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조선 [사설] 국민연금, 株主權 휘두르기 전에 '정치로부터 독립' 확보를

국민연금이 횡령·배임 같은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는 물론 대주주의 전횡을 눈감아준 임원에 대해서도 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했다. 특정 기업에 10년 이상 재임하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의 연임(連任)에도 제동을 걸겠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말 현재 8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간판 대기업들의 1대 주주나 2대 주주로 올라 있고, 5% 이상 지분을 소유한 상장 회사도 218곳이나 된다. 국민연금이 맘먹고 의결권을 행사하면 국내 기업 경영에 큰 파란을 불러올 수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 성과는 국민 대다수의 노후(老後) 보장이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 총수의 비리에 책임을 묻고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잘못된 경영 행태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네덜란드 공무원연금 등 외국의 많은 공적(公的) 연금은 오래전부터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주주 권리를 행사하려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독립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기업이 정권에 밉보였다거나 실력자의 눈 밖에 나 보복을 당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포스코·KT·KB금융지주 같은 민간 기업의 최고 경영인과 사외이사 인사까지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나서면 민간 기업 인사와 경영에 정부 개입이 훨씬 심해질 게 뻔하다. 정치권과 이익 집단들이 대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완력(腕力)을 끌어들이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비롯, 연금기금운용위원회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교체됐다. 이번 정권 들어서도 국민연금의 어느 인사가 누구 줄을 잡고 내려왔다는 잡음이 무성하다. 국민연금이 실제 주인인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춰 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조선 [사설] '日의 3분의 1 크기 운동장'은 청소년 人權의 문제

한국교육개발원의 '한·일 중학교 공간 구성 비교 연구'에서 우리의 중학생 1명당 운동장 면적이 13.4㎡로 일본(38.9㎡)의 34.4%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중학교 운동장은 고작 축구와 100m 달리기가 가능한 반면 일본 학교들은 축구, 테니스, 야구 등 여러 스포츠가 가능하게 조성돼 있다는 것이다.

운동장이 아예 없는 학교가 서울에만 4곳, 전국적으론 12곳이다. 서울 종로구의 어느 초등학교는 길이 22m, 폭 9m의 인라인스케이트장 하나 달랑 있을 뿐이다. 선진국에선 운동장부터 확보하고 나서 학교를 짓지만 우리는 땅을 구하기 어렵다고 운동장이 없어도 학교를 세울 수 있게 했다. 교실·강당이 모자라면 운동장 한 귀퉁이를 잘라 건물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약골(弱骨)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09년 중학생의 64.9%가 한 종목 이상 운동부에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초·중·고교생의 스포츠클럽 참가율은 27.4%에 불과했다. 고교생 신체 능력 검사에서 체력 수준이 가장 낮은 5등급 비율이 2001년엔 11.3%이던 것이 2010년 19.2%로 늘었다.

아이들에게 숨이 차도록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 복지이자 청소년 인권(人權)에 관계된 문제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매일 운동하게 하면 수업 집중도가 높아져 성적이 향상되고 남을 배려하는 인성(人性)이 길러진다는 연구도 많다. BMW·아우디 같은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몰려 있는 바이에른주(州)는 '오후 1시부터 운동하기' 캠페인을 벌여 1991년 116곳이던 학교 클럽팀을 2007년 2215개까지 늘려놨다. 청소년의 스포츠 활동이 세계에서 가장 조직력이 강한 제조업체들을 키우는 기반(基盤)이 되고 있다.

학교마다 탈의실·샤워실을 갖춘 체육관·수영장까지 제공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음껏 달리고 뒹굴 수 있는 운동장만이라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경향 [사설]이주민을 ‘타자’로 서술하는 사회교과서

한국인의 삶은 ‘우리’라는 무리 속에 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떠난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자리매김된다. 단일 민족주의 신화가 그렇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그렇고 ‘우리끼리’의 문화가 그렇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 한국인’이라는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내용의 칼럼 집을 내면서 책 제목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 붙였다. 이방인의 눈에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이고, ‘우리’에 끼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한국사회의 타자(他者)일 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사회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조대훈 교수)이 고교 사회교과서 5종을 ‘글로벌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분석해 교육부에 제출한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고교 교과서는 사회적 소수자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 즉 외국 출신 거주자들을 암묵적으로 타자화(他者化)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 습득과 생활방식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민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동일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교육적·사회적으로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A교과서) “다문화 가정의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층에 속하며 언어 및 문화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B교과서)

이런 내용은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교육을 하는 교과서라면 현상에 대한 서술에 그치지 말고 그 같은 현상을 부른 원인과 배경, 이주민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런 물음이 생략되면 이주민의 부적응과 실패를 특정 소수자 집단의 무능력 또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인식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 초기 부적응 현상에 대한 일방적 서술이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교과서는 청소년들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교과서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진다. 이주민들에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비쳐지지 않으려면 교과서부터 변해야 할 것 같다.

경향 [사설]박 대통령,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박 대통령은 1년 전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겠다”면서 ‘민생 대통령, 국민대통합 대통령, 약속 대통령’을 다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1년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했고, 특히 민생과 대통합,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의 초상은 초라하다. 우선 민주주의의 후퇴가 심대한 지경이다. 무엇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와 정치개입이 자행되고, 이에 대한 엄정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음으로써 초래된 결과다. ‘공안’이 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도 퇴행적이다.

둘째로 대선 기간 내내 기치로 내건 대통합이 실종되고, 사회분열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분열은 ‘종북몰이’ 등으로 편을 가르는 낙인과 배제의 정치, ‘나만이 옳다’는 독선의 정치를 통해 배가됐다. 통합이 훼손된 것에는 인사실패의 책임도 크다. 나 홀로 ‘수첩인사’로 시종하면서 인사파행이 반복되고, 특히 탕평의 가치가 실종되면서 지역편중이 심화됐다. 셋째, 원칙과 신뢰를 상징자본으로 삼는 박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대거 파기·후퇴시키면서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 넷째, 경제의 영역에서 경제성장률과 무역흑자 등 지표상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불안하고 고단한 민생’을 푸는 데는 미흡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지적하는 전세 대란과 가계부채 등이 대표적이다.

취임 1년,박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대선 득표율을 웃돈다. 그러나 이게 성적을 보증하는 건 아니다. 긍정 평가의 대부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견인되는 것이고, 내치 부문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일반 국민이나 전문가들 공히 소통, 통합, 인사, 국정원 사건 대응 등을 잘못한 분야로 꼽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특히 세대와 지역에 따라 국정 평가가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사회분열의 고착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을 팽개치고 분열을 방치하고는 국정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통일대박론을 실제 ‘대박’이 되도록 만들어가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국민통합, 사회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맞다/틀리다’가 아니라 ‘네편/내편’이 절대 기준이 되는 극한 분열 속에서는 어느 하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 집권 2년차를 맞는 박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통합의 리더십인 이유다. 통합의 길은 독선을 버리고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며, 정치적 반대세력과의 적극적 소통 노력 속에서 조성된다. 반쪽의 소통에 머물고 절반의 지지에 자족하면 결국 ‘반쪽 대통령’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벼려야 할 때다.

경향 [사설]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로 황제경영 폐해 막아야

올해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주된 변수로 등장했다.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문제 있는 기업 이사진 구성에 반대표를 적극 행사하는 쪽으로 관련 지침을 개정키로 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자기 뜻대로 주총을 치러온 대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시장경제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너무 당연한 얘기다. 기업 총수 1인이 좌지우지해온 이른바 황제경영의 폐해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국민연금 지침 개정안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핵심이다. 우선 횡령·배임 행위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사는 물론 이를 막지 못한 이사진도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번 반대 대상에 포함되면 최소 3년간은 이사 선임이 제한된다. 10년 이상 재직했거나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인 ‘거수기’ 사외이사도 반대표 행사 대상이다. 경영진 감시 기능이 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총 전에 국민연금의 결정 사항을 일반 주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80조원 이상을 주무르는 기관투자가의 맏형이다. 삼성전자 7.4% 지분을 갖고 있어 오너인 이건희 회장보다 2배 이상 많다. 포스코와 KT, 네이버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다. 그간 재무적 투자가 역할에 그쳐 주주권 행사는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업의 투명성은 투자 가치와 직결돼 있다. 최고경영진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데 기업의 주가가 오를 리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국민연금이 기업 투명성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대기업 총수의 독단경영을 견제할 곳도 따지고 보면 국민연금뿐이다.

재계도 경영권 문제만 나오면 쌍수 들고 반대할 일은 아니다. 비리 경영진을 계속 묵과해달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최대주주다.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을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회장 바꾸라’며 기업 일에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를 피하려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우크라이나 사태, ‘평화·민주·통합’이 중요하다

10년 전 오렌지혁명(시민혁명)으로 주목받았던 우크라이나가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다.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수도를 떠나고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으나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동남부 지역의 반발이 우려된다. 자칫하면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러시아 성향과 비민주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자유무역협정 등 유럽연합(EU)과의 포괄적인 협력협정 체결 노력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발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강한 압력이 있었으며, 경제난을 겪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150억달러를 지원받기로 했다. 이후 시위가 이어지다가 야누코비치가 며칠 전 발포를 허용해 10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정책 노선의 차이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풀지 못한 무능력이 유혈사태의 주된 원인인 셈이다.
야누코비치가 떠났다고 해서 사태가 쉽게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야권이 독주할 조짐을 보이면서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은 경계심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과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큰 변수다. 서방 나라들에는 이번 일을 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보고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적잖다. 러시아도 지난 10여년 동안 강화해온 자국 중심의 블록에서 우크라이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과 가스관의 90%가 지나가고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큰 위기로 치닫지 않으려면 어떤 나라든 무력 개입을 시도해선 안 된다. 이는 특히 러시아에 해당한다. 만약 프랑스만한 크기에다 인구가 4500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사태 해결에 필수적이다. 또 민족적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자제하고 국민통합 유지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및 유럽연합과 공통으로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핀란드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각국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섣부르게 개입하려 하다가는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한겨레 [사설] 흐지부지된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되살려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핵심 공약의 하나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는 이제 정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1년 만에 경제민주화 공약을 사실상 폐기한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경제민주화 대신에 슬그머니 ‘경제활성화’를 앞세운다.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도 성장 우선을 강조하며,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을 우려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는 대선 후보 때 국민에게 직접 한 말들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이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고,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성장만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민 삶을 돌보지 않았다”며 “강력한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성장 위주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의 입법 성적은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인데 박근혜 정부는 성장을 더 중시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접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 완화를 부르짖더니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처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법안까지 추진했다.
흐지부지되기는 복지 관련 공약도 마찬가지다. 기초연금의 경우 선거 때는 박 대통령이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소득 하위 70%까지만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 쪽으로 축소됐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은 인수위 시절부터 수정됐고, 2014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겠다던 공약도 예산 제약으로 대상이 대폭 줄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는 사회통합과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한 정권으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다시 경제민주화 정책을 되살리고, 복지공약 역시 구체적인 시행계획과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해 임기 안에 마무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집권 2년차엔 국민통합 이뤄주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로 취임 1년을 맞았다. 5년 임기의 대통령에게 집권 첫해는 임기 전체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실망스런 한 해였다. 지난 1년 동안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향후 4년을 제대로 준비했는지도 의문이다.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한 이른바 ‘개국공신’ 30명에게 지난 1년에 대한 평가를 물었더니 13명이 인사 분야의 잘못을 꼽았고, 소통 부족을 지적한 이도 10명에 달했다. 이어 8명이 잘못한 분야로 경제를 꼽았다. 가장 잘된 분야로는 30명 중 21명이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꼽았다. 이어 6명이 ‘비정상의 정상화’ 슬로건을 통한 개혁작업을 들었다.
집권세력 내부의 평가는 일반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나홀로 인사’ ‘불통 정부’로 요약되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가 “경제, 복지와 달리 국민통합은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면 되는데 요즘엔 선거 때 표를 의식해 말로만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쉽게 말해, 박 대통령이 지난 1년간 국민통합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유력지 <마이니치신문>은 박 대통령의 ‘제왕정치’가 사회를 이분했다고 평했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기대에 못 미친 점이 많았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동북아 외교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지지부진했다. 주변 4강 외교 역시 실리와 원칙을 함께 챙기는 유연성을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들은 집권 2년차의 최대 과제로 민생과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30명 중 21명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현 정부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답했다. 국민대통합(8명)이 그 뒤를 이었다.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것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고유 업무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책을 세우고 유능한 인재를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 또 갈등을 줄이고 통합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역시 필수적이다.
2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에게 국민이 바라는 것은 한결같다. 좀더 국민과 소통하고 합리적인 인사를 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아달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와 민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해 남북이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통합형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집권 1년에 즈음한 박 대통령 지지율은 대략 50%를 웃돈다. 이는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노년층과 보수층의 굳건한 지지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자신감을 가지고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동안 그에게 비판적이었던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집권 2년차를 맞아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에 매진해주기 바란다.

중앙 [사설] 푸틴의 우크라이나 대응을 주목한다

동유럽의 우크라이나가 동과 서의 국가 분열 위기에 빠졌다. 친유럽의 서부를 거점으로 한 야권 세력이 유혈 시위 끝에 22일 의회를 장악한 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동부를 지지 기반으로 삼아 친러시아 정책을 펴왔다. 그가 지난해 11월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협정을 파기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고, 지난주에는 정부 발포로 8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 21일에는 야권과 정부 간에 대선 조기 실시 등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야권이 대통령의 즉각 퇴임을 요구하면서 합의는 하루 만에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시위대는 수도 키예프의 주요 정부 시설을 장악했고, 급기야 야누코비치는 대통령궁을 떠나 동부 러시아 접경으로 피신했다. 야권에선 2004년 민주 시민혁명(오렌지 혁명)의 주역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풀려나자마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부와 야권의 극적 반전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최악의 경우 내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점이다. 현재 친유럽과 친러시아 세력에 의한 2개의 권력이 양립하고 있는 데다 동부와 서부가 언어와 종교의 차이로 사실상 분단돼 있기 때문이다. 서구 언론에서 우크라이나가 자칫 옛 유고 연방처럼 분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러시아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선 서유럽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가장 큰 변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소치 올림픽 이후 어떻게 나올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생명줄이다. 최대 에너지 공급국이고, 150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관련 당사국은 자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의 혼란에 빠지지 않고 민의에 바탕을 둔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중앙 [사설] '낙하산 근절' 발표 직후 또 낙하산 … 국민을 놀리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또 불거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정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 기획재정부가 낙하산 근절 대책을 내놓겠다며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 게 지난 20일이다. 그 자리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유관 업무 경험 5년 이상으로 공공기관 사장·감사 선임 자격을 제한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래놓고 보고 하루 만인 21일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내려보냈다.

 이 신임 사장은 검사 출신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의 경선대책위원회 인천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전기안전공사 업무와 관련된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전기안전공사가 속한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활동 경력이 전부다.

 어디 그뿐인가. 어제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에 홍표근 전 선진통일당 최고위원을 임명했다. 한국동서발전 감사 자리도 강요식 동국대 겸임교수에게 돌아갔다. 정치권 출신인 두 사람 역시 대표적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홍 신임 감사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원회 공동여성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육사 출신의 강 신임 감사는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고, 지난 대선 땐 새누리당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자문위원장을 맡았다. 대선 전 『박근혜 한국 최초 여성대통령』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상임감사는 공공기관의 비리와 부패, 방만 경영을 감시·감독하는 자리다. 감사와 사장이 낙하산으로 채워져 노조와 밀약하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은 엉뚱한 사업이나 공공기관 귀족노조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게 된다.

 낙하산 근절이야말로 국민 지지를 얻고 노조 반발을 잠재워 공공기관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말로는 공공기관을 철저히 개혁하겠다면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낙하산 근절 대책 서류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줄줄이 낙하산을 내려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야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를 누가 믿겠나. 애초 낙하산 근절 대책이란 게 ‘여론 무마용’이었다는 사실만 자인한 꼴이다. 

중앙 [사설] 소치 '얼음 괴력' 을 평창에서도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났다. 물러가는 겨울과 함께 소치도 역사 속으로 갔다. 4년 전 밴쿠버만큼이나 소치도 한국인에게 감동적인 겨울 추억으로 남아 있다.

 젊은 선수들은 한국의 성취와 가능성을 몸으로 증명했다. 얼음 종목은 육상·수영·리듬체조보다 마찰력에서 자유로워 인간의 기예(技藝)를 더욱 뽐낼 수 있다. 그중 압권은 여자 피겨다.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여왕’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은메달을 걸었지만 그녀가 ‘역사의 금메달’이라는 건 세계 언론이 인정한다. 부당한 결과마저도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선수가 한국인이라는 게 놀랍고 자랑스럽다.

 이번 대회에서 보듯 유럽 스케이트 선수들은 빙상의 지배자들이다. 그런 선수가 이상화를 ‘빙상의 우사인 볼트’라고 했다. 이상화는 물이 차는 무릎을 이겨내고 그런 신화를 만들었다. 그도 한국인이다.

 17세 여고생 심석희는 마지막 반 바퀴 역전 스퍼트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막내의 투혼에 자극 받아 언니 박승희도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다. 이들이 모두 한국의 신세대다. 팀추월 2위에 오른 남자 빙속, 컬링·스키·썰매에서 최선을 다한 ‘이름 모를 선수들’··· 이들이 모두 한국인이다.

 안현수는 8년 만에 ‘금메달 3개’를 다시 따냈다. 이는 겨울올림픽 사상 처음이다. 국적은 러시아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아들이다.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고 자랐다.

 한국인의 ‘얼음 괴력’은 사실 뿌리가 있다. 1964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에서 북한의 한필화가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시아인이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건 한필화가 처음이다. 그 피가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낭자들에게 흘렀다. 한필화를 냈던 북한이 50년이 지난 올해 한 명도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이제 소치는 가고 평창이 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은 ‘반쪽 8년’이었다. 88은 자유·공산 진영이 모두 참가한 완벽한 올림픽이었다. 88 이후 세계엔 이념을 넘는 개방의 바람이 몰아쳤다. 소련과 동유럽권이 무너졌다. 88이 역사 변혁에 기여한 것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은 88 이후 30년 만이다. 88처럼 평창도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반듯하고 화합적이며 경제적인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소치의 ‘김연아 판정’을 나무라지만 사실 88때도 일부 판정 시비가 있었다. 평창은 달라야 한다. 남북한이 공동선수단으로 뛰면 평창은 화합과 통일의 ‘점프대’가 될 수 있다.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겨울올림픽으로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꼽힌다. 소치 예산의 5분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효율적인 올림픽을 만들어냈다. 평창은 고정투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후 활용도를 철저하게 신경 써야 한다. 선수보다 못한 국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조선 [사설] 박 대통령, '올해가 마지막 해' 각오로 승부 걸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지금 대통령 지지도(한국갤럽)는 56%로 대선 득표율 51.6%를 웃돈다. 국민 평가가 박하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1년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선 딱히 무어라고 잡히는 것이 없다는 평가 또한 적지 않다.

박 대통령에겐 4년의 임기가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내후년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돼 있어 내년 후반기부터는 국정에 정치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엔 총선 결과와 대선 향방에 따라 정국이 어떻게 요동칠지 알 수 없다. 결국 박 대통령이 '선거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시기는 사실상 임기 2년차인 올해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선거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은 당장은 인기가 없고 저항 세력이 버티더라도 나라와 사회의 장래를 위해선 꼭 해야 할 일은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 구조 개혁이란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지금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로 세계의 돈이 다시 선진국으로 몰리고,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등 통상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선제(先制) 대응하지 못하면 이런 세계적 구조 변화의 시기에 패자(敗者)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 구조 개혁은 필연적으로 구(舊)체제에서 이익을 누리던 집단의 반발을 부르게 된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박 대통령 2년차의 성공은 이 반발을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달려 있다.

장차 우리 경제의 몸통까지 해칠 수 있는 잠재적 병인(病因)으로 공공 부문을 꼽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공공기관 300여 곳의 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56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공기업들이 해마다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비정상 행태를 거듭하는 것은 스스로 개혁할 동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공기업 개혁은 정권이 명운을 걸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국민이 볼 때 모든 면에서 공기업 노조보다 정부의 말과 행동이 정당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대선 공신(功臣)을 낙하산 인사로 내려보내 공기업 개혁을 하기 어려운 것은 그 정당성과 설득력이 시작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소통 부족'이란 지적에 잘 동의하지 않고 있다. 원칙을 허무는 타협이나 상황 악화를 부를 것이 뻔한 만남은 곤란하다는 대통령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원칙은 지킬 수 있는 타협, 상황 개선을 이끌 수 있는 만남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올해는 정권의 성패(成敗)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박 대통령은 '2년차가 임기 마지막 해'라는 각오를 갖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끈 풀린 신발을 신고 달리려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될 것이다.

조선 [사설] 평창의 시간이 시작됐다

오늘 새벽 러시아 소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폐회식에서 이석래 평창군수는 올림픽 대회기를 전달받았다. '평창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강원도 평창과 정선·강릉에서 열린다.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인 100개국 내외의 선수·임원, 보도진 등 2만6000명이 평창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 올림픽은 특성상 선진국들의 잔치였다. 개최국도 일본을 빼면 모두 유럽·북미 국가들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우리는 88 서울 하계올림픽을 통해 세계무대에 사실상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26년 만에 G20 회원국이자 GDP 세계 15위의 중견 국가로 성장한 모습으로 동계올림픽까지 열게 됐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 개최국이고, 세계 8번째로 하계와 동계올림픽을 다 치르는 나라가 됐다. 평창올림픽은 우리 역사에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겨울 스포츠 역량이 과연 올림픽까지 열 수준에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 선수는 2010년 밴쿠버에서 우승한 뒤 이명박 대통령에게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를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으나 전용 링크는 아직도 없다. 썰매 등 많은 종목 경기장이 우리나라에는 처음 세워지는 것들이다. 경기력도 몇 종목을 제외하곤 모두 세계 중하위권이다. 특히 겨울 올림픽의 주무대라고 할 스키 종목에서 우리는 여전히 불모지(不毛地)에 가깝다. 개최국이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경기력과 국민 관심이 한쪽에만 편중돼 있던 개최국은 없었다. 앞으로 4년 동안 겨울 스포츠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러시아는 소치 대회 준비에 54조원을 썼다. 우리에겐 그런 여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1932년과 1980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는 상당수 기반 시설을 변형(變形) 가능한 조립식 건물로 만들었고, 각종 레포츠 시설을 함께 만든 덕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휴양 도시로 거듭났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도 각국 선수들의 전지훈련지로 각광받고 국제 대회 개최가 끊이지 않는다. 평창올림픽의 13개 경기장과 선수촌 등은 대부분 올봄 공사에 들어가 2016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자칫하면 올림픽 후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시설들이다. 강원도를 아시아 동계 스포츠의 대표 클러스터로 육성하는 전략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소치올림픽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금메달 지상주의와 같은 좁은 생각들이 바뀌고 있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이제 우리도 억지로 무언가를 과시해야 하는 그런 수준은 넘어서고 있다. 평창올림픽 준비와 운영을 통해 우리의 인식과 시야(視野)가 그동안 겨울 올림픽을 개최했던 나라들, 그 시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또 한 단계 성숙했으면 한다.

조선 [사설] 하루 만에 危險 시설 점검 끝낸 안전행정부의 초능력

정부가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뒤 위험 시설 안전 점검과 대책 마련을 하루 만에 마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행정부는 체육관 붕괴 다음 날인 지난 18일 오전 9시 50분 전국 광역시·도에 '(긴급) 붕괴 우려 체육관 시설 등 다중 이용 시설 안전 점검·정비 특별 지시'라는 공문을 보내 '이들 시설을 점검하고 대책을 세워 그 결과를 18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하루 안에 점검을 끝내고 그 대책까지 마련하라는 것이다.

경남 창원시는 5개 구청과 시설관리공단 담당자들이 공문을 받은 직후부터 당일 오후 5시 30분까지 붕괴 우려 시설 129곳을 점검해 경남도에 '이상 없다'고 보고했다. 한 시간에 17곳꼴로 점검한 셈이다. 경남도는 시·군·구 보고를 모아 19일 오전 11시 안행부에 '478곳 점검 결과 이상 없음'이라고 통보했다. 공무원들은 워낙 급하게 하느라 전문가도 참여시키지 않았고 기둥과 철골 구조물을 눈으로 훑어보는 식으로 점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현장을 가보기나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졸속 검사는 다른 광역 시·도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며 기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기까지 했다. 안전행정부가 수많은 시설물 점검을 하루 만에 마치라고 한 것은 국민 안전을 걱정했다기보다는 긴급 점검을 했다는 사실을 윗사람에게 보고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이름값도 못하는 부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경향 [사설]이산가족 문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3년4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이 22일 마무리되고, 어제부터 2차 상봉이 시작됐다. 각각 2박3일의 1·2차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82명과 북측 88명이 오매불망 그리던 아버지와 어머니, 딸과 아들, 형제와 자매를 만났다. 서로를 껴안고 주름살이 깊게 팬 얼굴을 비벼대며 눈물을 쏟는 호곡의 상봉은 분단의 비극을 현재형으로 참혹하게 증언한다. 반세기 넘게 단장의 세월을 보내온 이산가족들은 단 11시간의 만남 시간을 가진 뒤 잔인한 이별을 고했다. 상봉 행사를 마치고 떠나는 남측 가족들은 버스 창에 기대어 망연히 눈물만 흘리고, 남은 북측 가족들은 속절없이 손을 흔드는 모습은 무참했다. 하물며 이를 지켜봤을, 상봉의 기회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수만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이산가족들은 실로 시간과의 처연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상봉을 신청한 12만9287명 중에서 5만7784명이 세상을 떴다. 지난해에만 3841명이 운명했다. 생존자 가운데 70세 이상 고령이 80%를 넘는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부부와 부모·자식 간 만남은 13건에 불과하다. 고령 이산가족의 사망이 늘면서 벌어진 결과다. 실제 지난해 추석을 즈음해 추진됐을 당시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이들 중 15명은 사망하거나 건강상 이유로 이번 상봉을 포기했다. 만일 지난해 상봉 행사가 성사됐더라면, 이들은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나보고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절박함과 긴박성을 웅변한다.

전쟁과 이념의 폭력으로 혈육과 생이별, 분단의 고통을 최전선에서 껴안고 살아온 이산가족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특단의 대책,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때다. 이번과 같은 규모와 형태로 매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남측의 이산가족들이 모두 만남의 기회를 가지려면 100년 정도가 걸릴 판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통해 상봉 횟수를 늘리고, 상봉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 생사 확인과 서신 왕래 등은 남북의 의지에 따라서는 빠른 시행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초고령 이산가족들이 생전에 혈육을 만날 수 있도록 특별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가장 시급한 인도적 사안이다. 그간 이산가족 문제가 지지부진한 것은 남북의 정부가 끊임없이 정치·군사적 사안과 연계한 이유가 컸다. 북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를 철저히 인도적 관점에서 접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체제 불안감을 가진 북한에 무조건 상봉 정례화를 촉구하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쌀과 비료 등 대북 인도적 지원을 대폭 늘리는 등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에서 전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도로 김재철’이 MBC 정상화인가

문화방송(MBC) 신임 사장에 안광한 MBC플러스미디어 사장이 선임되면서 언론계가 전운에 휩싸인 모습이다. 안 신임 사장은 지난 21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서 이진숙 워싱턴지사장과 최명길 인천총국 부국장을 제치고 사장으로 내정된 뒤 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 확정됐다. 이에 대해 MBC 노조를 비롯한 언론계와 야권에서는 ‘도로 김재철 체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 문제를 둘러싸고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공영방송 MBC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안 신임 사장이 ‘김재철 체제의 2인자’로서 MBC 노조와 심각한 갈등을 벌인 당사자라는 점이다. 편성본부장 시절 시사 프로그램인 <후플러스>를 폐지하고 <PD수첩>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편의 불방 사태를 야기하는 등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데 앞장섰으며 2012년에는 인사위원장을 맡아 MBC 파업에 참여한 후배들에게 무더기 보복인사를 단행했다는 게 그의 전력과 관련한 비판들이다. 그래서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사전에 그와 이진숙 지사장을 방송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역사상 최장기 파업을 유도한 책임자로 지목하고 사장 선임 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던 터다.

MBC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갈등은 대부분 김재철 전 사장 시절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사장 체제가 가져온 신뢰도 추락, 시청률 하락, 인재 유출이라는 삼중고를 ‘도로 김재철 체제’로 극복하겠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MBC 경영진은 ‘2012년 파업은 정당했고 징계처분은 모두 무효’라는 지난 1월 법원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고 항소한 마당이다. MBC 정상화의 첫 단계인 공정성 회복, 단체협약 복원, 해고자 복직 등에 그것을 파괴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적극 나서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화살은 MBC 지배구조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최대주주인 방문진이 여권 추천 이사 6명과 야권 추천 이사 3명으로 이뤄져 여권 뜻대로 사장을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지배구조인 MBC와 한국방송(KBS)이 ‘청영방송’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도 언론 공약 1호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내세웠던 게 아닌가. 안 사장 선임이 그 필요성을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경향 [사설]‘낙하산 방지’ 대책 발표 직후 또 낙하산 인사라니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개혁과 관련해 낙하산 인사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 한국광물자원공사와 한국동서발전 두 공기업의 상임감사위원에 전문성이 없는 친박계 정치인이 임명된 것이다. 더욱이 임명 시기가 기획재정부가 지난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직후라는 점에서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도대체 정부와 청와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정을 독불장군식으로 운영하는 대통령의 고집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공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채와 만연한 비효율성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문제는 오랫동안 정치인 등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을 이끌면서 누적돼 왔다. 낙하산으로 경영진이 된 정치인 등은 어떻게든 자신의 임기만 편히 보내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공기업은 딱히 주인이 없어 경영 책임을 물을 사람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성이 없으니 경영 노하우도 내놓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취임 전부터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하는 노조와도 적절히 타협하기 일쑤다. 오늘날 공기업이 ‘신의 직장’이란 비아냥 섞인 부러움을 살 정도로 처우가 좋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이런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는 분명 바람직하다. 그러나 접근 방법이 틀렸다. 자산 매각을 통한 빚 경감과 지나친 복지 혜택 축소 등의 방안만 제시할 뿐 핵심 사안인 낙하산 인사 근절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낙하산 인사를 막을 대책으로 기관장, 감사 등 직위별 자격기준을 마련한다지만 정부에 과연 낙하산 인사 근절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두 명의 정치인을 상임감사위원으로 임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공기업의 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전문가나 정치인의 낙하산 인사부터 중단해야 한다.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달리 효율성과 함께 공공성·공익성도 따져야 하므로 경영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난다 긴다 하는 전문 경영인도 공기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 따라서 낙하산 인사를 중단하지 않고 공기업 개혁이나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것은 빈말에 불과하다. 설사 개혁이 일부 이뤄지더라도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다.

한겨레 [사설] ‘4대강 부채’, 결국 국민한테 떠넘기나

한국수자원공사가 기획재정부에 최근 제출한 ‘정상화 이행계획’에서 정부의 재정지원과 물 요금 현실화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4대강과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 사업 과정에 들어간 빚이 너무 많아 자구노력만으로 해결이 어려우니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주든지 물 요금 인상을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환경파괴 논란과 국민적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4대강 사업 등을 추진하다 빚의 수렁에 빠진 수공이 마침내 국민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수공이 감당할 수 없는 빚에 허덕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 강행한 4대강 사업과 경인아라뱃길 사업을 떠맡은 뒤부터다. 수공은 4대강 사업비 8조원과 경인아라뱃길 사업비 약 2조원을 대부분 금융부채로 조달했다. 이에 따라 두 사업 시작 전인 2008년에 2조원가량이던 수공의 부채는 지난해 말 약 14조원으로 7배나 껑충 뛰었다.
수공의 매출과 이익 규모로 볼 때 14조원에 이르는 부채는 스스로 감당할 없는 수준임이 분명하다. 2011년 이후에는 영업이익으로 금융부채에 대한 이자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들어간 부채의 경우 이자를 대신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경인아라뱃길 사업 또한 물류와 관광 수요가 애초 기대에 훨씬 못 미쳐 부채 누적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이대로 가면 빚으로 빚을 메워야 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게 뻔하다.
부채 누적에 따른 수공의 급격한 재무구조 악화에 대해서는 정부의 일차적인 책임이 크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엄격한 예비타당성조사나 국회 심의 절차를 피하려고 4대강 사업을 수공의 사업으로 떠넘기는 ‘꼼수’를 부렸다. 하지만 이런 꼼수를 그대로 받아들인 수공 쪽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만 믿고 방만경영에 빠진 사례도 많다. 4대강 사업 후속으로 수공이 전국 각지에서 벌이고 있는 ‘친수구역 개발사업’의 경우도 사업성을 지나치게 낙관해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부실 확대의 우려를 낳고 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된 공기업은 결국 국민에게 부담을 안긴다. 해당 공기업을 파산시킬 수는 없는 현실 때문에 국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수공은 국민 부담을 요구하기 전에 부채가 급증하게 된 배경과 원인부터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사죄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당국자는 물론 수공의 전·현직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비정상의 원인을 제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공기업 정상화의 첫걸음이다.

한겨레 [사설] 새누리당, ‘국익 훼손 돌격대’ 노릇이나 할 땐가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한 새누리당의 막말과 억지 행진이 그칠 줄을 모른다. 김진태 의원의 ‘중국 후진국’ ‘음모론’ 발언에 이어 이번에는 윤상현 의원이 주한 중국대사관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윤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와 간첩사건 피의자 유우성씨 변호를 맡고 있는 민변 사이에 “커넥션이 있는 것 같다”며 “주심양(선양) 한국총영사관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그것도 원내수석부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황당한 주장이다. 중국과의 미묘한 외교적 문제가 깔려 있는 이번 사건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이는 태도는 몰상식과 치졸함의 극치다. 중국 쪽에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갈등의 불씨에 연일 기름을 끼얹고 있다. 만날 ‘국익’을 외치던 사람들이 오히려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국익 훼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중요한 사건만 터지면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게 새누리당이다. 청와대의 거수기로도 모자라 아예 돌격대 임무를 자임하고 있다. 당-청 관계의 재정립이니 상하·수직적 관계의 탈피니 하는 숙제는 내팽개친 지 오래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국정원, 외교부, 검찰 등 당사자들은 책임을 떠넘기며 도망치기 바쁜데 새누리당만 억지 논리로 이들을 비호하느라 동분서주한다. 이번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일단 우기고 보자는 식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게 억지를 부려서라도 정국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도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요 오판이다. 그렇게 할수록 점점 더 헤어나오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그것은 결국 박 대통령은 물론 당과 나라를 망치는 길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지금 국정원을 위한 방탄벽 노릇에나 골몰할 때가 아니다. 공무원들의 잘못을 찾아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집권여당의 최우선적 책무다. 법과 질서의 확립은 바로 이런 데 쓰라고 있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정신을 가다듬고 어떻게 하면 이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특별검사제 도입, 남재준 국정원장의 거취 문제 제기 등 집권여당이 앞장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새누리당은 언제까지 국정원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려 하는가.

한겨레 [사설] 거꾸로 간 MBC 사장 선임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21일 안광한 엠비시플러스미디어 사장을 임기 3년의 새 사장으로 선임했다. 안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문화방송을 ‘정치의 시종’으로 전락시킨 김재철 사장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에서 ‘김재철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도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더욱 강력한 정언유착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철 사장이 지난해 5월 방문진과의 불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뒤 그와 비교적 가까웠던 김종국 사장이 후임으로 선출됐을 때도 김재철 체제의 연장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실제 김 사장은 재임 9개월여 동안 김재철 전 사장이 무너뜨린 방송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노력보다 정권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올해 초, 김재철 사장 때 방송 공정성을 요구하며 170일간 파업을 벌이다 해고·징계를 받은 노조원들이 법원에서 승소를 했는데도 이들을 원직 복직시키기는커녕 판결에 대한 반박 신문광고를 대대적으로 낸 것이 대표 사례다. 또 <피디수첩> <시사매거진 2580> 등 굵직한 시사프로그램을 관할하는 시사제작국장에 국가정보원 관련 프로그램을 불방시킨 전력이 있는 문제의 인물을 발탁해 내부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여권 추천의 방문진 이사들은 17일 사장 후보를 3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현 사장인 김씨를 탈락시켰다. 이는 김 사장으로는 부족하니 더욱 확실하게 정권을 편들 수 있는 인물을 사장으로 뽑겠다는 여권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런 구도에서 간택된 안 사장이 갈 길은 뻔하다.
공정성 회복 노력보다는 정치 편향과 종속이 가속화할 것이고, 이를 둘러싼 내부 갈등도 지금보다 훨씬 격화할 것이다. 법원에서 징계 무효 판결을 받은 해고 노조원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른 갈등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방송에 대한 외부의 신뢰도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지상파 3사 가운데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선임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어렵잖게 예상된다.
문화방송의 불행은 사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쉽게 작용할 수 있는 체제에서 기인한다. 이번 선임 과정에도 6 대 3이라는 여야 대립 구도가 그대로 작용했다. 이는 <한국방송>(KB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가진 공영방송을 세우기 위해선 정권의 개입을 막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이번 문화방송 사장 선임이 정치권과 언론계에 던지는 역설적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