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의 반대말은 국민들의 법 무시가 아니라 권력자와 국가의 자의적인 통치 또는 인치라고 하는 게 옳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해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 창달에 노력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법치주의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헌법에 따라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은 온통 국가가 국민들에게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규정, 또는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줘야 하는 규정으로 가득하다.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수십만 년, 문명의 역사 5,000년 동안 인간은 한순간도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국가와 국가를 지배한 권력자들은 제 마음대로 사람을 잡아가고 재산을 빼앗고 죽였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게 했고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신분제도를 만들어 귀족의 자식은 귀족의 직업을, 천민의 자식은 천민의 직업을 가지게 했다. 약자를 짓밟으면서 강자에게는 특권을 주었다. 인간은 권력과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그 긴 세월을 살았다.
법치주의는 문명의 진화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다. 국가와 권력자들은 이제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 공평하지 못한 법 집행을 헌법이 금지한 것이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본질이다.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공공연하게 하면서,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설교하는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문명의 역사에 대한 교양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엄하게 보면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도전하는 발칙한 망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역전시켰으며, 우리의 유전자와 두뇌에 입력된 낡은 매뉴얼의 폐기를 요구한다. 지도자와 권력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본능적 행동과 결별하라는 것이다.
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을 통해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법률이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헌법은 법률에 종속되고 만다.
국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회 시위를 사전에 신고 받는다. 신고를 받아주지 않으면 집회를 할 수 없다. 꼭 집회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집회를 강행하면 이것을 불법 집회라고 규정하고 주동자를 잡아 가둔다. 질서유지를 위한 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집시법이 헌법 21조와 제37조 2항의 효력을 박탈하는 것이니 당연히 위헌이 된다. 제37조 제2항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직후 헌법을 개정했을 때 처음 도입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집회 허가제를 실시한다니, 헌법을 내놓고 무시하는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감히 이렇게 하지 못한다.
복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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