차별 즉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억압·수탈관계를 소홀히 한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더라도 민주주의 질서를 위배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게 없다. 비록 틀린 꿈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남에게 꿈을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에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 있다. 더구나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다만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작동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를 심화시켜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선 국가보안법이 개정되거나 철폐되어야 한다.

<NL과 PD의 거듭나기>

  NL과 PD는 이제 변화된 현실에 걸맞게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재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NL과 PD의 비합리적 부분은 과감히 버리되 합리적 핵심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NL 특히 주사파 NL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북의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너무나 감동해서 분별력을 잃고 오늘날 북한체제의 시대착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PD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오늘날 사회주의 혁병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NL의 합리성이란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한민족과 미국의 관계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PD의 합리적 핵심은 계급과 계층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이상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대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PD적 문제의식의 표출이다. 또 일터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길러지는 양육 및 교육 과정 속의 인력, 일터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실직자,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인력에 대해서까지 제대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복지의 확대·강화다. 

  한국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이라는 원론적 접근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중층적인 모순구조로 신음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 자본 사이 즉 재벌과 중소·중견기업 사이,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사이 즉 거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아에도 심각한 모순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성격을 겸비한 수많은 영세자영업자가 과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우 고용안정성이 높으면서도 그런 점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높은 임금수준이 유지되는 현실이 사회적 위화감을 증대시킨다. PD적 문제의식의 발전이란 이런 뒤엉킨 모순에 대한 해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급진적 사상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일제지배나 독재체제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과거의 사상들을 그대로 이어갔다는 점이다.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준 뗏목이 고맙다고, 강을 건너고 나서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짐에서 해방돼야 한다.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NL과 PD의 진보적 사상에는 계승할 부분도 있다. 민족문제와 계급·계층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현실에 맞게 응용하되 낡은 사고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POKER FACE

감사합니다. 순교하지 않아야 살아서 시계추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와닿았습니다. Poker face를 하고 와신상담, 절치부심하는 것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제는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사회학 도서를 읽었습니다. 여성주의적인 내용이 주로 담긴 책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장은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상처 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면 이무기는 흙탕물 가득한 연못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월왕 구천도 오나라왕에게 패하고 3년간 오왕구차의 하인이 되는 상처를 입지 않았더라면 월왕으로 만족하고 여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인류잔혹사의 원인, 인간의 상품화에 있다.


연락이 없다.



연락이 없다. 아무래도 떨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하겠다.
스브스은 1990년 11월 14일 창립했고 1991년 3월 20일 개국했다.
스스브는 1989년 12월 25일 태어났고 2015년 4월 30일 블로그 뉴스를 시작한다.

SSB(Sung-Bae, Son / Son's Social Broadcasting)
일명 스스브, 지금 시작합니다.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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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폴라니

시장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전통적인 경제학을 비판하며 역사적 고찰을 통해 19~20세기 전체주의, 전쟁, 기아, 폭력 같은 인류 잔혹사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고심한 끝에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ㆍ자연ㆍ토지의 상품화에 있다고 봤다.
시장이 알아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한다는 자기조정 시장경제라는 관념이 유토피아,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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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특별사면에 대한 여당의 노골적인 문제제기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지원사격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가 당시 특별사면 관련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지 않아 오히려 여당의 문제제기를 부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당시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을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함구하고 있다. 사면과 관련해서 그 경위나 검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주요 내용

사용후 핵연료 관리
- 핵연료 저장ㆍ처리 시 미국 기술적 지원
- 해외 위탁재처리 허용
- 파이로프로세싱 전 단계 전해ㆍ환원 과정 허용

핵연료 공급
- 저농축 우라늄 생산을 위한 절차와 기준 마련
- 핵연료 안정적 공급을 위한 미국의 지원

원전수출 증진
- 핵물질, 장비, 부품 제3국 이전 포괄적 동의
- 수출입 허가 절차 간소화

주권 존증
- 평화적 핵이용 권리 재확인
- 상호 권한행사 체제로 전환


세월호 인양

선박 측면에 구멍을 내 와이어로 연결, 대형 해상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뒤 수중에서 플로팅 독 위에 선체를 올려 인양한 뒤 안전지대로 이송하는 방식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단말기 지원금 상한 폐지 주장 유통업계 시민단체 한목소리
분리공시제 도입 논란도 가열 정부는 "법안 개정ㆍ폐기 없다"

경실련 "법 시행 후 담합적 성격이 있는 보조금 상한제 탓에 소비자가 기존에 받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

참여연대 "가계통신비를 인하하려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말기 가격을 인하하는 게 필수적" 투명한 단말기 가격 산출을 위한 분리공시제 도입이 필요하다.



국내 전세 가구의 보증금 합계 476조원
LTV DTI 공부하자.




2015년 4월 22일 수요일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도입의 외교적 득실은?

국내 안보 및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고고도미사일방어 도입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지난 회(8일자)에는 군사적 차원에서 사드 기술의 신뢰성과 관련한 찬반 양론을 다룬 데 이어 이번엔 이를 둘러싼 한미중 역학 관계의 분석과 외교적 쟁점에 대해 다룬다.

사드 배치 찬성 입장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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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목 쳐달라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불신 말바꾸기 거짓해명 불능 국정총괄 권위 상실 불가보고체계 아이러니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 버려진 개 신둥이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새끼들을 돌보는 간난이 할아버지의 배려,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태준 <해방 전후>

아베 과거 담화와 같다면 낼 필요가 없다.


종로경찰서 이규환 경비과장 경질


서울, 2018년까지 300개 공유기업ㆍ단체 육성
다양한 공유로 교통주차주거난 등 도시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서울의 비싼 임대료를 나눠 내기 위한 셰어하우스는 16곳에서 117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업을 하는 곳에 연간 10억원 정도 투입해 4840억원의 효과를 봤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독신일 때보다 세금 부담이 거의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OECD가 내놓은 2015 임금과세에서 34개 회원국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소득세+사회보험료)을 가족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결혼해 외벌이로 자녀 둘을 키우는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은 세전 소득의 19%였다.

자녀 없이 독신인 근로자(21.5%)보다 2.5%포인트 낮았다. 실질 세부담은 회사가 지출한 총임금에서 근로소득세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로 얼마를 떼가는지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OECD 34개 회원국 중 28개국이 출산 근로자에게 한국보다 많은 세제 혜택을 주고 있었다.


정치부패, 줄일 수 있다.

다시 정치부패다. 차떼기다 뭐다 해서 그만큼의 홍역과 대가를 치르고도 아직 정치부패는 남아 있는 모양이다. 강력한 사후처벌만으로는 부패를 막기 어렵다.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한다. 베버의 이 말대로 정치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다룰 수밖에 없다. 권력을 다루다 보니 그 권력을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쉽고 편하게 얻고자 하는 지대추구 행위에 유혹당하기 쉽다. 유혹에 안 넘어가야 하지만 권력을 가진 터에 유혹이 있으면 부패할 가능성은 늘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이 부패하지 않도록 사전에 제어하려면 몇 가지가 중요하다. 검찰경찰과 법원 등 사정 권력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차별과 부패는 공생관계다. 사정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즉 권력이 있다고 해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게 확실하면 정치부패는 줄어들 것이다.

정치부패는 불공정 경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권력자와의 인연에 따라 경쟁의 결과가 달라진다면 누구라도 부패할 인센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력이 아니라 연고에 따라 경쟁의 성패가 달라지면 실력을 키우기보다 연고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건 당연하다. 강자가 곧 승자가 되는 강자독점, 승자가 혼자 다 먹는 승자독식은 부패의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정치부패가 줄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치구조다. 우리 정치는 일반 선거보다는 당내 공천 중심이다. 일반 선거에선 유권자가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들을 놓고 선택권을 행사한다. 당내 공천은 지도부나 실세가 선택권을 행사한다.

인물 중심의 정치나 선거를 조장하는 제도도 문제다. 정치의 주체가 정당이

2015년 4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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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기업 한복쇼 다음날 채권단 자금지원 결정

성 회장, 의원직 상실과 워크아웃 신청이 임박하자 박 대통령을 베트남 랜드마크72로 초청하는 데 주력했다. 


박 정부 들어 교육투자 확 줄었다

교육교부금 증가율 0.3% GDP 증가율의 10% 못 미쳐
박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가율이 10분의 1도 안되게 급락한 것으로 분서고댔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선 교부금 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앞섰지만, 박 정부 들어 교육 투자가 한참 뒤로 밀리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셈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교부금 증가율은 명목 GDP 증가율 3.8^의 10분의 1도 안되는 0.3%에 그쳤다" "GDP보다 교부금 증가율이 웃돌았던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와 대조적"

교육의 균형 발전을 위해 국가는 내국세의 20.27%를 지자체 교육 예산에 쓰도록 하고 있으며, 이 교부금은 교육청 예산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현 정부에서 감세 정책 때문에 내국세의 20.27%로 정해져 있는 교부금 자체가 줄어 교부금 증가율이 급락했다" 교부금 자체가 줄어 교부금 증가율이 급락했다. 이명박 정부 후기부터 경제성장률 예측에서 비현실적인 낙관론으로 일관해 예결산이 맞지 않은 것도 교부금 증가율이 줄어든 이유다.

교부금은 예산보다 세수가 적으면 결산 때 반영돼 2년간의 시차가 있다. 
"영국 정부가 2014년부터 초등 1~3학년 학생들에게 국가 단위 무상급식을 시작하고, 독일에서도 2014년 모든 주에서 대학 교육이 다시 무상으로 돌아왔다" "교육의 경제성장 효과가 입증되며 세계적으로 교육 투자를 늘리는 양상인데, 한국만 교육재정을 줄이며 반대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성과자 통상해고 길 넓힐 지침 필요" 정부 용역 드러나

해고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고용노동부 "정부 차원에서 통상해고의 유형과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개괄적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가이드라인은 법원이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문제를 판단할 때 유용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경영에 중대한 지장 또는 손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정도의 적격성 불량이 존재하는 경우 ▲시정을 위한 주의ㆍ지도ㆍ교육 및 적정한 배치 전환을 시행해도 개선 기미가 없는 경우

지금까지의 판례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저성과가 매우 현저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기업의 저성과자 해고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 


AIIB 57개국. 

아들아 정의다. 우리가 상실한 것이, 우리가 경제를 위해 팔아버린 것이, 그래서 우리가 이렇듯 비천한 존재가 된 것이, 아들아 정의다. 아직도 울부짖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이 난파된 배에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이제 너에제 물려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이 정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로 기록될 것이다. 우회로는 없다. 정면으로 직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유일한 '공통의 것'은 산업화도, 민주주의도 아니고 그 허약한 파편 위에서 겪고 있는 세월호라는 고통과 슬픔이다. 여기서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 이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여기에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역사는 비로소 이 시대를 "세월호라는 가슴아픈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고 기록할 것이다. 그게 이 시대가 살 길이다. 그러니 지겹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세월호로 기억될 것이다.


경찰버스를 사용한 차벽 설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이다.
시민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막은 것은 행동자유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법령상으로도 경찰버스를 이용해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거나 집회현장을 봉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경찰장비가 아닌 것이다.

버스라는 탈을 쓰고, 경찰이라는 위장을 하였을 뿐 저웁가 시민들에게 행사하는 가차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은 집회현장을 떠나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정부의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경찰은 질서유지라는 말을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내뱉는다. 그러면서 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게 이뤄지는 시민의 집회를 짓밟는다. 하지만 이는 시민들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민주국가의 최대의무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교통이나 질서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원래 거리는 일상의 정치공간이다. 힘없고 서러운 장삼이사의 서민들이 가진 자들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애환을 나누고 삶의 희망을 말하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이 공간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까지도 차벽으로 가로막고 나서는 경찰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여기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의 국가는 이제 이곳에 없다. 

2015년 4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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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500 불티, 매출 50% 껑충


일본이 다른 나라 침략한 것은 사실. 상대국이 됐다 할 때까지 사죄해야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은 과거 다른 나라를 침략한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 나라가 됐다고 할 때가지 사죄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사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국이 그 정도 사죄했으니 알겠다, 이제 됐다고 말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2014년 신조어 키워드는 취향. 배제. 극단

국립국어원 2014년 신어 335개 선정

찍먹파와 부먹파,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는 말이다. 덕밍아웃(한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 맥덕(맥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 같은 말도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는 단어로 신어 335개에 포함됐다.

새로 만들어 쓰는 단어는 우리 역사나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취향과 선호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찍먹. 부먹 같은 말은 오히려 취향을 단순하게 범주화하는 것" "정말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탕수육 소스를 찍어 먹든 부어 먹든 개의치 않아야 한다" "요즘 세대는 굉장히 개성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집단에 묶이길 원한다"

표준 집단에 속하려는 욕구는 집단 외 사람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진다. '닥눈삼' '진지병자' '쿨몽둥이' 같은 신어들이 여기 해당.

닥눈삼 닥치고 눈팅 삼개월,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적응할 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라는 뜻.
진지병자,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을 비판하는 단어
쿨몽둥이 쿨하거나 멋있는 척하는 사람을 때리는 방망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배제한다는 점에서 맥락이 통한다.

취향에 따라 서로를 구분짓고 공격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도 증가, 극혐오, 극호감, 개소름과 같은 단어가 2014년 신어로 등재된 센 표현들이다.


생각은 죽지 않는다. (저자 클라이브 톰슨)

소크라테스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사람들이 어떤 사실을 머리로 기억하지 않고 종이에 적으려고만 한다면, 그리스의 웅변술 전통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크라테스의 불찰이었다. 마주치는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소크라테스의 우려와 불찰은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에 대한 현대인들의 태도와 맥락상 동일하다. 이를테면 첨단 기술이 읽고 기억하는 능력을 퇴화시킨다거나, 결국에는 디지털 치매를 일으켜 생각하는 뇌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점점 대체하고 검색이 일상화되고, 스마트폰이 생활의 필수품이 되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두려움은 소크라테스의 우려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사고 패턴을 바꾼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의 패턴이 더욱 좋은 쪽으로 바뀔 것이다. 글쓰기가 인간의 사고 능력을 향상시켰듯이, "디지털 툴로 인해 우리의 인식은 더욱 확장될 것이며, 인간은 지금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구식 문해력을 바꾸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해력을 만들어낸다. 동영상, 이미지 데이터 등 새로운 정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과거에는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넉넉한 기금을 받은 일부 전문가들만이 동영상이나 데이터를 활용했지만, 이제는 보통사람들도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게 됐다. 이런 물리적 툴은 우리의 정신적 툴까지 활짝 열어줌으로써,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유형까지 정탐하게 해준다.

기계의 기억 능력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퇴화하지 않는 반면, 사람은 무언가를 요약해 보존하는 성향을 지녔고 세부적인 내용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전반적인 골격은 잘 파악하지만 작은 활자에선 맥을 못 춘다. 분산기억의 파트너인 컴퓨터 툴과의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계와 사람의 협업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브 톰슨은 웹과 위키피디아와 쉽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은 창의적 인간 정신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고독한 사막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아 창건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종교가 아니라 당시 여러 종교의 요소를 융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 경전, 기독교 구약과 신약, 무함마드 전기, 코란 주석서 등을 대조하면서 코란에서 다른 종교들의 흔적을 찾아낸다. 로마 제국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면서 힘을 발휘한 기독교의 유일신 관념은 이슬람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함마드가 이끈 이슬람제국은 당시 초강대국들과의 경쟁, 기독교와 유대교라는 강력한 일신교와의 대결을 통해 탄생했다. 텅빈 사막 한가운데 있는 이교도 도시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초자연적 아우라도 코란에서 벗겨낸다. 그럼에도 이슬람교가 인류사에 미친 대단한 역할은 변함이 없다. 각자 유일신 관념에 따라 나눠 가진 당대의 대립구도가 1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17일 금요일

소셜미디어 이용 동기

소셜미디어 이용 동기 연구(이정권, 최영, 2014)

SNS 이용 동기

1) 정보 추구 및 획득을 위한 인지적 동기
2) 기분전환 및 현실도피와 관련된 오락적 동기
3) 강화효과를 초래하는 개인적 정체성 동기를 지적



2015년 4월 16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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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팽목항 방문 "빠른 시일 내 세월호 인양"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면서 선체 인양 의지를 재차 밝혔다. "세월호의 고통을 딛고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길에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지난 1년간 겪은 슬픔에 좌절하며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모두 함께 일어나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아직도 사고 해역에는 9명의 실종자가 있다.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나갈 것"

"국회에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됐고, 이에 따라 민관 합동 진상 규명 특별조사위가 출범해 곧 조사가 진행될 것"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배ㆍ보상도 제때에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경험을 언급하는 등 유가족과의 공감대 형성에 주력했다.

"제때에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깊은 강 - 엔도 슈사쿠, 종교와 신은 어떤 존재인가

신이란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삶의 지향이 다르지만 사랑과 구원으로 통하는 길을 찾으려는 작가의 종교관을 볼 수 있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게 현실이다.


이완구 충청도 비하발언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완구 총리의 말바꾸기. 충청도 말투가 그렇다. 곧바로 딱딱 얘기해야 하는데 충청도 말투가 이렇다보니 글쎄요라고 하는 말이 있으니...


이해인 수녀.

제일 당황스러운 질문, 나 보고 예수님 언제 영접했느냐는 건데 그러면 영접요? 그런다. 생경하게 들리니까. 영성생활에서 드라마틱한 어떤 것을 꿈꾸는 거, 위험하다고 느끼거든요. 꾸준히 평범해야 하는데 드라마틱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아닐 때 나락으로 떨어진다.

세계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판단 보류의 영성, 이게 실생활에 무척 도움이 된다. 인간에 대해서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하라.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우리가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런다.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마라. 사람이 다 비슷비슷하다. 잘나면 얼마나 더 잘났겠어.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안되지? 이렇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 결론이다.

판단보류. 안 먹은 사람이 먹은 사람을 굉장히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룩하다고 하는데 진짜 거룩해서가 아니라 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로 남한테 부담을 준다. 이 소리다. 천사표, 거룩하다고 말 듣는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이제 지식 습득은 그만하고 인간을 해석해서 배려하는 시대로 넘어가야겠죠. 이런 시대에 부모 노릇하기 얼마나 힘들까요? 엄마 노릇하기도 힘들고, 아내 노릇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함부로 우리 같은 사람이 성경에 있는 말만 가지고 가정생활 하는 사람한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면 그것도 겸손하지 못한 거지.

내가 알긴 어떻게 알아. 겸손이 기본 덕이다. 자기의 약점을 자랑할 수 있는 겸손. 사도 바울은 '내가 자랑할 것은 약점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아!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가 있으면 살겠구나.

약점을 드러내도 안전할까? 그렇게 봐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도 약점을 자랑할 용기가 부족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게 안 된다. 인간이 참 자기도 모르게 어리석다고 할까. 오히려 어리석은 용기가 필요한데. 김수환 추기경 "그럴만한 요소가 있으니까 나도 비난을 받는 거다"

슬픔 속에 있는 사람한테는 어떤 말로도 사실 위로가 안 된다.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하는 것도 겸손이 필요하다. '슬픈 사람들에게 너무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 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 주어요 슬픈 사람들이 슬픔의 집 속에만 숨어있길 좋아해도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산 너머 저쪽 더욱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나는 그를 찾아 님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멀리 있는게 아니다. 근데 알면서도 계속 멀리 따라간다. 또 언젠가 한 번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안 죽을 것처럼 살고. 이런게 인간의 어리석음인가 보다. 그래도 이 어리석음 때문에 오늘을 산다. 맨날 죽음을 생각하면 허전해서 어떻게 살겠나 싶고. 가장 중요한 건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정말로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거기에 답이 있겠죠.


도요토미 히데요시. 태양인의 성정. 태양인은 직관이 우월하고 본능적이며 비합리적 속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직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언행들이 주변인들이 보기에는 기인처럼,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태양인은 자신의 직관적 판단이 설 경우 그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당장 그것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태양인 급박지심이라고 한다. 모든 주변 상황이나 사물을 간명하게 파악하고 확고하게 추진하려는 속성이 강해진다. 태양인은 주변에서 자신의 뜻을 제대로 따라주지 못하면 설득이나 합리적 대화보다 벌을 주려는 벌심이 강하다. 상식이나 보편적 정서를 뛰어넘는 반인륜적, 원시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태양인만의 특징. 태양인은 자신의 급박지심이나 권력추구에 방해가 되면 비열하고 냉정한 모습을 태연하게 노출한다. 직관을 중시하는 태양인의 경우 개인은 그런 흐름 속에 일개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적군, 아군할 것 없이 인재를 끌어모으는 스타일도 태양인 기질과 닮아 있다. 자신의 급박지심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과거 행적이나 빈부귀천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자 예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강조한 기독교 신학 운동. "예수는 자신의 생애를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를 이루는 일에 집중했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해방이고 기쁜 소식이다"


유언비어에 관한 연구
R= iXa 루머는 이야기의 주제의 중요성(importance)과 화제와 관련된 증거의 애매성(ambiguity). 문제와 주제의 중요성과 관련된 증거나 설명이 명확지 않을수록 유언비어가 널리 퍼진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일부 유포된 것도 당시의 정부 발표에 대한 불신이 컸기 때문이다. 유언비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면, 정부는 신속히 상황을 설명하고, 의혹과 불신이 커지지 않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했어야 했다. 참사 직후 정부의 대응이, 그보다는 의혹 제기와 비판 자체를 봉쇄하는 데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식의 대응이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의혹 제기와 비판을 차단하고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권력 그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공권력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일이 적어도 지금처럼 손쉽게 이루어질 수 없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형사처벌의 범위를 상당한 정도로 축소해야 한다. 형법은 허위가 아닌 진실한 사실을 언급하는 경우도 명예훼손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알아서 수사에 나설 수 있다.

모욕죄 역시 구체적인 기준 없이 공연히 타인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고 하고 있어, 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까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엔인권이사회 "모든 가입국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하며 형법은 가장 심대한 사안에만 적용돼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당장 해당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표현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 국가기관을 명예훼손의 피해자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국가기관이 기관의 업무처리 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입막음 소송은 대부분 국가의 패배로 결론났지만,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오랜 기간 당사자는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

얼마 전부터는 도심 곳곳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이 뿌려지고 있다. 조선시대 정치가 어지럽고 의견을 전달할 언로가 차단되었을 때 길거리에 붙었다는 벽서를 떠올리게 한다. 경찰은 대통령 비판 전단을 제작한 사람들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e메일과 휴대전화까지 압수했다. 그런다고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까.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전에 군사정부 시절에나 뿌려졌던 전단이 왜 다시 등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스스로의 균열을 감내하지 못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한 성

결혼 제도 바깥의 성에 대한 규제는 국가가 가족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다. 간통죄 위헌 판결은 이 법이 가족을 보호하는 데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인정한 것 같다. 우리는 미국과 달리 배우자의 외도가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 가족이 친밀한 공동체라기보다는 자녀양육, 입신양명의 단위로 도구화되었기 때문에 혼외 사랑은 가족 붕괴의 범퍼다. 집 밖에서의 친밀감으로 내부의 갈등과 지겨움을 견뎌내는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자유에 관한 권리가 아니다. 무엇이 성적인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결정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근대 인문학을 총동원해도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단어가 출현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시민권 운동에 이은 1970년대 미국의 성 해방 투쟁에서 등장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시민권 운동에 이은 1970년대 미국의 성 해방 투쟁에서 등장했다. 이 권리는 그간 성적으로 억압됐던 여성과 동성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이성애자 남성은 5000년 동안 해방되어 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논외였다. 일반 남성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은 권리가 아니라 기득권이다.

이후 1990년대 초 한국 사회.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어요"를 외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여성의 성을 순결 차원으로 보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특별법 이전에도 처벌법이 있었지만, 이때 성폭력은 여성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순결을 빼앗는 것을 의미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모든 자유가 그렇듯 타인의 권리와 충돌한다. 이 때문에 다른 인권 개념처럼 약자의 권리일 때만 의미 있는, 상황에 따른 권리다. 간통죄, 성매매 모두 성적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된 2004년에도 논란은 대단했다. 여성의 몸을 구매하는 것을 인권(행복 추구권)이라고 주장한 남성들, 생존권 차원에서 합법화를 요구한 일부 여성들, 성산업의 심각성과 여성에 대한 폭력 현실을 지적한 여성들이 있었다. 문제는 대화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남성들 간의 차이는 보편적인 계급문제로 인식되지만, 여성들 간의 차이는 여성 문제로 치부된다. 남성 간의 계급투쟁은 당연시되지만 여성에게는 자매애가 강요된다. 성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여성이 관련 발언을 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남녀, 여성주의자, 종사자 모두에게 비난받는다. 언제나 당당한 집단은 구매 남성들이다.

10여년 전 여성부 "성을 사고파는 것은 범죄입니다" 성매매가 범죄인 것은 성을 매매해서가 아니다. 성매매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권이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다. 성매매가 왜 불법인가. 누구나 노동과 임금을 교환해서 먹고산다. 남녀가 같은 일에 종사해도 여성이 더 파는 것처럼 보이는 성차별이 있을 뿐이다. 거듭 강조하는 바, 성매매는 매매가 아니라 성별이 문제다.

너무 비대하고 괴이해서 국제사회에서도 특이한 사례인 한국의 성산업 규모까지 문제삼을 능력은 없다. 다만 찬반 주장 이전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압도적으로 남녀로 나뉜 직업이 성매매 말고 또 있는가. 창녀와 창남은 같은 지위의 단어인가. 같은 인구수와 역사를 갖고 있는가. 성매매 제도는 여성 전반을 성적 낙인 속에 가둘 수 있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다. 왜 이 직종은 자영업이 힘든가. 왜 인신매매가 흔한가. 왜 기술이나 지식, 근무 연수가 아니라 나이가 소득을 좌우하는가.

성매매는 자기 결정권과 무관하다. 남녀의 성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출발하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무책임과 무통의 괴물 나라

유족 - 정부에 대항하는 종북, 또는 자식 목숨으로 한 몫 챙기려는 떼쓰기로 능욕.
진실 없는 미래의 청사진으로 현실의 고통을 가리려 하지 말고, 물질적 풍요를 내걸어 현혹하려 하지 마라. 스스로가 제거해야 할 적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착각 속의 점점 괴물이 되어갈 뿐이다.

우리 스스로를 향해서도 탓할 일이 많다. 참사 직후 들불처럼 번지던 추모와 공감이 순식간에 피로감으로 변한 것은 아닌가? 일본의 현대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정의하는 무통운명은 겉으로는 안정을 확보한 채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마치 중환자실에서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자는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문명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상실감과 공포감 때문에 뒤틀린 감정을 안고 살아도 자신만 이득을 보고, 남의 아픔을 못 본 체 하는 왜곡된 방어기제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필연적으로 자기 삶도 함께 누더기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세월호 피로감이, 사고 이후 바로잡혔어야 할 것들이 바뀌지 않음으로 인한 안타까움의 반발 작용이거나, 아니면 정부의 여론조작 기제이자, 보수언론들의 선동적 저널리즘 프레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고해 같은 인생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망각의 힘이라지만, 세월호의 비극에는 통하지 않는다. 기억의 겉은 살짝 벗겨내고 색은 바래게 만들 수는 있을지라도 망각으로 덮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월호의 비극은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고, 이대로 가면 또 벌어질 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에서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에, 진실보다 왜곡에, 슬픔보다 분노에, 애도보다 투쟁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연대를 만들어낼 진심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며, 또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기억할 것이다."



국민연금 '용돈'은 되지만 생활비가 되기에는 턱없이 낮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과거에는 기금 고갈에 대한 오해가 가장 큰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금 없이도 연금을 잘 지급하는 선진국들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오해는 많이 풀려가고 있다. 국민연금 불신을 불러오는 진짜 원인은 형편없이 낮은 연금 수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액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의 인상과 국민연금을 못 받게 될 사각지대 해소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연금액은 높아진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험료 인상과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금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보험료 납부를 어렵게 만들고 사각지대를 더 고착화할 수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과 연금 크레딧(보험료 납부 인정제도)은 동시에 추진돼야 할 과제.
어떤 제도든 제도를 만든 목적이 있다. 국민연금은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그 어떤 가치도 이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액 삭감은 세계적으로 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어떻게 국민연금의 기능을 강화해야 할지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캐나다 원주민 크와키틀족에겐 축제 날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받는 쪽에게 소중한 것을 줄수록 상대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 받은 쪽이 선물을 받음으로써 생긴 빚의 크기만큼 준 쪽의 사회적 지위가 안정되는 것이다. 한편 받은 처지에선 빨리 빚을 털어야 자신의 사회적 지위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상대보다 더 큰 선물을 보내거나 보답하려는 풍조가 생겨났다. 캐나다 정부는 이러다간 모두 가난뱅이가 돼버린다며 풍습을 금지했다.

부모 흉탄에 잃은 슬픔

부모 흉탄에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당부도 했다고 한다. 부모 잃은 슬픔과 자식 잃은 슬픔은 동일시할 수 없다. 원숭이도 자식을 잃은 어미 원숭이는 장이 뚝뚝 끊기는 아픔 속에서 죽어간다고 한다. 이럴 순 없다.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민주주의와 사람들 - 그들과 통하는 길

청년 빈곤.

나는 애초부터 '청년'이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스무 살이 푸르른 것은 아니다. 거무죽죽한 일상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 10~30대가 있다. 그들을 그냥 '푸른 나이'라 부르는 것은 위선이다.

통계적 기만과 충격

대학진학률 통계에는 지방대는 물론 전문대ㆍ방송통신대 등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이 서울 소재 유명 4년제 대학과 같은 반열에서 취급받는 통계적 기만을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매년 학업을 중단하는 초중고생이 7만 명에 이른다. 평준화와 수월성을 다투는 진보ㆍ보수 논쟁과 상관없이 그냥 학교를 그만둬 버린다. 아예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미진학 청소년' 30만여 명은 따로 통계를 잡아야 하므로, 적어도 40~50만 명의 청소년이 지금 '학교 밖에서' 서성대고 있다.

숫자는 절대로 진실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국의 빈곤율은 약 17% 수준이다. 소외받고 가난한 청년들이 참으로 많다.

외국에서 빈곤의 실존은 슬럼을 통해 입증된다. 슬럼은 수만~수백만 명이 모여 사는 빈곤주거지역이다. 범죄ㆍ마약ㆍ질병 등의 소굴이다. 한국에는 미국ㆍ남미ㆍ유럽 등에 현존하는 슬럼이 없다. 슬럼의 초기 모델이었던 달동네 조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이 이들을 몰아냈다.

효과는 확실하다. 한국인들은 빈곤을 체감하지 못한다. 한 블럭 건너 범죄ㆍ마약 소굴이 있는 뉴욕ㆍ런던ㆍ파리의 부유층과 어딜 가도 연립주택이 들어선 서울의 부유층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인지하는 더듬이가 다르다. 한국에서 빈곤 노동은 '투명 노동'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투명한 인간이다. 우리는 가난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난이 없다 치고' 사는 일에 길들여진 것이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고시원ㆍ반지하방ㆍ옥탑방은 달동네와 다르다.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유대감이 없다. 얇은 벽을 두고 같은 고시원에 살아도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빈곤 청년은 더 이상 군집을 이루지 않는다. 원자화된 빈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동서고금의 혁명 대부분이 슬럼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한국은 확실히 빈곤층에 의한 혁명 가능성을 거세했다.

한국 사회가 달동네만 밀어낸 것은 아니다. 공단이란 이름으로 수도권 궁벽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변두리 공단에서 시급 4300원을 감내하는 이유. 돈 쓸 일은 없고 오직 일만 하게 하는 분위기 때문. 스스로 고립돼 지낸다. 그리하여 가난한 노동의 공간조차 우리는 보지 않고 산다. 공단은 중산층의 생활 반경에서 이격됐다.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년들 역시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 편의점ㆍ대형마트ㆍ커피전문점ㆍ백화점 등에서 일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의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난은 일상에 융해돼버렸다. 그것은 좀체 추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이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익숙해져 버렸다. 간혹 가난을 마주쳐도 시선을 돌린다. 가난한 사람을 보지 않고, 그저 통계로 가난을 추상한다. 빈곤 청년은 통계만으로 입증되지 않고, 더구나 체감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빈곤 청년의 생애사를 추적하면 반드시 그들 부모의 빈곤이 있다. 그들의 아버지 가운데 일부는 박정희ㆍ전두환 때문에 가난해졌고, 또 다른 일부는 김대중ㆍ노무현 때문에 가난해졌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청년의 일자리는 대기업 공장에서 비롯한다. 재벌이 운영하는 각종 제조업 공장들이다. 그런데 이들 공장에선 90년대 후반 이후, 사실상 정규직을 추가로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사내하청 방식의 용역을 통해 비정규직만 채용했다. 지역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자동차ㆍ조선소ㆍ제철소에 가보면, 정규직은 40대 이상이고, 30대 이하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집에서 살려면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 중대한 사태가 진행 중이다. 이들이 속속 결혼하고 있다. 가난하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면 자존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없으면 사태를 강압ㆍ폭력으로 해결하려 들고, 그런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배신감ㆍ고립감을 느낀다.

서로 고립되어 있음에도 이들이 공유하는 관념 또는 정서가 있다. 이들에겐 공통된 꿈이 있다. 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임금생활자가 되는 길을 가능성에서 제외한다. 대신 소규모 자영업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각종 자영업의 기반은 서비스업의 대형화와 함께 붕괴했다. 그들이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려면, 대형마트ㆍ백화점이 망해야 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망하면 그들은 당장 오늘을 먹고살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종종 끈기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그들은 정시에 출근하지 않거나, 너무 쉽게 일을 그만둔다.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반쪽짜리다. 그들은 성실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투표일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공단내 소공장,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투표일에 쉬지 않는다. 투표일에 이들 업체가 모두 쉰다 해도 그들은 부족한 잠을 자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건 그들은 일체의 정치ㆍ사회적 의사표현에 무관심했다.

대신 이들은 힘 있는 사람을 믿는다. 세상을 향해 제 의지를 관철하는 다른 인물을 일찍이 접한 적이 없으므로, 이들이 믿고 따르는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일하는 업체의 사장이다. "우리 사장님은 그래도 착한 분"이라는 말. 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조선일보 탓이 아니다. 손님이 많아지는 것은 경기가 좋을 때라는 말을 사장으로부터 매일 듣는다.

만약 그들에게 정치의식이 있다면, 보수 정당에게 몰표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보수 정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한다. 선거운동원들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진보 정당은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한다. 선거 운동원들은 공평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와 공평에 대해선 아는 바도 겪은 바도 없다. 경기가 좋아지는 게 무엇인지만 안다.

사회보장 또는 복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국민연금ㆍ기초생활보장ㆍ국민의료보험ㆍ노령연금보험ㆍ보육비보조 등 거의 대부분의 복지 제도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시기에 도입됐거나 완성됐다. 그러나 빈곤 청년의 절대 다수는 이들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거의 없다.

일자리가 없어진 것은 민주정부 시절의 일이다. 이들에겐 복지가 늘어난 기억은 없고 일자리가 줄어든 기억만 남아 있다.

터무니없는 제안이겠지만, 무조건 월 200만원은 지원해야 '구휼'의 효과가 생기고, 복지의 '수혜자' 집단이 형성되며, 그들이 복지정치의 '적극 지지자'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초중등 교육과정, 취업과정, 실직위기 등의 국면마다 누군가 등장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복지 상담을 해줘야 그들이 복지정치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경기부양의 신화가 인격을 통해 전파된다면, 사회보장의 신화 또한 인격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수준이 된다면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복지제도가 후퇴했을 때, 가난한 자들이 강력한 저항을 시작할 것이다. 복지정치를 하겠다면, '엄청나게 더 많은 복지'를 '개별적이고 인격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방식의 딜레마가 있다. 복지에 대한 기억의 역사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가난한 청년이 복지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지지가 있어야 복지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뾰족한 해법이 없으니 딜레마다. 빈곤 청년들은 탓을 하지 않는다. 정부ㆍ정당ㆍ노조ㆍ언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동시에 그들에게 제 인생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다. 부모사업이 망해버렸으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한다. 자신의 가난에 대해 정치인의 잘못을 묻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부모 세대, 즉 50대 이상이었다.

빈곤 청년들은 '경쟁'을 내면화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열성은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을 자연스레 수용한다. 한국 공교육의 큰 틀이 바뀐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그 전까지 아이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인생의 목표가 나라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데 있다고 배웠다. 비록 열악한 노동현장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군사정권은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 불렀다. 김영삼 이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완성된 현재의 교육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의 목표는 세계화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의 경쟁력을 기르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 이제 어느 정권도 각별한 의미를 담아 가난한 노동자를 호명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주식ㆍ금융은 도박이다. 큰 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 현재의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교육과정에서부터 거세한다. 복지는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복지를 기대하거나 따져 물을 논리적ㆍ정서적 근거를 빈곤청년들은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할 수 없다면,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호명이라도 필요하다. 사회적 호명은 공동체의 복원에서 시작한다. 공동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 도닥여줘야 한다.

일련의 사태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이 소수라고 치부하면 된다. 현실이야 어떻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다수라고 치부하고 그들에 주목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설명한 빈곤 청년이 다시 등장한다. 현재 모든 4년제 대학생이 품는 최고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7ㆍ9급 공무원 시험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고시촌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달에 80만원이 든다. 이런 후원이 가능한 것은 오직 중산층이다. 중산층 자녀가 아니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없다. 중산층 이상 부유층이라면 3~5년 걸리는 사법ㆍ행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다. 중산층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조차 안전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들이 공무원이 되려는 것은 공공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공포다. 한국 중산층 청년의 미래를 보려면, 노량진에 가면 된다. 절대 다수가 비정규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벼랑을 볼 수 있다. 현재인 동시에 미래의 문제로서 빈곤은 소수가 아닌 다수 청년의 문제다.

정치는 소통이다. 무릇 정당이라면 이들 청년세대와 교감하고 싶을 것이다. 기자인 나는 그런 방법까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취재할 때, 질문부터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밥 먹고 일하고 어울렸다. 세상이 남긴 상처 때문에 그들에겐 수많은 가시와 방패가 있는데, 그걸 스스로 거둬들일 때까지 섞이고 스며들려 애썼다. 대화는 그 다음에야 가능했다. 놀랍게도 귿르은 대화 자체만으로 즐거워했다. 비록 나의 기사는 그들의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함께 일하며 밥 먹는 기자를 좋아해줬다.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통계로 분석하고 문자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두려워하는 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주민센터 직원이고, 도움을 청하는 곳은 정당이 아니라 복지관이며, 진심으로 신뢰하는 이념은 언론이 아니라 사장에게서 비롯한다. 주민센터 직원, 복지사, 사장의 자리에 정치인이 가면 된다. 복지정치의 스타트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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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민주주의

"김영오씨가 이혼했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죽은 딸을 팔아 보험금을 챙기려는 비도덕적인 패륜아로 여기는 이들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족과 인간에 대해 배금주의와 인종주의가 가득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낙후된 공공성에 대한 문제제기 '총체적인 공공성의 실종'
재난 상황에서 구조를 포기하고 이를 민간기업에 맡긴 해경, 연고ㆍ친소ㆍ부패 고리로 불법과 탈법을 눈감아준 규제기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능, 책임 추궁과 비난의 정치화에 몰두한 정치권의 행태가 그 근거다.

"우리 사회가 가진 공공성의 위기이자 우리 모두의 위기"
"안전과 안전 관련 규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한국 사회의 오랜 편견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발 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날지 모른 채 걷고 있는 것"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ㆍ역할을 축소하면서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은 첫걸음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진상규명언 공공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의 치유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참사 이후 안산에 거주하며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온 정신건강전문의 정혜신씨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는 그것만 가지고 씨름해도 일생이 걸리는 일"이라며 "아직도 많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사고 후 1년이 다 됐는데도 비뚤어진 세상과 싸우느라 이 일(치유)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진상규명이 치유의 핵심"이다.

1년 빅데이터 핵심어 '유가족'과 박 대통령'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전화 인터뷰 녹취록

  개혁하고 사정한다고 그러는데 사정 대상이 누군지를 모르겠다. 사정을 당해야 할 사람이 거기 가서 사정한다고 소리지르고 있는 우리 이완구 총리 같은 사람, 사정 대상 사실 1호입니다. 1호인 사람이 가서 엉뚱한 사람

  허태열 실장, 국회의원 당시에 제가 만났다. 물론 뭐 공소시효 같은 거 지났지만, 2007년 대선 캠프 때 제가 많이 도왔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을 사람들 얘기하면 무시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한 7억 현금 7억 주고.

  김기춘. 2006년 9월달에. 벨기에하고 독일하고 갔다. 박 대통령 모시고. 그 양반한테도 내가 10만불, 달러로 바꿔서 전달. 결과적으로 이게 신뢰관계에서 오는 일이잖아요. 서로 돕자는 의미에서. 서로 여건이 되는 데까지 십시일반으로.

  홍문종. 본부장. 2억 줘서 조직을 관리. 현금으로 줬다. 이완구도 보궐선거 나올 때, 선거사무소 가서 한나절 정도 있으면서 한 3000만원 주고. 다 이렇게 인간관계 형성을 해서 무슨 뭐 조건이 있고 그런게 아니고, 회사 돈 빌려다가 이렇게 하고 뭐 많이 있다. 저는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 중에 하나인데. 그런 심정을 서로가 이해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검찰에서 딜을 내놔라고 했다. 성완종 부인이 페이퍼컴퍼니 만들어서 처제한테 18억 해줬다. 위장으로 용역계약 해줬다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전혀 몰랐지만 책임을 져야죠.

  정치는 신뢰를 중시하는 거 아닙니까. 가족도 신뢰관계 직장도 신뢰관계인데, 그냥 이렇게 이용이라고 그럴까 완전히 병신 만드는 거 잖아요.

  홍준표가 당 대표 나왔을 때, 동아일보 윤승모를 통해서 1억을 전달.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는데 그러고 하니까 배신감이 들고. 합당하면서도 백의종군한 사람 아닙니까.

  이번에 검찰 조사도, 자원이 없으면 그만둬야지. 마누라, 아들 오만 생긴 것 다해가지고 다 뒤집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다 가져가서 해봐도 없으니까, 가족까지 다 뒤져서. 이념을 달리하는 사상범도 아주 요즘 무슨 뭐뭐 마약이나 폭력범도 그렇게 안 하잖아요.

  아무런 조건 없이 형편에 닿는 선에서 이렇게 하는 건데 이건 아니지 않나. 도덕성이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도덕성이 제일 중요한데, 이렇게 하면 안된다. 이병기 실장 참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다.

  장학재단, 25년 동안 2만 8000명 이상 장학금을 줬다.

  성완종-반기문. 2000년 충청 출신 정관계 인사들과 충청포럼 창립. 실제 성 전 회장이 반 사무총장 대망론을 추진했다.


  진실은 어디 있나. 러시아 혁명기를 대표하는 아나키스트 작가 보리스 샤빈코프의 소설 <검은 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 같아요? 당이나 군 지도부에 있나요?" "단언컨대 없어. 만약 있다면 공장, 병영, 시골마을 뭐 그런 데 있겠지. 소박하고 꾸밈없이 사는 이들에게..."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그냥'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공짜라는 뜻으로 왜곡 축소. 단지 부사로서만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 담화 표지의 기능을 한다. '어떤 목적이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자체의 모양을 이해하고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세월호 유족들, 1년 동안 절며 절며 왔다. 울고 통곡하고 기함한 세월이었다. 모두가 함께 울어줘도 감내하기 어려운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것이 더한 아픔이 됐다. 목숨을 건 단식을 한 유민 아빠 곁에서 함께 32일간 단식하고, 이번에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다시 단식에 나선 도철 스님과 불자들, 유민 아빠의 뒤를 이어 40여일을 단식한 방인성ㆍ김홍술 목사, 현장 미사를 드리며 곁을 지킨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과 수녀들,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를 비롯해 농성장을 지키며 말없이 헌신해온 숨낳은 이들 외에도 무려 5만여명이 팽목항과 안산에서 자원봉사에 나섰고, 220여만명이 분향소에 조문했고 600여만명이 세월호특별법 제정 청원에 서명했다.

  대화...마주이야기. 방법. 아이와 나누는 이야기를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 어른 말투와 화법 그대로 공책에 적으면 된다. 기억의 각색을 막기 위해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주제는 필요없다. 아이는 자신의 말이 글이 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르도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듯 좋아한다.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엄마, 아빠, 선생님이 아이들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을 끊임없이 귀담아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아이들 말을 어떻게 하면 더 들어줄 수 있을지를 알아내면서 아이들 말로 교육해야 한다"

  국가는 무능한 사기꾼이 됐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허무주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 뒤 자원봉사 물결과 2002년 월드컵 때 시청 광장을 비췄다. 영화관에서는 그런 낯뜨거운 광고, 집권 여당 국회의원의 소망처럼 애국 3법이 발의된다고 해서 애국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는 나라, 국민을 존중해주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대통령의 세월호 냉대 > 지지율 추락 > 충청 총리 집착 > 당내 기반 붕괴 > 이명박 비판 > 부패와의 전쟁 > 성완종 리스트

대통령이 처음에 내 탓이오를 외치며 팽목항에서 사흘 낮 사흘 밤만 보냈어도, 총리가 이완구만 아니었어도, 총리 대신 차라리 법무부 장관이 나섰더라도 성완종은 산으로 올라가며 경향신문 기자의 새벽잠을 깨우지 않았을 것이다.

숨진 단원고 학생 246명 가운데 사망신고가 된 아이는 대여섯뿐이다. 아이들의 영혼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맑은 사회를 앞장서 만들어주시고 꼭 좀 보도해 달라".


김영란 "부패가 성장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패를 윤활유로 한 성장은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청탁, 접대문화를 바꾸고 있는 김영란법의 발의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질을 외면한 성장과 부풀려진 성장이 남긴 문제들이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부정청탁 등 금지법은 청렴한 문화를 진작시키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 "그것은 신뢰였다" "부패라는 윤활유에 의존하면 할수록 점점 더 공적인 신뢰는 약화하고 사적인 신뢰만이 득세할 것"이라고 지적. 김영란법이 과잉입법이고 도덕이나 윤리 문제를 법으로 규제한다는 비판도 직접 반박. "동질적인 사회가 아닌 다원사회에서는 공적 신뢰를 각자의 도덕 감각이나 윤리 감각에 맡겨둘 수는 없다"며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고 서로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질적인 사회가 아닌 다원사회를 유지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바뀌어야만 하고 이 법은 그런 변화를 겨냥했다"

*포획이론: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집단을 형성, 정치인과 관료들을 설득해 자기네들에 유익한 각종 규제정책을 이끌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무단 거주: 토지 소유의 가장 오래된 형태. 소유가 아니라 점유, 형태 이전의 상태라는 반박. 우리는 모두 무단 점유자의 후손이다. 인류는 근본적인 자연권 원칙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모두 훔친 땅을 받은 사람들이다.
스콰팅은 인류 역사의 시원에 뿌리를 대고 근대적 의미의 재산권 자체를 공격하고 재편하려는 가장 급진적인 운동. 운동가는 소수지만 가난 때문에 무단거주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전세계에 약 10억명에 달한다.

많은 죄악이 무지와 잘못된 학습에서 탄생한다. 무지함과 무신경함으로 여러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왔다. 모든 분야에 통달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타자의 실수와 죄악을 발견했을 때, 그를 아예 가능성 없는 인간으로 낙인 찍고 갱생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것은 가혹하다고 느낀다.

웃자고 던진 말이 문제가 있을 때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타당하지만, 선을 넘는 농담을 던진 이를 죽이자고 달려들지는 말자는 것. 대부분의 인간은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웃기려다 혹시라도 삐긋해서 선을 넘는다면...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