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5일 금요일

양심 영혼 없는

언론과 기자가 본분을 망각하면

  사회의 흉기로 전락한 언론을 성토하다보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언론의 주체이면서도 '언론'이라는 통칭 뒤에 가려진 기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기자들은 지금 무엇으로 사는가?

  박봉에다 극심한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으로 이직하는 이들도 적잖지만 아직은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가족 현장을 지키는 기자들이 더 많다.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을 주는 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치열하게 살아온 '기자'의 역사는 현재도 면면하다. 

  "지금 기자들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으로 기자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직업인으로서 기자의 자부심이 다른 직업인보다 유별난 것은 기자라는 직업이 지닌 태생적인 '힘' 때문인 것 같다. 기자가 쓴 기사는 기자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게 마련이다. 특정 대상의 운명을 가르기도 하고,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가 하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기자가 그런 힘을 '힘'으로 의도해 이용하는 순간 기자는 이미 또 하나의 '권력'이요, '기득권'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자부심, 때로는 특권의식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고 본다. 

  기자들도 자기 기사가 정치인ㆍ기업인ㆍ관료에게 미치는 파괴력을 잘 알고 있다. 기사 하나로 특정인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고 크게 띄워줄 수도 있다. 그래서 기자들에겐 보도 관련 청탁이 수시로 밀려든다. 취재원 입장에선 언제 부탁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 평소에 친분을 다져 놓으려 하게 마련이다. 기자와 취재원 간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이유다. 다른 직종으로 이직한 전직기자들, 특히 기업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전직기자들이라면 기자의 위상을 새삼 실감할 것이다. 기자들이 자부심(때로는 특권의식)ㅇ르 갖는 일차적인 연원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갑의 권력'이다. 원래 언론과 기자는 윤리의식과 자기성찰, 취재원과의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통해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기자들이 '갑의 권력'에 익숙해지고 만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기자가 이렇게 '갑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하면 그 기자가 생산하는 기사의 '진실'은 생명 없는 수사에 그치고 만다. 기사에서 '진실'이 박제되면 당연히 언론과 기자는 신뢰를 상실한다. 신뢰를 잃은 언론과 기자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대한민국 수구기득언론과 그 기자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언론의 양심을 팔고 기자의 영혼을 팔아왔다. 

  수구기득언론은 겉으로는 서민의 삶을 걱정하면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 바로 그 '서민'을 앞세워 정부의 정책을 물어뜯는다. 앞에서 예로 든 종부세도 그렇다. 부동산 부자들 투기행위 자제시켜서 서민들 내집마련 좀 쉽게 해주자는 게 종부세의 근본 취지 아니던가. 그런데 수구기득언론은 여기에다 대고 '세금폭탄론'을 퍼부었다. 그것도 '서민ㆍ중산층'의 이름으로, 팩트는 "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전체 가구의 상위 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부세는 서민ㆍ중산층 부담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득"이라는 것이다. 이런 엄연한 팩트는 쏙 빼버리고 "세금폭탄으로 서민ㆍ중산층 다 죽인다"고 했다. 

  양극화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정부가 양극화 의제를 제기하자 이를 곧바로 증세 논란으로 등치시키고 서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실제 증세 여부를 떠나 현실은 자영업자나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소득세와 상관없는 처지다. 이들 신문은 "자영업자 중 상위 10퍼센트가 90퍼센트의 종합소득세를, 봉급생활자 중에는 상위 10퍼센트가 75퍼센트의 종합소득세를 부담한다"는 팩트를 외면하고 '양극화 극복=증세=국민부담 가중'으로 일반화하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수구기득언론은 입으로는 '서민'을 위한다면서 실제로 정부가 복지 정책을 확대하자 "부자들 주머니 털어 가난한 사람들 배불리자는 수작" "분배에만 올인하여 다 같이 못살자는 것"으로 비난하고 여론을 호도했다.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확충에도 불구하고 아직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 후진국인 우리의 현실에는 입을 닫은 채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탁하는 병든 인간을 만들기 바쁘다" "한번 복지에 중독된 국민은 제 결심만으론 복지의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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