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중앙 [사설] 문·이과 융합형 인재 양성이 해법이다

주요 대기업이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공채에서 인문계보다 이공계 출신을 압도적으로 선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공계 선호 흐름이 금융·통신·유통 등 산업계 전반을 관통한다고 하니, 반짝 현상은 아닐 성싶다. 기업은 이공계 출신을 필요로 하는데 대학은 인문계 출신을 더 많이 배출하는 현실에서, 당연히 미스매치(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를 풀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해 대학 구조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연히 정부는 시장과 대학의 인력수급 실태를 파악해 미스매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조업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성장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양질의 이공계 인재를 더 많이 양성시킬 필요도 분명 있다.

하지만 기업이 뽑는 신입사원의 전공이나 출신에만 치우쳐 인문계 출신은 취업이 안 되고, 이공계 출신이 경쟁력이 있다고 일반화하는 오류는 경계해야 한다. 그런 기계적인 연장선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학의 이공계 정원만 더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취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인문계열 정원을 축소하는 정책을 도입한다면 이 역시 근시안적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이공계를 졸업한 사람이라기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기초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갖춘 융합형 인재에 가깝다. 얼마 전 한 기업이 인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뽑은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십 년 이상 학교 현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문·이과 칸막이식 교육을 없애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기초언어인데도 우리의 학교는 문과와 이과를 갈라 외눈박이 교육을 해왔다.

 교육부가 올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중·고교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을 열어주는 열린 사고도 필요하다.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진로교육 또한 좀 더 융통성 있게 개선되어야 한다. 

조선 [사설] 서울대 총장 선거, 결국 '인기투표' 아닌가

서울대가 법인화 이후 간선제(間選制) 방식을 도입해 처음 치르는 총장 선거에 12명의 후보가 나왔다. 모두가 현직 서울대 교수이거나 서울대 교수를 지낸 사람이다.

서울대는 1991년 19대 김종운 총장부터 25대 오연천 현 총장까지 7명의 총장을 교수들 직접선거로 뽑았다. 그러나 직선제 아래선 대학 개혁을 이끌어갈 사람보다 유권자인 교수들의 인기를 얻는 사람이 총장으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교수·교직원들에게 복지 혜택을 더 많이 약속하고 교수 숫자가 많은 단과대학의 학맥(學脈)을 잡은 인물이 총장에 뽑히곤 했다.

서울대가 이번에 도입한 간선제도 투표권자가 전체 교수에서 총장추천위·정책평가단이라는 선거인단으로 축소됐을 뿐 뽑는 방식은 직선 때와 본질적으론 다를 게 없다. 서울대는 먼저 내부 인사 20명과 외부 인사 10명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다음 달 3일 후보 12명으로부터 10분 소견 발표와 10분 질의응답을 들은 후 후보를 5명으로 압축한다고 한다. 20분간의 예심(豫審)으로는 총장으로서의 그릇을 측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압축된 5명은 교수·교직원 244명으로 구성되는 정책평가단 앞에서 합동 연설과 정책 토론을 하게 된다. 그런 다음 총장추천위원회 점수 60%, 정책평가단 점수 40%를 합산해 최종 후보 3명을 선발하고 이사회가 3명 가운데 차기 총장을 지명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교수들의 연구·교육 성과를 독려하겠다는 후보보다는 그럴듯한 교수 복지를 약속하고 경조사를 잘 챙기는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높다.

미국 예일대는 작년 6월 레빈 전 총장의 후임을 고르면서 총장선발위원회 12명 위원들이 150명을 후보로 놓고 적격자를 발굴했다. 코넬대는 2005년 헤드헌팅 회사까지 고용해 150명의 후보를 뒤진 끝에 아이오와대학 총장을 새 총장으로 영입했다. 서울대가 직선제건 간선제건 교수 투표로 총장을 뽑는 제도를 계속 유지해서는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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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박 대통령 '아베 발언' 긍정 평가, 日이 더 이어갈 차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일제의 전쟁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에 대해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른바 고노 담화가 있다"며 "수정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終戰) 50주년인 1995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60주년인 2005년에 나온 '고이즈미 담화'를 거론하며 "이들 담화를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덜어 드리고 한·일 관계와 동북아 관계가 공고히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문제에 관한 특정 발언을 긍정 평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미국 국무부도 "환영한다. 긍정적 진전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요즘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회담 또는 한·일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예측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지만 한·일 관계 단절 상태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베의 이번 발언과 곧 이은 박 대통령의 긍정 평가는 한·일 관계를 풀어갈 외교적 단초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나 아베가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번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당장 풀릴 수는 없다. 아베는 이번에도 '이른바 고노 담화'라는 표현을 썼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취지를 전체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아베의 고노 담화 관련 발언이 나온 14일에도 '고노 담화 재검증' 입장을 거듭 피력했다.

아베 내각은 다음 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을 계기로 중국에 맞설 미·일 동맹을 과시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도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아베의 이번 발언 역시 그 일환(一環)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바마 순방 후 '아베의 일본'이 또 표변(豹變)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섣부른 한·일 관계 개선 조치는 한국민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 한국 정부와 한·일 관계 전체를 회복 불능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어렵게 운을 뗀 한·일 관계 개선의 기대를 계속 이어갈 책임은 일본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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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새정치민주연합, '낡은 야당'과 결별해야 미래 보인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16일 서울에서 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김한길 대표와 안 의원이 신당 창당에 합의한 지 2주 만이며 오는 26일 신당 창당 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신당은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했으며 국회의원 126명의 민주당과 2명의 안 의원 측이 지분을 5대5로 나눠 갖기로 했다.

지난 20년의 한국 야당사(史)는 선거용 신당을 주기적으로 만들어온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권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00년 '새천년민주당', 2004년 열린우리당,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2012년 민주통합당 등 총선·대선 등을 코앞에 두고 신당을 만들어 왔다.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정체 또는 급락(急落)이라는 위기에 내몰리자 선거용 정당 신장개업이라는 낡은 방식에 또다시 야권의 운명을 맡겼다.

기업가 출신인 안 의원은 한·미 FTA나 외교·안보문제, 복지 이슈 등에서 민주당과는 적잖은 견해 차이를 보여 왔다. 김한길 대표 역시 당내에선 중도적 인물로 평가된다. 양측은 이날 창당 발기문에서 '민주적 시장경제' '민생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비핵화와 평화통일 준비' 등을 내걸었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내놓은 게 없다. 신당의 이념적·정치적 정체성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태다.

김한길 대표는 발기인 대회에서 "신당 창당 발기는 2017년 정권 교체로 가는 대장정의 출발 선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야권 내에서조차 신당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당이 정말 '선거용 시한부 정당'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국민 주류(主流)의 생각에 접근해가야 한다.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선거'라던 2012년 총선·대선에서 패배했다. 좌파 정당과 선거 연대를 추진하면서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했던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도 반대하며 국민 다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결과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또다시 기존 야당의 낡은 정치와 투쟁 방식을 답습해서는 똑같은 실패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신당의 운명은 6·4 지방선거에서 1차적으로 판가름날 것이다. 신당이 과거 야당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선거의 성패(成敗)가 갈라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신당이 과거 야당들과 무엇이 다르며, 과연 나라를 맡길 만한 정당으로 변모했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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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고객 정보 유출, "2차 피해 없다" 큰소리친 장관들 책임져야

NH·KB·롯데카드 등 신용카드 3개 회사에서 1억400만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건에서 고객 정보가 외부로 2차 유출됐을 가능성을 일축했던 검찰과 장관들의 공언(公言)은 결국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검찰은 중간 수사 발표 두 달 만인 14일 1억400만건 개인 정보 가운데 8300만건이 외부로 다시 판매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출된 정보가 전화 문자 사기나 카드 위조 같은 범죄에 악용(惡用)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당초 정보를 빼내간 주범이 갖고 있던 원본 파일과 1차 복사 파일을 압수해 2차 유출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피해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대검찰청은 1월 21일 "추가로 유출된 것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틀 뒤 국회에서 "2차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고,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카드 소비자는 100%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다"면서 "신규 카드를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큰소리쳤다.

이번에 유출된 개인 정보는 고객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직장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자택 주소, 결제 계좌, 카드 유효 기간 등 21개나 된다. 이 정보들을 조합하면 위조 신분증을 만들 수 있어 은행 계좌번호를 바꿀 수도 있고 카드 비밀번호도 변경할 수 있다. 엉뚱한 사람이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고 대포 통장을 개설해 고객들이 3차, 4차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유출된 정보가 악용되고 있더라도 피해 고객은 어디서 누가 어떻게 악용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번에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에서 유출된 신상 정보와 뒤섞여 범죄에 이용됐을 경우엔 카드사에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사태를 덮는 데만 급급했던 검찰과 금융당국의 수장(首長)들에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는 고객들이 안심하고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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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檢, 뼈아픈 반성 해야지 漢詩 읽으며 여론 고민할 때인가

김진태 검찰총장이 12일 대검 간부 회의에서 '나그네는 맑은 하늘 원하고 농부는 비 오길 바라며 뽕잎 따는 아낙은 흐린 하늘 바란다'는 내용의 한시(漢詩)를 소개하면서 "각자 입장에 따라 바라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른 게 사람이고 인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총장은 그 전날 회의에서도 "달새의 머리는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고, 비새의 생각은 온통 다음번 비가 언제 내릴까 하는 것"이라는 인도 시를 읽었다.

지금 검찰의 최대 현안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다. 김 총장의 발언은 그 사건을 놓고 검찰 바깥에서 각자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빗댄 것으로 들린다. 야권은 국정원이 간첩 혐의를 억지로 입증하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며 책임자 문책과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정원의 증거 위조(僞造)는 그것대로 수사하더라도 간첩 혐의 부분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검찰이 실수로 삐끗하거나 편파·부실 수사를 했다는 빌미라도 잡히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총장의 한시 낭독은 그가 지금 바깥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무척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검찰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검찰은 바깥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더 초연하게 오직 법과 증거에만 입각해 사실을 규명하고 확인된 혐의는 기소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검찰 총수가 이런 눈치를 보느라 골치가 아픈 듯이 말하는 것 자체가 부하 검사들에겐 여론 동향(動向)을 읽어가면서 수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검찰총장은 최고 수사기관의 최고 책임자이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사 1900명의 대표이자 검찰 조직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위치라면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기색이 보일 때 원칙을 지키는 단호한 리더십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조직 전체를 확고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물론 어깨가 무겁고 고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간부 회의에서 시(詩)를 낭독하며 고민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적절한 처신인가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잘못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정원이 준 위조문서를 검증도 안 해보고 무슨 택배 상품 배달하듯 재판부에 냈다. "마약을 자주 했다"고 스스로 털어놓는 사람을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세웠다가 망신 당하기도 했다. 검찰은 외부 여론이 부담스럽다는 말을 하기 앞서 자신들이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연발(連發)했는지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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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신당, 합쳐놓고 나서 정강·정책 마무리하는 게 말이 되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추진 중인 통합 신당의 변재일 정강(政綱)·정책 분과위원장은 13일 "(창당 전에는) 양측이 합의한 정강·정책부터 발표하고 조율되지 않은 부분은 창당 후에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도 정강·정책도 확정하지 못한 채 당을 만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당은 '정치적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단체'이다. 정강·정책은 그 '정치적 주의나 주장'을 집약해 놓은 정당의 헌법(憲法)이다. 정당이 당원을 모으고, 선거에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가장 기초적인 근거도 이것이다. 그래서 통합 정당의 정강·정책이 어떤 모양이 되느냐는 큰 관심사였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지향점이 이질적인 게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 경제성장보다는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새 정치 플랜'을 통해 '성장 친화형 복지, 중(中)부담 중복지 사회 추구'를 내걸고 "복지 포퓰리즘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앞세우고 있는 '보편적 복지'는 새정치연합이 경계해왔던 '복지 포퓰리즘'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두 당이 달라도 상당히 다른 얘기를 해 온 것이다.

민주당은 여야 간 평가가 엇갈리는 6·15 남북 정상 공동선언과 10·4 남북 정상 선언을 '존중하고 계승한다'고 했지만 새정치연합은 '여야 합의가 가능한 대북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천안함 사건의 북한 책임 문제 같은 다른 외교·안보 현안들에 대해서도 두 당의 입장 차이는 적지 않았다. 두 당이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설명도 없이 무조건 합치기만 한다면 야합(野合)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식의 막무가내 연대(連帶)나 합당이 적지 않았다. 선거 때 표만 모으려고 한 시도들이다. 상당수가 성공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새 정치'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새 정치는 이런 선거용 '묻지 마 연대' 같은 것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새 정치'를 내세워 온 안철수 의원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안 의원은 엊그제 "새 정치 실현을 위해서라면 당내에서 치열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창당 일정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핵심 국가 쟁점에 대해 신당의 정책이 무엇이라고 국민에게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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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새누리당과 원희룡의 부끄러운 정치

원희룡 새누리당 전 의원이 우근민 제주도 지사의 제주도 지사 경선 불참 선언 하루 만인 어제 출마 선언을 했다. 아마 그의 ‘당내 투쟁’은 이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제주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청에 자신에게 절대 유리한 100% 여론 조사로 경선 후보를 정하지 않으면 불출마하겠다고 당을 압박해왔다. 한때 당내 개혁파로 인기를 누려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통령 꿈을 꾸기도 했던 유망주. 그런 그가 자신을 위한 맞춤형 특혜 경선 절차를 따내고, 유력 경쟁자를 탈락시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고 나서야 경선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중앙정치의 기득권을 지방정치 진출에 잘 활용한 결과, 지사 자리에 한발 다가섰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지방정치는 물론 중앙정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이명박 정부 때 다른 소장파·개혁파가 이 대통령의 실정을 견제하느라 고생하는 동안 이 대통령 직할이나 다름없는 사무총장을 맡으며 친이계로 전향한 데 이어 이 대통령의 요청으로 당대표 경선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건강한 당내 비판세력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당내 기득권을 위해 소진했던 그가 비정상적 정치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 그다지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새 정치 지도자의 등장이 아쉬운 한국정치에서 그렇게 정치적 성장이 멈추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는 그의 문제만은 아닌, 새누리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여야를 넘나들며 정당의 경계를 무너뜨린 우 지사를 영입한 건 겨우 4개월 전이다. 새누리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희롱 전력으로 민주당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신의를 제일 중요시한다, 민주당은 뿌리이자 정치적 고향”이라고 한 그를 영입했다. 우 지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도 “일을 할 때 지방정부의 버팀목이 절대 필요하다”고 환영했다는데 벌써 용도폐기다. 우 지사는 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때 유망했던 정치인이 지역정치에 진출하는 방식, 정당을 출세의 징검다리쯤으로 여기는 도지사, 비정상적 방법과 변칙을 써서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집권당. 지금 집권세력이 어떤 정치를 하고 있는지 지역 문제 하나를 살펴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경향 [사설]IMF도 분배를 얘기하는데 성장에만 집착할 건가

성장은 다수의 행복을 담보하는 수단인가. 분배는 성장의 부차적 결과물인가. 양극화의 해법은 뭔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런 질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엊그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소득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내놨다. IMF가 1945년 출범 이래 줄곧 성장을 중시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론이다. 

보고서 내용은 경청할 대목이 많다. 우선 지난 30년간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 특히 미국 등에서는 상위 1%의 소득만 크게 늘었다. 국가별 소득 불평등도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재분배 정책과 GDP 성장률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부의 편중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장률도 낮았다. 선진국에서는 사회보장·연금지급 등의 정책과 소득누진세 등을 적절히 섞어 시행함으로써 격차가 3분의 1로 줄었다. 재정위기를 겪은 유럽 27개국은 전반적으로 격차가 확대됐지만 여러 재정정책으로 3분의 2의 국가에서 확대 추세가 축소됐다. 반면 개도국은 소득하위층이 세제·사회보장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양극화가 심화됐다. 불평등 해소방법으로는 부유층 증세, 간접세보다는 직접세 인상, 저소득층의 교육·건강서비스 확대 등을 제시했다. IMF는 지난 2월에도 “소득재분배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불균형을 외면하는 것은 실수”라고 밝혔다.

양극화·불균형 문제가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라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마저도 “국가가 빈자와 부자 간 격차를 좁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힐 정도이다. 실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갔고, 일본의 아베 정권도 기업에 임금 인상을 주문하는 등 중·하층 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한국의 양극화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니계수는 OECD 34개국 중 6위이다. 양극화 속도는 아시아권 28개국 중 5번째로 빠르다. 금융위기 이후 5년 사이에 중간신용층 4명 중 1명이 제2금융권이나 사채를 써야 하는 저신용층으로 떨어졌다. 세 모녀 자살로 상징되는 허약한 복지체계가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성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으로 사회병폐를 해소할 수 있다며 연일 기업들을 위한 규제 완화만 외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문제는 성장론에 압도돼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양극화 해소의 출발점이 돼야 할 조세제도와 복지정책 정비는 세수 확충을 앞세운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 일관하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만 야기하고 있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분배구조는 국가 전체를 파탄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더 이상 재분배 문제가 성장론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쏟아지는 선심 대책… 정책 불신만 가중시킬 뿐

선거의 계절이다.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못지않게 정부의 움직임도 덩달아 바빠졌다. 근래에는 1주일이 멀다 하고 새로운 정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가히 정책 홍수를 연상케 할 정도다. 하지만 정작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설익은 대책을 내놨다가 1주일 만에 뒤집는가 하면 알맹이 없는 재탕 삼탕 대책이 쏟아지는데 오죽하겠는가. 정부·여당의 선거용 대책이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니지만 요즘은 사정이 자못 심각하다. 이런 졸속 대책이라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최근 한 달 사이 나온 정부 대책만 6건이다. 1주일에 거의 두 건꼴이다. 지난달 말 새 정부의 경제정책 구상을 담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그 출발점이다. 이후 전·월세 대책과 가계부채 경감방안,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 개인정보 보호대책이 줄줄이 나왔다. 제목만 봐서는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굵직굵직한 내용이다.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이 원인이 된 개인정보 보호 대책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유권자들의 표와 직결된 민생대책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부실투성이다. 정부의 전·월세 대책만 해도 인심 쓰려다 헛발질한 대표적 사례다. 월세 세입자들에게 한 달 치 월세를 소득공제 혜택으로 돌려주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임대소득 과세 방침으로 노령층 임대소득자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됐다. 결국 1주일 만에 보완책을 내놨지만 아직도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이후 내놓은 각종 경제대책도 겉포장만 요란한 속빈 강정이 대부분이다.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담은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선거용으로는 그럴싸해 보일지 몰라도 부작용이 너무 크다. 서민들이 기대했던 가계부채 대책은 변죽만 울린 채 빈껍데기만 남았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의 선심성 대책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지 규제를 해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선거 열기가 고조될 다음달엔 각 부처의 정책 공세가 더 노골화될 게 뻔하다. 국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해 새 정책을 개발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를 겨냥한 ‘아니면 말고’ 식의 섣부른 정책은 곤란하다. 정치권은 몰라도 정부마저 선거판에 휘둘리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나라 곳간 사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선심 대책을 남발하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다.

경향 [사설]휴대폰 보조금, 왜곡된 시장 바로잡을 해법 찾아야

단말기 보조금을 규정 이상으로 과다 지급해 시장을 혼탁하게 한 이동통신사들이 정부 당국으로부터 강도높은 제재를 잇달아 받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3사 모두에 45일간의 순차적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데 이어 방송통신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에 14일과 7일의 영업정지 및 과징금을 부과했다. 한 번의 잘못에 대해 두 기관에서 이중으로 처벌하는 사상 유례없는 고강도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당국에서 이통사 보조금을 제재할 때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갈래로 나타난다. 싼값에 단말기를 살 수 있도록 보조금 주는 것을 왜 제재하느냐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보조금의 원천이 결국 다수의 기존 가입자들이 내는 요금인 만큼 전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둘 다 일정부분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보면 보조금 하나만 떼어내 생각해서는 정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장 이번 제재로 곤경에 빠진 쪽은 이동통신망에 가입할 길이 막혀버린 소비자와 수입이 끊기게 된 영업판매점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이 이통사들은 영업정지 기간 동안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도리어 이득을 챙기기도 한다. 물어야 할 과징금이 수백억원이라고 해도 매월 요금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 몇 배에 달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써서라도 가입자를 뺏어오는 게 유리하다. 지금까지 수차례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어도 이통사가 끄떡도 않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당국의 제재가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시장이 뒤틀려 있는 것이다.

시장 왜곡의 책임은 이통사 못지않게 정부 당국에 있다. 보조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했다가 허용하고는 다시 규제하는 쪽으로 오락가락하면서 보조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시장 상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사업자 보호 위주의 요금정책으로 이통사들의 수입을 불려줌으로써 과열 마케팅을 방조한 측면도 있다. 시민단체의 원가 공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요금 인하 여지를 앞장서 차단한 것도 정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규제의 악순환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 그러려면 시장의 판이 새로 짜여야 한다. 이통사는 보조금이 아니라 요금으로 경쟁하고, 그 속에서 소비자 이익이 최대화될 수 있도록 시장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경향 [사설]‘1인 1포대’ 대북 비료 지원이 곧 통일 준비다

정부는 정치 문제와 분리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올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건전한 민간교류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실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최소 수준에 묶여 있다.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관례적으로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북측이 원하는 대북 지원과 사실상 교환 조건으로 이뤄져 왔지만, 상봉이 끝난 뒤에도 정부 태도는 변함이 없다. 대북 보복 조치인 5·24 조치를 우선시한 결과다. 인도주의 문제를 정치 문제와 분리한다는 원칙을 정부 스스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대표상임의장 홍사덕)의 ‘북녘에 100만포대 비료 보내기 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민화협은 시민을 상대로 한 사람이 비료 한 포대에 해당하는 1만2000원을 후원하는 운동을 펴겠다고 한다. 100만포대는 2만t 분량으로 200여개 협동농장 6만6000㏊에 뿌릴 수 있는 규모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수십만t씩 지원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정부의 비료 지원이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최대 민간조직의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화협은 남북 교류 및 화해, 통일이라는 목표 아래 여야 정당, 진보·보수의 종교·시민단체를 망라한 최대 규모의 범시민적 협의체다. 이런 민화협의 성격상 대북 비료 지원 운동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한 포대 한 포대 쌓아가는 것은 곧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정부의 비료 지원 허용은 물론 본격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이라는 정책적 전환도 가능할 것이다. 먼저 시민이 나서 비료 한 포대에 화해와 통일의 의지를 담아 보내자.

통일준비위원회까지 설치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면서 통일을 대비하는 정부라면 통일의 대상인 북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문제를 통일 준비의 우선순위에 두는 게 마땅하다. 대북 지원은 북한 사람이 남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북한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외면하면서 통일 준비를 한다는 건 모순이다. 정부는 비료 지원 운동에 호응해 대북 지원의 차단막을 거둬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노란봉투의 기적’이 던지는 메시지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긴급 생계·의료비 지원 등을 위해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이른바 ‘노란봉투 캠페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물어야 할 손배액인 47억원을 10만명이 나눠 내자는 취지로 한 주부가 4만7000원을 노란봉투에 담아 언론사에 보낸 일을 계기로 지난 2월10일 시작된 이 캠페인이 33일 만인 어제 1·2차 목표액 9억4000만원 모금을 모두 달성했다고 한다. 가수 이효리씨, 노엄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국내외 인사를 비롯해 시민 1만7757명이 참여해 이룬 성과다. 소박하게 시작된 모금이 커다란 울림과 함께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노란봉투의 기적’은 우리 사회의 온기를 확인하고 사회적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이고 소중한 사건이다. 미국 유학 중인 우주인 이소연, 배우 김부선, 영화감독 임순례, 만화가 강풀씨 등 유명 인사뿐 아니라 구순의 촌로, 6세 어린이, 교도소 재소자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보낸 노란봉투에는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온정과 불의·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이들이 단지 관심을 갖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직접적인 연대의 손길을 보낸 것은 그 의미와 영향이 간단치 않음을 말해준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자를 옥죄는 ‘흉기’나 다름없다. 자본과 공권력이 노조 파업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거액의 손배·가압류를 청구해 노조 활동과 조합원 생계를 파탄내고 그것이 노사 또는 노정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됐던 터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조직과 조합원에게만 1691억원의 손배가 청구돼 있고, 182억원의 가압류 결정이 내려져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서도 철도파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 청소노동자의 대자보에 대해서도 100만원 가처분을 청구할 정도로 손배·가압류의 남발은 여전한 현실이다.

손배·가압류를 노동 탄압의 도구로 삼고 있는 정부와 기업은 노란봉투 캠페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불법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도 손배·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이도록 한 대법원 판례와 이에 따라 기계적인 판결을 내려온 사법부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손배·가압류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된 상황에서도 관련 법령 개정 등에 소극적이거나 기피·반대하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노란봉투의 기적’은 이런 답답한 현실을 시민이 자각하고 공감과 연대의 길로 나섰다는 뜻이다. 정부와 기업, 사법부, 정치권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중국 송대(960~1126)를 대표하는 97명의 명신들의 언행을 주자학을 완성시킨 주자가 편집한 책.  나라를 잘 다스리는 요령과 처세술을 풍부한 일화를 인용하여 설명돼 있어 오랫동안 일본의 메이지천왕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필독서이다.

재상 범중엄(范仲淹)의 선우후락(先憂後樂)  지도자는 세상의 걱정거리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즐거움은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

재상 여몽정(呂蒙正)의 공평하고 적절한 인사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인사발령 때문에 각지에서 올라온 인재들을 면접할 때 꼭 그들의 장기가 무엇인지 물은 다음 수첩에 부서별로 분류하여 적어 두었다.또 여러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유능하다고 판단했다.

능력과 인격을 두루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라  장영은 사람을 천거할 때는 반드시 물러설 줄을 아는 사람을 천거하라.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란 진중한 사람을 말하며, 이와 반대로 경쟁심이 강한 사람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고 조직에 공연한 풍파를 일으키므로 피해야 한다.

원활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마음가짐  한기는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군자와 소인배를 구분하지 말고 성심껏 대해야 한다.소인배라고 해서 거부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하면 된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조화시켜라

명군 송 태종과 여몽정의 국가재산 횡령사건 처리  태종이 말했다.  "큰 피해가 없다면 너무 심하게 추궁하지 마시오."  여몽정이 동의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고,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치게 청렴을 강조하면 따르는 무리가 없는 법입니다."  

너그러움과 엄격함 사이에 균형을 잡아라  명신 소식(蘇軾)은 말했다.  "너그러우면서 두려움을 주고, 엄격하면서 사랑받아야 한다."   정치는 물론이고 조직을 관리할 때도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반성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유성기업 부당노동행위 재수사하라

15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을 지원하기 위한 ‘희망버스’가 15~16일 1박2일 동안 운행됐다. 전국 35곳에서 출발한 3500명의 시민이 97대의 희망버스에 나눠타고 모였다. 한진중공업, 밀양 송전탑 현장, 현대자동차 등을 찾았던 연대의 손길이 유성기업에까지 닿은 것이다.
유성기업은 ‘잠 좀 자자’고 요구했다가 긴긴 싸움을 하게 된 사업장이다. 야간노동을 없애고 주간 2교대제를 도입하자는 요구에 회사 쪽은 해고와 직장폐쇄, 손배가압류, 노조 파괴로 답했다. 농성에 돌입한 노조원들을 회사 쪽의 용역 깡패가 무참히 테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노조 파괴’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이 알려지기도 했다. 노조는 노조파괴 근거를 입증하는 수많은 자료를 공개했다. 두 차례 압수수색이 진행됐고 특별근로감독도 했다. 국정감사에도 올랐다. 하지만 3년이 다 되도록 달라진 건 없다. 노조원들은 회사 쪽으로부터 12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당하고, 별도로 국가한테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17명이 구속되고 27명이 해고되었으며, 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에도 사쪽은 11명을 다시 해고했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한 데는 검찰의 ‘기업 봐주기 수사’가 한몫을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말 유성기업을 포함해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오토모티브 등에서 벌어진 사업주의 불법 혐의에 대해 일제히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했다. 하지만 유성기업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 노동부 수사 등을 통해 창조컨설팅과 사업주의 노조 파괴 공작이 이미 사실로 드러난 상태였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창조컨설팅의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심종두 전 대표 등에 대해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소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사업주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범죄를 자문해준 자들은 처벌받는데, 범죄를 직접 실행한 사업주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우리 법이 검사에게 기소독점권을 준 것은 공정한 법집행자로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기울어진 판단을 내렸으니,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은 재수사를 벌이는 길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야당 일각에서 고용노동부에 독자 수사권을 갖는 노동검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한 예이다. 더 늦기 전에 검찰은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한-미-일 정상회담과 한국 외교의 과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참의원에서 역사인식과 관련해,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직간접적인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필설로 다 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매우 마음이 아프다. 이 점에 대한 생각은 나도 역대 총리와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역사 수정주의 입장에서 이전에 이뤄진 일본의 각종 과거사 반성 담화 등을 부정하는 언행을 해온 점에서 보면, 커다란 표변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중국의 견제와 북핵 문제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위해 한-일 관계의 개선을 주문해온 미국 정부도 아베 총리의 발언을 “긍정적 진전으로 생각한다”면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로써 24~25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핵안전보장 정상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제안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가 현안에 대해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미국의 압박에 억지로 협력 모양새를 취하는 듯한 모습은 개운하지 않다. 양국 모두 4월 중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현안을 미봉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이 고노 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담화의 수정 의지를 담은 담화 검증 작업은 계속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도 행동이 따르지 않은 말에 짜고 치듯이 즉각 환영을 표시한 것에서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이뤄진다고 해도 한-일 간 역사인식의 골을 쉽게 매울 수 없다. 우리 정부는 3자 회담에서 역사 인식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역사 인식 이외의 안보·경제 현안 등에 대해선 협의하는 자세를 취하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양자 차원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집요하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북한과 중국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 3국 간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과 북한 압박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지역 평화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절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한-미-일 정상회담을 계기 삼아 우리 정부가 나서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하는 한반도 외교를 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통일준비위가 ‘제2의 민주평통’ 되지 않으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출범하는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 이 기구를 진두지휘함으로써 ‘통일대박론’을 임기 중 중요한 ‘국정 브랜드’로 삼겠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한 셈이다.
통일준비위 신설을 두고는 이런저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통일부와의 업무 중복이나 ‘옥상옥’ 기구화 등에 대한 걱정도 있고, 대통령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 기구를 또 만들어 위원장을 맡는 것에 대한 냉소적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통일준비위가 어차피 출범하게 된 마당에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더욱 내실 있는 기구를 만들 방안에 생각을 집중하는 게 현실적인 듯하다.
우선, 통일준비위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기구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위원장을 박 대통령이 맡음으로써 통일준비위의 위상은 높아지겠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들러리 노릇이나 할 가능성도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이 좀더 다양해지고, 통일과 남북문제에서 박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고루 들어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통일준비위 설립 목적의 하나인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통일준비위 출범이 남북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위한 전기로 작용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내세우면서도 아직까지 남북 간의 신뢰 구축 등을 위한 어떤 구체적인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통일대박론이 단순한 구호나 국내 정치용에 머물지 않으려면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평화통일 기반 조성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 등 정부가 직접 하기 부담스러운 결정을 위원회를 통해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 위원장까지 맡으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통일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실천 의지가 확고하다면 북한을 고리 삼아 남한 내부를 갈등과 분열에 몰아넣는 종북몰이는 이제 중단돼야 한다. 통일 문제라는 게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종북몰이를 하는 것은 통일준비위 설립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1980년 신군부는 ‘국민의 통일 의지와 역량을 결집해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범국민적 통일기구’ 따위의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민주평통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기구가 지금 어떤 성격으로 전락해 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통일준비위가 제2의 민주평통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남재준 해임은 검찰 수사의 선결 요건

국가정보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 대해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양새만 보면 수사가 본궤도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검찰이 공식 수사로 전환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팀의 인적사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일 국정원 압수수색 때도 수사에 필요한 압수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철저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남 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국가 2급 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인물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자초했지만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지난 1년 동안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도 남 원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검찰 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하는가 하면, 소환된 직원들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기 일쑤였다. 심리전단 직원들 명단과 아이디, 게시글 활동 내역 등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지난해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일부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수사 비협조는 개인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남재준 원장의 지시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입회해 계속 국정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의 댓글 사건에 대해서도 이토록 철저히 방어막을 치는데, 자기 때 사건인 증거조작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중국대사관이 법정에 제출된 문서가 위조라고 밝힌 지난 한 달 동안 국정원이 내놓은 사과와 해명이 모두 발뺌과 꼬리자르기뿐이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사태 해결에 대한 실질적 조처는 하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직속 기관이며,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남재준 원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국정원 직원들은 계속해서 수사를 방해할 것이며, 검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진실규명을 원한다면 남 원장을 해임해야 한다. 그게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첫 번째 선결요건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남 원장 경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또다른 수사 방해일 뿐이다.

한겨레 [사설] 민간의 ‘북한 비료 보내기 운동’까지 막으려는 정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지난 13일 서울 사직공원에서 열기로 했던 ‘북녘에 비료 100만포대 보내기 운동’ 선포식이 당일 아침에 갑자기 연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홍사덕 의장은 ‘준비가 미흡해 선포식만 미룬 것’이라고 했지만 정부가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화협 쪽은 선포식과 무관하게 비료 보내기 운동을 시작해 13일 오후 6시까지 7만3000여포대를 후원받았다고 14일 밝혔다.
민화협은 200곳 가까운 사회단체와 정당이 참가한 대표적인 통일운동 상설협의체다. 1998년 결성돼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 관련 담론 형성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계획한 비료 보내기 운동은 4월까지 ‘국민 1인 1포대(20㎏), 1계좌 1만2000원’씩 모두 100만계좌를 모으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렇게 남쪽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원하는 것은 북쪽의 식량난 해소는 물론이고 통일 기반 조성에도 도움이 된다. 본격적인 농사철에 맞춰 지원이 이뤄지려면 애초 일정대로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
정부가 제동을 건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비료 지원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비료 지원은 인도적 사안 외의 모든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을 제한한 5·24 조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자세가 아니다.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이뤄진 뒤에도 남북관계가 냉랭한 것은 정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비료나 쌀 지원을 대북 제재 차원에서 다루거나 핵 문제 진전 등과 연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정부 차원에서 해마다 30만t 정도의 비료를 북쪽에 지원해왔다. 민화협이 계획한 양은 그것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14일 앞으로 출범할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을 대통령이 직접 맡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통일대박’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보이는 모습은 실질적인 통일 기반 조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남북 교류·협력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통일만 얘기한다면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으로 의심받을 뿐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모든 대북 교류·협력 통로를 독점하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잘못이다. 통일은 정부 사이의 협상으로 갑자기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의 통일도 활발한 교류·협력이 밑거름이 됐다.
정부는 민간의 대북 교류·협력 움직임을 막을 게 아니라 최대한 지원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 조처 해제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판사 출신이 방통위원장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가 곧 끝나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후임에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14일 내정했다. 이 위원장이 친박계의 중진 정치인인데다 정권교체 뒤 퇴임한 이계철 전임 위원장이 남긴 1년여의 임기를 채우는 식으로 임명됐으니 예상 밖의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원장도 발표 직전까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문책성 경질 인사의 성격이 짙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보장하며, 방송과 통신의 균형발전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다는 방통위의 설립 목적에 견줘 볼 때, 이 위원장의 방통위가 특별하게 한 일이 없는 건 사실이다. 특히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뉴스 9’가 통합진보당 보도를 편파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당하고,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5·18 북한군 침투’ 등의 날조·저질 방송이 기승을 부리는 등 가장 중요한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후임에 내정된 최 부장판사가 방통위를 이끌어갈 적임자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청와대는 한국정보법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관련 전문성과 경험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성품이 곧다는 점을 인선 배경으로 설명했으나,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방송이나 통신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최 내정자의 솔직한 말이 신선하게 들린다.
결국 방송·통신 분야의 문외한인 법률 전문가를 방통위원장에 내정했다는 얘기인데, 방송의 본질인 공정성에 대한 방통위의 관심은 더욱 옅어질 게 뻔하다. 방통위가 언론의 특정 분야로서 방송·통신을 다루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일종의 언론 및 언론계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방통위 업무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빼면 기술이나 경쟁력 등 산업적 측면의 일만 남게 되는데, 이는 마음 수련은 신경 쓰지 않고 몸매 관리만 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정홍원 국무총리,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황찬현 감사원장에 이어 방통위원장까지 법조인 출신이 줄줄이 요직에 등용되는 인사 편중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방통위 산하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도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씨가 맡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방송·통신 분야의 전문성도 없고, 사회적으로 위화감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번 인사를 재고하기 바란다. 방통위원장 자리는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인사를 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