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5일 화요일

경향 [사설]통일준비위보다 ‘어떻게 평화를 만들까’가 우선

어제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끝났지만 언제 다시 상봉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금강산관광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서해의 군사적 긴장은 여전하다. 남북대화는 복원되지 않았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따른 대북 제재 조치인 5·24조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때문에 남북교류·협력은 물론 대북 인도적 지원도 사실상 막혀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주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통일 논의에 더 주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때 ‘통일대박’ 발언으로 관심을 끌자 통일 논의를 지속시킬 수 있는 기구까지 두기로 했다. 박 대통령이 어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통해 대통령 산하에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남한 사회에 팽배한 통일 무관심을 깨뜨리고 통일의 열망을 살려나가는 일은 남북관계가 나쁜 때라고 해서 소홀히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 준비를 한다고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서도, 흡수통일을 전제로 삼아서도 안된다. 흡수통일은 곧 북한이 무너질 것이므로 북한을 접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결코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통일 준비를 하겠다면, 흡수통일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어떻게 통일을 추구할지 구체적인 과정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통일준비위는 자칫 북한 인수위원회로 오해받을 수 있다. 정부는 통일을 위한 최고의 준비는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이 정치·군사적 대결을 끝내고 평화롭게 살게 되었을 때 통일의 희망이 싹트는 법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통일의 꿈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현상 타파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일 준비이다.

우리는 종종 통일은 북한 사람의 동의와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는다. 이는 북한 사람이 남한을 통일 대상으로 선택할 만큼 함께 살 만한 사회로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시장 만능주의, 양극화, 세계 최고의 자살률, 저복지의 남한과 통일하는 것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재앙을 피하려면 남한이 함께 사는 사회적 경제로 변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정부와 시민은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가.

경향 [사설]‘가계부채 1000조원’ 정부 대책은 뭔가

작년 말 가계부채 규모가 처음 10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국가부채에 이어 공기업 부채도 이미 500조원을 넘어 그야말로 부채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부나 가계 할 것 없이 이렇게 빚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도 되는지 걱정이다. 가계 빚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진 데는 정부 잘못도 크다. 눈덩이 가계부채는 계속 방치할 경우 소비시장 위축은 물론 금융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도 가계 빚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가계부채는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심각한 상황이다. 우선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2004년 말 494조원이던 부채 규모는 9년 만에 2배로 늘었다. 빚이 줄기는커녕 작년 한 해 새로 늘어난 빚만 57조원에 이른다. 또 작년 4분기엔 정부 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27조원의 대출 신청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 빚 가운데 부동산 담보대출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빚 갚을 능력도 문제다. 지난해 9월 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9.2%로 해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빚 갚는 데 169원이 필요하지만 정작 쓸 돈은 100원뿐이라는 얘기다. 미국이 115% 남짓한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전체 빚 가운데 은행권 대출 비중은 작년 말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취약계층이 제2금융권의 고금리 상품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또 자영업자 빚 가운데 잠재 부실 규모만 6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가계부채의 질도 그만큼 나빠지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는 경기침체 속에 생활고를 겪는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지만 정부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빚 내줄 테니 집 사라’고 부추긴 게 누구인가. 빚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불이나 지르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가뜩이나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으로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다. 영세 자영업자나 서민들이 과도한 상환 부담에 내몰리지 않도록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직결된 문제다. 부동산 거래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담보대출은 마땅한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거래 활성화를 앞세운 부동산 거품 조장은 가계부채 해소에 독이 될 뿐이다. 정부가 담보대출 조건 완화를 검토 중이라는 걸 보면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경향 [사설]MB식 해법으로 경제난제 해결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월 밝힌 총론에 이은 구체안 성격이다. 경제혁신 계획은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이명박 정부 때 한계를 노출한 대기업 위주의 규제 완화책을 되레 확대 추진하고 서민 생활 향상에 기여할 구체적 해법이 없는 것은 실망스럽다. 계획에는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 내수기반 확충 등 3대 전략, 10대 과제가 담겼다. 정부는 이를 통해 3년 뒤 잠재성장률 4%대,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지향을 국민들이 느끼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세계경제가 전환기에 서 있고,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정부의 상황 인식은 공감할 수 있다. 대책의 핵심인 내수기반 확충 역시 수출 위주 경제구조가 갖는 한계가 노정된 만큼 이견이 없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부는 기업규제를 전방위적으로 풀어주면 가능하다고 여긴다. 환경은 물론 보건·의료, 관광, 금융 등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어제 대책에는 그린벨트와 부동산 규제의 최후 보루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까지도 추가 완화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이런 조치가 대기업 투자를 불러오고 이는 소비활성화 및 고용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규제 완화는 지난 정부에서 이미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 서민 생활 향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실제 그간의 규제 완화는 특정 대기업의 민원 해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출 중심의 대기업형 구조로는 재도약에 한계가 있다면서 내수 확충을 대기업 규제 완화와 서비스산업의 빅뱅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의료 규제 완화는 되레 국민들의 생활의 질 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체가 모호했던 창조경제는 제2의 벤처붐 조성으로 이름을 바꿨다. 창업과 재도전은 경제활성화에 필요하지만 4조원 가까운 지원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을 산업 주체로 만들고 성장에서 소외된 서민 생활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논점은 박근혜 정부 2년차가 된 지금도 바뀐 게 없다. 중소기업은 기업체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한다. 내수 확충 역시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현재 국민들의 소비여력이 넉넉하지 않다. 소득은 정체돼 있고 가계부채는 위험수위에 차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 확대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인상=기업 경쟁력 저하’라는 도식화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그치지 않고 절대 규모를 축소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기초선거 ‘전략공천’하겠다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25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공식적으로 백지화됐다. 민주당도 이 문제를 놓고 내부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초공천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의 공통 공약이었던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완전히 폐지될 운명에 처했다.
정치권의 이런 결정은 선거 공약이 얼마나 거짓과 기만에 가득 찬 대국민 눈속임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사실 기초선거 공천 폐지의 정치적 의미나 효과, 위헌성 여부 등을 놓고는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천 폐지 방침을 정한 뒤 이것이 마치 정치 발전을 위한 구국의 결단인 양 떠벌렸다. 그래 놓고 선거가 끝나자 온갖 구실을 대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이런 정치권의 한심한 행태를 보면서 국민의 정치적 실망과 불신이 깊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공약 백지화라는 결과만을 놓고 보면 여야 모두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사안은 전적으로 새누리당의 책임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으나 새누리당은 대선이 끝난 뒤 기초공천 강행 방침을 완강히 밀어붙였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이 문제를 논의해왔으나 새누리당은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공세에 밀려 당론을 접으려는 민주당의 태도도 한심하지만 새누리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다 새누리당은 공약 폐기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공약의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 역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 폐기의 대안이라며 내놓은 상향식 공천도 허점투성이다. 애초 없애기로 한 전략공천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새누리당이 당헌·당규 개정 내용에 ‘전략공천 병행’을 포함시키면서 새누리당 안에서도 “상향식 공천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조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대선기획단 등에 몸담은 ‘친박 인사’들이 전략공천 대상자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선이 쉬운 곳은 당 지도부 관할로 하겠다는 것이냐” “그러려면 강남 3구의 이름을 ‘새누리당 특구’나 ‘청와대 특구’로 하라”는 따위의 반발이 이 지역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오만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 [사설] 파탄 난 노동정책이 총파업 불렀다

20만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모이는 ‘국민 총파업 대회’가 25일 열렸다. 이번 총파업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 정권 1년, 이대로는 못 살겠다. 국민파업대회’다. 취임 1주년을 맞아 축하의 꽃다발은커녕 총파업으로 맞서다니 참으로 얄궂은 관계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의 30%는 일자리와 노동 분야였다. 이런 공약들은 정부 출범 뒤 ‘고용률 70%’와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로 국정과제가 됐다. 우리 사회의 꽉 막혀 있는 혈로를 뚫어보려는 노력으로, 평가받을 만한 대목이 있었다. 그러나 정권과 노동계는 이내 엇갈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전국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데 이어 10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는 등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철도노조의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는 조합원 8797명 직위해제, 간부 198명 고소고발, 152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 등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력이 민주노총 본부를 난입하는 사상 초유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된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저임금·불안정 노동만을 확산시킬 거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자 사용자 편향적인 지침을 내려서 오히려 노동현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노동 공약 가운데 이행된 것은 ‘정년 60살 연장’이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여부를 노사 합의에 맡겨 노조 조직률이 낮은 사업장에서 노동조건이 악화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런 현실은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가 잘 보여준다. 노동정책을 잘했다고 선택한 사람이 0.3%에 불과한 것이다. 외교정책은 23.5%, 대북안보정책은 19.2%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 1년처럼 앞으로 4년을 보낼 수는 없다. 국민들도 불행이지만, 정부도 스스로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 대통령도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에서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노사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 현안들은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니 정부는 불법이라고 규정한 이번 총파업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강경대응을 철회하고 오히려 노동계와 대화를 시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말잔치에 실효성 의심스런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임기 중 펼칠 경제정책들을 망라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3대 추진 전략과 15대 핵심 과제, 100대 실행 과제를 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를 통해 “2007년에는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져놓겠다”고 약속했다. 듣기에는 좋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정책 내용을 뜯어보면, 혁신경제로 나아가기보다 다시 시장만능주의와 성장지상주의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든다.
정부의 100대 실행 과제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지난 정부에서부터 추진한 것들을 이름과 수치만 조금 바꿔 다시 끄집어낸 게 많다. 정부가 제시한 3대 추진 전략은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수출의 균형경제’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3대 전략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역량을 집중해야 할 터인데 정부의 실행 과제들은 지나치게 산만한 느낌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과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다 보니 정책 목표와 실행 과제, 또 대책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주거비·가계부채·사교육비를 ‘민생의 3대 걸림돌’로 꼽고 완화하겠다는 과제를 내세웠는데, 주택 구입자나 세입자에 대한 대출지원 확대는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를 지금보다 5%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줄인다는 과제를 내놨다. 연간 19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규모를 해마다 약 1조원씩 감축한다는 과제 또한 허황돼 보인다.
원인과 현실 진단부터 정부가 자의적으로 내리고 일방적으로 과제를 선정해 공감을 얻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가령 경제민주화 과제를 보면, 정부는 이미 관련 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절차는 마무리한 만큼 이제부터는 경제적 약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제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 기준으로도 아직 절반도 채 이행되지 않았다.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박근혜 대통령이 1월6일 신년 구상에서 처음 밝힌 경제활성화 방안을 정부 각 부처가 불과 한 달 보름여 만에 실행 과제까지 담아 구체화한 것이다. 관련 전문가나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가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좀더 시간을 갖고 검토하고 논의를 해서 타당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경제혁신 방안을 내놓기 바란다.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중앙 [사설 속으로] 대학 구조조정

중앙일보 <2014년 1월 21일자 34면>
대학 구조개혁의 대원칙은 경쟁력 강화다


대학은 한 나라의 문화계승과 인재양성의 메카이다. 국가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를 방문 중이다. 국가경쟁력 1위인 스위스는 대학경쟁력 역시 그렇다. 이 나라의 대학진학률은 29%(2009년 기준)이다. 우리(71%)에 비해 매우 낮다. 그렇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22명(과학부문 20명)을 배출할 정도로 경쟁력이 막강하다. 스위스의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다만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미래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지상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최종 손질하고 있다. 운영이 부실하면 정원 감축, 국고지원 중단은 물론 퇴출까지 시킨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대학과 지방대, 4년제와 전문대 간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이다보니, 각 교육주체는 다양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구조개혁의 목표와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용두사미가 되거나, 교각살우(矯角殺牛)의 누를 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학 구조개혁의 대(大)원칙은 대학경쟁력의 강화이어야 한다. 대학 하나하나가 경쟁력을 갖게 하고, 더불어 국가경쟁력도 올라가게 대학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이해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려 적당히 정원 감축만 하는 식의 협소한 개혁으로는 경쟁력을 제고하기 어렵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 학문·전공을 조정하고 ▶ 경영방식을 쇄신하며 ▶ 고교·기업과의 연계를 갖는, 통 큰 개혁이어야 한다.

 대학 구조개혁은 대학 특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덩치가 크다고 경쟁력 있는 대학은 아니다. 반면 작은 대학만 있다고 국가경쟁력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유수 대학과 경쟁할 종합대도,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야 할 강소(强小)대학도, 지방을 세계화하는 글로컬대학도 우리에겐 모두 필요하다. 교육·연구·산학협력 등 각각에 뛰어난 대학도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든 각 대학의 지향점을 뚜렷하게 만드는 쪽으로 구조개편을 해야 한다.

 대학에 미래 선택권도 주어야 한다. 대학마다 역사와 문화, 경영여건이 다르다. 구성원들이 미래상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 뒤 이를 판단하는 단계적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 구성원이 똘똘 뭉쳐 경쟁력 있는 분야를 찾아낸 뒤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대학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빈틈없는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개혁은 고난의 길이다. 대학과 정부, 사회 모두에게 그렇다. 하지만 대학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는 수없이 제기돼 왔다. 지금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인구구조적인 압력까지 받고 있다. 그대로 두면 2023년에는 대학정원 56만명 중 40만명밖에 채울 수 없다고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선제적으로 돌파해야 한다. 경쟁력 강화라는 대원칙에 따라 대학 구조의 틀을 다시 세운다면 10년 뒤 유럽이 우리를 교육성공국가로 벤치마킹하러 올지도 모른다.

한겨레 <2014년 1월 29일자 35면>
대학 구조개혁, 공공성·형평성·투명성 유지해야


교육부가 27일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명이나 줄이는 내용의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경제·사회 구조의 고도화 등 시대 변화에 부응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개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올해 63만명인 고교 졸업생이 2023년에는 39만명까지 줄어들지만 전문대 등을 포함해 현재의 대학 정원은 56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큰 폭의 대학 정원 조정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구조개혁에 앞장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여러 해 동안 대학들의 자율 조정을 유도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던 데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지방대와 전문대 등이 갈수록 더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대학들에 정원 감소는 사활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학들끼리의 이해 조정이 쉽지 않은 만큼 객관적인 조정자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의 계획은 절대평가 방식의 대학평가체제를 새로 도입해 그 결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원을 줄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공익성과 형평성이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은 각각 고유한 역할이 있다. 어느 한쪽을 희생시키는 식이어서는 공익성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특히 지방대학의 위기는 해당 지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역량 미달인 대학을 무조건 배려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앞으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평가지표 등을 개발해 시행할 때 이런 점이 세심하게 고려돼야 한다. 정원 감축이 단계적으로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설익은 평가에 근거해 밀어붙이면 분란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벌써부터 왜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이 대학 쪽에서 나오는지 잘 헤아리기 바란다.

 대학 쪽도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정원 유지에 집착할 게 아니라 교육·연구의 질을 높여 학생과 지역사회의 공감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특성화가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창의적인 내용이 담겨야 한다. 국민들도 입시 점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대학이 아니라 특색 있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대학을 늘려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대학 교육은 그 사회의 지적인 수준과 미래를 향한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 구조개혁이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정부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개혁이 되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논리 vs 논리
대학 경쟁력 강조한 중앙 … 지역사회와 공존 중시한 한겨레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개혁이 시급한 시점에서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모든 대학을 3년마다 평가해 2017년까지 4만 명, 2020년까지 5만 명, 2023년까지 7만 명을 계속 줄여 현재 56만 명인 대입 정원을 40만 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모든 대학을 최우수·우수·보통·미흡·매우 미흡 5개 등급으로 평가해, 최우수가 아닌 4개 등급 대학에 대해선 등급별로 일정 비율씩 정원을 감축시킨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이번 개혁안이 일방적(정부 주도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학 평가가 공정하게 진행될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들은 이번 개혁안으로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지고 결과적으로 지방대학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구조개혁의 대(大)원칙은 대학 경쟁력의 강화여야 한다’라는 문구가 중앙일보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중앙일보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해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충고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집단이란 구체적으로 대학 퇴출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학교재단과 교직원·졸업생·재학생, 그리고 더 넓게는 지역사회 주민일 것이다.

 중앙일보는 세계 유수 대학과 경쟁할 종합대,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야 할 강소(强小)대학, 지방을 세계화하는 글로컬(글로벌+로컬) 대학을 경쟁력 있는 대학의 예로 들면서 대학마다 역사와 문화, 경영 여건이 다르므로 구성원들이 미래상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단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이 정부의 일방적 주도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가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면 한겨레는 ‘공익성’과 ‘형평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겨레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은 각각 고유한 역할이 있으므로 어느 한쪽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역량 미달인 대학을 무조건 배려하면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특정 대학의 퇴출이 특정 지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공익성·형평성과 함께 한겨레가 대학 구조개혁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소위 정치적인 입김이 배제된 평가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주문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한겨레는 대학 쪽도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대학 구조개혁이 이해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대목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한겨레는 대학 구조개혁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학문·전공을 조정하고, 경영방식을 쇄신하며, 고교·기업과 연계하는 개혁이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말하고 있는 학문·전공 조정, 경영방식 쇄신, 고교·기업과의 연계 등의 방안은 결국 대학 구조개혁이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대학 구조개혁을 대학이라는 시스템 내부에 초점을 두고 말하고 있다면 한겨레는 시스템 외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학문·전공 조정, 경영방식 쇄신 등이 시스템의 내부에 초점을 맞추는 중앙일보의 주장이고, 지역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며 공익성을 내세우는 것은 시스템 외부에 초점을 맞추는 한겨레의 주장이다. 한겨레가 공익성과 아울러 강조하는 ‘투명성’과 ‘신뢰성’도 대학 시스템의 외부, 즉 정치인과 행정관료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주문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앙일보가 시스템 내부 개혁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한겨레는 시스템 외부의 공정성과 시스템 외부와의 공생, 다시 말해 대학과 지역사회의 공존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중앙 [키워드로 보는 사설] 경쟁력과 공익성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곳에 있는 대학에 와인을 만드는 학과가 있고, 이 학과에서 와인 만드는 기술을 연구해 일정한 경제적 성과를 거둔다면 대학 경쟁력과 지역사회의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경우라고 하겠다. 이렇게 공익성과 경쟁력이 행복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상당한 규모의 4년제 대학을 지방에 설립할 수 있게 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 즉 공익성 증진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단 비리와 부실한 경영, 낮은 질의 교육 콘텐트 때문에 대학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다. 와인 제조와 관련한 양질의 교육 콘텐트를 확보하고 능률적 경영으로 대학 내부의 경영 시스템을 개선해 경쟁력을 확보하면 지역사회의 공익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꾸로 지역사회의 필요성, 즉 공익성을 위해 특정 학과를 설립한 뒤 이 학과에 제도적·금전적 지원을 해도 학과 경쟁력은 높아진다. 경쟁력과 공익성은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조선 [사설] 선거 코앞에서 또 公薦 공약, 이번엔 지킬 건가

새누리당이 조만간 모든 국민이 공직 후보자 선출 과정에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6·4 지방선거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는 2000년대 이후 경선과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식의 상향식 공천을 통해 출마 후보자들을 뽑아 왔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이런 부분적 상향식 공천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야가 오픈 프라이머리 전면 도입에 합의할 경우 모든 선거는 후보를 정하는 선거와 본선거 등 두 번씩 실시하게 된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공직 후보자 선출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각 정당은 선거 때마다 공천 잡음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 공천이야말로 계파 우두머리들의 전횡과 파벌 다툼의 주(主)무대였다. 심지어 중진 의원들조차 "공천(公薦)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공천에서 비롯된 계파 갈등이 정치 분란을 가져오고 국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시장·군수·구청장 공천을 놓고서는 노골적으로 돈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정당은 구조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중앙당은 각 지역 정치 네트워크들을 연결해주는 연락사무소에 가깝다. 그러니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후보를 뽑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다. 그런 역사가 전무한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일지 의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돈과 조직에서 우위를 점하는 현역 정치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이다. 미국 의원 재선율이 90%를 넘는 것도 이 제도 덕분이다. 과거 우리 일부 정당에서 대선 후보 경선 때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온갖 동원 경쟁의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지금의 공천 제도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픈 프라이머리 역시 그 못지않은 병폐를 낳을 수 있다. 정치권이 지금 이런 딜레마를 얼마나 고민하고서 새 제도를 내놓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방선거까지 석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이런 변화안을 불쑥 내놓으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오픈 프라이머리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여야가 2012년 총선·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건 시장·군수·구청장 정당 공천제 폐지를 불과 1년여 만에 지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야가 공천을 포기하면 당장 수천명이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탈당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새누리당이 먼저 "위헌 소지가 있다"며 공약을 거둬들였다. 민주당은 그간 "대통령이 사과하라"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최근 자신들도 내부적으론 정당 공천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선거 코앞에 내놓는 정치 개혁안이란 것은 모두가 선거용 쇼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선 [사설] 국민연금, 株主權 휘두르기 전에 '정치로부터 독립' 확보를

국민연금이 횡령·배임 같은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주주의 전횡을 눈감아준 임원에 대해서도 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했다. 특정 기업에 10년 이상 재임하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의 연임(連任)에도 제동을 걸겠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말 현재 8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간판 대기업들의 1대 주주나 2대 주주로 올라 있고, 5% 이상 지분을 소유한 상장 회사도 218곳이나 된다. 국민연금이 맘먹고 의결권을 행사하면 국내 기업 경영에 큰 파란을 불러올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성과는 국민 대다수의 노후(老後) 보장이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총수의 비리에 책임을 묻고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잘못된 경영 행태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네덜란드 공무원연금 등 외국의 많은 공적(公的) 연금은 오래전부터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주주 권리를 행사하려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기업이 정권에 밉보였다거나 실력자의 눈 밖에 나 보복을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포스코·KT·KB금융지주 같은 민간 기업의 최고 경영인과 사외이사 인사까지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나서면 민간 기업 인사와 경영에 정부 개입이 훨씬 심해질 게 뻔하다. 정치권과 이익 집단들이 대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완력(腕力)을 끌어들이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비롯, 연금기금운용위원회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교체됐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국민연금의 어느 인사가 누구 줄을 잡고 내려왔다는 잡음이 무성하다. 국민연금이 실제 주인인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춰 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조선 [사설] '日의 3분의 1 크기 운동장'은 청소년 人權의 문제

한국교육개발원의 '한·일 중학교 공간 구성 비교 연구'에서 우리의 중학생 1명당 운동장 면적이 13.4㎡로 일본(38.9㎡)의 34.4%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중학교 운동장은 고작 축구와 100m 달리기가 가능한 반면 일본 학교들은 축구, 테니스, 야구 등 여러 스포츠가 가능하게 조성돼 있다는 것이다.

운동장이 아예 없는 학교가 서울에만 4곳, 전국적으론 12곳이다. 서울 종로구의 어느 초등학교는 길이 22m, 폭 9m의 인라인스케이트장 하나 달랑 있을 뿐이다. 선진국에선 운동장부터 확보하고 나서 학교를 짓지만 우리는 땅을 구하기 어렵다고 운동장이 없어도 학교를 세울 수 있게 했다. 교실·강당이 모자라면 운동장 한 귀퉁이를 잘라 건물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약골(弱骨)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09년 중학생의 64.9%가 한 종목 이상 운동부에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초·중·고교생의 스포츠클럽 참가율은 27.4%에 불과했다. 고교생 신체 능력 검사에서 체력 수준이 가장 낮은 5등급 비율이 2001년엔 11.3%이던 것이 2010년 19.2%로 늘었다.

아이들에게 숨이 차도록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 복지이자 청소년 인권(人權)에 관계된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매일 운동하게 하면 수업 집중도가 높아져 성적이 향상되고 남을 배려하는 인성(人性)이 길러진다는 연구도 많다. BMW·아우디 같은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몰려 있는 바이에른주(州)는 '오후 1시부터 운동하기' 캠페인을 벌여 1991년 116곳이던 학교 클럽팀을 2007년 2215개까지 늘려놨다. 청소년의 스포츠 활동이 세계에서 가장 조직력이 강한 제조업체들을 키우는 기반(基盤)이 되고 있다.

학교마다 탈의실·샤워실을 갖춘 체육관·수영장까지 제공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음껏 달리고 뒹굴 수 있는 운동장만이라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경향 [사설]이주민을 ‘타자’로 서술하는 사회교과서

한국인의 삶은 ‘우리’라는 무리 속에 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떠난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자리매김된다. 단일 민족주의 신화가 그렇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고 ‘우리끼리’의 문화가 그렇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 한국인’이라는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내용의 칼럼 집을 내면서 책 제목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 붙였다. 이방인의 눈에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이고, ‘우리’에 끼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한국사회의 타자(他者)일 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사회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조대훈 교수)이 고교 사회교과서 5종을 ‘글로벌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분석해 교육부에 제출한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고교 교과서는 사회적 소수자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 즉 외국 출신 거주자들을 암묵적으로 타자화(他者化)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 습득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민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교육적·사회적으로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A교과서) “다문화 가정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층에 속하며 언어 및 문화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B교과서)

이런 내용은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교육을 하는 교과서라면 현상에 대한 서술에 그치지 말고 그 같은 현상을 부른 원인과 배경, 이주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런 물음이 생략되면 이주민의 부적응과 실패를 특정 소수자 집단의 무능력 또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인식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 초기 부적응 현상에 대한 일방적 서술이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교과서는 청소년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교과서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진다. 이주민들에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비쳐지지 않으려면 교과서부터 변해야 할 것 같다.

경향 [사설]박 대통령,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박 대통령은 1년 전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겠다”면서 ‘민생 대통령, 국민대통합 대통령, 약속 대통령’을 다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1년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했고, 특히 민생과 대통합,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의 초상은 초라하다. 우선 민주주의의 후퇴가 심대한 지경이다. 무엇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와 정치개입이 자행되고, 이에 대한 엄정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음으로써 초래된 결과다. ‘공안’이 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도 퇴행적이다.

둘째로 대선 기간 내내 기치로 내건 대통합이 실종되고, 사회분열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분열은 ‘종북몰이’ 등으로 편을 가르는 낙인과 배제의 정치, ‘나만이 옳다’는 독선의 정치를 통해 배가됐다. 통합이 훼손된 것에는 인사실패의 책임도 크다. 나 홀로 ‘수첩인사’로 시종하면서 인사파행이 반복되고, 특히 탕평의 가치가 실종되면서 지역편중이 심화됐다. 셋째, 원칙과 신뢰를 상징자본으로 삼는 박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대거 파기·후퇴시키면서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 넷째, 경제의 영역에서 경제성장률과 무역흑자 등 지표상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불안하고 고단한 민생’을 푸는 데는 미흡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지적하는 전세 대란과 가계부채 등이 대표적이다.

취임 1년,박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대선 득표율을 웃돈다. 그러나 이게 성적을 보증하는 건 아니다. 긍정 평가의 대부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견인되는 것이고, 내치 부문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일반 국민이나 전문가들 공히 소통, 통합, 인사, 국정원 사건 대응 등을 잘못한 분야로 꼽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특히 세대와 지역에 따라 국정 평가가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사회분열의 고착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을 팽개치고 분열을 방치하고는 국정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통일대박론을 실제 ‘대박’이 되도록 만들어가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국민통합, 사회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맞다/틀리다’가 아니라 ‘네편/내편’이 절대 기준이 되는 극한 분열 속에서는 어느 하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 집권 2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통합의 리더십인 이유다. 통합의 길은 독선을 버리고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며, 정치적 반대세력과의 적극적 소통 노력 속에서 조성된다. 반쪽의 소통에 머물고 절반의 지지에 자족하면 결국 ‘반쪽 대통령’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벼려야 할 때다.

경향 [사설]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로 황제경영 폐해 막아야

올해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주된 변수로 등장했다.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문제 있는 기업 이사진 구성에 반대표를 적극 행사하는 쪽으로 관련 지침을 개정키로 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자기 뜻대로 주총을 치러온 대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시장경제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너무 당연한 얘기다. 기업 총수 1인이 좌지우지해온 이른바 황제경영의 폐해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 지침 개정안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핵심이다. 우선 횡령·배임 행위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사는 물론 이를 막지 못한 이사진도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번 반대 대상에 포함되면 최소 3년간은 이사 선임이 제한된다. 10년 이상 재직했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인 ‘거수기’ 사외이사도 반대표 행사 대상이다. 경영진 감시 기능이 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총 전에 국민연금의 결정 사항을 일반 주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80조원 이상을 주무르는 기관투자가의 맏형이다. 삼성전자 7.4% 지분을 갖고 있어 오너인 이건희 회장보다 2배 이상 많다. 포스코와 KT, 네이버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다. 그간 재무적 투자가 역할에 그쳐 주주권 행사는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은 투자 가치와 직결돼 있다. 최고경영진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데 기업의 주가가 오를 리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국민연금이 기업 투명성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대기업 총수의 독단경영을 견제할 곳도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뿐이다.

재계도 경영권 문제만 나오면 쌍수 들고 반대할 일은 아니다. 비리 경영진을 계속 묵과해달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최대주주다.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을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회장 바꾸라’며 기업 일에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를 피하려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우크라이나 사태, ‘평화·민주·통합’이 중요하다

10년 전 오렌지혁명(시민혁명)으로 주목받았던 우크라이나가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수도를 떠나고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으나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동남부 지역의 반발이 우려된다. 자칫하면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러시아 성향과 비민주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자유무역협정 등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인 협력협정 체결 노력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발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강한 압력이 있었으며, 경제난을 겪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150억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이후 시위가 이어지다가 야누코비치가 며칠 전 발포를 허용해 10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정책 노선의 차이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풀지 못한 무능력이 유혈사태의 주된 원인인 셈이다.
야누코비치가 떠났다고 해서 사태가 쉽게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야권이 독주할 조짐을 보이면서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은 경계심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과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큰 변수다. 서방 나라들에는 이번 일을 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보고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적잖다. 러시아도 지난 10여년 동안 강화해온 자국 중심의 블록에서 우크라이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과 가스관의 90%가 지나가고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큰 위기로 치닫지 않으려면 어떤 나라든 무력 개입을 시도해선 안 된다. 이는 특히 러시아에 해당한다. 만약 프랑스만한 크기에다 인구가 4500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사태 해결에 필수적이다. 또 민족적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자제하고 국민통합 유지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및 유럽연합과 공통으로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핀란드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각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섣부르게 개입하려 하다가는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한겨레 [사설] 흐지부지된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되살려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핵심 공약의 하나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이제 정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1년 만에 경제민주화 공약을 사실상 폐기한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경제민주화 대신에 슬그머니 ‘경제활성화’를 앞세운다.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성장 우선을 강조하며,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을 우려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는 대선 후보 때 국민에게 직접 한 말들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고,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성장만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민 삶을 돌보지 않았다”며 “강력한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성장 위주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의 입법 성적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데 박근혜 정부는 성장을 더 중시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접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 완화를 부르짖더니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처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법안까지 추진했다.
흐지부지되기는 복지 관련 공약도 마찬가지다. 기초연금의 경우 선거 때는 박 대통령이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소득 하위 70%까지만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 쪽으로 축소됐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은 인수위 시절부터 수정됐고, 2014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겠다던 공약도 예산 제약으로 대상이 대폭 줄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는 사회통합과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한 정권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다시 경제민주화 정책을 되살리고, 복지공약 역시 구체적인 시행계획과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해 임기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집권 2년차엔 국민통합 이뤄주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로 취임 1년을 맞았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게 집권 첫해는 임기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실망스런 한 해였다. 지난 1년 동안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향후 4년을 제대로 준비했는지도 의문이다.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한 이른바 ‘개국공신’ 30명에게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를 물었더니 13명이 인사 분야의 잘못을 꼽았고, 소통 부족을 지적한 이도 10명에 달했다. 이어 8명이 잘못한 분야로 경제를 꼽았다. 가장 잘된 분야로는 30명 중 21명이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꼽았다. 이어 6명이 ‘비정상의 정상화’ 슬로건을 통한 개혁작업을 들었다.
집권세력 내부의 평가는 일반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나홀로 인사’ ‘불통 정부’로 요약되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가 “경제, 복지와 달리 국민통합은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면 되는데 요즘엔 선거 때 표를 의식해 말로만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쉽게 말해, 박 대통령이 지난 1년간 국민통합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유력지 <마이니치신문>은 박 대통령의 ‘제왕정치’가 사회를 이분했다고 평했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기대에 못 미친 점이 많았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동북아 외교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지지부진했다. 주변 4강 외교 역시 실리와 원칙을 함께 챙기는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들은 집권 2년차의 최대 과제로 민생과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30명 중 21명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현 정부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답했다. 국민대통합(8명)이 그 뒤를 이었다.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것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고유 업무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책을 세우고 유능한 인재를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 또 갈등을 줄이고 통합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역시 필수적이다.
2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에게 국민이 바라는 것은 한결같다. 좀더 국민과 소통하고 합리적인 인사를 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아달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와 민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남북이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통합형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집권 1년에 즈음한 박 대통령 지지율은 대략 50%를 웃돈다. 이는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노년층과 보수층의 굳건한 지지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자신감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동안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에 매진해주기 바란다.

중앙 [사설] 푸틴의 우크라이나 대응을 주목한다

동유럽의 우크라이나가 동과 서의 국가 분열 위기에 빠졌다. 친유럽의 서부를 거점으로 한 야권 세력이 유혈 시위 끝에 22일 의회를 장악한 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동부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 친러시아 정책을 펴왔다. 그가 지난해 11월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협정을 파기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고, 지난주에는 정부 발포로 8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 21일에는 야권과 정부 간에 대선 조기 실시 등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야권이 대통령의 즉각 퇴임을 요구하면서 합의는 하루 만에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시위대는 수도 키예프의 주요 정부 시설을 장악했고, 급기야 야누코비치는 대통령궁을 떠나 동부 러시아 접경으로 피신했다. 야권에선 2004년 민주 시민혁명(오렌지 혁명)의 주역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풀려나자마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부와 야권의 극적 반전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최악의 경우 내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점이다. 현재 친유럽과 친러시아 세력에 의한 2개의 권력이 양립하고 있는 데다 동부와 서부가 언어와 종교의 차이로 사실상 분단돼 있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에서 우크라이나가 자칫 옛 유고 연방처럼 분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선 서유럽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가장 큰 변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치 올림픽 이후 어떻게 나올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생명줄이다. 최대 에너지 공급국이고, 150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관련 당사국은 자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의 혼란에 빠지지 않고 민의에 바탕을 둔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중앙 [사설] '낙하산 근절' 발표 직후 또 낙하산 … 국민을 놀리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또 불거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정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 기획재정부가 낙하산 근절 대책을 내놓겠다며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 게 지난 20일이다. 그 자리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유관 업무 경험 5년 이상으로 공공기관 사장·감사 선임 자격을 제한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래놓고 보고 하루 만인 21일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내려보냈다.

 이 신임 사장은 검사 출신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의 경선대책위원회 인천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전기안전공사 업무와 관련된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전기안전공사가 속한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활동 경력이 전부다.

 어디 그뿐인가. 어제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에 홍표근 전 선진통일당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한국동서발전 감사 자리도 강요식 동국대 겸임교수에게 돌아갔다. 정치권 출신인 두 사람 역시 대표적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홍 신임 감사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원회 공동여성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육사 출신의 강 신임 감사는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고, 지난 대선 땐 새누리당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자문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전 『박근혜 한국 최초 여성대통령』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상임감사는 공공기관의 비리와 부패, 방만 경영을 감시·감독하는 자리다. 감사와 사장이 낙하산으로 채워져 노조와 밀약하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은 엉뚱한 사업이나 공공기관 귀족노조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게 된다.

 낙하산 근절이야말로 국민 지지를 얻고 노조 반발을 잠재워 공공기관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말로는 공공기관을 철저히 개혁하겠다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낙하산 근절 대책 서류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줄줄이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야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를 누가 믿겠나. 애초 낙하산 근절 대책이란 게 ‘여론 무마용’이었다는 사실만 자인한 꼴이다. 

중앙 [사설] 소치 '얼음 괴력' 을 평창에서도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났다. 물러가는 겨울과 함께 소치도 역사 속으로 갔다. 4년 전 밴쿠버만큼이나 소치도 한국인에게 감동적인 겨울 추억으로 남아 있다.

 젊은 선수들은 한국의 성취와 가능성을 몸으로 증명했다. 얼음 종목은 육상·수영·리듬체조보다 마찰력에서 자유로워 인간의 기예(技藝)를 더욱 뽐낼 수 있다. 그중 압권은 여자 피겨다.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여왕’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은메달을 걸었지만 그녀가 ‘역사의 금메달’이라는 건 세계 언론이 인정한다. 부당한 결과마저도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다.

 이번 대회에서 보듯 유럽 스케이트 선수들은 빙상의 지배자들이다. 그런 선수가 이상화를 ‘빙상의 우사인 볼트’라고 했다. 이상화는 물이 차는 무릎을 이겨내고 그런 신화를 만들었다. 그도 한국인이다.

 17세 여고생 심석희는 마지막 반 바퀴 역전 스퍼트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막내의 투혼에 자극 받아 언니 박승희도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다. 이들이 모두 한국의 신세대다. 팀추월 2위에 오른 남자 빙속, 컬링·스키·썰매에서 최선을 다한 ‘이름 모를 선수들’··· 이들이 모두 한국인이다.

 안현수는 8년 만에 ‘금메달 3개’를 다시 따냈다. 이는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이다. 국적은 러시아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아들이다.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자랐다.

 한국인의 ‘얼음 괴력’은 사실 뿌리가 있다. 1964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에서 북한의 한필화가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시아인이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건 한필화가 처음이다. 그 피가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낭자들에게 흘렀다. 한필화를 냈던 북한이 50년이 지난 올해 한 명도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이제 소치는 가고 평창이 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은 ‘반쪽 8년’이었다. 88은 자유·공산 진영이 모두 참가한 완벽한 올림픽이었다. 88 이후 세계엔 이념을 넘는 개방의 바람이 몰아쳤다. 소련과 동유럽권이 무너졌다. 88이 역사 변혁에 기여한 것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은 88 이후 30년 만이다. 88처럼 평창도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반듯하고 화합적이며 경제적인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소치의 ‘김연아 판정’을 나무라지만 사실 88때도 일부 판정 시비가 있었다. 평창은 달라야 한다. 남북한이 공동선수단으로 뛰면 평창은 화합과 통일의 ‘점프대’가 될 수 있다.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겨울올림픽으로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꼽힌다. 소치 예산의 5분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효율적인 올림픽을 만들어냈다. 평창은 고정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후 활용도를 철저하게 신경 써야 한다. 선수보다 못한 국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