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1일 화요일

중앙 [사설] 일본 외무차관 방한 메시지를 주목한다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오늘 방한해 한·일 차관회의를 한다. 의제는 한·일 관계와 한반도 정세 등이라고 외교부는 밝혔다. 한·일 외교 고위급 회동은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처음이다. 사이키 차관의 방한은 외교부의 평가절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큰 관심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달 24~25일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다음 달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일 양국을 들를 예정이다. 미국은 양국에 관계개선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사이키 차관은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와 한·일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교섭해온 인사이기도 하다.

 그의 방한 메시지는 올 한 해 한·일 관계를 가늠할 풍향계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입장은 주목된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5명이고 평균 나이는 88세다.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존엄을 회복시켜 주는 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도적 과제이자 새 한·일 관계의 관문이다. 양국은 이미 이명박-노다 요시히코 정부, 박근혜-아베 정부 간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일본 총리의 사죄와 일본 정부의 피해자 지원 등을 축으로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 문제 해결의 전제는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사죄한 고노 담화를 아베 내각이 계승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 위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배상 책임이 끝났다는 원칙만 고수할 게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대국적 견지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게 대국다운 태도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시간은 결코 일본 편이 아니다.

한국도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 창설’ 등 그동안의 노력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피해자들을 두 번 역사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 관계다. 양쪽 모두를 100% 만족시키는 교섭은 외교 사전에 없지 않은가. 사이키 차관의 방한이 새 한·일 관계로 가는 긴 여정의 첫발이기를 기대한다. 

중앙 [사설] '금피아'의 무더기 귀환, 해도해도 너무한다

금융감독원의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금감원 전·현직 고위직이 줄줄이 민간 금융회사나 금융 관련 협회 감사로 내정되면서 ‘금피아(금감원+마피아)’의 낙하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이렇게 내정된 금감원 낙하산이 올 들어 이달 말까지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현역 금감원 감사실 국장도 포함돼 있다. 금감원 현역 간부가 금융사 감사로 내려가는 것은 3년 만이다. 3년 전 저축은행 사태 때 낙하산 감사가 문제되자 금감원은 “낙하산 인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감사 추천제도 폐지하고 업무 유관자는 2년간 금융회사 취업을 금지했다. 하지만 3년 만에 그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셈이다.

 금감원은 “해당 금융회사에서 강하게 요청했다”며 “업무 관련성도 없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굳이 금감원 현역 국장 영입을 요청한 이면에는 후진적인 금융 감독 관행이 깔려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차피 낙하산으로 채워질 감사 자리라면 규제·감독 당국인 금감원 출신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낙하산은 금융회사와 금감원 고위직의 이해 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다. 금융회사들은 금감원 출신을 영입해 로비 창구나 방패막이로 활용했고 금감원 출신들은 감독 대상인 금융회사에 재취업해 수억원의 연봉과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았다. 그러니 방만 경영 감시 같은 감사 본연의 역할은 애초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등 각종 금융권 비리에 직접 손을 담근 이들도 수두룩했다. 최근 고객 정보 유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감사도 모두 금감원 출신이다.

 금감원 낙하산은 대형 사고·비리가 터질 때면 어김없이 논란이 되고 각종 근절책도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뿐이다. 금감원의 규제 권력이 워낙 막강한 데다 법과 제도 대신 ‘인치(人治)’가 여전히 횡행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출신의 안면을 봐주는 식의 금융 감독이 계속되는 한 금피아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덩달아 한국 금융의 경쟁력과 선진화도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조선 [사설] '세계 1위' 할 게 없어 '자살률 1위' 9년째 하나

서울 성북구 자살률이 2010년 인구 10만명당 30.1명이던 것이 2012년 22.1명으로 떨어졌다. 성북구는 2010년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노인자살예방센터를 설치했다. 홀몸 노인 등 자살 고(高)위험군 400명을 찾아내 심리 상담 자원봉사자 '마음돌보미' 300명과 결연 관계를 맺게 했다. 마음돌보미들은 한 달에 두어 번 노인들과 만나고 수시로 '필요한 것 없느냐'는 안부 전화를 걸면서 정신적 위안이 돼줬다.

전북 진안군은 2011년 10만명당 자살자가 75.5명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충격을 받은 전북도가 전수(全數) 조사를 통해 자살 위험이 높은 노인 63명을 파악한 후 전문가들이 매달 한 번씩 노인들을 찾아가 상담했다. 2012년 사망률은 21.8명으로 뚝 떨어졌다. 누군가가 자기들을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극단 선택을 하는 노인들이 크게 줄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자살을 본인 선택으로 치부하고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방치해왔다. 그 결과 2012년 한 해 자살자가 1만4160명(10만명당 29.1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거의 세 배나 되면서 OECD에서 9년 연속 '자살률 1위국'에 올랐다. 2위 일본(20.9명)을 멀리 제쳐놓은 압도적 1위다. 자살 증가율도 너무 가파르다. 1992년 10만명당 8.3명이었던 것이 20년 사이 세 배 이상 늘었다.

자살이 급증(急增)할 이유는 많다. 불평등 격차는 벌어졌고 가족·이웃 등 사회 관계망은 망가지고 있다. 고령화로 건강을 잃은 채 말년을 보내는 노인도 많아졌다. 이런 구조적 요인들은 복지(福祉)를 강화하며 장기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당장 다급한 것은 응급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긴급 구조망(救助網)을 연결해주는 일이다. 성북구·진안군처럼 지자체들이 자살 위험이 있는 취약층을 찾아내 전문 상담 인력을 붙여줘야 한다. 미국에선 자살 징후를 보인 사람들은 전문의와 사회복지사들이 배치된 '72시간 응급 상담 병동'에 보내 치유 과정을 거치게 한다.

핀란드는 1986년 자살자가 10만명당 30.3명으로 유럽 최고를 기록한 후 누구나 병원에서 자살 충동 여부를 체크받을 수 있게 하는 등 국가적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펼쳤다. 그 결과 2012년 자살률은 17.3명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도 자살 예방을 위해 심리 치료는 물론 고농축 농약 판매 규제, 인터넷 자살 사이트 폐쇄, 고층 아파트·건물 옥상 출입 통제, 교량 안전망 설치 같은 다면적(多面的)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그러자면 국무총리실에 자살 예방 특별 기구를 두고 부처를 통괄하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살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되지만 국가의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구원해줄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책임을 포기하고 있었던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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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금감원, 금융회사 '감사 자리 싹쓸이病' 다시 도졌나

대구은행은 오는 21일 주총에서 신임 감사에 이석우 금융감독원 감사실 국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3년여 만에 처음으로 현직 금감원 국장이 금융회사 감사로 내려가는 것이다. 금감원 전직(前職) 간부 5~6명도 다른 금융회사 감사나 사외이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현직 국장은 오랜 기간 은행 업무를 맡지 않았고, 전직 간부들도 퇴직한 지 2년이 넘어 문제없다고 밝혔다. 금융회사에 감사를 보내지 않겠다던 3년 전의 자정(自淨) 선언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저축은행 사태 이전엔 금감원 출신이 은행, 카드, 저축은행 등 금융권 감사 자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은행 감사 자리는 연봉이 많으면 4억~5억원이어서 금감원 간부들의 노후(老後) 대비용으로 최고 인기였다. 금감원 출신들은 피감(被監) 기관에서 감사의 일을 팽개치고 그 회사에 대한 조사를 막는 바람막이나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 저축은행 감사로 갔던 금감원 출신들은 불법 대출에 눈감은 것은 물론 임원회의에서 부실을 숨기는 분식회계 방법을 알려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현직(現職)들까지 오염시켰다. 금감원 어느 간부는 저축은행 검사 때 감사에 대비하라며 기밀문서를 넘겨주었다. 다른 간부는 "강남으로 이사해야 한다"며 현찰 2억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저축은행 사태 후 금감원은 부패(腐敗)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던 금융회사 감사추천제도를 폐지했다. 그러자 이번엔 감사원이 금융회사 감독·검사권을 무기로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섰다.

감사는 경영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회계엔 문제가 없는지를 감시하며 위기 징조를 찾아내 조기 경보(警報)를 해야 하는 자리다. 금감원·감사원 출신들이 가서 로비스트 역할이나 한다면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해 다시 수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감독 기관들은 금융회사 감사 자리를 퇴직자의 은퇴 후 지정석(指定席)쯤으로 여기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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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韓·日 대화하려면 '고노담화 말장난'부터 중단해야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양국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오늘 방한한다. 이번 차관급 협의는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처음 이뤄지는 한·일 고위급 대화이다. 지난달 일본 정부가 아베의 외교·안보 책사로 알려진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NSC) 국장의 방한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고위급 대화는 시기적으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4월 한·일 순방을 한 달여 앞두고 열린다. 미국은 오바마 순방 전에 한·일 관계가 정상화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사이키 차관이 이번에 '고노담화 자체를 번복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993년 8월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위안소 설치 및 관리 등에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간여했다. 종군 위안부로 고통을 겪은 모든 분에게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 후 한·일 관계는 이 고노담화와 일제의 식민 지배 전반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전 총리의 1995년 담화를 축으로 삼아 이뤄졌다. 역대 일본 정권들은 이 두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데서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풀어갔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똑 부러지게 무라야마담화나 고노담화 계승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일본 의회에서 질의·응답 형식을 빌려 '고노담화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일본 극렬 인사들은 "위안부 문제는 날조된 사실(史實)"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랬던 일본이 혹시라도 '고노담화를 번복 않겠다'는 입장을 한국에 내밀 '선물' 내지는 협상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놓고도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국가 행사로 치르지 않고,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이 행사에 참석하는 건 한국을 배려했기 때문"이라는 궤변을 내놓고 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한·일 관계는 1년 넘게 단교(斷交)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미·일 3각 동맹과 북핵 공조 등을 감안하면 한·일 관계를 지금처럼 계속 끌고 갈 수는 없다. 아베 내각이 정말 한·일 관계 복원을 원한다면 고노담화를 둘러싼 말장난을 비롯한 일체의 도발적 언동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어렵게 시작된 한·일 고위급 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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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민간기업 KT까지 ‘청와대 보은인사’인가

위성방송 사업자인 KT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내정됐다고 한다. 스카이라이프는 KT 자회사다. 민간기업 KT와 전직 청와대 관계자의 조합은 왠지 어색하면서도 낯설지 않다. 회사 측은 “적법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청와대 보은 인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석채 전 회장 시절 그렇게 낙하산으로 골병이 들고도 아직도 이 모양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매번 이런 식으로 KT를 흔든다면 회사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전 수석의 사장 선임은 28일 주주총회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다. 회사는 “헤드헌팅 업체 추천을 받은 뒤 5명 심사위원 면접을 거쳐 후보자를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양방송 PD로 방송 생활을 시작한 그는 SBSi 대표와 SBS 이사회 의장을 지낸 뒤 새 정부 첫 홍보수석에 발탁됐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근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송분야 전문가이기 때문에 낙하산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대통령 참모였던 그로선 군색한 변명이다.

이 내정자의 사장 자격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전력 문제는 짚고 가야겠다. 그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홍보수석에서 물러난 당사자다. 더구나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말해 전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의 고교 선배라는 특수관계도 있다. 공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지 1년도 안돼 공기업도 아닌 민간회사 사장이라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고도 이 내정자가 마냥 떳떳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의 코드 인사·낙하산 인사는 신물이 날 정도다. 공기업이야 정치철학 공유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KT는 민영화된 지 10년이 지난 민간회사다. 정부 지분이 한푼도 없어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도 없다. 지난 정부 때도 낙하산 인사에 이골이 난 KT 아닌가. 정권이 바뀌고 새 회장이 취임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KT는 요즘 대규모 기업대출 사기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져 최악의 위기다. 불난 집에 부채질도 유분수지 이런 상황에 낙하산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최소한의 상도의를 감안해도 이 내정자 스스로 결단하는 게 순리다. 황창규 회장도 좋은 게 좋다는 식은 곤란하다. 이번 인사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황 회장이 버티지 못하면 KT의 변화는 요원한 얘기다.

경향 [사설]후쿠시마 3년, 대재앙의 교훈 벌써 잊었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어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고 매일 300~400t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사고 원전 부근은 물론 주변 지역의 제염도 지지부진하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주민이 약 2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후쿠시마 지역 어린이 갑상샘암 환자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라든가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18세 소녀의 편지 등에서 보듯이 방사능 공포 또한 여전하다. 사고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나도록 사고 수습은 고사하고 사고 원전에 대한 통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참으로 가공스럽고 답답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랍고 실망스러운 것은 일본 정부의 태도다. 후쿠시마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원전 재가동 및 수출 정책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제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3주기 기자회견에서도 원전 재가동 입장을 거듭 밝혔다. 원전 공백을 석유·가스 발전으로 메우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초래되는 등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보기 때문인 모양이다. 경제지상주의에 매몰돼 아직도 진행 중인 대재앙의 현실과 교훈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 대재앙의 교훈을 아예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진흥 및 수출 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답습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14일 확정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2035년까지 원전을 최소한 39기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이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3기와 건설 중인 5기 외에 11기를 더 짓겠다는 의도다. 지난 1월29일 설 연휴 직전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승인을 기습 발표해 논란을 빚었다. 어제 탈핵단체가 승인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서기까지 했다.

후쿠시마 사태를 교훈 삼아 탈원전의 길로 돌아선 유럽과 달리 사고 지역인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오히려 역주행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한국은 자체 원전뿐 아니라 중·일 양국의 원전에 포위돼 있다.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황사·미세먼지보다 훨씬 빨리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원전 안전과 탈원전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근본적인 질문과 깊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향 [사설]‘김진태 검찰’의 증거조작 수사, 신뢰 안 간다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휴일 한밤중에 국가정보원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고, 월요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오후에는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둘러싸고 국정원과 청와대, 검찰의 대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떠한 성역도 두지 않고, 가이드라인도 배제한 채 이뤄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달 14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후 검찰의 태도는 줄곧 소극적이었다. 공소유지 주체로서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음에도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여론에 밀려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지만 본격 수사와는 거리를 뒀다.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자살 시도로 파문이 확산된 뒤에야 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고도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7시간 만에 압수수색에 돌입한 걸 보면 청와대와 국정원 눈치를 보며 ‘최종 재가’를 기다린 인상이 짙다. 검찰은 결국 실기(失期)했다.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는데 국정원이 두 손 놓고 있었겠는가. 검찰은 국정원에 증거를 인멸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검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검찰을 믿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무능함과 뻔뻔함이다. 검찰은 국정원 문서의 신빙성을 의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정밀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법원에 제출했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에는 절차적 문제일 뿐이라며 국정원을 편들었다. 위조가 사실로 드러난 뒤에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지기는커녕 오불관언이다. 공소유지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자술서가 위조됐다고 밝힌 중국동포 임모씨에 대한 증인신청조차 철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검찰이 내놓는 수사 결과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9일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책임을 국정원에 떠넘기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을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지금 국정원과 검찰이 ‘공범 관계’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도 이번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수뇌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검찰이 제 식구를 계속 감싸려든다면 사건을 특검으로 넘기는 길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국정원 철저 수사만이 검찰이 살 길이다

검찰이 10일 국가정보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가정보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따져 50년 역사에서 세 번째 압수수색이라고 한다. 겉으로만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를 평가해줘야 할 상황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지난달 14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사건의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위조일 리 없다”며 국정원을 감싸고돌았다. 이틀 뒤엔 기자회견까지 열어 위조 의혹이 불거진 문서 3건은 모두 중국 정부기관이 발급한 것이라고 했다. 수사 초기 결정적인 한 달을 흘려보낸 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철저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의 협조”를 지시하자 그제야 압수수색에 착수한 것이다. 한 달이나 시간을 벌었는데 증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범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뒷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정원이 갖다준 문서가 위조됐는지 의심할 만한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검찰은 그저 법원에 전달하는 배달부 노릇만 했다. 검찰은 지난해 국정원이 문서를 전달하기 전 외교경로를 통해 문서를 요청했다가 중국 쪽으로부터 “발급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두 달 뒤 국정원이 바로 그 문서를 검찰에 냈다. 검찰은 자기들이 정식 외교경로를 통해 얻지 못했던 중국 공문서를 국정원이 어떻게 입수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위조된 것임을 알면서도 검찰이 수사를 진행했다면 국정원과 함께 증거조작의 공동정범이 되거나 최소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위조된 걸 몰랐다면 검찰은 대공사건에서 국정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받아쓰기 수사’만 해온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검찰은 이미 국정원이 벌인 일을 뒤처리하다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쫓겨나고 수사팀이 징계를 받았다. 검찰은 국정원의 하인이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더 이상 국정원에 끌려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을 계속 비호하다가는 검찰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결국 검찰이 살 길은 철저한 수사와 진실규명뿐이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씨는 국정원이 고정적으로 관리한 비중 있는 인물이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자금이 지원됐음을 알 수 있다. ‘윗선’이 알았을 개연성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 윗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증거조작에 연루된 대공수사팀은 물론 대공수사를 지휘하는 국정원 2차장과 남재준 원장이 문서 위조를 알았는지, 이후에 보고받지는 않았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한겨레 [사설] 졸속 타결된 한-캐나다 FTA, 철저히 검증해야

한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11일 두 나라 정상회담을 통해 타결됐다. 두 나라 협상 대표들끼리는 무려 9년 가까이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이 진행되었다는데 정작 중요한 국내 의견 수렴 절차는 거의 밟지 않았다. 경제적 영향 분석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앞뒤 순서가 뒤바뀐 졸속 타결이다.
한-캐나다 협정의 의의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두 나라 간 무역 및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가 누리집에 올린 설명 자료는 사뭇 다르다. 구체적인 근거와 추정모형까지 제시하며 경제적 기대효과를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정부는 2009년 4월 중단했던 캐나다와의 협상을 4년7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갑자기 재개했다. 이후 공식 실무협상은 단 한 차례 열고 협상을 타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청회 등 국민 의견 수렴 절차는 생략했다. 협상 진행 상황과 관련해 국회 보고도 없었다.
정부가 캐나다와 협상을 서두른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티피피 협상에 대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관심 표명’을 선언했으나 아직 협상 상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티피피 협상 당사국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맺어 지지세력을 넓히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해 12월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석 달여 만에 캐나다와 협상을 타결했으며 뉴질랜드와도 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티피피 협상은 우리 정부의 의지나 요구가 반영되기 어려운 단계까지 이미 진행됐다. 당사국들 간의 개별 협상은 거의 마무리됐으며, 협상 타결 여부는 사실상 이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에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티피피 참가를 추진하려면 국내 영향 분석이나 의견 수렴 절차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졸속 타결된 한-캐나다 협상이 바로 그 방증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두 나라 사이의 상품과 서비스 교역 장벽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의 법과 제도까지 통합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특히 우리나라는 헌법에 따라 협정을 특별법으로 인정하는 만큼 수십 가지 법령까지 자동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협정을 정부의 밀실 협상으로 마무리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비준 동의안이 넘어오기 전에라도 국회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재협상도 요구할 수 있어야 통상주권을 가진 나라의 국회 모습이다.

한겨레 [사설] 1년 동안 임명된 친박 낙하산이 114명이라니

공공기관 고위직에 임명된 친박 낙하산 인사 114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펴낸 ‘공공기관 친박 인명사전’ 소책자를 보면 87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이사 등으로 선임된 친박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87개 공공기관에 자리잡은 낙하산 인사들 중에는 새누리당 출신이 55명(48.2%)으로 가장 많았고, 대선캠프 출신 40명, 대선 지지활동 단체 출신이 32명(중복 포함) 순이었다.
명단에는 지난해 10월 화성갑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다 다른 자리를 약속받고 도중하차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선대위 유세본부장을 지낸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야권 인사들을 비방하는 트위터 글로 문제가 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 여당 지도부를 만나 자신의 과거 지역구 당협위원장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이 포함됐다.
최근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남기씨가 케이티(KT) 계열 위성방송 사업자인 케이티스카이라이프 사장에 내정된 것도 무리한 친박 낙하산 인사에 속한다. 이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발생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이 전 수석은 ‘대통령께 사과드린다’는 이른바 ‘셀프 사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전 수석은 박 대통령 측근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고교 선배라고 한다. 공직생활에 오점을 남긴 인사까지 친박이란 이유로 낙하산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민 의원이 공개한 명단엔 엄밀히 볼 때 친박 인사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들도 포함됐다는 게 새누리당 쪽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100명이 넘는 친여·친박 인사들이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고 한 말이 정말 무색해진 상황이다.
정권 출범 후 1년이 지나면서 불만을 무마하고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친박 인사들의 낙하산 인사가 최근 노골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무더기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공공기관 개혁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친박 인사들의 낙하산 투하가 계속되는 것이야말로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계속돼온 비정상적인 관행이다. 박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먼저 근절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아경 [사설]동북아 오일허브, 금융허브 반면교사로

정부가 오늘 '동북아 오일허브 추진대책'을 발표했다. 2008년 수립된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된 이래 장기 국책사업으로 진행돼 온 동북아 오일허브 프로젝트를 좀더 구체화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에도 이 사업과 관련해 몇 차례 이런저런 사업계획이나 정책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대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일허브 구축에 관한 종합적 '실행계획(액션플랜)'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목표는 장밋빛인 데 비해 세부 추진계획이 그것을 온전히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정도라고는 보기 어렵다.
 
궁극적인 목표는 울산과 여수에 저장시설 등 석유 물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금융 인프라를 깔아 우리나라를 미국 걸프만, 북유럽,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4대 오일허브의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에너지+금융 중심국가'로 발돋움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지난해 건설을 마치고 상업운전에 들어간 여수의 82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에 이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울산에 366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을 건설한다. 여기에 총 2조원의 민간자본을 끌어 들일 예정이다. 정부의 비축시설을 민간에 대여해 2000만배럴 규모 저장시설을 추가로 공급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런 저장시설의 경우는 국내외 정유회사들의 수요가 있어 민자유치와 공사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장시설과 함께 오일허브 실현의 양대 요건인 금융 인프라 쪽은 아직 묘연하다. 석유거래 및 관련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울산을 석유 직접ㆍ중계ㆍ파생거래의 메카로 만든다는 것인데, 모두 미래의 일이다. 울산에 석유 트레이더들을 유치하고 선박금융ㆍ석유담보대출 등 연관 금융산업도 육성한다지만 이 역시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울산에서 형성되는 석유가격이 동북아 석유시세의 기준이 되게 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신기루가 돼버린 과거 정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뜬구름 잡기 식이어선 곤란하다. 물류와 금융의 복합이라는 측면을 부풀려 '창조경제'의 상징적 사례로 포장하는 데 골몰해서는 안 된다. 정권을 넘어선 긴 안목으로 가능한 경제ㆍ산업적 효과부터 차근차근 구현해가는 실용적 태도가 바람직하다.

아경 [사설]여성, 비정규직, 월급 113만원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ㆍ저임금 등 고용 차별에 힘겨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여성 노동자의 57.5%(762만명 중 438만명)가 비정규직이다. 남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37.2%)보다 20.3%포인트 높다. 여성 비정규직은 월평균 113만원의 저임금을 받았다. 남성 정규직의 35.4%, 여성 정규직의 53.2%에 불과하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3.5명 중 1명(28.5%)은 최저임금(2013년 시급 4860원)조차 받지 못했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1.8%)이나 여성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7.4%)과 크게 차이난다. 성 차별과 고용 차별이 중첩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 자체가 낮은 데다 사업장에서의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 결과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여파로 우리나라 총인구는 2030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3년 뒤인 2017년부터 줄어들 판이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려면 여성 인력 활용이 필수적인데 고용 현실은 여성에게 지나치게 차별적이다.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등 여성 인력 고용 확대 정책을 펴지만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이거나 임시ㆍ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인권위원회가 오늘 주최한 여성 비정규직 실태 및 정책 대안 토론회는 해결 방안으로 법정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제안했다. 해마다 최저임금 산정을 놓고 벌어지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진국처럼 '중위임금 대비 얼마'로 정하자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상용직 중위임금의 2분의 1~3분의 2 범위에서, 미국ㆍ일본 등은 40~50%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여성 비정규직 대부분이 최저임금의 경계선에 있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곧 여성 노동자의 시급을 결정한다. 최저임금 제도에 대한 합리적 개선 없이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파업으로 대변되는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용직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 실정에선 최저임금을 일시에 현실화하기는 부담스럽다. 매년 인상률에 연연하기보다 3~5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2014년 3월 9일 일요일

중앙 [사설] 생명을 볼모 삼으면 국민 마음 못 얻는다

끝내 의사협회가 집단 휴진을 감행했다. 의협은 오늘 하루 동네의원의 문을 걸어 잠그고, 일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도 동참한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 번 양보해서 명분이 옳다고 해도 그 방법이 집단휴진일 수는 없다. 이번 휴진은 아무리 잘 포장해도 집단이기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

 의사들은 가운을 벗기 전에 환자단체연합회의 호소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단체는 7일 기자회견에서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정부를 상대로 해야지 왜 아무 잘못 없는 환자 생명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환자를 볼모로 삼아 정부를 협박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아무리 명분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은 집단휴진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발전협의회를 여섯 차례 열어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를 뒤집고 파업으로 돌아섰다. 정부와 협의에서 100%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왜냐면 정부는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만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양측이 추후 대화로 최대공약수를 키워나가기로 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의협이 내세우는 파업 이유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반대다. 두 제도가 의료영리화라고 몰아붙이는 의협도, 이를 시행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올 걸로 포장하는 정부도 문제가 있다. 원격진료는 도서·벽지 주민, 노인·장애인·만성질환자 등 병원을 찾기 힘든 환자의 편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도 비껴갈 수 없다. 다만 의사와 환자의 대면(對面) 진료를 전면 대체하는 원격진료는 신중해야 한다. 우선 만성질환자 모니터링과 상담부터 먼저 도입하고 차차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법인 자회사도 해외환자 유치나 해외 병원 진출과 같은 분야에 먼저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협은 진료수가가 원가의 3분의 2에 불과해 비정상적인 진료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보험 진료를 포함하면 원가보다 높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내용은 양측이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즉각 대화채널을 가동하되 필요하면 복지부에서 총리실 산하로 격상하는 것도 검토해 봄직하다.

 의사들이 오늘 문을 닫으려면 명심할 게 있다. 집단휴진은 스스로를 전문가단체에서 이익집단으로 격하시키는 자해행위라는 점이다. 집단휴진으로 얼마나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집단휴진에 따른 응분의 책임도 져야 한다. 정부는 진료명령·업무개시명령 위반사항은 반드시 가려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정도가 심하면 형사고발 해야 할 것이다. 

중앙 [사설] 한류의 지속 가능 전략을 고민할 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약칭 ‘별그대’)로 인기를 더한 배우 김수현이 지난 8일 300만 위안(5억2170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전세기 편으로 최고의 경호 속에 난징(南京)을 다녀왔다. 그는 현지 장쑤위성TV의 ‘최강대뇌(最强大腦)’에 출연했는데 방청석 입장권 1장이 인터넷에서 최고 3만 위안(약 52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중국에선 ‘별그대’에서 전지현이 착용했던 의상과 액세서리가 ‘완판’되고, 드라마에 등장한 ‘치맥’도 인기를 더한다는 소식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말춤에 이어 ‘별그대’가 한류 열풍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도 한류가 관심사로 등장했다. 왕치산(王岐山) 당 기율위 서기는 6·7일 양회에서 잇따라 “‘별그대’ 등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 핵심은 전통문화의 승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8일(현지시간) 이런 현상을 소개하고 전망까지 다룬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모범이 될까’ 제목의 현지발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미 한류는 일시적인 바람을 넘어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경계해야 할 대목도 있다. 일본을 휘젓던 한류가 한·일 외교갈등, 그리고 일본 우익이 부추기는 염한(厭韓) 정서로 인해 차갑게 식은 게 사실이다. 앞으로 국제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한류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전략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융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인종·국적·배경의 인재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꿈과 끼를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문화만큼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두드러진 분야는 없다. 네덜란드의 황금의 17세기, 그리고 현재의 미국이 대표적이다. 한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소중히 가꾸어야 할 소프트파워다. 더 이상 제조업 외줄 타기론 위험하다. 미국의 영화 ‘아바타’가 쏘나타 300만 대 수출에 버금가는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중앙 [사설] 국정원 해명 납득이 안 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어제 “증거를 조작하거나 조작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34)씨의 출입국기록 문건을 가져다준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의 자살 기도 유서에 대해서는 “유서에 적힌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싼허(三合)변방검사참이 발급한 유씨의 출입국기록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는 아니며, 김씨가 다른 문서에 대해 제작비를 요구한 것”이라 해명했다.

 오히려 이런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씨의 출입국기록,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국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답변서 등 3종의 문건은 모두 위조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김씨에 의해 조작된 또 다른 문건이 존재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이 정보를 사 모으는 방식이 이런 식이었다면 제4 또는 제5의 위조 서류가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법원에 제출된 3종의 위조서류는 유씨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걸 일관되게 증명하려 한 서류라는 점에서, 김씨가 국정원 측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 이런 서류를 알아서 구해왔다는 국정원의 설명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정보원이 거짓에 거짓을 보태는데도 국정원은 이를 그대로 믿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북한 관련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북한 정보수집망이 아무리 과거 정부 시절에 붕괴되었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이 이렇게 불안정해서야 국민이 안심하고 간첩 잡는 일을 국정원에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이번 사건의 본류는 유씨의 간첩행위 여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국정원의 어설픈 대공수사 관행 역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은 더 이상 해명에만 급급하지 말고, 또 다른 위조 서류가 국민의 인권을 구속하는 데 악용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검찰 역시 국정원이 조작 사실을 알고도 서류를 검찰에 제출했는지, 만일 이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검찰과 국정원이 함께 사는 길이다. 

조선 [사설] 잠자는 상관 못 깨워 5시간 늦어진 112 긴급출동

지난 1월 16일 오전 2시 20분쯤 서울 마포소방서 119 상황실에 응급 구조를 요청하는 한 여성의 휴대전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여성은 신음소리만 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전화는 소방서 직원이 주소를 확인하기도 전에 끊겼다. 소방서는 마포경찰서 112 상황실에 여성의 위치 확인을 급히 요청했다. 이런 요청이 오면 112 직원은 상황실장 결재를 받아 위치정보 확인요청서를 통신사에 보내야 한다.

상황실장 결재는 시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절차다. 그 시각 마포경찰서 112 상황실장은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은 실장을 깨우지 못했다. 경감 계급의 상관을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경찰은 당일 오전 6시쯤 상황실장이 일어난 뒤 결재를 받아 오전 7시 50분쯤에야 신고자 주소를 확인했다. 원룸에 혼자 사는 이 20대 여성은 뇌출혈로 이미 숨져 있었다. 경찰관에게 상관의 수면(睡眠)보다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만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생명이었다.

정부는 2012년 법을 고쳐 경찰에 112 신고자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은 지난 1월 신고자 휴대폰의 GPS가 꺼져 있어도 원격 제어로 강제로 켤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위치 추적이 쉬워졌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새 법을 만들고 신기술을 개발한들 부하 직원이 긴급 상황에서 잠자는 상관을 깨우지도 못하는 지금의 경찰 풍토 아래에선 모두가 헛일임이 이번에 드러났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 [사설]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 직원들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출국 금지를 당하고 검찰 조사도 받게 됐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가짜 증거로 사법부를 속이려 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정원이 협력자 김모씨가 증거 문건을 위조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았다면 위조 지시까지 했는지 여부다. 국정원은 시종일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도 위조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자살을 기도하면서 쓴 유서에 "지금의 국정원은 국조원"이라고 적기도 했다. '국조원'이란 '국가조작원'의 줄인 말로 보인다. 국정원이 증거 위조를 지시했다면 30~40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일로 조직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받을 사건이다.

아직은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씨가 가져온 다른 문건 중에 가짜로 드러난 것에 대해선 국정원이 대가 지불을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재판에서 모두 공개되고 상대방에 의해 검증될 수밖에 없는 문서를 위조하라고 지시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기도 하다. 국정원이 실제 위조를 지시했다면 김씨를 검찰에 출두시키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가려야 한다.

그러나 설사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달 14일 중국 정부가 "(국정원 제출) 문건은 위조"라고 발표했는데도 자체 확인 없이 위조 문건을 가져온 김씨에게 위조 여부를 물었다. 도둑에게 '도둑질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다'고 해서 그냥 믿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이거나 무능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내세워 온 '50년 대공(對共) 수사 노하우'의 실상이 이것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다.

국정원이 정상적 조직이라면 국정원 문서가 '위조'라는 중국 측 발표에 발칵 뒤집혀 스스로 진상을 조사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위조 사실을 밝혀내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의 누구도 검증하자는 건의를 하지 못했다면 이 조직은 무능한 차원을 넘어서 위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남 원장이 문서 위조를 몰랐다면 다른 누구보다 앞서서 문서 검증을 지시했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원의 태도를 보면 그런 사실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국정원 고위층이 대공(對共)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유씨 사건에 대한 새 증거를 확보하라고 부하들을 심하게 압박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남 국정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 요구에 맞서 '자체 개혁'을 강조해왔고 성과도 있다고 해 왔다. 실제 '남재준 국정원'은 북한 장성택 숙청 사실을 포착하고,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실을 적발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지금 남 원장의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념'이란 합리적 판단과 엄격한 자기 통제라는 다른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과잉 신념은 반드시 큰 화(禍)를 부르게 돼 있다.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 남 국정원장은 작년 7월 여야의 NLL 공방 와중에 야당을 비난하는 국정원 성명을 발표하게 해 정쟁(政爭)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신념만 내세운 전형적인 사례다. 당연히 역효과만 불렀다. 지금 국정원 관련 모든 문제의 바탕엔 무절제한 신념이 어른거리고 있다.

이번 증거 위조 파문도 국정원 지휘부의 간첩 색출 신념에 자극받은 수사팀이 적법(適法) 절차의 철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유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남 국정원장과 국정원이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향 [사설]비정상적 사외이사 제도 정상화 절실하다

올해 10대 재벌 계열사의 주주총회에서 뽑힌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이 청와대나 검찰, 국세청, 공정위의 고위직이나 장·차관 출신이라고 한다. 재벌이 권력기관 출신을 무더기로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은 외부 바람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이들이 기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전·현직 간에 이뤄지는 전관예우 관행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이런 식으로 선임되면 대주주 전횡 견제·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 도입 취지는 살릴 수 없다. 사외이사를 뽑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방만 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외부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켜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6년이 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정치인이나 힘 있는 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방패막이나 로비스트로 삼으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뜻에 찬성하는 거수기에 그칠 뿐이다. 기업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여서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강화되고 국민의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면서 재벌로서는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혀 바람막이로 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외이사 제도의 긍정적인 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제도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바에야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는 전문성 못지않게 경영진이나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견제·감시란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선임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독립된 외부 기관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추천하거나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의 활동을 평가·공개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경향 [사설]정부와 국회, 의료계는 당장 대화 나서라

대한의사협회가 예고했던 집단휴진이 현실화하는 사태를 맞았다.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정부와 갈등해온 의협이 어제 “국민의 이해를 간절히 바란다”며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고, 그제는 그동안 집단휴진 참여에 소극적이던 대한전공의협의회도 동참을 결정했다. 정부 또한 집단휴진 강행 즉시 업무개시명령 등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해 불응한 의료기관에 대해 행정처분과 형사고발 조치를 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의·정이 강 대 강으로 대립해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우선 명분과 이유, 어느 쪽의 잘잘못을 살피기 이전에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사실상 파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휴진을 강행키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14년 전인 2000년 의약분업 때의 의료대란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문제라든가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의 주장이나 요구가 나름의 명분을 갖췄다 하더라도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태도는 더 걱정스럽다. 시종일관 강경책으로 의료계를 자극하는 등의 소통 방식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의·정협의체인 의료발전협의회를 ‘야합’으로 비쳐지게 만들었는가 하면 집단휴진 결정 이후 공안대책협의회까지 열어 대응 수위를 높인 점 등이 그렇다. 집단휴진이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정지·의사면허 취소 운운하기까지 했다. 오늘 집단휴진에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었던 전공의들이 동참으로 선회하는 결정을 내린 데는 정부의 이런 강경 대응이 작용했다고 한다. 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처 방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불법에 가담하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하라”는 식의 강경책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의·정 갈등은 정부의 원격진료와 영리화 정책을 계기로 의료수가체제 등 의료계의 해묵은 불만과 의료의 공공성, 변화된 의료환경 등 어려운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노정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쉽게 풀릴 문제들이 아니다. 제2의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 의료계는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한다. 마침 야당 측이 어제 여·야·정 및 의사단체, 전문가, 가입자 단체가 포함된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제안했다. 무엇이 됐든 보다 큰 틀에서 의료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