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를 지향하더라도 민주주의 질서를 위배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게 없다. 비록 틀린 꿈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남에게 꿈을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에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 있다. 더구나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다만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작동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를 심화시켜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활발한 토론을 위해선 국가보안법이 개정되거나 철폐되어야 한다.
<NL과 PD의 거듭나기>
NL과 PD는 이제 변화된 현실에 걸맞게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재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NL과 PD의 비합리적 부분은 과감히 버리되 합리적 핵심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NL 특히 주사파 NL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북의 항일 무장투쟁 역사에 너무나 감동해서 분별력을 잃고 오늘날 북한체제의 시대착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PD의 비합리적 부분이란 오늘날 사회주의 혁병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NL의 합리성이란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한민족과 미국의 관계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성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PD의 합리적 핵심은 계급과 계층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이상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대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PD적 문제의식의 표출이다. 또 일터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길러지는 양육 및 교육 과정 속의 인력, 일터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실직자,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인력에 대해서까지 제대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복지의 확대·강화다.
한국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이라는 원론적 접근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중층적인 모순구조로 신음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으로 자본 사이 즉 재벌과 중소·중견기업 사이,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사이 즉 거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아에도 심각한 모순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성격을 겸비한 수많은 영세자영업자가 과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경우 고용안정성이 높으면서도 그런 점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높은 임금수준이 유지되는 현실이 사회적 위화감을 증대시킨다. PD적 문제의식의 발전이란 이런 뒤엉킨 모순에 대한 해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급진적 사상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일제지배나 독재체제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과거의 사상들을 그대로 이어갔다는 점이다.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준 뗏목이 고맙다고, 강을 건너고 나서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짐에서 해방돼야 한다.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NL과 PD의 진보적 사상에는 계승할 부분도 있다. 민족문제와 계급·계층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현실에 맞게 응용하되 낡은 사고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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