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휴일 한밤중에 국가정보원이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고, 월요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오후에는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둘러싸고 국정원과 청와대, 검찰의 대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향후 검찰 수사가 어떠한 성역도 두지 않고, 가이드라인도 배제한 채 이뤄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난달 14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후 검찰의 태도는 줄곧 소극적이었다. 공소유지 주체로서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음에도 망설이고 머뭇거렸다. 여론에 밀려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지만 본격 수사와는 거리를 뒀다.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자살 시도로 파문이 확산된 뒤에야 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고도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7시간 만에 압수수색에 돌입한 걸 보면 청와대와 국정원 눈치를 보며 ‘최종 재가’를 기다린 인상이 짙다. 검찰은 결국 실기(失期)했다.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는데 국정원이 두 손 놓고 있었겠는가. 검찰은 국정원에 증거를 인멸하도록 시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검찰,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검찰을 믿기 힘든 이유는 또 있다. 무능함과 뻔뻔함이다. 검찰은 국정원 문서의 신빙성을 의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정밀 검증을 하지 않은 채 법원에 제출했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에는 절차적 문제일 뿐이라며 국정원을 편들었다. 위조가 사실로 드러난 뒤에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지기는커녕 오불관언이다. 공소유지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자술서가 위조됐다고 밝힌 중국동포 임모씨에 대한 증인신청조차 철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검찰이 내놓는 수사 결과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 9일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사들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책임을 국정원에 떠넘기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을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지금 국정원과 검찰이 ‘공범 관계’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도 이번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수뇌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검찰이 제 식구를 계속 감싸려든다면 사건을 특검으로 넘기는 길밖에 없다.
2014년 3월 11일 화요일
한겨레 [사설] 국정원 철저 수사만이 검찰이 살 길이다
검찰이 10일 국가정보원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국가정보원의 간첩혐의 증거조작 사건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따져 50년 역사에서 세 번째 압수수색이라고 한다. 겉으로만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를 평가해줘야 할 상황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지난달 14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사건의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위조일 리 없다”며 국정원을 감싸고돌았다. 이틀 뒤엔 기자회견까지 열어 위조 의혹이 불거진 문서 3건은 모두 중국 정부기관이 발급한 것이라고 했다. 수사 초기 결정적인 한 달을 흘려보낸 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철저한 검찰 수사와 국정원의 협조”를 지시하자 그제야 압수수색에 착수한 것이다. 한 달이나 시간을 벌었는데 증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범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뒷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정원이 갖다준 문서가 위조됐는지 의심할 만한 계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검찰은 그저 법원에 전달하는 배달부 노릇만 했다. 검찰은 지난해 국정원이 문서를 전달하기 전 외교경로를 통해 문서를 요청했다가 중국 쪽으로부터 “발급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두 달 뒤 국정원이 바로 그 문서를 검찰에 냈다. 검찰은 자기들이 정식 외교경로를 통해 얻지 못했던 중국 공문서를 국정원이 어떻게 입수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위조된 것임을 알면서도 검찰이 수사를 진행했다면 국정원과 함께 증거조작의 공동정범이 되거나 최소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위조된 걸 몰랐다면 검찰은 대공사건에서 국정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받아쓰기 수사’만 해온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검찰은 이미 국정원이 벌인 일을 뒤처리하다가 깊은 내상을 입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쫓겨나고 수사팀이 징계를 받았다. 검찰은 국정원의 하인이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더 이상 국정원에 끌려가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을 계속 비호하다가는 검찰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결국 검찰이 살 길은 철저한 수사와 진실규명뿐이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씨는 국정원이 고정적으로 관리한 비중 있는 인물이고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자금이 지원됐음을 알 수 있다. ‘윗선’이 알았을 개연성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 윗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증거조작에 연루된 대공수사팀은 물론 대공수사를 지휘하는 국정원 2차장과 남재준 원장이 문서 위조를 알았는지, 이후에 보고받지는 않았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한겨레 [사설] 졸속 타결된 한-캐나다 FTA, 철저히 검증해야
한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11일 두 나라 정상회담을 통해 타결됐다. 두 나라 협상 대표들끼리는 무려 9년 가까이 밀고 당기는 지루한 협상이 진행되었다는데 정작 중요한 국내 의견 수렴 절차는 거의 밟지 않았다. 경제적 영향 분석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앞뒤 순서가 뒤바뀐 졸속 타결이다.
한-캐나다 협정의 의의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두 나라 간 무역 및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가 누리집에 올린 설명 자료는 사뭇 다르다. 구체적인 근거와 추정모형까지 제시하며 경제적 기대효과를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정부는 2009년 4월 중단했던 캐나다와의 협상을 4년7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갑자기 재개했다. 이후 공식 실무협상은 단 한 차례 열고 협상을 타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청회 등 국민 의견 수렴 절차는 생략했다. 협상 진행 상황과 관련해 국회 보고도 없었다.
정부가 캐나다와 협상을 서두른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티피피 협상에 대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관심 표명’을 선언했으나 아직 협상 상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티피피 협상 당사국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맺어 지지세력을 넓히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해 12월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석 달여 만에 캐나다와 협상을 타결했으며 뉴질랜드와도 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티피피 협상은 우리 정부의 의지나 요구가 반영되기 어려운 단계까지 이미 진행됐다. 당사국들 간의 개별 협상은 거의 마무리됐으며, 협상 타결 여부는 사실상 이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에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티피피 참가를 추진하려면 국내 영향 분석이나 의견 수렴 절차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졸속 타결된 한-캐나다 협상이 바로 그 방증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두 나라 사이의 상품과 서비스 교역 장벽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의 법과 제도까지 통합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특히 우리나라는 헌법에 따라 협정을 특별법으로 인정하는 만큼 수십 가지 법령까지 자동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협정을 정부의 밀실 협상으로 마무리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비준 동의안이 넘어오기 전에라도 국회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재협상도 요구할 수 있어야 통상주권을 가진 나라의 국회 모습이다.
한겨레 [사설] 1년 동안 임명된 친박 낙하산이 114명이라니
공공기관 고위직에 임명된 친박 낙하산 인사 114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펴낸 ‘공공기관 친박 인명사전’ 소책자를 보면 87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이사 등으로 선임된 친박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87개 공공기관에 자리잡은 낙하산 인사들 중에는 새누리당 출신이 55명(48.2%)으로 가장 많았고, 대선캠프 출신 40명, 대선 지지활동 단체 출신이 32명(중복 포함) 순이었다.
명단에는 지난해 10월 화성갑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다 다른 자리를 약속받고 도중하차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선대위 유세본부장을 지낸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야권 인사들을 비방하는 트위터 글로 문제가 된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 여당 지도부를 만나 자신의 과거 지역구 당협위원장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은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이 포함됐다.
최근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남기씨가 케이티(KT) 계열 위성방송 사업자인 케이티스카이라이프 사장에 내정된 것도 무리한 친박 낙하산 인사에 속한다. 이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발생한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당시 이 전 수석은 ‘대통령께 사과드린다’는 이른바 ‘셀프 사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전 수석은 박 대통령 측근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고교 선배라고 한다. 공직생활에 오점을 남긴 인사까지 친박이란 이유로 낙하산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민 의원이 공개한 명단엔 엄밀히 볼 때 친박 인사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들도 포함됐다는 게 새누리당 쪽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100명이 넘는 친여·친박 인사들이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선 없어져야 한다”고 한 말이 정말 무색해진 상황이다.
정권 출범 후 1년이 지나면서 불만을 무마하고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해 친박 인사들의 낙하산 인사가 최근 노골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무더기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공공기관 개혁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친박 인사들의 낙하산 투하가 계속되는 것이야말로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계속돼온 비정상적인 관행이다. 박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먼저 근절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아경 [사설]동북아 오일허브, 금융허브 반면교사로
정부가 오늘 '동북아 오일허브 추진대책'을 발표했다. 2008년 수립된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된 이래 장기 국책사업으로 진행돼 온 동북아 오일허브 프로젝트를 좀더 구체화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에도 이 사업과 관련해 몇 차례 이런저런 사업계획이나 정책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대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일허브 구축에 관한 종합적 '실행계획(액션플랜)'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목표는 장밋빛인 데 비해 세부 추진계획이 그것을 온전히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정도라고는 보기 어렵다.
궁극적인 목표는 울산과 여수에 저장시설 등 석유 물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금융 인프라를 깔아 우리나라를 미국 걸프만, 북유럽,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4대 오일허브의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에너지+금융 중심국가'로 발돋움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지난해 건설을 마치고 상업운전에 들어간 여수의 82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에 이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울산에 366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을 건설한다. 여기에 총 2조원의 민간자본을 끌어 들일 예정이다. 정부의 비축시설을 민간에 대여해 2000만배럴 규모 저장시설을 추가로 공급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런 저장시설의 경우는 국내외 정유회사들의 수요가 있어 민자유치와 공사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장시설과 함께 오일허브 실현의 양대 요건인 금융 인프라 쪽은 아직 묘연하다. 석유거래 및 관련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울산을 석유 직접ㆍ중계ㆍ파생거래의 메카로 만든다는 것인데, 모두 미래의 일이다. 울산에 석유 트레이더들을 유치하고 선박금융ㆍ석유담보대출 등 연관 금융산업도 육성한다지만 이 역시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울산에서 형성되는 석유가격이 동북아 석유시세의 기준이 되게 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신기루가 돼버린 과거 정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뜬구름 잡기 식이어선 곤란하다. 물류와 금융의 복합이라는 측면을 부풀려 '창조경제'의 상징적 사례로 포장하는 데 골몰해서는 안 된다. 정권을 넘어선 긴 안목으로 가능한 경제ㆍ산업적 효과부터 차근차근 구현해가는 실용적 태도가 바람직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울산과 여수에 저장시설 등 석유 물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금융 인프라를 깔아 우리나라를 미국 걸프만, 북유럽,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4대 오일허브의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에너지+금융 중심국가'로 발돋움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지난해 건설을 마치고 상업운전에 들어간 여수의 82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에 이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울산에 3660만배럴 규모 탱크터미널을 건설한다. 여기에 총 2조원의 민간자본을 끌어 들일 예정이다. 정부의 비축시설을 민간에 대여해 2000만배럴 규모 저장시설을 추가로 공급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런 저장시설의 경우는 국내외 정유회사들의 수요가 있어 민자유치와 공사 등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장시설과 함께 오일허브 실현의 양대 요건인 금융 인프라 쪽은 아직 묘연하다. 석유거래 및 관련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해 울산을 석유 직접ㆍ중계ㆍ파생거래의 메카로 만든다는 것인데, 모두 미래의 일이다. 울산에 석유 트레이더들을 유치하고 선박금융ㆍ석유담보대출 등 연관 금융산업도 육성한다지만 이 역시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울산에서 형성되는 석유가격이 동북아 석유시세의 기준이 되게 한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신기루가 돼버린 과거 정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뜬구름 잡기 식이어선 곤란하다. 물류와 금융의 복합이라는 측면을 부풀려 '창조경제'의 상징적 사례로 포장하는 데 골몰해서는 안 된다. 정권을 넘어선 긴 안목으로 가능한 경제ㆍ산업적 효과부터 차근차근 구현해가는 실용적 태도가 바람직하다.
아경 [사설]여성, 비정규직, 월급 113만원
여성이 남성보다 비정규직ㆍ저임금 등 고용 차별에 힘겨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여성 노동자의 57.5%(762만명 중 438만명)가 비정규직이다. 남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37.2%)보다 20.3%포인트 높다. 여성 비정규직은 월평균 113만원의 저임금을 받았다. 남성 정규직의 35.4%, 여성 정규직의 53.2%에 불과하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3.5명 중 1명(28.5%)은 최저임금(2013년 시급 4860원)조차 받지 못했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1.8%)이나 여성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7.4%)과 크게 차이난다. 성 차별과 고용 차별이 중첩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 자체가 낮은 데다 사업장에서의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 결과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여파로 우리나라 총인구는 2030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3년 뒤인 2017년부터 줄어들 판이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려면 여성 인력 활용이 필수적인데 고용 현실은 여성에게 지나치게 차별적이다.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등 여성 인력 고용 확대 정책을 펴지만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이거나 임시ㆍ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인권위원회가 오늘 주최한 여성 비정규직 실태 및 정책 대안 토론회는 해결 방안으로 법정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제안했다. 해마다 최저임금 산정을 놓고 벌어지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진국처럼 '중위임금 대비 얼마'로 정하자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상용직 중위임금의 2분의 1~3분의 2 범위에서, 미국ㆍ일본 등은 40~50%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여성 비정규직 대부분이 최저임금의 경계선에 있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곧 여성 노동자의 시급을 결정한다. 최저임금 제도에 대한 합리적 개선 없이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파업으로 대변되는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용직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 실정에선 최저임금을 일시에 현실화하기는 부담스럽다. 매년 인상률에 연연하기보다 3~5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3.5명 중 1명(28.5%)은 최저임금(2013년 시급 4860원)조차 받지 못했다.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1.8%)이나 여성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달 비율(17.4%)과 크게 차이난다. 성 차별과 고용 차별이 중첩돼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 자체가 낮은 데다 사업장에서의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확인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 결과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여파로 우리나라 총인구는 2030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3년 뒤인 2017년부터 줄어들 판이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려면 여성 인력 활용이 필수적인데 고용 현실은 여성에게 지나치게 차별적이다.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등 여성 인력 고용 확대 정책을 펴지만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이거나 임시ㆍ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인권위원회가 오늘 주최한 여성 비정규직 실태 및 정책 대안 토론회는 해결 방안으로 법정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제안했다. 해마다 최저임금 산정을 놓고 벌어지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선진국처럼 '중위임금 대비 얼마'로 정하자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상용직 중위임금의 2분의 1~3분의 2 범위에서, 미국ㆍ일본 등은 40~50%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여성 비정규직 대부분이 최저임금의 경계선에 있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곧 여성 노동자의 시급을 결정한다. 최저임금 제도에 대한 합리적 개선 없이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파업으로 대변되는 저임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용직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 실정에선 최저임금을 일시에 현실화하기는 부담스럽다. 매년 인상률에 연연하기보다 3~5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이 요구된다.
2014년 3월 9일 일요일
중앙 [사설] 생명을 볼모 삼으면 국민 마음 못 얻는다
끝내 의사협회가 집단 휴진을 감행했다. 의협은 오늘 하루 동네의원의 문을 걸어 잠그고, 일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도 동참한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 번 양보해서 명분이 옳다고 해도 그 방법이 집단휴진일 수는 없다. 이번 휴진은 아무리 잘 포장해도 집단이기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
의사들은 가운을 벗기 전에 환자단체연합회의 호소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단체는 7일 기자회견에서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정부를 상대로 해야지 왜 아무 잘못 없는 환자 생명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환자를 볼모로 삼아 정부를 협박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아무리 명분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은 집단휴진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발전협의회를 여섯 차례 열어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를 뒤집고 파업으로 돌아섰다. 정부와 협의에서 100%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왜냐면 정부는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만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양측이 추후 대화로 최대공약수를 키워나가기로 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의협이 내세우는 파업 이유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반대다. 두 제도가 의료영리화라고 몰아붙이는 의협도, 이를 시행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올 걸로 포장하는 정부도 문제가 있다. 원격진료는 도서·벽지 주민, 노인·장애인·만성질환자 등 병원을 찾기 힘든 환자의 편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도 비껴갈 수 없다. 다만 의사와 환자의 대면(對面) 진료를 전면 대체하는 원격진료는 신중해야 한다. 우선 만성질환자 모니터링과 상담부터 먼저 도입하고 차차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법인 자회사도 해외환자 유치나 해외 병원 진출과 같은 분야에 먼저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협은 진료수가가 원가의 3분의 2에 불과해 비정상적인 진료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보험 진료를 포함하면 원가보다 높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내용은 양측이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즉각 대화채널을 가동하되 필요하면 복지부에서 총리실 산하로 격상하는 것도 검토해 봄직하다.
의사들이 오늘 문을 닫으려면 명심할 게 있다. 집단휴진은 스스로를 전문가단체에서 이익집단으로 격하시키는 자해행위라는 점이다. 집단휴진으로 얼마나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집단휴진에 따른 응분의 책임도 져야 한다. 정부는 진료명령·업무개시명령 위반사항은 반드시 가려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정도가 심하면 형사고발 해야 할 것이다.
의사들은 가운을 벗기 전에 환자단체연합회의 호소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단체는 7일 기자회견에서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정부를 상대로 해야지 왜 아무 잘못 없는 환자 생명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환자를 볼모로 삼아 정부를 협박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아무리 명분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은 집단휴진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발전협의회를 여섯 차례 열어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를 뒤집고 파업으로 돌아섰다. 정부와 협의에서 100%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왜냐면 정부는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만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양측이 추후 대화로 최대공약수를 키워나가기로 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의협이 내세우는 파업 이유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허용 반대다. 두 제도가 의료영리화라고 몰아붙이는 의협도, 이를 시행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올 걸로 포장하는 정부도 문제가 있다. 원격진료는 도서·벽지 주민, 노인·장애인·만성질환자 등 병원을 찾기 힘든 환자의 편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도 비껴갈 수 없다. 다만 의사와 환자의 대면(對面) 진료를 전면 대체하는 원격진료는 신중해야 한다. 우선 만성질환자 모니터링과 상담부터 먼저 도입하고 차차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법인 자회사도 해외환자 유치나 해외 병원 진출과 같은 분야에 먼저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협은 진료수가가 원가의 3분의 2에 불과해 비정상적인 진료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보험 진료를 포함하면 원가보다 높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내용은 양측이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즉각 대화채널을 가동하되 필요하면 복지부에서 총리실 산하로 격상하는 것도 검토해 봄직하다.
의사들이 오늘 문을 닫으려면 명심할 게 있다. 집단휴진은 스스로를 전문가단체에서 이익집단으로 격하시키는 자해행위라는 점이다. 집단휴진으로 얼마나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연히 집단휴진에 따른 응분의 책임도 져야 한다. 정부는 진료명령·업무개시명령 위반사항은 반드시 가려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고 정도가 심하면 형사고발 해야 할 것이다.
중앙 [사설] 한류의 지속 가능 전략을 고민할 때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약칭 ‘별그대’)로 인기를 더한 배우 김수현이 지난 8일 300만 위안(5억2170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전세기 편으로 최고의 경호 속에 난징(南京)을 다녀왔다. 그는 현지 장쑤위성TV의 ‘최강대뇌(最强大腦)’에 출연했는데 방청석 입장권 1장이 인터넷에서 최고 3만 위안(약 52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중국에선 ‘별그대’에서 전지현이 착용했던 의상과 액세서리가 ‘완판’되고, 드라마에 등장한 ‘치맥’도 인기를 더한다는 소식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말춤에 이어 ‘별그대’가 한류 열풍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도 한류가 관심사로 등장했다. 왕치산(王岐山) 당 기율위 서기는 6·7일 양회에서 잇따라 “‘별그대’ 등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 핵심은 전통문화의 승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8일(현지시간) 이런 현상을 소개하고 전망까지 다룬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모범이 될까’ 제목의 현지발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미 한류는 일시적인 바람을 넘어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경계해야 할 대목도 있다. 일본을 휘젓던 한류가 한·일 외교갈등, 그리고 일본 우익이 부추기는 염한(厭韓) 정서로 인해 차갑게 식은 게 사실이다. 앞으로 국제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한류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전략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융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인종·국적·배경의 인재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꿈과 끼를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문화만큼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두드러진 분야는 없다. 네덜란드의 황금의 17세기, 그리고 현재의 미국이 대표적이다. 한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소중히 가꾸어야 할 소프트파워다. 더 이상 제조업 외줄 타기론 위험하다. 미국의 영화 ‘아바타’가 쏘나타 300만 대 수출에 버금가는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최대의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서도 한류가 관심사로 등장했다. 왕치산(王岐山) 당 기율위 서기는 6·7일 양회에서 잇따라 “‘별그대’ 등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 핵심은 전통문화의 승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8일(현지시간) 이런 현상을 소개하고 전망까지 다룬 ‘한국 드라마가 중국의 모범이 될까’ 제목의 현지발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미 한류는 일시적인 바람을 넘어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경계해야 할 대목도 있다. 일본을 휘젓던 한류가 한·일 외교갈등, 그리고 일본 우익이 부추기는 염한(厭韓) 정서로 인해 차갑게 식은 게 사실이다. 앞으로 국제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한류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는 전략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융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인종·국적·배경의 인재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꿈과 끼를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문화만큼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두드러진 분야는 없다. 네덜란드의 황금의 17세기, 그리고 현재의 미국이 대표적이다. 한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소중히 가꾸어야 할 소프트파워다. 더 이상 제조업 외줄 타기론 위험하다. 미국의 영화 ‘아바타’가 쏘나타 300만 대 수출에 버금가는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중앙 [사설] 국정원 해명 납득이 안 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어제 “증거를 조작하거나 조작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34)씨의 출입국기록 문건을 가져다준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의 자살 기도 유서에 대해서는 “유서에 적힌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싼허(三合)변방검사참이 발급한 유씨의 출입국기록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는 아니며, 김씨가 다른 문서에 대해 제작비를 요구한 것”이라 해명했다.
오히려 이런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씨의 출입국기록,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국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답변서 등 3종의 문건은 모두 위조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김씨에 의해 조작된 또 다른 문건이 존재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이 정보를 사 모으는 방식이 이런 식이었다면 제4 또는 제5의 위조 서류가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법원에 제출된 3종의 위조서류는 유씨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걸 일관되게 증명하려 한 서류라는 점에서, 김씨가 국정원 측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 이런 서류를 알아서 구해왔다는 국정원의 설명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정보원이 거짓에 거짓을 보태는데도 국정원은 이를 그대로 믿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북한 관련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북한 정보수집망이 아무리 과거 정부 시절에 붕괴되었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이 이렇게 불안정해서야 국민이 안심하고 간첩 잡는 일을 국정원에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이번 사건의 본류는 유씨의 간첩행위 여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국정원의 어설픈 대공수사 관행 역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은 더 이상 해명에만 급급하지 말고, 또 다른 위조 서류가 국민의 인권을 구속하는 데 악용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검찰 역시 국정원이 조작 사실을 알고도 서류를 검찰에 제출했는지, 만일 이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검찰과 국정원이 함께 사는 길이다.
오히려 이런 해명이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씨의 출입국기록,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국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답변서 등 3종의 문건은 모두 위조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김씨에 의해 조작된 또 다른 문건이 존재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국정원이 정보를 사 모으는 방식이 이런 식이었다면 제4 또는 제5의 위조 서류가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특히 법원에 제출된 3종의 위조서류는 유씨가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걸 일관되게 증명하려 한 서류라는 점에서, 김씨가 국정원 측의 지시를 받지 않고서 이런 서류를 알아서 구해왔다는 국정원의 설명은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정보원이 거짓에 거짓을 보태는데도 국정원은 이를 그대로 믿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으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북한 관련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북한 정보수집망이 아무리 과거 정부 시절에 붕괴되었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이 이렇게 불안정해서야 국민이 안심하고 간첩 잡는 일을 국정원에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이번 사건의 본류는 유씨의 간첩행위 여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국정원의 어설픈 대공수사 관행 역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국정원은 더 이상 해명에만 급급하지 말고, 또 다른 위조 서류가 국민의 인권을 구속하는 데 악용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검찰 역시 국정원이 조작 사실을 알고도 서류를 검찰에 제출했는지, 만일 이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검찰과 국정원이 함께 사는 길이다.
조선 [사설] 잠자는 상관 못 깨워 5시간 늦어진 112 긴급출동
지난 1월 16일 오전 2시 20분쯤 서울 마포소방서 119 상황실에 응급 구조를 요청하는 한 여성의 휴대전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여성은 신음소리만 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전화는 소방서 직원이 주소를 확인하기도 전에 끊겼다. 소방서는 마포경찰서 112 상황실에 여성의 위치 확인을 급히 요청했다. 이런 요청이 오면 112 직원은 상황실장 결재를 받아 위치정보 확인요청서를 통신사에 보내야 한다.
상황실장 결재는 시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절차다. 그 시각 마포경찰서 112 상황실장은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은 실장을 깨우지 못했다. 경감 계급의 상관을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경찰은 당일 오전 6시쯤 상황실장이 일어난 뒤 결재를 받아 오전 7시 50분쯤에야 신고자 주소를 확인했다. 원룸에 혼자 사는 이 20대 여성은 뇌출혈로 이미 숨져 있었다. 경찰관에게 상관의 수면(睡眠)보다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만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생명이었다.
정부는 2012년 법을 고쳐 경찰에 112 신고자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은 지난 1월 신고자 휴대폰의 GPS가 꺼져 있어도 원격 제어로 강제로 켤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위치 추적이 쉬워졌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새 법을 만들고 신기술을 개발한들 부하 직원이 긴급 상황에서 잠자는 상관을 깨우지도 못하는 지금의 경찰 풍토 아래에선 모두가 헛일임이 이번에 드러났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상황실장 결재는 시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절차다. 그 시각 마포경찰서 112 상황실장은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은 실장을 깨우지 못했다. 경감 계급의 상관을 깨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경찰은 당일 오전 6시쯤 상황실장이 일어난 뒤 결재를 받아 오전 7시 50분쯤에야 신고자 주소를 확인했다. 원룸에 혼자 사는 이 20대 여성은 뇌출혈로 이미 숨져 있었다. 경찰관에게 상관의 수면(睡眠)보다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만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생명이었다.
정부는 2012년 법을 고쳐 경찰에 112 신고자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은 지난 1월 신고자 휴대폰의 GPS가 꺼져 있어도 원격 제어로 강제로 켤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위치 추적이 쉬워졌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새 법을 만들고 신기술을 개발한들 부하 직원이 긴급 상황에서 잠자는 상관을 깨우지도 못하는 지금의 경찰 풍토 아래에선 모두가 헛일임이 이번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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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 직원들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출국 금지를 당하고 검찰 조사도 받게 됐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가짜 증거로 사법부를 속이려 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정원이 협력자 김모씨가 증거 문건을 위조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았다면 위조 지시까지 했는지 여부다. 국정원은 시종일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도 위조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자살을 기도하면서 쓴 유서에 "지금의 국정원은 국조원"이라고 적기도 했다. '국조원'이란 '국가조작원'의 줄인 말로 보인다. 국정원이 증거 위조를 지시했다면 30~40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일로 조직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받을 사건이다.
아직은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씨가 가져온 다른 문건 중에 가짜로 드러난 것에 대해선 국정원이 대가 지불을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재판에서 모두 공개되고 상대방에 의해 검증될 수밖에 없는 문서를 위조하라고 지시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기도 하다. 국정원이 실제 위조를 지시했다면 김씨를 검찰에 출두시키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가려야 한다.
그러나 설사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달 14일 중국 정부가 "(국정원 제출) 문건은 위조"라고 발표했는데도 자체 확인 없이 위조 문건을 가져온 김씨에게 위조 여부를 물었다. 도둑에게 '도둑질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다'고 해서 그냥 믿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이거나 무능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내세워 온 '50년 대공(對共) 수사 노하우'의 실상이 이것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다.
국정원이 정상적 조직이라면 국정원 문서가 '위조'라는 중국 측 발표에 발칵 뒤집혀 스스로 진상을 조사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위조 사실을 밝혀내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의 누구도 검증하자는 건의를 하지 못했다면 이 조직은 무능한 차원을 넘어서 위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남 원장이 문서 위조를 몰랐다면 다른 누구보다 앞서서 문서 검증을 지시했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원의 태도를 보면 그런 사실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국정원 고위층이 대공(對共)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유씨 사건에 대한 새 증거를 확보하라고 부하들을 심하게 압박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남 국정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 요구에 맞서 '자체 개혁'을 강조해왔고 성과도 있다고 해 왔다. 실제 '남재준 국정원'은 북한 장성택 숙청 사실을 포착하고,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실을 적발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지금 남 원장의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념'이란 합리적 판단과 엄격한 자기 통제라는 다른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과잉 신념은 반드시 큰 화(禍)를 부르게 돼 있다.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 남 국정원장은 작년 7월 여야의 NLL 공방 와중에 야당을 비난하는 국정원 성명을 발표하게 해 정쟁(政爭)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신념만 내세운 전형적인 사례다. 당연히 역효과만 불렀다. 지금 국정원 관련 모든 문제의 바탕엔 무절제한 신념이 어른거리고 있다.
이번 증거 위조 파문도 국정원 지휘부의 간첩 색출 신념에 자극받은 수사팀이 적법(適法) 절차의 철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유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남 국정원장과 국정원이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정원이 협력자 김모씨가 증거 문건을 위조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알았다면 위조 지시까지 했는지 여부다. 국정원은 시종일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도 위조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자살을 기도하면서 쓴 유서에 "지금의 국정원은 국조원"이라고 적기도 했다. '국조원'이란 '국가조작원'의 줄인 말로 보인다. 국정원이 증거 위조를 지시했다면 30~40년 전에나 있을 법한 일로 조직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받을 사건이다.
아직은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씨가 가져온 다른 문건 중에 가짜로 드러난 것에 대해선 국정원이 대가 지불을 거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재판에서 모두 공개되고 상대방에 의해 검증될 수밖에 없는 문서를 위조하라고 지시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기도 하다. 국정원이 실제 위조를 지시했다면 김씨를 검찰에 출두시키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가려야 한다.
그러나 설사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국정원은 지난달 14일 중국 정부가 "(국정원 제출) 문건은 위조"라고 발표했는데도 자체 확인 없이 위조 문건을 가져온 김씨에게 위조 여부를 물었다. 도둑에게 '도둑질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다'고 해서 그냥 믿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짓말이거나 무능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내세워 온 '50년 대공(對共) 수사 노하우'의 실상이 이것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다.
국정원이 정상적 조직이라면 국정원 문서가 '위조'라는 중국 측 발표에 발칵 뒤집혀 스스로 진상을 조사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위조 사실을 밝혀내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의 누구도 검증하자는 건의를 하지 못했다면 이 조직은 무능한 차원을 넘어서 위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남 원장이 문서 위조를 몰랐다면 다른 누구보다 앞서서 문서 검증을 지시했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정원의 태도를 보면 그런 사실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국정원 고위층이 대공(對共)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유씨 사건에 대한 새 증거를 확보하라고 부하들을 심하게 압박했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남 국정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 요구에 맞서 '자체 개혁'을 강조해왔고 성과도 있다고 해 왔다. 실제 '남재준 국정원'은 북한 장성택 숙청 사실을 포착하고,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실을 적발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지금 남 원장의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념'이란 합리적 판단과 엄격한 자기 통제라는 다른 수레바퀴와 함께 굴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과잉 신념은 반드시 큰 화(禍)를 부르게 돼 있다. 국정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 남 국정원장은 작년 7월 여야의 NLL 공방 와중에 야당을 비난하는 국정원 성명을 발표하게 해 정쟁(政爭)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신념만 내세운 전형적인 사례다. 당연히 역효과만 불렀다. 지금 국정원 관련 모든 문제의 바탕엔 무절제한 신념이 어른거리고 있다.
이번 증거 위조 파문도 국정원 지휘부의 간첩 색출 신념에 자극받은 수사팀이 적법(適法) 절차의 철칙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유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남 국정원장과 국정원이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順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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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사설]비정상적 사외이사 제도 정상화 절실하다
올해 10대 재벌 계열사의 주주총회에서 뽑힌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이 청와대나 검찰, 국세청, 공정위의 고위직이나 장·차관 출신이라고 한다. 재벌이 권력기관 출신을 무더기로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은 외부 바람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이들이 기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전·현직 간에 이뤄지는 전관예우 관행이 아직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이런 식으로 선임되면 대주주 전횡 견제·감시라는 사외이사 제도 도입 취지는 살릴 수 없다. 사외이사를 뽑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방만 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외부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켜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6년이 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정치인이나 힘 있는 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방패막이나 로비스트로 삼으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뜻에 찬성하는 거수기에 그칠 뿐이다. 기업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여서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강화되고 국민의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면서 재벌로서는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혀 바람막이로 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외이사 제도의 긍정적인 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제도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바에야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는 전문성 못지않게 경영진이나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견제·감시란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선임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독립된 외부 기관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추천하거나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의 활동을 평가·공개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방만 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만큼 외부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시켜 대주주가 전횡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6년이 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정치인이나 힘 있는 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방패막이나 로비스트로 삼으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뜻에 찬성하는 거수기에 그칠 뿐이다. 기업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여서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다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근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가 강화되고 국민의 경제민주화 요구가 커지면서 재벌로서는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혀 바람막이로 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영진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외이사 제도의 긍정적인 작용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제도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바에야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는 전문성 못지않게 경영진이나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견제·감시란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선임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독립된 외부 기관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추천하거나 소액주주·우리사주조합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의 활동을 평가·공개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외이사 제도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경향 [사설]정부와 국회, 의료계는 당장 대화 나서라
대한의사협회가 예고했던 집단휴진이 현실화하는 사태를 맞았다.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대하며 정부와 갈등해온 의협이 어제 “국민의 이해를 간절히 바란다”며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고, 그제는 그동안 집단휴진 참여에 소극적이던 대한전공의협의회도 동참을 결정했다. 정부 또한 집단휴진 강행 즉시 업무개시명령 등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해 불응한 의료기관에 대해 행정처분과 형사고발 조치를 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의·정이 강 대 강으로 대립해 파국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우선 명분과 이유, 어느 쪽의 잘잘못을 살피기 이전에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사실상 파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휴진을 강행키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14년 전인 2000년 의약분업 때의 의료대란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문제라든가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의 주장이나 요구가 나름의 명분을 갖췄다 하더라도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태도는 더 걱정스럽다. 시종일관 강경책으로 의료계를 자극하는 등의 소통 방식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의·정협의체인 의료발전협의회를 ‘야합’으로 비쳐지게 만들었는가 하면 집단휴진 결정 이후 공안대책협의회까지 열어 대응 수위를 높인 점 등이 그렇다. 집단휴진이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정지·의사면허 취소 운운하기까지 했다. 오늘 집단휴진에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었던 전공의들이 동참으로 선회하는 결정을 내린 데는 정부의 이런 강경 대응이 작용했다고 한다. 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처 방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불법에 가담하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하라”는 식의 강경책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의·정 갈등은 정부의 원격진료와 영리화 정책을 계기로 의료수가체제 등 의료계의 해묵은 불만과 의료의 공공성, 변화된 의료환경 등 어려운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노정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쉽게 풀릴 문제들이 아니다. 제2의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 의료계는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한다. 마침 야당 측이 어제 여·야·정 및 의사단체, 전문가, 가입자 단체가 포함된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제안했다. 무엇이 됐든 보다 큰 틀에서 의료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우선 명분과 이유, 어느 쪽의 잘잘못을 살피기 이전에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사실상 파업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휴진을 강행키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14년 전인 2000년 의약분업 때의 의료대란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원격진료와 의료영리화 문제라든가 건강보험제도 개혁 등의 주장이나 요구가 나름의 명분을 갖췄다 하더라도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태도는 더 걱정스럽다. 시종일관 강경책으로 의료계를 자극하는 등의 소통 방식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의·정협의체인 의료발전협의회를 ‘야합’으로 비쳐지게 만들었는가 하면 집단휴진 결정 이후 공안대책협의회까지 열어 대응 수위를 높인 점 등이 그렇다. 집단휴진이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정지·의사면허 취소 운운하기까지 했다. 오늘 집단휴진에는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었던 전공의들이 동참으로 선회하는 결정을 내린 데는 정부의 이런 강경 대응이 작용했다고 한다. 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처 방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불법에 가담하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도록 하라”는 식의 강경책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의·정 갈등은 정부의 원격진료와 영리화 정책을 계기로 의료수가체제 등 의료계의 해묵은 불만과 의료의 공공성, 변화된 의료환경 등 어려운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노정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쉽게 풀릴 문제들이 아니다. 제2의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국회, 의료계는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한다. 마침 야당 측이 어제 여·야·정 및 의사단체, 전문가, 가입자 단체가 포함된 ‘의료공공성 강화와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제안했다. 무엇이 됐든 보다 큰 틀에서 의료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장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국정원장 물러나고 검찰은 허위 증거 철회해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의 초점은 더 이상 검찰 측 문서의 위조 여부가 아니다.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를 모독한 초유의 범죄 뒤에 누가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일이다.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다짐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려면 최소한의 선결조건이 있다. 우리는 이를 두 가지로 본다.
첫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이번에 위조로 드러난 문서는 ‘남재준 국정원’이 검찰을 거쳐 항소심 재판부에 낸 것이다. 남 원장은 증거조작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사전에 인지했거나 사후에 묵인했다면 비난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남 원장이 버티고 있는 한 수사(修辭)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돌이켜보라. 국정원 직원들은 검찰 특별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했고, 소환된 뒤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곤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할 때 입회한 변호사들이 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국정원’의 범죄를 캘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물며 ‘남재준 국정원’을 파헤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둘째, 검찰은 위조 문서에 대한 증거 신청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검찰은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유서를 통해 증거조작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도 증거철회나 공소장변경 신청 등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른 간접증거와 증언 등을 통해 공소유지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3건 외에 중국동포 임모씨의 자술서까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검찰 측 증거는 잇따라 탄핵되는 터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한 방법으로 공소유지에 매달리는 것은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할 일이 아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증거철회 등의 조치를 지시하는 한편, 허위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사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기 바란다.
국정원과 검찰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국정원은 협조자를 내세워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검찰은 국정원을 방패막이 삼으려는 듯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래 가지고서는 더 큰 위기에 몰릴 뿐이다. 두 기관은 진정으로 자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첫째,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이번에 위조로 드러난 문서는 ‘남재준 국정원’이 검찰을 거쳐 항소심 재판부에 낸 것이다. 남 원장은 증거조작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사전에 인지했거나 사후에 묵인했다면 비난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남 원장이 버티고 있는 한 수사(修辭)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돌이켜보라. 국정원 직원들은 검찰 특별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했고, 소환된 뒤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곤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국정원 직원들을 조사할 때 입회한 변호사들이 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국정원’의 범죄를 캘 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물며 ‘남재준 국정원’을 파헤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둘째, 검찰은 위조 문서에 대한 증거 신청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검찰은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의 유서를 통해 증거조작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도 증거철회나 공소장변경 신청 등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다른 간접증거와 증언 등을 통해 공소유지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힌 3건 외에 중국동포 임모씨의 자술서까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는 등 검찰 측 증거는 잇따라 탄핵되는 터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한 방법으로 공소유지에 매달리는 것은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가 할 일이 아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증거철회 등의 조치를 지시하는 한편, 허위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 검사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기 바란다.
국정원과 검찰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국정원은 협조자를 내세워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검찰은 국정원을 방패막이 삼으려는 듯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래 가지고서는 더 큰 위기에 몰릴 뿐이다. 두 기관은 진정으로 자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겨레 [사설] 본래 취지 벗어난 사외이사제, 전면 개혁해야
기업 사외이사의 일차적인 역할은 경영진 감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경영진 감시자가 아닌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 이익 보호를 위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식의 사외이사 제도는 없느니만 못하다. 사외이사제가 경영진 견제와 경영활동 감시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운용될 수 있도록 전면 개혁해야 한다.
특히 재벌기업의 경우, 사외이사제가 재벌과 권력을 잇는 연결고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9일 <재벌닷컴>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10대 재벌그룹 상장사 93개사가 올해 주총에서 새로 선임하는 사외이사는 10명 중 4명꼴로 청와대나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 출신이다. 재벌기업들이 퇴직 고위관료나 정치권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이유는 뻔하다. 재벌은 자신의 이익 보호를 위해 이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고, 이들은 그 대가로 적잖은 보수를 챙기는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재벌 총수와 특수관계에 있는 이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올해 재선임되거나 새로 선임되는 사외이사 중 교수 출신이 38.1%로 가장 많지만 단순히 전문성만을 기준으로 선임되지는 않는다. 재벌 총수와 직간접적인 친분관계가 있어야만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이런 구조 속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비정상적인 이런 사외이사제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둘러싼 공생체제가 강고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를 개혁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왜곡된 사외이사제의 최대 수혜자다. 기업들도 제구실을 못하는 사외이사제 덕분에 귀찮은 외부 견제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경영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이를 바로잡으려 하겠는가.
결국 왜곡된 사외이사제를 개혁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정권 차원의 강력한 의지다. 정부의 해당 부처가 개혁안을 마련한다고 해봤자 조삼모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사외이사 자격과 선임 방식 및 운용 행태 등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의 ‘사외이사제 개혁단’ 구성을 제안한다.
한겨레 [사설] KT 개인정보 유출 사고, 땜질처방 안 된다
카드회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인 케이티(KT)에서 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9일 민관합동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케이티 사옥을 방문해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고,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국장급을 공동단장으로 하는 ‘정보통신분야 개인정보 유출 대책단’을 구성해 재발 방지 대책을 찾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툭하면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체념한 나머지 정부의 재발 방지 약속이 지겨울 정도다.
케이티의 개인정보 유출은 지난 1월에 드러난 카드사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사고로 봐야 한다. 우선 2차 피해 때문이다. 카드 3사의 경우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지만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대부분 회수한 반면 케이티에서는 이미 2차 피해가 진행중일 가능성이 크다. 케이티는 지난 7일 경찰의 수사 발표 뒤 곧바로 누리집에 사과 안내문을 올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님의 소중한 자산인 개인정보가 더 이상 유통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케이티는 이번 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물론이고 피해 내용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1600여만명에 이르는 케이티 가입자들은 자기 정보의 유출 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케이티 누리집의 안내문에는 “정보유출 확인은 해당 자료를 확보하는 대로 시스템을 구현할 예정”이라고만 되어 있다. 사건 경위와 피해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2차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 케이티는 2012년에도 가입자 873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전력이 있다. 그때도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으나 결국 빈말에 그쳤다.
케이티 사고가 심각한 또다른 이유는 ‘본인확인기관’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부는 주민번호제도에서 비롯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2년 8월부터 민간의 주민번호 수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대신 케이티를 비롯한 11개 ‘본인확인기관’을 지정해 예외적으로 주민번호 수집 허용과 함께 공인인증서 같은 대체수단을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본인확인기관의 개인정보마저 무더기로 유출된 이상, 앞으로 주민번호제 유지를 전제로 한 어떤 재발방지 대책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 근본적인 재발방지는 주민번호제와 본인확인기관 지정제를 전면 개편하는 길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비정상의 극치’ 국정원 이대로 둘 텐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씨가 유서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를 거론하는 등 국정원의 은폐 조작 혐의가 짙어지면서 검찰이 공식 수사 체제로 전환했다. 사건은 이제 단순히 중국 공문서 위조의 진상을 밝히는 것 정도를 넘어서 국가기관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만 보면 국정원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존립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지금의 국정원은 온통 비정상투성이다. 간첩을 잡으라고 했더니 문서조작 등을 통해 간첩을 만들어내고, 문제가 커지자 시종일관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조작을 거듭해온 정황이 짙다. 국정원은 모든 책임을 민간 협력자에게 덮어씌우고 자신들은 교묘히 빠져나갈 궁리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국정원이 위조한 문서임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검찰도 국정원의 공범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핵심기관 두 곳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양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집권세력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기 바쁘다. 간첩 혐의 수사와 증거조작 의혹이 별개라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증거조작 의혹도 명백히 규명해야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간첩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조작 여부는 곁가지이고 간첩 수사가 본안이라는 이야기인데, 앞뒤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었다. 이는 증거에 입각해 유무죄를 가린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도 어긋난다. 증거가 조작됐다면 아무리 간첩으로 의심이 가더라도 유죄일 수 없다. 더욱이 국가기관이 사사건건 증거조작에 개입했다면 이는 국가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다.
사회 전 분야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둘러싼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요즘 안현수 선수 문제 등 이런저런 사안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며 ‘깨알 지시’라는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70~80년대에나 있을 법한 후진적인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박 대통령의 이상한 침묵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국정원의 비정상적 행태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소극적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국정원을 제대로 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기보다는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남겨두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박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지금의 국정원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여태껏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정상의 진원지였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야 할 때가 됐다. 조작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철저히 묻는 등 국정원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박 대통령의 결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겨레 [사설] 국정원 수뇌부의 ‘은폐 책임’ 더 크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의 의혹이 하나둘씩 베일을 벗어가고 있다. 이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의 유서는 여러 가지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김씨는 두 아들 앞으로 쓴 유서에서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이라고 적었다. 이 ‘가짜 서류 제작비’가 중국 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문서를 위조한 대가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검찰이 간첩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낸 중국 공문서가 위조된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번 사건의 발단에서 전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국정원이 보인 모습을 보면, 김씨가 혈서로 쓴 ‘국가정보원은 국가조작원이다’라는 글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남의 나라 공문서 위조라는 대담무쌍한 행동을 한 것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사건이 표면화한 뒤 국정원이 보인 행태는 더욱 놀랍다. 거짓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은폐조작을 계속해 왔다. ‘진실은폐원’ 혹은 ‘여론조작원’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증거 조작보다 오히려 더 질이 나쁘고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의 이런 조직적인 진실 은폐 행위는 국정원 수뇌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국정원 수뇌부라면 사건이 불거진 뒤 곧바로 엄정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졌어야 옳았다. 사안의 성격상 진상 규명이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국정원 수뇌부가 선택한 길은 정반대였다. 어떻게 하면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감추어 궁지를 모면할까에만 몰두했다.
국정원은 애초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참고 있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중국 정부에서 위조라고 밝힌 것은 발급 절차상의 문제일 뿐 ‘내용의 위조’는 아니다”는 주장을 흘렸다. 검찰에 제출한 자체 조사보고서에서도 “조작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문서 도장 감정 결과에 대해서조차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정원은 김씨의 자살 기도 사건이 있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모든 책임을 민간 협력자에게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은 교묘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만 궁리하고 있는 듯하다.
국정원의 이런 진실 은폐 행위의 한가운데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유출로 이미 물러나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국정원이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적 명예를 실추시킨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법 파괴와 국가적 위신 실추에 앞장섰다. 자격이 없는 인물을 국가 최고정보기관 수장 자리에 앉혀 놓은 필연적인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증거 조작 의혹 사건은 이제 중국 공문서 위조의 진상을 밝히는 것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게 됐다. 증거 조작의 정확한 경위, 검찰과 국정원의 공모 여부 등도 낱낱이 밝혀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정원의 사후 은폐 행위의 진상도 확실히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은 이미 지난해 9월 항소심 초기부터 이런 문서 조작 사실을 알고도 쉬쉬해온 게 검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저지른 은폐 행위의 정확한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남재준 원장에 대한 해임이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한겨레 [사설] 지방선거 후보 면접이 청와대 비서관의 직무인가
청와대 비서관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지방의원 출마 신청자들의 면접에 참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임종훈 민원비서관이 최근 수원시 정 선거구(영통구)의 경기도의원·수원시의원 선거에 출마할 신청자 15명과 함께 등산하고 점심을 먹은 뒤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등과 함께 이들에 대한 면접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튿날 면접 결과가 알려지고 일부 신청자가 반발하면서 이런 사실이 퍼졌다고 한다.
청와대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청와대 비서관의 이런 행위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기획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아무리 임 비서관이 해당 지역 당협위원장 출신이라고 해도, 청와대 비서관이란 직함을 가진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의문스런 점은 임 비서관이 무슨 경로로 해당 면접에 참여했는가 하는 것이다. 임 비서관이 면접에 참가하면서 상급자에게 보고했는지, 또 면접 결과를 놓고 청와대나 새누리당 관계자들과 협의했는지 등도 반드시 해명해야 할 대목이다. 청와대나 정부기관의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선거철을 맞아 연고 지역이나 관심 지역에서 임 비서관처럼 버젓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청와대와 선관위는 엄중한 조처를 통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가 선거중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청와대가 겉으로는 철저한 중립을 이야기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이런저런 경로로 선거판에 시시콜콜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선거를 관리·감독해야 할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을 선거에 투입한 것부터가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청와대의 느슨해진 선거중립 의지가 결국 임 비서관 사건과 같은 일탈을 불러온 것일 수 있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임 비서관 개인 차원의 문제로 끝내려 들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선거중립 의지를 재천명하고 전체 공직자의 선거중립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비상한 각오로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김재철 체제’로 돌아간 MBC의 암담한 앞날
안광한 문화방송(MBC) 신임 사장이 6일 첫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거의 모든 임원들이 방송의 공정성을 파괴하고 내부를 분열시킨 김재철 전 사장 때의 인물들로 채워졌다. 완벽한 ‘김재철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만하다. 김 전 사장 때 부사장을 지낸 안광한 엠비시미디어플러스 사장이 새 사장에 선임되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일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구체적인 인사 내용을 보면, 부사장에 권재홍 보도본부장을, 보도본부장에 막판까지 사장 경쟁을 했던 이진숙 워싱턴지사장을 임명했다. 또 기획본부장엔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편성제작본부장에는 김철진 콘텐츠협력국장, 드라마본부장에는 장근수 글로벌사업본부 특임국장을 보임했다. 이 가운데 권 부사장, 이 보도본부장, 백 기획본부장은 안 사장과 함께 김재철 체제를 지탱했던 핵심 인사들이다. 특히, 기자 출신인 권 부사장과 이 보도본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 때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노조와 가장 강경하게 대립했던 핵심 인물이다. 결국, 김재철 사장이 빠진 자리를 그들이 한 칸씩 올라가며 차곡차곡 채운 셈이다.
김재철 체제로 돌아간 문화방송의 앞날은 암담하다. 문화방송 노조가 성명을 통해 “다시 한 번 증오와 보복의 광풍이 몰아치더라도 김재철 체제로의 퇴행을 온몸으로 막을 것”이라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임 경영진은 첫발부터 내부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김재철 체제를 문화방송 퇴락의 원인으로 보는 시민 및 언론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문화방송이 회사 안팎에서 지지를 잃고 불공정 방송을 계속 이어가는 한 결말은 뻔하다. 지금도 지상파 3사 중에서 공정성과 영향력 등에서 가장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황이 더욱 고착화할 것이고, 방송사로서의 존재감도 점차 옅어져 갈 것이다.
한때 시청자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던 방송사가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몰락하는 걸 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굳이 교훈을 찾는다면, 공정성을 잃고 정치에 휘둘리는 방송은 절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최근의 문화방송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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