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5일 수요일

민주주의와 사람들 - 그들과 통하는 길

청년 빈곤.

나는 애초부터 '청년'이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스무 살이 푸르른 것은 아니다. 거무죽죽한 일상을 겨우 살아내고 있는 10~30대가 있다. 그들을 그냥 '푸른 나이'라 부르는 것은 위선이다.

통계적 기만과 충격

대학진학률 통계에는 지방대는 물론 전문대ㆍ방송통신대 등도 포함돼 있는데, 이들이 서울 소재 유명 4년제 대학과 같은 반열에서 취급받는 통계적 기만을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매년 학업을 중단하는 초중고생이 7만 명에 이른다. 평준화와 수월성을 다투는 진보ㆍ보수 논쟁과 상관없이 그냥 학교를 그만둬 버린다. 아예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미진학 청소년' 30만여 명은 따로 통계를 잡아야 하므로, 적어도 40~50만 명의 청소년이 지금 '학교 밖에서' 서성대고 있다.

숫자는 절대로 진실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국의 빈곤율은 약 17% 수준이다. 소외받고 가난한 청년들이 참으로 많다.

외국에서 빈곤의 실존은 슬럼을 통해 입증된다. 슬럼은 수만~수백만 명이 모여 사는 빈곤주거지역이다. 범죄ㆍ마약ㆍ질병 등의 소굴이다. 한국에는 미국ㆍ남미ㆍ유럽 등에 현존하는 슬럼이 없다. 슬럼의 초기 모델이었던 달동네 조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이 이들을 몰아냈다.

효과는 확실하다. 한국인들은 빈곤을 체감하지 못한다. 한 블럭 건너 범죄ㆍ마약 소굴이 있는 뉴욕ㆍ런던ㆍ파리의 부유층과 어딜 가도 연립주택이 들어선 서울의 부유층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인지하는 더듬이가 다르다. 한국에서 빈곤 노동은 '투명 노동'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투명한 인간이다. 우리는 가난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난이 없다 치고' 사는 일에 길들여진 것이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다.

고시원ㆍ반지하방ㆍ옥탑방은 달동네와 다르다.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유대감이 없다. 얇은 벽을 두고 같은 고시원에 살아도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 빈곤 청년은 더 이상 군집을 이루지 않는다. 원자화된 빈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동서고금의 혁명 대부분이 슬럼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한국은 확실히 빈곤층에 의한 혁명 가능성을 거세했다.

한국 사회가 달동네만 밀어낸 것은 아니다. 공단이란 이름으로 수도권 궁벽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변두리 공단에서 시급 4300원을 감내하는 이유. 돈 쓸 일은 없고 오직 일만 하게 하는 분위기 때문. 스스로 고립돼 지낸다. 그리하여 가난한 노동의 공간조차 우리는 보지 않고 산다. 공단은 중산층의 생활 반경에서 이격됐다.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년들 역시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다. 편의점ㆍ대형마트ㆍ커피전문점ㆍ백화점 등에서 일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의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난은 일상에 융해돼버렸다. 그것은 좀체 추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가난이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익숙해져 버렸다. 간혹 가난을 마주쳐도 시선을 돌린다. 가난한 사람을 보지 않고, 그저 통계로 가난을 추상한다. 빈곤 청년은 통계만으로 입증되지 않고, 더구나 체감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다.

빈곤 청년의 생애사를 추적하면 반드시 그들 부모의 빈곤이 있다. 그들의 아버지 가운데 일부는 박정희ㆍ전두환 때문에 가난해졌고, 또 다른 일부는 김대중ㆍ노무현 때문에 가난해졌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청년의 일자리는 대기업 공장에서 비롯한다. 재벌이 운영하는 각종 제조업 공장들이다. 그런데 이들 공장에선 90년대 후반 이후, 사실상 정규직을 추가로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사내하청 방식의 용역을 통해 비정규직만 채용했다. 지역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자동차ㆍ조선소ㆍ제철소에 가보면, 정규직은 40대 이상이고, 30대 이하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고, 더 나은 집에서 살려면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 중대한 사태가 진행 중이다. 이들이 속속 결혼하고 있다. 가난하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면 자존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없으면 사태를 강압ㆍ폭력으로 해결하려 들고, 그런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배신감ㆍ고립감을 느낀다.

서로 고립되어 있음에도 이들이 공유하는 관념 또는 정서가 있다. 이들에겐 공통된 꿈이 있다. 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임금생활자가 되는 길을 가능성에서 제외한다. 대신 소규모 자영업자가 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각종 자영업의 기반은 서비스업의 대형화와 함께 붕괴했다. 그들이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려면, 대형마트ㆍ백화점이 망해야 한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망하면 그들은 당장 오늘을 먹고살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종종 끈기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그들은 정시에 출근하지 않거나, 너무 쉽게 일을 그만둔다.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반쪽짜리다. 그들은 성실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투표일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공단내 소공장,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투표일에 쉬지 않는다. 투표일에 이들 업체가 모두 쉰다 해도 그들은 부족한 잠을 자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건 그들은 일체의 정치ㆍ사회적 의사표현에 무관심했다.

대신 이들은 힘 있는 사람을 믿는다. 세상을 향해 제 의지를 관철하는 다른 인물을 일찍이 접한 적이 없으므로, 이들이 믿고 따르는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일하는 업체의 사장이다. "우리 사장님은 그래도 착한 분"이라는 말. 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조선일보 탓이 아니다. 손님이 많아지는 것은 경기가 좋을 때라는 말을 사장으로부터 매일 듣는다.

만약 그들에게 정치의식이 있다면, 보수 정당에게 몰표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보수 정당은 경제를 살리겠다고 공약한다. 선거운동원들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진보 정당은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한다. 선거 운동원들은 공평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을 번역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지와 공평에 대해선 아는 바도 겪은 바도 없다. 경기가 좋아지는 게 무엇인지만 안다.

사회보장 또는 복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국민연금ㆍ기초생활보장ㆍ국민의료보험ㆍ노령연금보험ㆍ보육비보조 등 거의 대부분의 복지 제도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시기에 도입됐거나 완성됐다. 그러나 빈곤 청년의 절대 다수는 이들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거의 없다.

일자리가 없어진 것은 민주정부 시절의 일이다. 이들에겐 복지가 늘어난 기억은 없고 일자리가 줄어든 기억만 남아 있다.

터무니없는 제안이겠지만, 무조건 월 200만원은 지원해야 '구휼'의 효과가 생기고, 복지의 '수혜자' 집단이 형성되며, 그들이 복지정치의 '적극 지지자'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초중등 교육과정, 취업과정, 실직위기 등의 국면마다 누군가 등장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복지 상담을 해줘야 그들이 복지정치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경기부양의 신화가 인격을 통해 전파된다면, 사회보장의 신화 또한 인격을 통해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수준이 된다면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복지제도가 후퇴했을 때, 가난한 자들이 강력한 저항을 시작할 것이다. 복지정치를 하겠다면, '엄청나게 더 많은 복지'를 '개별적이고 인격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방식의 딜레마가 있다. 복지에 대한 기억의 역사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가난한 청년이 복지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지지가 있어야 복지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뾰족한 해법이 없으니 딜레마다. 빈곤 청년들은 탓을 하지 않는다. 정부ㆍ정당ㆍ노조ㆍ언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동시에 그들에게 제 인생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다. 부모사업이 망해버렸으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한다. 자신의 가난에 대해 정치인의 잘못을 묻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부모 세대, 즉 50대 이상이었다.

빈곤 청년들은 '경쟁'을 내면화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열성은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을 자연스레 수용한다. 한국 공교육의 큰 틀이 바뀐 것은 김영삼 정부 때다. 그 전까지 아이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인생의 목표가 나라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데 있다고 배웠다. 비록 열악한 노동현장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군사정권은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 불렀다. 김영삼 이후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완성된 현재의 교육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의 목표는 세계화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의 경쟁력을 기르는 데 있다고 가르친다. 이제 어느 정권도 각별한 의미를 담아 가난한 노동자를 호명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주식ㆍ금융은 도박이다. 큰 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 현재의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교육과정에서부터 거세한다. 복지는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복지를 기대하거나 따져 물을 논리적ㆍ정서적 근거를 빈곤청년들은 갖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약속할 수 없다면, 이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호명이라도 필요하다. 사회적 호명은 공동체의 복원에서 시작한다. 공동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 도닥여줘야 한다.

일련의 사태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이 소수라고 치부하면 된다. 현실이야 어떻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다수라고 치부하고 그들에 주목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설명한 빈곤 청년이 다시 등장한다. 현재 모든 4년제 대학생이 품는 최고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7ㆍ9급 공무원 시험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고시촌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달에 80만원이 든다. 이런 후원이 가능한 것은 오직 중산층이다. 중산층 자녀가 아니라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수 없다. 중산층 이상 부유층이라면 3~5년 걸리는 사법ㆍ행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다. 중산층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조차 안전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들이 공무원이 되려는 것은 공공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공포다. 한국 중산층 청년의 미래를 보려면, 노량진에 가면 된다. 절대 다수가 비정규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벼랑을 볼 수 있다. 현재인 동시에 미래의 문제로서 빈곤은 소수가 아닌 다수 청년의 문제다.

정치는 소통이다. 무릇 정당이라면 이들 청년세대와 교감하고 싶을 것이다. 기자인 나는 그런 방법까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취재할 때, 질문부터 하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밥 먹고 일하고 어울렸다. 세상이 남긴 상처 때문에 그들에겐 수많은 가시와 방패가 있는데, 그걸 스스로 거둬들일 때까지 섞이고 스며들려 애썼다. 대화는 그 다음에야 가능했다. 놀랍게도 귿르은 대화 자체만으로 즐거워했다. 비록 나의 기사는 그들의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함께 일하며 밥 먹는 기자를 좋아해줬다.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통계로 분석하고 문자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두려워하는 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주민센터 직원이고, 도움을 청하는 곳은 정당이 아니라 복지관이며, 진심으로 신뢰하는 이념은 언론이 아니라 사장에게서 비롯한다. 주민센터 직원, 복지사, 사장의 자리에 정치인이 가면 된다. 복지정치의 스타트 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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