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비선 개입 없었고,

비선 개입 없었고, 조응천·박관천이 '불장난'한 '두 경위 사건'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핵심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에 출석했다. 보수언론들은 제각기 검찰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쟁점들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특정 방향으로 사건이 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추측하기로 보수언론들의 이런 스탠스는 검찰 수사의 진행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도 읽힌다.


정윤회, 박지만 미행했다, 하지 않았다?

16일 보수언론이 가장 크게 다룬 쟁점은 정윤회 씨가 박지만 회장에 대한 미행을 사주했는지 여부였다. 소위 ‘박지만 미행사건’은 지난 3월 <시사저널>의 보도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게 됐는데 이 보도에 의하면 박지만 회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을 붙잡아 ‘정윤회 씨가 사주했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일제히 박지만 회장이 미행했다는 자술서를 갖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1면 보도했다.
▲ 중앙일보 16일자 1면.

그러나 이들의 보도 태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중앙일보>는 <“미행당한 건 사실, 자술서는 없다”>는 제목으로 박지만 회장의 발언을 1면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이 조사과정에서 ‘시사저널 보도에 나온 자술서는 없다’고 진술했다”면서 박지만 회장이 “나와 가족들이 미행을 당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는 이날 3면에 <검찰 ‘박지만 미행설’ 첫 언급한 여권 인사 추적>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박지만 회장의 주장대로 미행이 실제 진행됐는지,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미행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가 의문인데, 이를 풀기 위해 애초 미행설은 언급한 인사를 수사하는 것으로 검찰이 방향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전하는 박지만 회장 발언의 톤은 <중앙일보>가 전하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조선일보> 1면 보도에서 박지만 회장은 “당시 여러 사람이 나에게 ‘미행당하고 있다’고 말해줘서 기분이 나빴고, (정윤회 씨를) 의심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그간 정윤회 씨가 “박지만 회장의 주변 인물들이 잘못된 정보를 입력해 오해를 사게 됐다”고 주장해온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어서 정윤회 씨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 조선일보 16일자 3면.


박지만 청와대에 개입했나, 권력 암투에 이용당했나?

소위 비선 실세 의혹에 박지만 회장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미행설 말고도 또 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의 주선으로 자신에 대한 잡음이 기록돼있는 다량의 문건을 세계일보 기자를 통해 박지만 회장이 접하고 청와대에 ‘문건 유출’을 경고했다는 얘기가 나온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사실을 전하면서 “일부에서는 당시 문건이 박 회장에게 전달된 것을 두고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이 박 회장을 움직이게 하려고 자극을 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즉,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의 ‘자작극’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는 소위 ‘7인 모임’이 주로 문제가 된다. 7인모임은 청와대 내외에서 박지만 회장을 고리로 정윤회 씨 관련 문건을 생산하고 유출한 것으로 지목된 단위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응천 그룹’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박지만 회장은 이들 7명중 4명과는 모르는 사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검찰은 이 ‘7인 모임’ 멤버들이 박 회장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3인방과 ‘궁중다툼’을 벌이면서 박 회장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결국 여기서도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이 문제인 셈이다.


정윤회가 말한 '불장난'을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이 했다? 

문건의 유출 경위에 대해서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이 공개한 ‘문건유출 경위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경위서에는 청와대의 민감한 문건이 대량으로 유출됐다는 사실과 함께 이의 회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또, 문건의 유출 경로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던 인사들이 지목돼있다. 박범계 의원은 이 경위서가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됐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박범계 의원의 이러한 주장을 충실하게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박범계 의원은 이 경위서의 작성자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이 경위서의 작성자를 박관천 경정으로 보고있다. 특히 <중앙일보>는 4면 기사에서 “검찰에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측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의 신빙성을 의심한다”면서 이에 대해 청와대가 “정 비서관이 묵살했다고 주장하는데 정 비서관은 계통을 밟으라고 했다. 민정수석실을 통해 감찰이 이뤄졌다”고 반론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보도의 맥락을 보면 역시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이 ‘불장난’을 했다는 얘기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보수언론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2분실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에 대해서도 합리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는 4면에 이들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면서 “검찰은 이들 가운데 세계일보 기자에게 복사본을 제공한 혐의를 최 경위에게 두는 쪽이었다”면서 세계일보가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을 토대로 한 내용의 기사를 내자 한모 경위가 깜짝 놀라서 복사본을 파쇄했고 이후 세계일보 기자와 친한 최모 경위를 원망했다는 경찰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 동아일보 16일자 5면.


최 모 경위가 한 모 경위 살리려다 발생한 비극? 

숨진 최모 경위와 함께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모 경위가 15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외압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에 대한 보도도 있다. 한모 경위의 변호사와 청와대가 인터뷰 내용을 전면 부인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데, <동아일보>는 5면에 해당 논란을 전하면서 “일각에서는 한 경위가 검찰의 추궁이 두려워 최 경위를 설득하기 위해 ‘청와대 측의 선처 약속’ 얘기를 지어냈는데 최 경위가 이를 그대로 믿었다는 시각도 있다”고 해설했다. 이를 앞의 <조선일보> 보도 맥락과 연결해보면 한모 경위는 애초에 스스로 최모 경위보다 죄가 중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최모 경위는 한모 경위를 살리기(?) 위해 혐의를 인정하려 했는데 둘 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어려움을 겪자 결국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 동아일보 16일자 4면.


정윤회에 대한 박지만의 개인적 '악감정'이 문제다? 

한편, 일부 언론들은 박지만 회장이 정윤회 씨에 대해 오랜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을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최태민이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있다” 박지만 분노, 최씨 사위 정윤회에게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90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와 박지만 회장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언니를 최태민 목사로부터 구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정윤회 씨가 최태민 목사의 다섯번째 딸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와 결혼한 1995년부터 박지만 회장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4면 보도에서 같은 사실을 두고 박지만 회장이 2000년도에 정윤회 씨와 골프를 치기도 할 만큼 사이가 좋았지만 조응천 전 비서관이 소위 정윤회 씨와 가까운 이른바 ‘3인방’과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멀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결국 또 조응천 전 비서관이 문제인 셈이다.



▲ 중앙일보 16일자 5면.

<중앙일보>는 문제가 된 정윤회 씨 관련 문건의 출처에 대한 기사를 지면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날 <중앙일보>는 5면에 <최순실 “이혼할 것 같다”…이 말이 정윤회 문건 제보의 시작>이라는 기사에서 최순실 씨가 자신이 소유한 빌딩 5층에서 모피 의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에게 이혼 등 개인사를 털어놓았는데 이 김모씨와 친분이 있던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박관천 경정에게 내용을 전달한 게 소위 ‘정윤회 문건’의 기초가 된 것으로 검찰이 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정윤회 씨가 오토바이로 홍천에서 상경한다는 문건의 내용은 ‘오토 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만큼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 부풀려진 것이며, 소위 ‘십상시 모임’이 진행됐다는 중식당도 정윤회 씨 가족이 모임을 하던 장소라는 점이 와전된 것이다.


결국, '두 경위 사건'의 '비극적 해프닝'으로 몰아가나

위와 같은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보수언론들은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식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나 대체적으로는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 유사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박지만-정윤회 양자의 암투로 확대된 것은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의 ‘불장난’이 원인이 된 측면이 크고 박지만 회장의 최태민 목사 일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이 불장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게 핵심이다. 이들의 보도를 끼워맞춰보면 최모 경위의 자살과 청와대의 수사 외압 논란도 일종의 ‘비극적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 청와대와 검찰이 원하는 그림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은 실체가 없고, 박지만 회장은 약간의 감정을 갖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정윤회 씨 등에 대항한 게 아니라 조응천 전 비서관 등에 휘둘린 것이며,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에서 소위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충돌하며 ‘개인적 의도’로 문건을 생산하고 유출시켰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못된 건 없다. 세상은 아름답다.

유서에 버젓이 있는데

▲ 14일 오후 <채널A>가 최 경위의 유서 내용 중에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단독으로 보도하고 있다.ⓒ 채널A 캡처 
▲ 14일 오후 <채널A>가 최 경위의 유서 내용 중에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단독으로 보도하고 있다.ⓒ 채널A 캡처
'정윤회 문건'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채 발견된 고 최아무개 경위의 유서가 14일 오후 전격 공개됐다. 유서에는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향후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조선>, 하루에만 두 번 성명서 발표... '자사 명예'와 '공정 보도' 강조
일요일이었던 이날 <조선일보>는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채널A>에서 보도한 "최 경위가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을 유서에 적어놓았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은 오후 4시 51분 '조선일보사'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입장문을 보도한 조선닷컴의 기사 제목은 '최모 경위 보도 관련 조선일보 입장, "유서 짜깁기한 보도로 조선일보 명예 훼손"'이었다.
 ▲ <채널A>에서 최 경위 유서에 '조선일보에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자 '자사 명예에 대한 훼손' 운운하는 입장문을 14일 발표한 <조선일보> ⓒ 조선닷컴 누리집 
▲ <채널A>에서 최 경위 유서에 '조선일보에 배신감'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자 '자사 명예에 대한 훼손' 운운하는 입장문을 14일 발표한 <조선일보> ⓒ 조선닷컴 누리집
이 입장문에서 <조선>은 "14일 오후부터 일부 언론이 '최 경위가 유서에서 조선일보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선일보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뒤 "하지만 이 기사들은 본지가 파악한 유서의 내용이나 맥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조선>은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하는 것은 고인의 유서를 왜곡해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유서 전체가 공개되기 이전에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거두절미한 채 왜곡 보도해 본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조선>이 발표한 최초 입장문이 놀랍다. 유서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름 확신이 있었던 듯 6개의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입장문에서 "본지가 파악한 유서의 내용"이란 표현과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 <조선일보>에 대해 언급한 최 아무개 경위의 유서 대목 ⓒ연합뉴스 
▲ <조선일보>에 대해 언급한 최 아무개 경위의 유서 대목 ⓒ연합뉴스
그러나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그날 오후 6시,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유서에서 최 경위는 '<조선>에서 저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되었습니다'라고 기술했다. 직접적으로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조선>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기사 보기: "청와대 민정라인 제의, 나도 흔들렸을 것... 이해한다")
오후 8시 29분, <조선일보>가 두 번째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앞서와 달리 '조선일보 편집국' 명의로 입장을 발표했다. 약 3시간 30분 전에 발표했던 입장문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명예'란 표현이 사라진 대목이다.
최초 입장문에서는 두 번에 걸쳐 "조선일보 명예"를 운운했던 이 신문은 이제는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어떠한 예단도 없이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보도해 왔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본지가 그동안 보도한 최 경위의 유출 관련 혐의 내용은 검찰로부터 확인된 취재 내용이거나 구속영장에 적시된 내용으로, 이는 타 언론들도 보도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죽음 앞에 '공정했다' 주장하는 <조선>, 과연...
 ▲ 최 경위가 체포된 다음 날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0일자 3면 ⓒ 조선일보PDF 
▲ 최 경위가 체포된 다음 날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0일자 3면 ⓒ 조선일보PDF
이 신문은 고인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40대 중반의 한 경찰이 "조선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 가 억울하다"며 죽음으로 항의한 내용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공정하게 보도했다"고 맞섰다. 정말로 그러한가?
<조선>의 지난 10일자 3면 머리기사 제목은 "박경정이 갖고 나온 靑 문건, 정보분실 최 경위가 유출"이다. 해당기사에서 이 신문은 "검찰은 한 경위로부터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을 몰래 복사한 최 경위가 이를 언론사에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래픽자료를 만들어서 함께 보도했는데 최 경위의 역할을 '최모 경위 유출'이라고 특정했다. 동료인 한 경위의 역할은 '복사'로 기록돼 있다.
이 신문은 정보분실 2명의 경위가 문건을 유출한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인 11일자 사설로 이 두 사람을, 나아가 이들의 조직을 단죄한 것이다. 제목부터 '섹시'했다. "靑 문건 유출로 드러난 정보 경찰의 한심한 실상"이 그것이다. 이 신문은 "드러난", "한심한 실상"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이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처럼 몰아갔다.
 ▲ 최 경위가 체포되자 이를 '정보 경찰' 차원으로 확대해 비판 사설을 게재한 <조선일보> 12월 11일자 사설 중 
▲ 최 경위가 체포되자 이를 '정보 경찰' 차원으로 확대해 비판 사설을 게재한 <조선일보> 12월 11일자 사설 중
사설에서 이 신문은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청 본부에 이르기까지 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경찰은 무려 3400명에 이른다"며 "사실상 전국 구석구석에 경찰의 촉수(觸手)가 뻗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검찰은 이번에 정보 경찰의 탈선행위를 엄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와는 별개로 경찰의 정보 조직도 수술(手術)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찰의 정보 담당 인력이 수천 명이나 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을 것이다"고 문제를 두 경찰 조직으로 확대해서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강한 논조로 어필한 것과 달리, 12일 법원은 이 두 사람에 대해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영장을 기각했다. 두 사람은 풀려났다. 이를 보도한 13일자 <조선일보>의 관련 제목은 "검, 경위2명 영장 재청구… 특검까지 각오"였다.
 ▲ 12일 두 정보 경찰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다. 두 사람이 풀려나게 되자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3일자 4면. ⓒ조선일보PDF 
▲ 12일 두 정보 경찰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다. 두 사람이 풀려나게 되자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3일자 4면. ⓒ조선일보PDF
이 신문은 이들이 풀려난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검찰은 이번 수사에 대해 사실상 배수진을 친 상태다"라며 "특별검사가 임명돼 재수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만큼 빈틈없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뜻"이라고 검찰 입장의 해설기사를 게재했다.
풀려난 두 경위의 입장은 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두 경위의 구치소 출소사진을 보도하면서 "최 경위의 안경에 김이 서린 데다 카메라 플래시까지 반사되면서 오른쪽 눈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상대적으로 신중했던 <동아>·<중앙>의 보도
 ▲ 최 경위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청와대에서 회유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2월 13일자 6면  ⓒ 동아일보PDF 
▲ 최 경위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당시 '청와대에서 회유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2월 13일자 6면 ⓒ 동아일보PDF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언론은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중했다. 두 경위 체포사실을 보도한 10일자 내용을 보면 <동아>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임관혁)는 최모 경위에게는 (중략) 보고서 뭉치를 세계일보 기자에게 건넨 혐의를, 한모 경위에게는 승마협회 동향 문건을 빼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한화S&C 소속)의 진모 차장(45)에게 건넨 혐의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혐의를 두고 있다" 등 체포영장에 명기된 사실 위주의 보도로 해석된다.
이후 <동아>는 두 경위가 석방되자 13일자 지면에서 최 경위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회유하려 했음"을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 경위, 청 '유출 인정하면 선처' 언급" 제목의 기사에서 최 경위가 "대통령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경찰관이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해줄 수 있다'고 한 경위에게 말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동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도했다. 두 경위가 체포됐을 때, 검찰의 혐의사실에 대해서 언급한 정도다. 11일자 사설 "정보 장사꾼들 사이에 떠돌아다닌 청와대 보고서"를 보면 이 신문의 관심은 두 경위가 아니다. 청와대에서 도대체 문서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따져 묻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신문은 "국가의 중대사와 기밀을 다루는 청와대 보고서가 마치 찌라시(사설 정보지)처럼 여기저기 마구 나돌아다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면서 "청와대의 문서 관리와 기강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정보 경찰에게 책임을 물었던 <조선일보>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이다.
<조선>, 책임을 검찰에 떠넘기는 것도 공정한가
 ▲ '조선일보가 자신을 유출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한 최 경위 유서 내용과는 별개로 <조선일보>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추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12월 15일자 4면 중  ⓒ조선일보PDF 
▲ '조선일보가 자신을 유출 주범으로 몰고 있다'며 배신감을 토로한 최 경위 유서 내용과는 별개로 <조선일보>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추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12월 15일자 4면 중 ⓒ조선일보PDF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15일자 <조선>은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최 경위의 극단적 선택은 검찰의 영장 재청구 방침 때문"으로 보도했다. 실제 그의 유서에서는 검찰의 강압수사 등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조선일보에 대한 배신감'이 드러나 있었다. 오히려 이 신문에서는 검찰의 영장 재청구 때문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리해 본다. 최 경위의 유서가 공개된 14일 <조선일보>는 유서 공개를 앞뒤로 두 차례 입장을 발표했다. 유서가 공개되기 전에 발표된 최초 입장문에는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했다면서 "자사의 명예훼손 운운"하는 내용 위주였다.
잠시 후, 최 경위 유서가 공개됐다. 이 신문에 대한 원망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신문은 잠시 후 다시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자사의 명예"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보도는 "공정한 보도"였고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누가 보더라도 이들에 대해 확신을 갖고 보도했다. 10일에는 "최 경위가 유출했다"고 한 경위가 진술했다고 단정했고, 이에 11일에는 사설을 통해서 정보 경찰 전체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이 풀려나는 날조차 검찰 입장에서 "영장 재청구"할 것이라며 두 경위를 몰아세웠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이제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회사 차원의 문제이다"라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고 적어놓았다. 그 회사를 직접 대상으로 사설을 통해 비판한 언론은 <조선일보>였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하루에 두 차례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보도는 공정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 경위는 죽어서도 마음이 편치 못할 듯싶다.

조선일보 필기

조선일보 필기

'재벌 3세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칼럼 쓰기
(1400자 내외)


한반도 통일

통일은 단순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감을 의미하기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체제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갈라진 두 체제를 연결시키고 통합하는 민족공동체의 복원과 재창조를 의미한다.

왜 통일이 필요한가?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조건은 평화다. 평하의 선결 문제는 전쟁의 종식이고 이는 통일과 연결된다. 정전협정이란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라도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통일은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통일은 정치적으로 민족적 역량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대장정이다. 통일은 우리의 또 하나의 이름인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통일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신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할 것이다.

통일은 분단으로 인해 지불하고 있는 비용과 폐해를 없애고 보다 나은 삶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통일은 분단에 따른 유무형의 비용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이득을 창출함으로써 국가 사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것이다. 국토와 인구면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고 국가 브랜드의 가치도 급격히 상승시킬 것이다.

남북분단은 민족구성원간의 상호불신과 반목과 갈등을 부추겨 왔는데, 이를 극복하면서 민족적, 총체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어야 발전과 번영의 동력이 된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소멸은 통합의 정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갈등의 깊은 골은 통일로 해결하 수 있고 이것이 사회통합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통일노력은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먼저, 통일을 위해서 선행돼야 할 것은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다. 대결과 갈등구조의 냉전적 패러다임을 탈냉전적 패러다임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민주-반민주, 통일-반통일, 개혁-반개혁 구도로는 우리 사회의 균열을 치유할 수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선 민족의 평화공존, 공동번영, 주변국과의 협력 및 호혜평등 등의 개념이 하나의 틀로 확산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부가 바뀌면 헌법상의 평화통일이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진 않지만, 정부의 속성에 맞춰 정책이 변해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권이 바뀌어 통일정책 기구 등을 바꾸고 관련 홍보자료를 확대한다고 해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향적 관점에서 국민을 정부의 파트너로 여기기보다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 위주의 공급자적 관점이나 관료제적 틀에 의거해 통일교육정책을 입안할 때 수용자인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가 어렵다. 통일교육의 다양한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참여는 대의기구의 대표성, 호응성, 책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통일 교육 내용이 정부와 국민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박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대통령이 위원장, 정부측 위원장은 통일부장관, 민간 부위원장 그리고 50인의 위원을 두어 운영되는 조직이다.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통일추진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며 민관협력을 통해 한반도 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해ㅐ야 한다.

한반도 주변 국제 정세

한반도 통일은 일차적으로 남북간 해결해야 할 민족 내부문제지만, 한반도 주변 4국의 다각적인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받는다. 현재 동북아에는 냉전시대의 대결구조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있다. 동북아에서는 냉전시대의 대결구도와는 달리 새로운 갈등과 복잡한 각축 구도가 다시 조성됐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저해되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나 , 북한지역 경제재건에 막대한 재정지출시 예상되는 한국의 경제적 부담과 한미동맹의 성격변화를 염려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동북3성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과, 북한이라는 정치군사적 완충지대가 사라져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축소됨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통일이 그동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남북균형외교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소극성을 보인다.

러시아의 경우 주요 행위자로서 역할ㅇ른 미약하나, 한반도 통일이 러시아 극동개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위상을 굳히고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생각이다 .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그 처리과정에서 한미동맹은 강화됐지만, 북중관계도 강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관계가 경색됐다. 동북아의 정세변화는 한국의 대내외 정책과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한반도 통일환경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원유를 대주고 있다는 것은 다 안다. 미국은 그런 중국이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대치전선에서 완충역할을 해줄 북한의 안정이 먼저다. 내정간섭을 할 수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미국은 핵위협을 하는 불량국가 북한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재ㅐ무장화,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통한 중국 견제가 가능하다. 이게 전략적 인내의 실상"이라며 중국은 신랼하게 비판한다.

종속 관계에서 남북 각각 미국과 중국을 통한 외주외교를 청산하고 남북 협의를 통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더구나 남북개선은 통일준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동북아는 국익을 위한 국가간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대북외교정책을 펼쳐야 핞다.

선결조건: 남북한 신뢰 구축

결국 통일이 돼야 할 곳은 한반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이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평화공존은 남북이 모두 주장하는 평화통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다. 여기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신뢰다.

신뢰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교류다. 만나서 대화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협력이 됐건 학술체육문화교류건 간에 계속 만나야 한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너지 인프라 개선 사업, 경제특구 사업 등 남북경협의 심화 확대를 통해 경협이 북한 경제의 한 축으로 작용할 때 신뢰는 당연히 구축될 수 있다.

남과 북은 더 이상 불신과 대결로 점철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적대적 공존'이 아닌 '호혜적 공존'이다. 이를 바탕으로 분단을 잘 관리해 평화통일로 가야 한다.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남남갈등

남남갈등은 장기간 지속된 남북간의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냉전적 대립구조와 이로부터 비롯된 냉전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압축적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흑백논리가 격화됐다.

남남갈등은 남북갈등을 대칭하는 의미의 용어로서 남북한 관계를 둘러싼 남한사회 내부의 갈등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우리 사회에서 화해와 협력을 내세우면 친북성향으로, 대북강경과 안보를 내세우면 반통일 성향자로 단정해왔다.

민족공조를 내세우면 반미주의자로, 한미동맹을 내세우면 친미주의자로 매도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진보세력을 친북세력으로, 보수세력은 친미세력으로 간주해 왔다.

남남갈등은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대북정책과 다음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구체화됐다. 대북정책은 어떤 다른 분야 정책보다 이념적 확장성이 강한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특정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국민들의 이념적 편가르기 및 분열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강준만 인터뷰

강준만 인터뷰

독자는 책의 유저이고 책은 상품일 뿐이다. 
지식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드러낼 수 있는 취미가 뭘까 고민한 결과가 턱걸이, 오래달리기
강준만은 고립과 중독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상징되는 중심으로부터의 고립과 읽고 쓰기 중독증

담론 공동체는 저절로 굴러가는 자율적인 자기 강화의 힘이 있다. 그거 굴러가게 해서 담론 헤게모니를 갖는데 바쁠 수밖에 없으니, 현실과의 적합성과 구체적인 것까지 미처 신경이 안 간다고 보고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함정에 빠졌다.

학문적 열정은 학문 공동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한국사회 지식인들 중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다. 지식 생산은 고립과 관련 있다. 
학문이 발전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전국의 군 단위로 뿔뿔이 흩어버리면 고립된 상태에서 뭔가 할 텐데, 서울은 너무 좁다.

기득권. 권력자나 금욕자만 생각하지만 사실 작은 영역에서도 자기 정신과 노력을 투자한 기득권이 있다. 기득권개념을 넓게 쓰면 모두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 같다. 

다작왕 강준만 선생 머릿속에 구조를 짜고 그다음엔 일사천리로. 애초에 주제 잡는 단계에서부터 안 될 것 같은 상황은 배제하고 시작.

우리가 원하는 세상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있따. 진보에 대한 가장 큰 불만도 그 지점.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운동이건 사회에 대한 주장을 얘기해야 하는데 진보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위주로 그 얘기만 한단 말이다. 그러고 나서 손을 턴다. 역할을 다 했다고. 비루하고 천박한 세계는 보수에게 다 념겨주고.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만큼 특정 이미지에 갇힌 지식인도 드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토론과 사유, 언어의 부재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근원이자 '고난과 역동의 현대사'를 경험했으면서도 학문이 융성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는 대로 생각하는 자질은 모두 책이 됐다.

세상 이치가 다 어찌 보면 우연과 운의 산물이라고 봐요.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덜하고 사람이 겸손해지죠. 크게 아웅다웅할 것 없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처음부터 발굴하고 처음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조한 같은 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이 이 땅의 현실을 팽개쳐놓고 엉뚱한 얘기 가져다가 한다는 거 아니에요.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자기 몰입 능력과 극한의 성실함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

"왜 한국인은 회식을 좋아할까"

검색어 1위 조현아가 상징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어처구니 없음

<글쓰기의 즐거움>(2006) 읽어보기


"우리는 기록과 평가에 인색하다. 특히 인물의 경우에 그러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공익을 추구한 사람도, 위선과 기만과 변절을 범한 사람의 과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그래선 안 된다. 보상과 문책에 철저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익을 생각하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두렵게 여긴다."

"이제 나는 초당파적 입장에서 정치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고 싶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소매상 노릇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다. 대의를 앞세우되 정열에 들떠 독선에 사로잡히고 윤리까지 무시하는 사람들, 탐욕, 무지, 무관심으로 인해 기존 질서를 자연의 법칙인양 간주하면서 변화를 위한 시도를 불순한 음모로 몰아붙이며 떼를 쓰는 사람들, 냉소에 침잠해 모든 사회적 가능성에 닫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상호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전라도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운 내가 이 지역에서 평판이 극단으로 나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은 내가 얘기하는 메시지보다 행태적 싸가지를 문제 삼더라. '지가 뭔데 글로 비판하고 실명 언급하며 비판하냐'는 거다. 그렇게 싸가지 없다고 낙인을 찍으니까 내가 쓴 글을 안 보고 그냥 비판하더라. 이미지가 굳어진 거다. 그런데 역지사지해보면 나도 싸가지 없는 인간을 싫어했던 적이 있다."


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하는가?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 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오늘날 이십대는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편한 시절을 살았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능력주의 논쟁: 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데올로기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학력과 학벌의 세습은 능력주의 사회가 사실상 이전의 귀족주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한국형 세습 자본주의를 바꾸는 것이 제1의 개혁의제가 돼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곤 하지만, 평등주의는 위를 향해서만 발휘될 뿐이다. 밑을 향해선 차별주의를 외치는 이중적 평등주의를 진정한 평등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중적 평등주의는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시인 김수영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물었듯이, 이제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사소한 차이에만 집착하고 그 차이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에 분개하는 동안 세상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조현아와 장그래

"오늘날 우리가 삼성이 이건희의 것이라 해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듯이, 대다수 사람들이 왕이 국가의 주인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듯이, 대다수 사람들이 왕이 국가의 주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생각의 힘은 무서운 것이어서, 철학자들이 왜 국가가 왕의 것인가 묻기 시작했을 때 왕의 절대적 지배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 동요는 국가가 모든 국민의 나라가 되기까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기업을 그렇게 민주화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최 경위의 원망

“조선일보 OOO은 제가 좋아했던 기자인데, 조선에서 저를 문건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됐습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정윤회 국정개입의혹 문건 유출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 아무개 경위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에 이처럼 ‘조선일보’를 원망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5일자 지면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최 경위 유서의 일부 내용이 자사에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14일 일부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오자 “최 경위 유서의 전체를 파악하지 않은 채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하는 것은 고인의 유서를 왜곡해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유서 전체가 공개되기 이전에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거두절미한 채 왜곡 보도해 본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반론’대로 유서전체의 내용을 보면, 자살의 이유로 조선일보만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유서의 상당 부분이 언론에 대한 원망과 언론의 저널리즘 회복을 당부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고인이 된 최 경위가 죽음을 앞두고 조선일보를 특정해 원망한 것은 다분히 심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보인다. 왜 최 경위는 그런 마음을 가졌을까? 유서의 내용대로 단지 좋아했던 기자의 소속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납득되지 않는 ‘원망’이자 ‘배신감’의 토로다. 죽음을 앞두고 저널리즘의 회복을 거론한 최 경위는 언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호불호’의 감정에서 한 언론사를 자신의 유서에서 원망할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서의 ‘텍스트’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원망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먼저 최 경위의 말대로 그동안 조선일보 보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조선일보가 유서의 내용대로 정말 그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갔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정윤회 비선의혹 문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 전반을 살펴봐야 한다.
조선일보는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한 이후, 주요한 후속 보도들을 잇따라 터뜨리며 사건이 전개되는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보도가 ‘조응천 전공직비서관’과 ‘유진룡 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인터뷰 기사였다. 전자는 이재만 비서관과 연락을 취한 바 있으면서도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한 정윤회씨의 거짓말을 밝혀냈고, 후자는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 딸의 국가대표선발 특혜의혹을 조사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장과 과장에 대해 직접 인사교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밝혀낸 것이었다. 이 보도들은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불거진 비선국정농단 실체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한 보도들이었다. 문건 내용에 초점을 맞춘 이런 조선일보 보도들은 최 경위의 ’원망을 살 내용들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문건 유출’사건으로 몰아가고 싶어한 청와대의 의도에 반하는 보도들이었다.
조선일보 11월 29일자 3면 기사 
하지만 이런 보도들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직후에는 ‘문건 내용’보다 ‘문건유출’을 색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 의도와 일치하는 듯한 보도였다.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한 지난 11월28일의 다음날인 29일, 조선일보는 박 경정이 들고 나온 청와대 문건을 서울청 경찰관 2~3명이 유출했다고 1면 머리기사와 3면 해설기사에서 보도했다. 비선의 국정개입의혹이란 ‘문건내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유출경위’에만 보도초점을 맞추면서, 단박에 특정 정보경찰관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한 경찰관계자의 말을 인용 “정보분실 소속 일부 경찰관이 복사한 문건이 일부 언론에 유출되었으며 해당 언론이 이 문건을 근거로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후 12월 4일자에서는 검찰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자 최 경위를 실명으로 문서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보도를 했다. 이 같은 일련의 보도들에 대해 최 경위는 조선일보가 자신을 사건의 희생양으로 만들어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검경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한 것 자체를 두고 최 경위가 특정언론사에 원망까지 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최 경위의 원망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게 무엇일까?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진짜 이유가 될 만한 단서는 12월 2일자 조선일보의 A4면 하단의 작은 상자기사 <서울경찰청 경찰들, 靑보고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자신들도 세계일보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을 다수 입수했다는 사실을 살짝 드러낸다. 바로 조선일보를 원망한 최 경위의 이유가 감지되는 기사다. 물론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입수한 문서는 세계일보와 동일 문서인지 여부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사의 사례로 든 문건들의 제목을 보면 공직기강비서실이 작성한 다른 문건 내용들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문건입수일자를 12월 1일이라고 특정했지만 입수 출처가 특정되지 않아, 입수일자가 내부인지 외부인지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 기사가 말해주는 분명한 사실은 조선일보도 공직기강비서실 문건을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12월 2일자 4면 기사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는 문서가 최 경위로부터 최 경위가 좋아했다는 조선일보의 ○○○기자에게 건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조선일보는 문건이 세계일보에 의해 보도된 직후인 11월 29일자 보도에서 바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경찰관들을 지목했다. 경찰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정보라고 하지만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보도 하루 만에 단정해서 보도하기는 쉽지 않은 신속한 보도였다. 조선일보 기자 역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을 최 경위 등으로부터 입수하고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12월 10일자 ‘뉴스1’의 기사 <檢, 체포 경찰관 2명 조선일보에도 '靑 문건' 유출 확인>에 따르면 이 추론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검찰이 최 경위와 한 경위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세계일보 기자 외에도 조선일보 ○모 기자에게도 박 경정이 유출한 다수의 청와대 문건을 넘긴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선일보에 대한 최 경위의 원망의 이유는 자연스레 풀린다. ○기자로부터 개인적으로 ‘배신감’을 느꼈거나 아니면, ○기자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배려하지 않은 조선일보 편집진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최 경위에게 ○기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고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기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취재원으로써 신뢰를 하고 위험한 정보를 건넨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자 조선일보는 취재원인 자신을 보호해 주지는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서 제공받은 문건을 바탕으로 자신을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해 자신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것이라면, 조선일보는 과연 잘못한 것일까?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비록 최 경위의 원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알고 있으면 성역을 가리지 않고 써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보도가 무조건 잘못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청와대 공직기강실의 문건들이 최 경위로부터 입수한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일보의 문건유출자를 최 경위 등으로 지목한 것은 타 언론사가 알지 못한 단독보도이자 ‘팩트’가 상당한 보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2월 4일자 4면 기사 
하지만 사건 초기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야 할 시기에 이런 방향으로 보도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지, 더구나 이런 보도를 위해 기자의 취재원을 고발하는 보도를 감행했어야 했는지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자살한 최 경위로부터 조선일보가 공직기강 비서실의 문건을 제공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취재원들로부터 조선일보 기자들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취재원을 보호하지 않는 기자를 어떻게 믿고 정보를 주겠는가 하는 문제다. 또한 만약에 조선일보가 최 경위로부터 입수한 공직기강실 문건들 중에 보도가치가 있었던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조선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보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를 원망하는 고 최 경위의 유서 내용은 이래저래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전 언론계 기자 사회에 적지않은 논쟁거리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모든 비판은 자기 변화로만 가능하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하게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프리드리히 엥겔스

내 기억이 거짓은 아니지만 경험은 과거에 대한 선택적 해석이다. 맥락이 의미를 규정한다. 
고전은 무식의 면죄부다. 아무 때나 인용하고 표기 그대로 오해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므로 고전으로 간주되는 책들은 태생부터 반동적이며 동시에 해방구다.

비판이란 무엇인가. 해석은 곧 변혁이므로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에 몰두했다. "서구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라는 표현을 조롱했지만, 근대 이후 서구 철학이 맑스의 주석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현실과 현실의 재현과의 관계, 즉 사회 변화에서 언어의 역할은 영원한 논쟁거리다. 이 격렬한 구절은 숭배받았고 또 그만큼 비판에 시달렸다.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은 ~ ".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는 이 관용구의 운명은 자기 논리에 의해 자신도 부정된다. 파생된 것은 바다를 이루고 파도가 되어 기원을 삼켜버리기 마련이다.

해석과 변혁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가 곧 변혁이다. 신앙을 포함 모든 철학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해석이 곧 실천임은 당연한 이야기고 문제는 누구의 해석이냐, 그것을 누가 대표로 말할 수 있는가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통 과정에서 변형된다. 투명한 언어는 없다. 사실 인간은 언어로 말하지도 않는다. 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3~7%, 나머지는 몸이 말한다.

변화는 곧 비판이며 비판은 곧 저항이고 저항은 무조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비판, 저항, 방어(자기 합리화)가 모두 같은 행위였으니 끔찍한 일이다. '변화시켜야 할 대상'은 마치 분노처럼, 타인을 향할 때 폭력이고 나를 향할 때 우울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날엔 폭력적이었고 지금은 우울한 것인가.

푸코는 '비판이란 무엇인가'에서 "비판은 자신이 명확히 알지도 못하고, 또 스스로 그렇게 되지도 못할 미래 혹은 진실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왜 존재 자체를 수용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동사인 것을.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비판이라는 실천은 푸코의 작두 위에서 춤추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모든 비판은 자기 변화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모든 비판자들을 존경한다.


미생 땅콩 회항

땅콩 회항과 미생

한 사람의 인격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기질'과 자라는 과정에서 경험해 축적된 '성격'으로 구성된다. 타고난 특징인 기질은 바꾸기 어렵다.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지만 이후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서 어떻게 양육되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자랐는가도 매우 중요한 인격 형성의 과정이다. 

욕구에 대한 충분한 충족
사리 분별을 할 수 업속 그저 자신에 대한 분화되지 않은 존재감을 어렴풋이 느끼는 신생아
울면 먹이고, 달래고, 빨리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바깥 세상으로부터 제공되는 자신의 욕구에 대한 충족으로 인해 아이는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곳이고 또한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갈 수 있다는 신뢰감을 몸 전체로 느낀다.

세상에 대한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더욱 확고히 한다. 계속 욕구 충족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족과 더불어 적절한 좌절을 경험한다.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야 아이는 세상은 쉽지 않은 곳이며 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현실의 벽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도한 좌절 경험 역시 좋지 않다. 좌절이 많으면 자신감을 잃고 세상과 담을 쌓거나 세상을 중오하게 된다. 반대로 욕구 충족이 과도해도 문제가 된다. 즉각적인 충족 경험만을 한 사람은 미성숙한 자신감으로 인해 안하무인이 되거나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마보이나 마마걸이 될 수 있다.

좌절 없이 계속 욕구 충족이 된다면 자신에 대한 부풀려진 존재감은 극대화되고, 그래서 세상을 얕잡아 보게 된다. 그 결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무뎌진다. 다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하수인이자 소모품일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다.

남들이 보기에 그의 행동은 건방지고 미성숙하지만 자신은 자신이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거나 비난을 들으면 과도하게 분노한다. 이런 인격 성향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자기애적 인격'이라고 한다.

땅콩 회항과 인기 연속극 미생이 대비적으로 보이면서 더욱 자기애적 성향이 자꾸만 떠오른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발달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의 경험이 없고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부풀려졌다면 비극이다. 돌고 돌아 자신에게 가장 큰 비극이며 돌고 도는 동안 상처받았을 수많은 미생들의 그 자괴감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번 일이 재수 없이 걸린 일이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댄 언론 탓이며, 나의 지적과 비판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라고 만에 하나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더 큰 비극이 온다. 부디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당사자에게 큰 성찰과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은 이들은 현재 이 땅의 수많은 미생들이다. 세상이 험난할지라도 한 순간 자괴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을지라도 결코 증오를 키워서는 안 된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 과정을 나의 큰 도전으로 인식하고 해결 과제로 삼아 돌파하든 우회하든 피하던 간에 소중한 인생 공부를 하길 바란다. 

1215_최 경위 자살

여야,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에라도 합의하라

- 오늘부터 한달 일정으로 임시국회, 부동산 3법 등 경제 민생 법안 처리

-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연금법 관련 합의 내용
ㆍ 여당 "공무원연금법 처리 시한 설정, 자원외교 국조 동시 이행 주장"
ㆍ 야당 "직접적 관련성 없는 두 사안의 접목에 반대"하며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문제인 만큼 충분히 논의하자

- 새누리 법안 발의한 상태, 야당도 국민대타협위 구성과 동시에 자체안을 내겠다고 공언
ㆍ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타협위의 성격상 쟁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
ㆍ 의사 결정 구조와 절차 등과 함께 활동 시한만 미리 정해 두면 됨

- 400만 공무원 가족의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고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질적으로 다른 문제인 공무원연금법
ㆍ 동시에 검토해 동시에 마무리하자는 요구는 무리
ㆍ 정부의 재정 인내 한계를 넘어선 연금지급 구조의 개혁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 야당도 조속 처리해야
ㆍ 야당, 구체적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자세는 무책임함
ㆍ 여당이 구체적 사례도 들지 않고 무조건적 범위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정치공세일 뿐

- 여야 합의는 천금의 무게를 가져야 한다.
ㆍ 밥 먹듯이 합의를 파기, 신뢰 위기로 도리어 정국 경색을 부르려면 합의 안하는 것만도 못하다.


최 경위 자살이 일깨운 문건 수사의 문제점

- 서울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진 채 발견
ㆍ 유서 "책임을 경찰로 몰아간다, 억울하다", 검찰 수사 과정과 내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 피하기 어려워
ㆍ 최 경위 등 경찰관 2명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 최 경위의 자살과 영장 기각으로 검찰의 문건 유출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
ㆍ 검찰은 문건 작성 및 유출 행위가 조응천 전 비서관, 박관천 경정 등 '7인회'가 주도했다는 결과를 전달받음
ㆍ 실체 규명에 나서려던 상황에서 최 경위가 자살

-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보다는 문건 유출에 강도 높은 수사를 집중해 온 검찰의 자업자득
ㆍ 유출 행위는 '국기 문란'이라는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다 망신을 자초한 셈
ㆍ 자살도 큰 죄책이 없을 만한 사안인데도 문건 유출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큰 잘못을 저지른 인물로 내몰려

-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조차 조사하지 않은 채 문건을 허위로 결론짓고 유출자 색출에 여념
ㆍ 최 경위 자살에 따른 여론의 반작용에 대한 부담을 느낀 듯 뒤늦게 이 비서관을 소환하긴 했다.

- 비선 실세와 측근 세력의 국정 개입 여부가 핵심이다.
ㆍ 박지만은 물론, 나머지 비서진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련자 모두 불러 권력 암투설의 실체를 밝혀야
ㆍ 대통령 주변 관련 의혹이라고 덮고 넘어가려다 남은 임기 내내 짐이 될 것임을 청와대와 검찰 모두 깨달아야 


욕 먹어야 대통령이다

2004년 부시와 사우디 최고통치자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가 만났다. 왕세제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이스라엘 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부시 정부도 압박했으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시의 목장에 머물던 왕세제는 중도 귀국을 선언했고, 부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떠나려는 왕세제의 소매를 부여잡으며 부시가 마지막으로 산책을 하자고 했다. 차를 몰고 밖을 나왔는데 칠면조 한 마리가 도로를 막아 섰다. 왕세제가 갑자기 부시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형제여, 이건 알라의 계시입니다." 칠면조 출현애 감복한 왕세제는 곧 마음이 누그러졌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 온 왕세제는 일정 재개를 선언했다.

왕세제의 귀국을 막은 것은 1등 아랍어 통역사도 아니요. 베테랑 외교관도 아니라 대통령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칠면조지만. 12년 전 미국 얘기를 꺼낸 건 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는 '대통령 비선' 실세 논란 때문이다. 

그럴듯한 얘기와 살 붙임 때문에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이 일반인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검찰 수사와 박 대통령 언급, 그리고 부시 전 대통령의 칠면조 사례를 감안하면 소문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베테랑 외교관이 실패한 걸 칠면조가 해내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초강대국 외교에도 발생하듯, 해명의 논리구조가 상식에 맞지 않더라도 ▲유출된 청와대 비밀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비선 라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박 대통령은 세간의 소문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처지가 비슷한 두 명의 부시 전 대통령들이 강력한 비판과 선거 패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면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욕먹는 게 대통령의 일'이라는 듯, 여론을 수렴해 참모진을 개편하고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았다. 

1213_문건 암투 끝 안보인다

청와대까지 끼어든 '문건 암투' 끝이 안 보인다

- 청와대, 문건 작성 및 유출 배후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중심이 된 7인 모임을 지목

- 박 대통령 '찌라시' '터무니없는 얘기'
ㆍ 조 전 비서관 '문건의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며 비선 조직의 국정농단 가능성에 힘을 실었던 인물
ㆍ 청 "조 전 비서관을 청와대 문건 확산의 중심지로 파악하고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는 것, 의심스러움
ㆍ 7인 모임, 박지만 회장 측근 전모씨까지 끼어 있다는 걸로 봐서 대통령 주변의 대립과 충돌 구도 형성이 짐작

- 오 행정관 "조 전 비서관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감찰 내용에 대해 서명하지 않았다"
ㆍ 조 전 비서관은 자신의 간여는 물론, 7인 모임까지 청와대의 조작물이라며 특별감찰 내용을 강하게 비판
ㆍ 당사자가 시인하지 않는 특별감찰 내용이 청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특정 의도, 시나리오를 가진 여론몰이'

-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 정윤회와 부속실 3인방 vs. 박지만 그룹 간 충돌 구도까지
ㆍ 복잡하고 혼란스런 상황에 청와대까지 간계를 사용하는 듯한 분위기
ㆍ 권력의 핵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가 과연 청와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검 수사로 가려질 수 있나

- 비선 조직의 국정개입 의혹이 대통령이 측근과 동생까지 개입된 권력 투쟁 양상으로 확대되는 이 상황
ㆍ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인적 쇄신과 실체적 진실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 뿐


별빛은 모든 곳을 비춘다

- 크리스마스, 아기예수는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참한 상태로 세상으로 나왔다.
ㆍ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 헐벗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위한 탄생
ㆍ 예수는 이런 사람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심지어 저주했다.

- 부자 마을에도 예수는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과 재력을 축하하고 더 큰 복을 주기 위해 가지 않았다.
ㆍ 혹여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그것도 나보다 못한 자의 불행을 강제한 것은 없는지
ㆍ 탐욕에 눈멀어 사람값 제대로 못하지는 않았는지
ㆍ 잘못은 질책하고 새로운 인격의 삶을 살라고 타이르기 위해 찾아간다.

- 어느 부자 동네 아파트에서 인격적 모멸감에 분노한 경비원이 분신. 입주민들로서는 황당했을 것
ㆍ 경비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ㆍ 분신이 사람의 가치에 대한 마지막 호소라는 점, 소신공양(몸을 태워)일 수 있음을 깨달은 이들이 있을까?
ㆍ 그 아파트에 교회, 절, 성당 다니는 사람 많겠지. 그러나 모두 입을 다물었다.
ㆍ 예수의 가르침은 그냥 건강식으로 드셨던 모양
ㆍ 그저 부자 신자, 권력자 신자 많이 모여 자기네 교회 힘 과시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서야…

- 베들레헴 작은 마을 누추한 여관의 마구간에서 예수가 태어난 것은 여관 방이 다 찼기 때문
ㆍ 어느 누구 하나 남산처럼 배부른 산모에게 방을 양보하지 않았다.
ㆍ 멀리 목동과 동방박사들은 찾아왔지만 정작 같은 여관에 있던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ㆍ 스스로를 목자로, 동방박사로 착각하며 구유에 누운 아기에 경배하지 말 일
ㆍ 밤하늘 별빛은 그 동네만 비추는 게 아니다. 나를 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철회한 뒤에 경배하라. 


올랭프 드 구주: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다 왕정복권죄를 뒤집어쓰고 단두대에서 처형 당한 프랑스 페미니스트

이국의 낯선 여성 혁명가를 를 새삽스레 불러낸 것은, 그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을 통해 정착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너무도 쉽게 거스르는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맞춰 선포될 예정이던 '서울시 인권헌장'이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둘러싼 논란 끝에 무산됐다.

시민위원회는 28일 표결을 실시해 압도적 찬성으로 이 조항이 포함된 원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합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효를 선언했다. 박 시장이 "제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상황"을 무릅쓰고, 게다가 매우 비민주적 방식으로 인권헌장을 무산시킨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

박 시장이 인권헌장 제정을 손쉽고 의미 있는 이벤트 혹은 치적으로 생각했다면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올랭프 드 구주의 삶을 찬찬히 되새겨 보길 바란다. "인권에 가담한다고 하면서 일괄적이지 못하다면 인권에 전혀 가담하지 않은 것과 같다."



파시즘의 시대

익산에서 벌어진 '폭탄테러'는 의미심장하다. 마침내 대한민국에 진정한 의미의 파시스트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헌정을 파괴하고 집권한 박정희가 다스린 18년 동안(특히 유신시대)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에 대한 부정, 사회 전 부면에 대한 전체주의적 재편, 통치의 주요기제로서 폭력의 채택 등의 파시즘적 요소가 짙게 드리운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해서 박정희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이었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박정희 정권에는 동원된 대중이 있었을 뿐 자발적 파시스트들의 결사와 운동은 없었다.
이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민국에는 자발적 파시스트들이 득시글거린다. 호기심의 대상이던 '일베'에는 어느덧 반합리주의, 불평등에 대한 옹호,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사회적 약자(여성, 전라도,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등)에 대한 멸시와 차별과 적대와 배제의 정당화 등의 파시즘의 기본적 특징이 넘쳐난다. '일베'는 사이버상의 말과 글로 자신들의 파시스트적 정체성을 폭로하는데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광화문 폭식투쟁을 비롯한 집단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일베에 심취한 고등학생에 의해 자행된 익산 폭탄테러는 자발적 파시스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폭력마저 서슴치 않음을 보여준다.      
▲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폭발 당시 영상 갈무리
점입가경인 것은 온갖 극우인사들이 익산 고등학생 테러범을 한국판 호르스트 베셀(호르스트 베셀은 나찌가 발호할 당시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 지구 담당 돌격대 사령관이었는데 공산당원들에게 살해당했다. 나찌는 호르스트 베셀을 순교자로 만들었고 공산당 탄압에 그의 죽음을 이용했다)로 만들려고 광분중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범죄에 가까운 행동일 뿐더러 비겁하기 이를데 없는 짓이기도 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베'를 비롯한 자발적 파시스트들이 박근혜 정부와 비대(肥大)언론의 정치적 자객(刺客)으로 사실상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사이의 편가르기와 분열과 적대를 통치의 기본으로 삼는 박근혜 정부와 메인스트림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비대언론은 '일베'를 비롯한 자발적 파시스트들이 창궐하는 부화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일베'를 비롯한 자발적 파시스트들은 돌격대(SA)가 히틀러에게 했던 기능, 홍위병이 모택동에게 했던 역할을 방불케하는 지경으로 무섭게 나아가는 중이다.
 
일찍이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선의 방관이 악을 꽃피운다"고 갈파한 바 있다. 칸트와 헤겔과 괴테의 나라 독일은 이 격언을 무시했다가 너무나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대한민국의 지식인들과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파시스트들의 궐기를 방관한다면 죽창의 난무와 화약냄새의 진동이 머지 않았다.

경위 자살 비판 수위 높이는

최모 경위 자살, 청와대 비판 수위 높이는 조중동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지난 13일 고향 집 인근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널리 보도된 15일 아침 보수언론의 청와대 비판의 수위가 높아졌다. 최 경위는 지난 9일 검찰에 체포됐다가 12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으나 검찰은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해 압박한 바 있다.
▲ 15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정윤회 문건’ 정국 언론보도를 둘러싼 보수언론끼리의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다. 14일 <채널A>가 최모 경위의 유서에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원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자 14일 오후 <조선일보>는 “최 경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조의를 표한다”면서 “본지가 그동안 보도한 최 경위의 (문건) 유출 관련 혐의 내용은 검찰로부터 확인된 취재 내용이거나 구속영장에 적시된 내용으로, 이는 타 언론들도 보도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15일자 <동아일보> 3면엔 이와 같은 정황을 묶어서 보도한 <崔경위 “조선일보가 주범으로 몰고가 힘들어”>란 기사가 실렸다. ‘정윤회 문건’ 정국에서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비해 초기에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조중동’ 역시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사조치는 검토도 하지 않고 검찰수사만 기다리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조선일보>는 <갈수록 꼬이는 靑 문건 파문, 人事 쇄신 서둘러 해답 찾아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최 경위의 자살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가 곤혹스러운 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오히려 대통령·여당이 문건을 '허위'라고 몰아세운 것이 검찰 수사에 지침(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의혹만 키운 꼴이 됐다”라고 주장하면서, 최모 경위 자살 이후 “문건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이 사건을 계속 끌고가려는 정치적 동력(動力)이 한층 강화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조선일보> 사설은 “문건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이 사건을 계속 끌고가려는 정치적 동력(動力)이 한층 강화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새누리당에서까지 국정 농단이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청와대 내부 기강(紀綱)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이 쇄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감싸고도는 한 어떤 인사를 단행하고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의혹이 해소되기 어렵다. 결단성 있는 쇄신 인사를 통해 보름밖에 남지 않은 임기 3년 차의 문을 열어야 한다”라며 김기춘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쇄신 인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서 청와대의 입장을 가장 많이 대변했던 <중앙일보> 역시 15일 “이러니 짜맞추기 수사 소리 듣는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 수사와 청와대의 의중을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검찰은 우선 최 경위의 유서에서 제기된 입맞추기 수사 의혹부터 시원하게 밝히는 게 순서다.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민정비서관실의 제의’가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선 짜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비판했다.
▲ 15일자 중앙일보 5면 기사
또 <중앙일보> 사설은 “며칠 전에도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유출에 대한 자체 감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라면서, “청와대의 이런 행태는 도를 넘는 월권행위이자 진행 중인 사건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칫 정윤회씨 등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이란 사건의 본질을 희석해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등이 주도한 허위 문건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처럼 청와대 인사 쇄신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문건에 적힌 실세들의 국정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게 본질이자 핵심”임을 검찰에 요구하는 선에서 그쳤다.
같은 날 <동아일보> 역시 <중앙일보>와 비슷한 수위로 “이재만 특별 대우한 검찰 ‘국정 개입’ 규명할 의지 있나”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검찰이 최 경위를 지나치게 압박한 것이 자살의 한 원인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라면서, “수사 과정에서 최 경위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검찰은 철저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의혹 수사에 대해 “이들이 국정 개입을 한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는 문건 유출 수사와는 대조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이재만 총무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그는 사전 조율을 통해 취재진이 기다리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검찰 청사로 들어갔다. 검찰이 특별히 신경을 써준 덕분이다. 이런 대우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대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부추길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 15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이어서 <동아일보> 사설은 “이런 식으로 가면 검찰의 수사 결과에 불신을 초래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부를 수밖에 없다”라며 야당의 주장을 일정 부분 대변했다.

‘정윤회 문건’ 정국이 확산되면서 보수언론의 청와대 비판 수위가 진보언론의 그것에 비등해졌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특히 임기 3년차를 걱정하며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 듯한 <조선일보>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 퇴진론을 적극 제기하기 시작한 상황은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완고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보수언론들의 ‘위기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파국과 허무

욕망이 거세당하는 시대의 ‘불임’에 대해 쓰려다가 손을 내려놨다. 얼마 전 나는 굴지의 보험사로부터 수천만원 짜리 ‘테러’를 당했다. 4년 전 여름 서울 교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처리된 보험 처리액을 모두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대법원의 어떤 판례가 나의 수혜 사례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구상권 청구를 한 것이었다. 어떤 경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통장이 압류됐고 몇 푼 없던 전재산이 사라져버렸다. 이리하여 나는, 금융 거래가 불가능해진, 소위 ‘신용 없는 사람’ 쯤이 되었다.

파산
이른 아침 바람이 차가웠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시내버스와 김밥집에서 틀어놓은 TV뉴스에선 빚과 파산에 대한 이야기들이 숨겨놓은 일기장처럼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사람은 응당 자존감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멀쩡할 리 없다. 오만가지 생각이 닥쳐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운동을 포기해야할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부터 이 세상의 모든 억압적 풍경까지 세상에 대한 까닭 모를 분노가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내 삶을 장악하고 좌지우지하는 세계에 대한 원한과 분노, 냉소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젓고 다녔다.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다시 회귀해 일상을 뒤흔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4년도 더 지난 ‘과거’였다. 인생에게 거대한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통장 따위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작해야 우리나라에 있는 통장 계좌 2억5천만개 중 2개가 사라졌을 뿐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2014년 상반기 은행수신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4년 6월말 현재 우리나라 기업과 개인이 예금은행에 넣어둔 5억원 초과 거액계좌의 총액은 약 526조8천억원에 이른다. 대다수 사람들의 빚은 늘고 일상은 팍팍해졌지만 부유한 이들이 한푼두푼 모아둔 통장의 총액은 끊임없이 늘고 있다. 대관절 금융 자본의 기세가 이리 삐까뻔쩍할진데 ‘압류’ 따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밥알을 꾸역꾸역 씹으며, 마음속으로 무기한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노동자들의 힘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리모델링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사는 한 지불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기도 하겠지만, 저마다의 구체적인 삶들을 우리의 불안을 매개로 장사하는 이들에게 저당 잡힐 순 없지 않은가.

테러
이런 가운데 우리는 원한 가득한 키보드의 언어로 냉소와 혐오로 점철된 세계를 구성한 이들의 테러를 보고 있다. 이를 선도적으로 감행한 어느 열아홉 청년은 스스로 ‘전사’가 되어 파국적인 실천을 감행했다. 한 재벌2세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의 항공기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자기 소유물이자 노예처럼 다뤄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 지배권력의 숨은 실세로 알려져 있던 한 남자는 마침내 번듯한 얼굴로 세상에 나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 다 밝혀질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스펙타클한 외형을 띄고 업로드 된 뉴스들 행간마다 원한과 분노, 냉소가 뒤죽박죽 섞여져 흘러나왔다.
▲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오모(18)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이 사고로 매캐한 연기가 나면서 관객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사진=연합뉴스)

짐짓 영웅이 될 심산으로 테러를 자행한 오씨로서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보는 세계는 예전에 우리가 ‘보편’이라 믿고 있던 어떤 사회의 통념 같은 것을 결여하고 있다. ‘견해가 다른 상대와 논쟁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거쳐야 한다’,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물리적인 폭력을 통해 위협을 가해선 안 된다’와 같은 상식 말이다. 이런 것을 결여한 그로써는 어쩌면 제 나름의 ‘정의’를 실현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오씨와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테러를 윤봉길의 의거에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정의’는 정상적인 사회국가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할 때, 파국 자체를 넘어선 오늘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도 해명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알던 상식들로 연결된 ‘그 사회’는 이미 먼지처럼 바스라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행위만큼만 할 수 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모두들 자유나 도덕 따위를 부르짖지만 실제로 우리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채로 강박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뉴스 속 등장인물들은 일관되게 폐쇄적이다. 그들은 실제로는 권력의 실세로 움직이며 모든 것을 제어하지만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대중교통수단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사적인 소유물처럼 취급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들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하며, 자신이 수용한 비뚤어진 프레임에서 어긋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해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니힐리스트들이다.
뷸렌트 디켄(Bülent Diken)에 따르면 니힐리즘은 “세계가 목표, 통합성 혹은 의미를 상실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것”에 그 원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폐쇄적인 파괴자들 역시 자신의 이념이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거나 실현되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세계 자체를 거부하는 존재일 수 있다. 텅 비어버린 사회, 그래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허무
디켄은 니힐리즘 혹은 니힐리스트들을 세 가지 형태로 나눈다. 부정적 니힐리즘으로서 ‘원한 품은 노예’, 수동적 니힐리즘으로서의 ‘냉소하는 잉여’, 급진적 니힐리즘으로서 ‘분노하는 테러리스트’가 그것이다. 다소 논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이야기하자면 이런 니힐리즘적 주체들은 외양만 다를 뿐 소위 ‘깨어있는 시민’, ‘진보 운동’에도 상당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주자 출신 첫 국회의원 이자스민의 긍정적인 면모까지 혐오하는 진보-니힐리스트들의 사이버 실천, 아고라에 올라오는 허무맹랑한 음모론들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테러라는 끔찍한 행위까지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우리는 종종 원한을 품은 노예이기도 하고 때때로 분노하는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쩔 땐 냉소하는 잉여의 얼굴로 나타나 몰락하는 사회의 모든 것에 대해 비관하고 냉소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를 파괴하는 뉴스들에 대해 도덕적 힐난을 보내기를 아끼지 않는다. 인터넷 뉴스 댓글 창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격분들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그 안에는 물론 권력자들 멋대로 작동되는 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타당한 분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외침들은 앙상한 비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외침들은 파괴적인 운동을 배양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니힐리스트를 양산하는 파국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치료한 후 더 강한 바이러스가 나타나듯 내성만 키우기 십상이다. 문제는 그들이 왜 그렇게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개인의 파산 이후 나는 애써 거시적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분명 쉽지 않다.) 나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다보면 사소하게 시작해서 찌질하게 끝나는 일상의 모든 것은 허무해져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의 우리가 파국적인 금융위기에 직면했던 2012년의 그리스라면 어땠어야 했을까? 혹은 모든 것이 후퇴하기 시작한 97년 IMF 외환위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민주정부’는 재벌들의 파산은 보상해주고 노동자들에겐 해고가 자유롭고 불안정한 일자리도 마음껏 양산되는 헬게이트를 열어주었다. 권력자들은 대다수 국민의 삶을 추락으로 내몰면서 각종 경제지표는 올려놓는 성과 아닌 ‘성과’를 이뤄냈다. 우리는 미약했고, 파국에 맞선 용기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모든 것은 파괴되기 시작했다.


“모순은 희망”
아주 천천히 숨을 죄어오며 찾아온 이번 위기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리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주목하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절대적이고도 지배적인 가치들에 대해 의구심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으로 인해 그것들을 다시 배열하고 구성해내지 않으면 ‘희망’이란 결코 요원한 것이지 않을까?
서동진이 <변증법의 낮잠>에서 인용한 브레히트에 따르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모순 때문”이다.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에겐 그것들을 지금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고, 동시에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즉, “모순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것, 모든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무엇”이다. 서동진은 이를 자본주의의 적대라 칭하며 동시에 정치가 자리해야 할 장소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가장 무관심한 것으로 전락한 정치를 되살려 냄으로써” 서로를 배척하는 시선들로 나누어진, 세계를 보는 관점을 ‘발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보험사의 ‘공격’에 의해 파산 당했지만, 실은 나는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나에게 정신적으로 심대한 잘못, 테러나 다름없는 공격을 저질렀음이 명백하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빚을 갚고 압류 상태를 풀 능력도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역행해 테러에 대한 빚을 갚아주어야 할 권리가 있다. 가난한 채무자들이 넘치는 나라, 한쪽에선 523조원을 쌓아두고 다른 한 쪽에선 개인소득 1천만원인 사람이 절반에 달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지금 파국 앞의 허무에 빠지지 않고 파산된 자들로서의 복수, 세계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발명해야 하는 이유다. 이건 황산테러 가해자 오씨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파국’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넋 놓고 허무에 이용당해선 안 된다.
cf.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
서동진, <변증법의 낮잠>
이건범, <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