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요일

0415 스크랩

성완종 측 "차에서 비타500 박스 꺼내 전달"



세월호 참사는 정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 어떤 사건이 돌출되면 그 성격을 정의하고 대안을 찾고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게 정치. 세월호 참사는 규정부터 합의를 못 만들어냈고 정략적 게임에 포획되면서 해법을 찾는 과정도 실종됐다. 

갈등 조정ㆍ해법 제시에 실패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참사 가족을 무대에 서게 만들었다. 가족이 이념전쟁 구도에 휘말리며 고립되고, 대의정치를 통하지 못한 채 정부를 향해 직접 나서게 된 배경엔 정치권 무능이 자리한다.


박 대통령 발언
"저는 이번 희생이 허소디지 않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 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세월호 이전 대한민국과 이후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관유착으로 또다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의 부패를 척결해 나갈 것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수리기사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대전질판위는 이에 대해 "발병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보호구 없이 유해인자에 20년 가까이 노출되었고 작업현장이 과거에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베이비부머, 에코부머
에코부머 취업난, 신용난, 주거난
에코부머는 베이비부머의 자녀세대로서 2010년 현재 약 510만 명의 거대 인구집단이다. 이들은 2012년 현재 만 27~33세로서 본격 사회진입을 앞두고 있으며, 인구통계 측면에서 향후 한국 사회와 경제를 이끌어 갈 주력 세대다. 에코부머는 부모 세대의 소득 증가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감성, 문화, 유행 등에 민감하며, 동시에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기존의 사회 질서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에코부머는 부모세대의 기대에 부응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에코부머는 현재 경제난 속에서 고통스런 사회진입기를 맞이하고 있다. 첫째, 높은 수준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취업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학력 미스매치 현상으로 니트족*(NEET)이 급증하는 등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니트의 원인도 최근 단순히 쉼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그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최근 대학이상 졸업자의 취업률이 크게 악화되자 그동안 빠르게 늘어난 학자금 대출상환이 어려워지고 있다. 학자금 대출 연체자가 늘고 이에 따른 신용유의자가 급증하는 등 에코부머의 신용 건전성이 문제다. 셋째, 베이비부머 사회진입 당시에 비해 크게 높아진 주거비용 등으로 인해 독자적인 주거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에코부머의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높아진 주거비 부담은 결혼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코부머의 사회진입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경제사회적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먼저 20대 후반의 미혼 비율 급증으로 에코부머의 결혼이 지연되고 쉽게 가정을 이루기 어렵게 될 경우 인구감소 추세를 가속시킬 수 있다. 가장 활발한 소비단계에서 소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내수침체가 장기화되고, 사회경험 부족 등으로 향후 주력세대의 경쟁력 약화가 예상된다. 그리고 세대간 일자리 갈등 문제가 심화되는 한편 부모세대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세대마저 궁핍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에코부머의 안정적 사회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첫 단추가 그들의 일자리 마련이다. 부모 세대와 다른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성장한 에코부머이기에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 사회에 자리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의 경제여건과 이들의 강점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 기술, 문화 등 창조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NEET족: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도 직업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박정희시대 기적은 없었다.


박정희의 기적은 없다. "역사란 과거로 투영된 현재의 정치다."

  현실 속의 불황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찬란한 산업화 시대'에 대한 복고주의적 열기가 뜨거워진다. 지금 집권 세력인 강경우파들부터 박정희 신드롬을 대통령 만들기에 활용했다. 국정 겸험도 업저곧 거의 없는 사람이 박정희 딸이란 이유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였으니 이 신드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지속적 불안과 새로운 가난의 시대에 이제는 강경우파 이외의 정치세력마저도 박정희 신드롬 활용에 가세한다.
  역사가 정치적 명분의 모색을 넘어 과학이 되자면 일단 공과 과를 기계적으로 계산하는 따위의 방법을 뛰어넘어야 한다. 독재는 잘못이지만 경제발전만큼은 잘했다는 식의 평가는 과학적 방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인물의 공과 평가는 한 시대의 근본적 성격에 대한 이해를 따를 뿐이다.
  박정희 시대의 근본적 성격이란, 병영국가와 자본의 본격적 성장기였다. 이런 성장을 박정희의 공로로 돌리면 안 된다. 세계 자본주의 황금기인 박정희 시절에는 동아시아 전체가 세계 시장과 연동돼 미증유의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속성장은 당시 자본주의적 동아시아 국가로서 전형적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세계 자본주의 황금기에 동아시아만 성장했는가? 그렇지 않다.
  진보의 일각에서 박정희 시대의 국가자본주의적 요소(경제계획, 국가주도 금융, 사실상의 보호무역 등)을 칭찬한다. 그런 요소가 없었다면 개발이 불가능했으리라는 가정까지는 맞다. 그런데 과연 같은 시대의 다른 동아시아ㆍ남아시아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개발 전략을 쓰지 않았던가? 국제자본의 흐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싱가포르도 지금까지 인구의 85%가 국유지에 국가가 지은 저가 주택에서 살고 있다. 국가의 경제개입이 상당히 광범위했던 것이다. 과연 아시아만 그랬는가? 신자유주의 시대 도래 이전에는 유럽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계 곳곳에서 국가의 보호관세 활용이나 관제금융, 국가의 대기업 소유 등은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노르웨이도 그랬다. 박정희의 국가 주도 개발은 예외라기보다는 자본주의 황금기의 보편에 가가웠다.
  박정희가 기적을 일으켰다기보다는 냉전기에 미국이 주는 각종 특혜(차관과 보호무역에 대한 미국의 묵인)을 이용해가면서, 그 당시로서 정상적이었던 방식(국가 개입)으로 그 당시로서 예사로웠던 경제성장의 효과를 봤다. 수출 주도의 성장은 비록 빠르긴 하지만 그런 모델이 경제구조에서 일으키는 심각한 불균형(수출 대기업과 그 하도급 기업으로 이뤄진 이중 경제구도, 구조적인 저임금 강요 등)은 나중에 거의 치유되지 않는 만큼 차후적으로 지급하는 대가가 크다. 한국은 지금도 이 대가를 꾸준히 지급하고 있는 중이다.
  극심한 저임금 노동의 착취로 기적의 성장률이 달성됐지만, 경제가 커가는 동안 병영국가의 폭압 아래 놓인 사회는 진화되지 못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의 시계추는 거꾸로 갔다. 커져가는 경제는, 일제 말기 이상으로 치밀하고 철저한 전체주의 국가를 뒷받침했다. 박정희의 '케인스주의'를 찬양하는 자칭 진보 인사들은 이 부분까지 과연 고려에 넣는가?
  과학으로서의 역사의 중요한 방법론은 비교론이다. 자본주의 황금기의 국가 주도 성장의 보편적 특징은 복지제도의 정비였다. 경제를 주도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국가가 성장으로 생기는 잉여를 활용해 복지라는 재분배 메커니즘을 통해 다수의 피지배 인구를 경제적으로 포섭하는 셈이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농업경제에서 공업경제로 이동하고 있었던 핀란드야 이미 1950년대 후반에 보편적 국민연금을 창설하고 1970년에 무상의료를 도입했지만, 굳이 북유럽이 아니더라도 1960~70년대는 복지주의의 중요한 도약기였다. 한국과 여러보로 비교 가능한 대만에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험의 도입은 이미 1958년 이뤄졌다.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로 갔던 북한에서는 이미 1960년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도입됐다. 한데 박정희의 한국은, 이미 이승만 시절 막바지에 도입된 공무원연금 이외에는 거의 복지의 황무지였다. 박정희는 복지를 통한 포섭이 아니라 일제 말기나 만주국과 같은 방식의 무력동원과 폭압, 그리고 국가주의적 규율화를 선호했다. 한국 정도의 병영화를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 과연 볼 수 있었는가?
  한강 기적은 없었다. 박정희라는 희대의 기회주의자가 당대의 세계적 경제흐름을 잘 타서 태평양전쟁 총동원기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종신집권을 꾀했다가 실패했을 뿐이다. 수출 의존과 군사주의적 국가, 재분배의 부족과 같은 박정희의 유산들은 우리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 것이다. 박정희의 영웅화보다는, 광기가 난무했던 국가폭력 시대의 국내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배려가 시급하지 않을까 싶다.


홍가혜 새정치 토론회 참석 못한 이유는

조선일보 <가짜 잠수부 홍가혜 불러 토론회 여는 야당>
마녀사냥은 사회 도처에 퍼져있는 스트레스와 아노미를 희생양에게 집중시키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만족감을 줘 분노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데 활용된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이 있는 국가는 한국 뿐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억울하게 명예 훼손당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순기능 보다는 검찰이 칼자루를 쥐기 때문에 권력자를 비판하는 세력을 탄압하는데 활용되는 역기능이 더 큰데 홍씨의 사례가 전형적인 이런 경우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